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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영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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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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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노시훈*

목 차

Ⅰ. 서론

Ⅱ. 유령영화의 의미론: 원칙과 타자

Ⅲ. 유령영화의 통사론: 서사구조와 결말

Ⅳ. 유령영화의 양태론: 시점과 시간

Ⅴ. 결론

<국문초록>

본고의 목적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디 아더스>를 중심으로 유 령영화가 어떤 차별화의 시도를 할 수 있는가를 의미론, 통사론, 양태론의 측면에 서 고찰하는 데 있다. 의미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유령이야기의 원 칙을 잘 따르고 있는 반면, 타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유령(타자)과 살아있 는 사람(동일자)의 위치를 역전시켜 타자와의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유령영화가 유령이야기의 모티프를 새롭게 변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통사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서사구조는 환상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지 않으나 결말에 있어서는 일 반적인 유령이야기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결말을 통해 이 영화의 장르성 을 드러내는 한편 서사구조를 통해 그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서사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태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지속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기존 방식을 따르고 있는 반면, 시점에 있어서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인칭의 장점을 이 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본고의 의의는 <디 아더스>의 분석을 통해 유령이 야기 내에서 유령영화의 차별화 가능성을 밝힌 데 있다.

*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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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 유령영화, <디 아더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유령이야기, 환상문학

Ⅰ. 서론

유령이야기(ghost story)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는 장르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많은 설화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기록문학에서 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설화의 예로는 아르네-톰슨 분류체계(Aarne-Thompson classification systems)의 366 유형인 <교수대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the Gallows)>1)와 769 유형인 <죽은 아이가 부모에게 다정하게 돌아옴 (Dead Child’s Friendly Return to Parents)>2)을 들 수 있다. 전자의 이야기에 서는 어떤 사람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심장(간, 위, 옷)을 훔쳐 아내에게 먹게 하자 유령이 나타나 자신의 재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그를 죽이고, 후자의 이야기에서는 죽은 아이가 부모가 우는 것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유령으로 나타난다.

서양 고대 기록문학의 예는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Odysseia)>

뺷구약성서(Old Testament)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자에서는 오디세 우스가 지하세계로 내려가 익사한 그의 선원들의 유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후자의 「사무엘 상(The First Book of Samuel)」에서는 전투 결과를 알고 싶은 사울(Saul) 왕의 명령으로 엔도르의 무당(Witch of Endor)이 사무엘 (Samuel)의 영혼을 불러낸다(28: 3∼25).

장클로드 슈미트(Jean Claude Schmitt)에 따르자면 유령을 실재하는 것 으로 믿었던 중세(5세기~15세기)에 기록된 유령이야기는 두 가지 유형으

1) Antti Amatus Aarne, The Types of the Folktale: a Classification and Bibliography, translated and enlarged by Stith Thompson, 2nd revision (Helsinki: Suomalainen Tiedeakatemia, 1973), p.127.

2) Ibid.,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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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구전되던 것을 성직자가 기록한 다수의 ‘보고된 이야기(récit rapporté)’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소수의 ‘자 전적 이야기(récit autobiographique)’이다.3) 또한 그에 따르면 “죽은 자들 은 특히 장례와 애도의 의식들이 정상적으로 행해지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데”, 중세의 유령들은 “끈질기게 그리고 죽음 이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기 독교적 메모리아[mémoria: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의식이나 행위]의 규칙적 작용을 끈질기게 막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애도 작업’을 방해하는 드 문 죽은 자들”4)이다.

중세 이후 현대까지의 유령이야기의 예로는 영어권 문학으로만 한정하더 라도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Hamlet)>(c1601), 호러스 월폴(Horace Walpole)의 <오트란토의 성(The Castle of Otranto)>

(1765)을 비롯한 고딕소설(gothic novel)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1843), 헨리 제임스(Henry James) 의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1898) 외에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이 장르가 오랫동안 크게 발전했다 는 것은 뺷미국의 악몽: 미국 대중문학에서의 유령의 집 형식(American

nightmares: the haunted house formula in American popular fiction)

뺸(1999) 과 같은 연구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나라에서 유령의 세부 모티프와 관련하여 일련의 작품군이 형성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유령이야기는 이와 같이 환상문학(fantastic literature)의 장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공포영화(horror film)와 같은 환상 영화(fantastic film) 장르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다. 영화 탄생 1년 뒤인 1896년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가 만든 단편영화 <악마의 성(Le

Manoir du diable)>은 유령을 묘사한 최초의 영화로 여겨지고 있어서 유령

3) Jean Claude Schmitt, Les revenants: les vivants et les morts dans la société médiévale (Paris: Gallimard, 1994), pp.20~21.

4) Ibid., p.15,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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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가 영화의 탄생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11월 현재 세계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https://www.imdb.com/)에서 검색어 를 ‘유령(ghost)’으로 하여 찾았을 때 5,403편, ‘유령의 집(haunted house)’으 로 하여 찾았을 때 1,173편의 영화가 검색되는 것만 보더라도 이 모티프가 문학 못지않게 영화에서 매우 빈번하게 활용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유령이야기가 영화에서 어떻게 문학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두 장르는 사용하는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모티프의 표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ábar) 감독의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2001)를 중심으로 유령영화가 어떤 차별화 의 시도를 할 수 있는가를 의미론, 통사론, 양태론의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 고찰에는 문학과의 비교를 위해 환상문학과 그 하위 장르로서의 유령이야기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을 적용해볼 것이다. <디 아더스>를 본고의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영화가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감독의 <식스 센스(The Sixth Sense)>(1999)와 함께 현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령영화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문제작 가운데 전자가 후자보다 분석 대상으로 더 적합한 이유는 전자가 ‘유령의 집’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구식의 유령이야기”5)이지만 “절 제되었으면서도 큰 충격을 주는 유령이야기”6)이며, “한편으로 잘 작동하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산뜻하게 사려 깊고 능수능 란하게 잘 만들어진 유령이야기”7)여서 차별성을 가져오는 요소를 보다 관찰

5) Scott Nash, “The Others: No door is to be opened before the previous one is closed,”

Three Movie Buffs, August 12, 2001, http://www.threemoviebuffs.com/review/others.

html.

6) David Edelstein, “Chilling Me Softly: Five current thrillers-The Others, The Deep End, Session 9, Audition, and Cure-can’t top the horror of Cage and Cruz in Captain Corelli’s Mandolin,” Slate, August 17, 2001, https://slate.com/culture/2001/08/chilling- me-softl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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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용이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령이야기로서의 이와 같은 중요 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김성곤(2002), 우미성(2004), 이왕주(2005)의 연 구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제대로 연구된 바 없기 때문이다.

Ⅱ. 유령영화의 의미론: 원칙과 타자

유령영화의 의미론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유령이야 기 작가로 알려져 있는 몬테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가 그 의 「유령이야기에 대한 몇 가지 견해(Some Remarks on Ghost Stories)」

(1929)에서 주장하고 있는 그 이야기의 원칙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는 “예전의 거의 모든 유령이야기들이 주목할 만한 사건들에 대한 진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면서 진실의 가장을 원칙으로서 제시한다. 둘째, 그는

“독자에게 즐거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유일한 목적이 (…) 유령이야기의 진정한 목적”이라면서 그 이야기가 지향해야 할 바를 언급한다. 셋째, 그는

‘과묵함(reticence)’을 권장하고 ‘소란함(blatancy)’을 경계하면서 까닭 없이 과도한 ‘섹스(sex)’와 ‘유혈(bloodshed)’을 자제할 것을 충고한다. 넷째, 그는

“가장 커다란 성공은 우리가 명확한 시간과 장소를 상상하게 해주고 우리에 게 많은 분명하고 사실적인 세부를 제공해주지만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자신들 의 기계의 작동에 대해 아주 잠깐 동안 알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이론의 뼈대를 보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이야기의 장치에 대한 설명을 금한다. 다섯째, 그는 “배경과 등 장인물은 작가가 활동한 시대에 속하며 예스러움을 가지지 않는다. 현재 이러 한 방식은 반드시 성공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이야기들의

7) Daniel Saney, “The Others: Nicole Kidman stars in supernatural thriller The Others at 21.30 Saturday on BBC2,” Digital Spy, March 31, 2006, https://www.digitalspy.com/

movies/a31074/the-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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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이라면서 유령이야기의 배경의 동시대성을 강조한다.8) 이 언급들을 종 합하면 제임스가 「유령이야기에 대한 몇 가지 견해」에서 주장하는 바는 진실 의 가장, 즐거운 공포, 까닭 없이 과도한 섹스와 유혈의 자제, 장치의 설명에 대한 금지, 배경의 동시대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제임스가 제시한 원칙들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의 주장의 근거로서 잘 만들어진 수많은 유령이야기들의 예를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유령이야기의 보편적 특징으로 보고 <디 아더스>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제임스의 첫 번째 원칙인 ‘진실의 가장’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 시간적ㆍ공간적 배경을 명확한 실제 사건과 공간으로 설정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영화 속의 유령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 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배경을 활용하는 것이다. 주동인물인 그레이스(Grace)를 둘러싼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5년,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에 가까운 영국 채널 제도(Channel Islands)의 왕실령인 저지(Bailiwick of Jersey) 섬의 외딴 저택이다. 이 배경 을 통해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편 찰스(Charles)의 부재와 저택을 온통 뒤덮고 있는 안개가 설명되며 영화는 사실성을 얻는다.

두 번째 원칙인 ‘즐거운 공포’에 대해서도 영화가 그것을 관객에게 충분 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느닷없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피아노가 연주되고, 딸 앤(Anne)은 빅터(Victor)라는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이 저택에 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하 며, 세 명의 하인들[밀즈 부인(Mrs. Mills), 정원사 터틀(Tuttle), 벙어리 소 녀 리디아(Lydia)]이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등 저택에서 괴이한

8) M. R. James, “Appendix: M. R. James on Ghost Stories, ‘Some Remarks on Ghost Stories’”, Collected Ghost Stories, edite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Darryl Jones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pp.410~416. 원래 이 글은 뺷북맨(The Bookman)뺸이라는 문학잡지의 1929년 12월 크리스마스호의 169~172쪽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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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이 계속 벌어지면서 관객의 두려움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공포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유혈이 낭자한 장면은 볼 수 없 어서 ‘까닭 없이 과도한 섹스와 유혈의 자제’라는 세 번째 원칙 가운데 ‘유 혈’의 자제는 확실히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섹스’는 그레이스가 돌아 온 찰스와 하룻밤을 보내기 때문에 없지 않지만 그것이 ‘까닭 없이 과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세 번째 원칙도 잘 지켜졌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원칙인 ‘장치의 설명에 대한 금지’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 영화는 죽은 이들을 찍은 사진첩에 있는 하인들의 사진으로 그 들 역시 죽은 자들임을 알게 하는 것과 같이 세부를 통해 사실을 하나씩 깨닫게 하지만 의문의 사건들의 결정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결말까지 미 뤄두었다가 설명 대신 영매의 등장으로 그레이스 가족의 실체(유령)를 드 러나게 만든다.

‘배경의 동시대성’이라는 다섯 번째 원칙은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아메나바르가 감독ㆍ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가 1992년이어서 지켜지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제임스의 말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면 <디 아더스>는 전체적으로 유령이야기의 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진실’, ‘공포’, ‘섹스’, ‘유혈’ 등의 모티프와 이것들이 작동하기 위한 ‘장치’와 ‘배경’에서 의미론적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면, 다음으로 우리 는 유령이 의미하는 바로서 가장 많이 해석되는 ‘타자’의 문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로빈 우드(Robin Wood)는 ‘타자성(otherness)’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없지만 두 방법 중 하나로 반드시 다 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두 가지 방법이란 “그것을 거부하고, 가 능하면 그것을 전멸시키거나, 아니면 그것을 안전하게 만들고, 동화시키고, 가능한 한 그것 자체의 복사물로 전환시키는 것”9)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타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아주 단순하게 다른 사람 외에 여성, 프롤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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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른 문화, 한 문화 내의 다른 인종집단, 대안적 이데올로기나 정치제도, 이데올로기적인 성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들, 특히 양성애․동성애, 어린 이 등을 들고 있다. 리처드 커니(Richard Kearney)는 뺷이방인, 신, 괴물: 타 자성 해석하기(Strangers, Gods, and monsters: interpreting otherness)뺸 (2003)에서 유령을 이방인, 신, 괴물과 같은 것으로 보고 그것의 타자화 과 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치 가족처럼 닮은 다양한 유령, 환영, 분신과 함께) 대부분의 이방인, 신, 괴물은 인간 정신 안에 깊이 나있는 균열의 표시이다. 그들은 우리가 의식과 무 의식, 친숙한 것과 낯선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에서 얼마나 분열되어있는지 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a) 기이한 것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려고 시도하기 또 는 (b) 그것을 배타적으로 국외자로 봄으로써 거부하기. 너무나 자주 인간들은 후자를 선택해왔다[…].10)

이처럼 기이한 것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 안에서 우리를 뒷걸음 치게 만드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자주 타자들에게 투사”하기 때문인데, 이 는 “우리가 이번에는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이상한 타자성에 응답하는 이상 한 타자로서 우리 앞에 있는 이방인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우리 가 타자로서의 우리 자신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11)이다. 이와 같은 관 점에서 유령, 이방인, 신, 괴물 등의 타자와의 화해는 그러한 타자화 과정을 이해하고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유령을 위와 같이 타자의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디 아더스>(영화의 제

9) Robin Wood, Hollywood from Vietnam to Reagan - and beyond, Expanded and rev.

e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3), pp.65~66.

10) Richard Kearney, Strangers, Gods, and monsters: interpreting otherness (London;

New York: Routledge, 2003), p.4.

11) Ibid.,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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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자체가 ‘타자들’이라는 뜻이다)는 그동안의 유령이야기에서는 볼 수 없 었던 유령에 대한 관점의 진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유 령과 살아있는 자의 입장을 완전히 전도시키는 전례 없는 방식을 취함으로 써 유령에게는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이 ‘침입자(intruder)’임을 깨닫게 해준 다. 이러한 점에서 김성곤은 <디 아더스>를 “타자에 대한 편견과 타자와의 공존 같은 절박한 문제들”을 다룬 영화로 보고 유령들이 “우리가 보는 타자 들. 즉 서양이 보는 동양, 백인이 보는 유색인, 또는 기독교가 보는 이단종 교의 은유”12)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왕주는 “집합적 의미로서 동일자[the same]는 중심부의 인간들, 즉 남 자, 백인, 부자, 지식인, 권력자를 뜻하고, 타자[the other]는 주변부 계층, 하 층민, 소외된 사람들, 이를테면 여자, 흑인, 고아, 장애인, 가난뱅이, 장애인, 왼손잡이, 무식자, 무직자 등”을 말하는데, “원래 동일자와 타자는 동쪽과 서쪽, 이쪽과 저쪽처럼 호환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13)이기 때문에 얼마든 지 양자가 뒤바뀔 수 있음을 이 영화가 상기시켜 준다고 해석한다. 그는 또 한 “타자 앞에 선 동일자의 전략은 두 가지뿐”으로 “타자의 차이를 동일화 시키거나 아니면 무화시키는 것”14)인데, <디 아더스>는 “이 집은 우리거 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레이스를 통해 타자의 식민화를 역전시키고 있 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보다는 ‘타자와의 공존’에 더 무게를 두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침입자들은 떠나지 만 다른 사람들이 올 겁니다. 가끔 우리는 그들을 느끼겠지만 다른 때는 그 러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항시 그랬어요”라며 밀즈 부인이 산 자들과 어울 려 살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할 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디 아더스>는 타자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제시함으로써 유령영화가 유령이야기의 모 티프를 새롭게 변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 김성곤, 뺷김성곤의 영화기행뺸, 서울: 효형출판, 2002, 30쪽.

13) 이왕주, 뺷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뺸, 서울: 효형출판, 2005, 88쪽.

14) 같은 책,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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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유령영화의 통사론: 서사구조와 결말

장 파브르(Jean Fabre)는 뺷마녀의 거울: 환상문학시론(Le miroir de

sorcière: essai sur la littérature fantastique)

뺸(1992)에서 환상문학의 통사론 을 논하면서 특히 서사의 순서와 결말을 중점적으로 고찰하는데, 이에 따라

<디 아더스>가 이야기를 전개하고 결말을 짓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유령이 야기로서 이 영화가 통사론적 측면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파브르는 환상문학의 서사가 네 서사요소의 작용을 통해 이루어 진다고 보고 이를 ‘정상상태(Normalité)→수난(Passion)→인식(Connaissance)

→ 행동(Action)(N.P.C.A.)’과 같이 공식화하였다. ‘정상상태’는 원래의 현실 을 말한다. 행동과 반대되는 ‘수난’은 주동인물의 그를 초월하는 힘에 대한 복종을 나타낸다. 독자가 아닌 주인공의 ‘인식’은 ‘계시(révélation)’, ‘조사 (enquête)’, ‘개념화(conceptualisation)’의 양상을 띤다. ‘행동’은 인식이 등장 인물에게 깨달음을 줄 때 일어나는 반작용이다.15)파브르는 이 네 요소 가운 데 마지막 세 요소를 조합하여 다음과 같은 환상문학의 네 가지 서사구조를 제시하였다.

(a) P→C→A

(b) P→C→거짓(fausse) A(AP) (c) P→C

(d) P→C(P)

(a)의 경우는 주인공이 괴물 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그 원인을 알아내 어 그것을 공격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이다. 파브르는 대부분 의 환상영화들이 이 공식에 따르기 때문에 해피엔드(happy end)로 끝나는

15) Jean Fabre, Le miroir de sorcière: essai sur la littérature fantastique (Paris: J.

Corti, 1992), p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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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야기가 된다고 분석한다. (b)의 경우에는 “행동이 수난의 가면”일 뿐이 어서 모든 행동이 헛된 것이 된다. 이 경우는 마지막 단계에서 환상장르의 특징인 모호함에 빠지기 때문에 (a)의 PCA 공식보다 더 환상적이다. (c)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시간이 없거나 그렇게 할 수 없거나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반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공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난은 인식 으로 귀착되고” 그에 따라 끝이 난다. 주동인물은 고통스러운 체험을 하지만 그가 그 원인을 알게 되자 체험이 끝이 나서 행동에 나설 수 없다. (d)의 경우는 행동의 관점에서 볼 때 인식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수난과 뒤섞이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열쇠가 제공되지 않는다.

네 서사요소 사이에서는 계속적인 상호침투가 이루어져서 텍스트의 어떤 부분이 어떤 독립적 단계에 해당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 의 ‘지배적 단계[phase à dominante: 규범적(normative), 수동적(passive), 인식적(cognitive), 능동적(active)]’가 무엇인지를 말해야한다.16)

<디 아더스>는 위의 네 서사구조 가운데 (c)의 경우에 해당된다. 즉 N.P.

C.A. 공식에서 N→P→C의 과정까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 서 ‘원래의 현실’인 ‘정상상태’는 주동인물인 그레이스가 저지 섬의 외딴 저택 에서 남편 없이 빛 알레르기가 있는 두 아이[앤, 니콜라스(Nicholas)]와 함께 사는 것이다. ‘주동인물을 초월하는 힘에 대한 복종’을 뜻하는 ‘수난’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피아노 소리, 앤이 보았다는 빅터라는 아이와 할머니, 죽은 자로 밝혀지는 세 명의 하인들 등 저택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일들로 인해 겪게 되는 두려움이다. ‘인식’은 그레이스가 영매의 등장 으로 하인들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이들도 지박령(地縛霊)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관객인 우리는 그들뿐만 아니라 남편 찰스도 유령임을 깨닫지만 여기 에서의 인식은 주인공의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깨달음은 인식에 포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깨달음은 고통스럽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

16) Ibid., pp.19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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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인식의 유형들 가운데 ‘계시’에 해당된다. ‘행동’은 ‘인식이 등장인물에 게 깨달음을 줄 때 일어나는 반작용’인데 <디 아더스>에서는 그레이스가 인식에 이른 다음 어떤 반작용도 보이지 않고 그것을 수용하면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에 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파브르가 대부분 의 환상영화들이 P→C→A 공식에 따라 해피엔드로 끝난다고 분석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환상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P→C→A 공식보다 더 환상적인 P→C→거짓(fausse) A(AP) 공식도 따르고 있지 않은데, 이는 ‘타자에 대한 편견’과 ‘타자와의 공존’ 필요 성에 대한 ‘인식’에 초점을 맞추는 데 있어 P→C의 형식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환상영화의 통사론과 관련하여 그 결말을 살펴볼 필요 가 있다. 결말에 대해 파브르는 실제로 대부분의 환상텍스트에서 영웅적 행 동은 일어나지 않으며 진실은 추리소설에서처럼 텍스트의 마지막 부분에 집중된다고 분석하고 결말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공식화하였다.

(a) ‘현실적(réaliste)’ 결말: (환상이 설명되는) 기계적 결말 또는 [‘일시적 불안 (angoisse provisoire)’을 남기는] 환각적 결말

(b) (정당한 이유가 있는) ‘명백한 초자연적(surnaturelle)’ 결말 (c) (a)과 (b) 사이에서의 주저인 모호한 결말

(d) 명백하지 않은 ‘무딘(obtuse)’ 결말17)

이 네 공식은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가 그의 뺷환상문학서설 (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뺸(1970)에서 제시한 ‘환상적인 것(le fantastique)’의 정의를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토도로프는 우리에게 친숙 한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래도 그것을 자연적 법칙에 따라 해석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해석

17) Ibid.,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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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의 선택을 하게 되며,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 그 사건은 환상적인 것에 서 ‘기이한 것(l’étrange)’이 되고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 ‘경이적인 것(le merveilleux)’이 된다고 설명한다. 즉 그는 환상적인 것을 초자연적인 사건에 직면했을 때 겪게 되는 기이와 경이 사이에서의 망설임이라고 본 것이다.18) 위의 공식 가운데 (c)는 파브르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환상적인 것’에 해당되며, (a)와 (b)는 각각 ‘기이한 것’과 ‘경이로운 것’에 해당된다. (d)는 (a), (b), (c)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로 보인다.

위의 네 가지 결말 가운데 <디 아더스>는 (b)의 결말, 즉 ‘명백한 초자연 적 결말’을 선택하고 있다.19)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 영화에서 그레이스가 겪는 사건들이 그녀의 세계에서 “정말로 일어났고 그것이 현실 의 일부분이지만 이때 그 현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법칙들에 의해 지배 된다고 생각”20)하며, 유령을 그 세계에서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 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세계에서 그와 같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들(예를 들어, 하인들이 유령임을 알려주는 무덤과 사 진)이 계속 제시되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이 ‘명백한 초자연적 결말’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말은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 는 진지한 유령이야기에서 일반적인 결말이다. 따라서 아메나바르는 <디 아더스>의 서사의 전개에 있어 서사구조는 환상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 르지 않았으나 결말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유령이야기의 공식을 따르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말을 통해 이 영화의 장르성을 드러내는 한편 서사

18) Tzvetan Todorov, 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 (Paris: Seuil, 1970), p.29.

또 다른 환상문학 연구자인 캐스린 흄(Kathryn Hume)은 환상을 “일치된 현실로부터의 이탈(departure from consensus reality)”이라고 정의한다. Kathryn Hume, Fantasy and mimesis: responses to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 (New York: Methuen, 1984), p.22.

19) 이 점에서 <디 아더스>는 아메나바르가 언급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작으로 거론되고 있는 헨리 제임스의 뺷나사의 회전뺸과 구별된다, 뺷나사의 회전뺸은 이 소설에서 의 유령이 실제 존재로도, 서술자인 가정교사의 환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서 그 결말이 (c)의 ‘모호한 결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20) Tzvetan Todorov, Op. cit.,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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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통해 그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서사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Ⅳ. 유령영화의 양태론: 시점과 시간

시점과 관련하여 파브르는 환상문학에서 1인칭으로 된 이야기가 3인칭으 로 된 이야기보다 훨씬 많은데 다른 장르에서는 그 비율이 반대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사실이 세 가지 주요 문제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데, 그 문제들은 (a) 이야기에서 ‘나(Je)’의 전략적 상황, (b) 서술자의 신빙성과 성격의 문제, (c) 사실의 다양한 제시 방법과 종류의 사용이다. (a)와 관련해서는 1인칭의 세 가지 역할을 언급할 수 있다. 1인칭은 이야기의 ‘정당 성을 인정(authentifier)’하고 그것을 믿게 하며, 서술자와의 동일시라 할 수 있는 ‘참여(participation)’를 용이하게 하며, 1인칭이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고 눈에 띠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함으로써 매우 눈길을 끄는 ‘극적 반전 (renversement dramatique)’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b)에 대해서는 서 술자의 성격을 언급해야 한다. 1인칭 서술자는 증인/희생자의 이중역할을 하는데, 신빙성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주동인물-서술자(protagoniste- narrateur)의 성격이다. 주동인물-희생자(protagoniste-victime)의 경우에 ‘등 장인물(personnage)’은 미신을 잘 믿지 않고 극도로 지적이지는 않는데, ‘주 인공(héros)’은 ‘초자연적인 것(le Surnaturel)’에 예외적으로 민감하다. 대다 수를 차지하는 전자는 일상적인 정신상테를 보여주는 데 반해 후자는 거의 단번에 초자연적인 것에 빠져든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에는 서술자의 증언을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c)와 관련해서 파브르는 사실의 제시 방법으로 직접 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삽입된 이야기 (원고, 유언, 일기, 편지)는 “경이장르와는 반대로 집단적이지 않고 개별적이 며 고독한 모험의 고독한 독서를 요구하는 환상장르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점들로 환상문학에서 1인칭 시점의 우세가 설명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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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3인칭 시점의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는 극히 드물다.21)

그런데 환상문학에서의 위와 같은 1인칭 시점의 우세는 환상영화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파브르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원칙적 으로 3인칭과 현재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는 사실상 […] 환상적인 것을 다 루는 데 있어서 1인칭의 사용에 장애가 있”22)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여 1인칭을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보이스오버(voix off)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디 아더스>는 ‘장애가 있는’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 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보이스오버를 통해 1인칭 시점을 도입하지도 않는 다. 대신 이 영화는 (a)에서 볼 수 있었던 ‘나’의 전략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가 말한 ‘내적 초점(focalisation interne)’을 부분적으로 사용한다. 내적 초점의 원칙은 “초점 인물이 묘사되거나 외부 로부터 지시되어서는 안 된다”23)는 것인데, 영화에서는 그레이스가 ‘외화 면 영역(hors-champ)’에 있는 상태에서 마치 그녀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하면서 카메라가 ‘침입자’를 추적하거나 망자들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이 장면들에서 “1인칭은 이 장르에 특유한 모호성을 강화”24)함으로써 ‘이야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게’ 하며, 관객의

‘참여를 용이하게’ 한다. 특히 다른 이야기와 비교하여 환상적인 이야기에 서 독자가 주인공과 맺는 관계를 파브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인 <디 아더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서사적이든 소설적이든 보통의 이야기는 감탄 또는 동정을 통한 공감, 보상, 동일시의 원칙을 토대로 독자와 주인공의 부분적이지만 실제적인 일치가 매우

21) Jean Fabre, Op. cit., pp.200~208.

22) Ibid., p.208.

23) Gérard Genette, Figures III (Paris: Seuil, 1972), p.209.

24) Jean Fabre, Op. cit.,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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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반면, 환상장르는 단지 우리에게 희생자 와 함께 하고 희생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상황과 일치되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마조히스트적인 참여이다.25)

마지막으로 그 장면들은 ‘1인칭이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고 눈에 띠지 않 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함으로써 매우 눈길을 끄는 극적 반전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레이스의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본다고 생각하 기 때문에 그녀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1인 칭의 장치는 사실 마지막에 그녀가 죽은 존재라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디 아더스>가 영화라는 1인칭 에 불리한 장르임에도 ‘나’의 전략을 최대한 사용하여 유령영화의 환상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디 아더스>라는 유령영화의 양태론에서 또 한 가지 언급해야 하는 것 은 시간의 문제이다. 특히 이 문제 가운데서도 ‘지속(durée)’이 중요한데, 파 브르는 환상장르에서의 지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원을 짧은 번개, 한 순간의 각별한 은총으로 압축하는 짧은 시적 텍스트와는 반대로, 환상적 텍스트는 짧더라도 최소한의 ‘펼쳐진 서사성(narrativité étalée)’을, 사실의 발견, 숨겨진 것의 점진적인 발현, 긴장의 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뚜렷한 수평성을, 또는 초자연적인 것의 성숙을 요구한다. 줄거리는 짧더라도 […] 그 서사는 초자연을 나타내는 작은 사건들과 그것들이 부추기는 의문들, 의심들, 또는 대답들, 그리고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정서들로 동시에 가득 채워져야 한다.26)

이와 같은 파브르의 설명은 주네트의 ‘지속’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 속한 다. 주네트는 ‘지속’과 관련하여 허구의 세계인 ‘디에제즈(diégèse)’에서 벌 어지는 사건들의 지속 시간과 서사에 걸리는 시간을 비교하고, 서사의 지속

25) Ibid., p.202.

26) Ibid., p.224.

(17)

시간에 대해 디에제즈의 지속 시간이 전혀 없는 ‘휴지(pause)’, 전자가 후자 와 같은 ‘장면(scène)’, 전자가 후자보다 짧은 ‘요약(sommaire)’, 후자에 대 해 전자가 전혀 없는 ‘생략(ellipse)’의 네 가지로 지속을 분류하였다.27) 여 기에 파브르의 설명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환상적인 이야기의 지속은 이 네 경우 가운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주네트는 서사의 지속 시간이 디에제즈의 사건들의 지속 시간보다 긴 경우 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브르가 설명하는 지속은 양자의 지 속 시간의 비교가 아니라 ‘사실의 발견, 숨겨진 것의 점진적인 발현, 긴장의 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뚜렷한 수평성’과 ‘초자연적인 것의 성숙’의 요구에 토대를 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환상문학 의 지속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펼쳐진 서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디 아더스>는 주네트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뺷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뺸(1913

∼1927)에 대해 말했던 바와 같이 그 서사에 ‘요약’과 ‘휴지’가 없고 ‘생략’과

‘장면’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레이스, 아이들, 하인들, 그녀 의 남편 사이에서 대화가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면의 경우가 많으며,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생략의 경우 역시 많다 는 점에서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매우 속도감 있게 전개되거나 최소한 현실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마지막 결말의 ‘인식’에 이를 때까지 이야기 가 계속 지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긴장이 조성되며, 초자연적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인들이 실은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 무덤과 사진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초자연을 나타내는 작은 사건들’, ‘의문들’,

‘의심들’, ‘대답들’,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정서들’의 예로는 침입자를 의심케

27) Gérard Genette, Op. cit., pp.13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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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건과 그로 인한 공포를 들 수 있다. 이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서서히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지며 충분히 ‘펼쳐진 서사성’를 확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양태론의 측면에서 보면 <디 아더스>는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기존 방식을 따르고 있는 반면, 시점에 있어서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인칭의 장점을 이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Ⅴ. 결론

지금까지 유령영화가 유령이야기로서 어떤 차별화의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를 고찰하기 위해 아메나바르의 영화 <디 아더스>를 의미론, 통사론, 양 태론의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의미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유령이야기의 원칙을 잘 따르고 있는 반면, 타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유령(타자)과 살아있는 사람(동일자)의 위치를 역전시켜 타자와의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유령영화가 유령이야기의 주제와 모티프를 새롭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통사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서 사구조는 환상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지 않으나 결말에 있어서는 일반 적인 유령이야기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결말을 통해 이 영화의 장 르성을 드러내는 한편 서사구조를 통해 그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서사전략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태론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 는 기존 방식을 따르고 있는 반면, 시점에 있어서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 하고 1인칭의 장점을 이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판단 할 때 <디 아더스>와 같은 영화는 유령이야기 내에서 유령영화의 차별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위와 같이 유령영화의 차별성에 대해 고찰하면서 유령의 모 티프를 살펴보았는데, <디 아더스>에 나타난 이 모티프에 대해서는 보다

(19)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앞서 보았던 ‘타 자’의 관점에서 유령을 해석하고 억압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연구들 을 볼 수 있는데, 다른 차원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연구들이 이루어질 필요 가 있다. 기존 관점의 연구로는 우미성의 연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페미니 스트적 관점에서 이 영화의 결말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세계는 언뜻 타자를 포용하는 너그러운 세계인 듯 보이나, 실패한 가모장으로서 영 원히 타자로 살 수 밖에 없는 여성의 고독한 싸움과 힘겨운 미래만이 암시 되는 결말”28)이라고 해석하면서 억압되는 것이 ‘가모장’임을 강조하고 있 다. <디 아더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로는 ‘유령이야기의 전복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로즈메리 잭슨(Rosemary Jackson)은 그의 뺷환상성: 전 복의 문학(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뺸(1981)에서 유령이야기 를 환상문학의 한 특수한 범주로 보고 그것이 전복의 문학으로서 갖는 가 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록 유령이라는 바로 이 용어가 초자연적인 것과 경이로운 것으로 향한다는 것을 암시해서 환상적인 것의 보다 물질적이고 모호한 ‘비현실성’으로부터 벗어 나지만, 유령이야기들의 효과는 그것들이 죽은 자의 죽지 않은 자로서의 귀환을 함축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것과 유사하게 교란적이다. 유령이야기들은 단일한 의미나 ‘현실’을 구성하는 별개의 단위들을 전복시킴으로써 ‘실제’ 삶을 죽음의

‘비현실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결정적인 경계선을 붕괴시킨다.29)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의 연구는 유령이야기로서 <디 아더스>가 갖는 전복적 성격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모티프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8) 우미성, 「공포에 사로잡힌 타자들: <식스 센스> <디 아더스> <패닉 룸>의 “가모장”

가정」, 뺷문학과영상뺸 5(2), 문학과영상학회, 2004, 137쪽.

29) Rosemary Jackson,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London; New York:

Routledge, 1981), p.22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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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Abstract

A Semantic, Syntactic, and Modal Study on the Ghost Film

- Focusing on The Others of Alejandro Amenábar -

30)Noh, Shi-hu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differentiation of ghost movies in terms of semantics, syntax, and modal studies, focusing on Alejandro Amenábar's film The Others. In terms of semantics, the film follows the principles of ghost stories as a whole, while it shows that the ghost movie can play a new variation on the ghost story motif, by reversing the positions of ghosts (the other) and living people (the same) in dealing with the problems of others and emphasizing coexistence with others. On the syntactic side, the film does not follow the general formula of fantastic film in the narrative structure, but follows that of ghost story in the ending.

This can be understood as a narrative strategy that attempts to reveal the genre of the film through its ending and its distinction through the narrative structure. In terms of modal studies, the film follows the conventional approach in the duration, while attempting to make use of advantages of the first-person in the point of view in spite of the limitations of the genre.

Judging from these points, we can say that The Others shows the possibility of differentiating ghost movies in the ghost story.

Key Words : ghost film, The Others, Alejandro Amenábar, ghost story, fantastic literature

* Graduate School of Culture, Chonnam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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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 노시훈

소속 :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전자우편 : lagedor@hanmail.net

논문투고일 : 2020년 6월 29일 심사완료일 : 2020년 8월 24일 게재확정일 : 2020년 8월 29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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