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치수 및 방재의 변천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치수 및 방재의 변천"

Copied!
10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Issue

치수 및 방재의 변천

05

1. 서론

치산치수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 했거니와, 그 동안 우리는 물을 잘 다스려 홍수를 방어하고 평 수기와 갈수기에 물 이용과 공급을 원활히 하여 생 활의 편이와 경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하천개수사업은 홍수 방어가 급박했던 초창기의

‘치수’ 위주 사업 시기와 개발부흥기의 용수 수급이 긴요했던 때의 ‘치수·이수’ 위주 사업 병행 시기, 그 리고 근년의 하천환경 개선까지 고려한 ‘치수·이수·

환경’ 사업 시기 등의 단계로 구분된다.

지난 100년간의 치수사업과 방재대책에 대해 일 제강점기로부터 건국 초기, 경제개발기, 경제성장 기와 선진국 진입기에 이르기까지 기별 및 사업별로 치수(하천개수, 4대강살리기, 하천환경 개선)와 방 재(방재대책, 홍수예경보)로 구분해 그 발자취를 간 단히 살펴보면 표1과 같다.

이 선 호 ●●●

전 건설부 상하수도국장 (주)리버앤텍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표 1. 치수 및 방재의 100년간의 흐름

구분

제Ⅰ기 일제 강점기 (1911~1945년)

제II기 건국 초기 (1946~1960년)

제III기 경제개발기 (1961~1980년)

제IV기 경제성장기 (1981~1997년)

제V기 선진국 진입기 (1998~2012년)

치수 하천 개수

• 국비지변치수사업

• 궁민구제사업

• 시국응급시설사업

• 강댐방수로 공사착공

• ECA 원조

• UNKRA 전재복구

• 일반하천개수사업

• 범국민치수사업

• WFP지원치수사업

• 낙동강연안개발사업

• 특수지역 하천개수

• 남강댐 하류부개발

• 비관리청 하천개수

• 수계치수사업

• 굴포천 종합치수

• 수해상습지 개선·

소하천정비사업

• 한강종합개발사업

• 금호강신천개발사업

• 금강종합개발사업

• 대전시 3대강 하천개수사업

• 국가하천정비사업

• 지방하천정비사업

• 4대강살리기사업

• 경인아라뱃길사업

(2)

2. 제I기 일제강점기(1911~1945년):

근대적인 하천개수

일제강점기는 근대적 하천개수사업의 개막기로서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의 자연상태 하천을 개 수해 홍수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국 비지변(支辨)치수사업을 실시했는데 이는 자국의 부 족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한 산미증식(産米增殖)의 수탈계획의 일환이었다. 이를 위해 1차(1915~1928 년)로 14개 직할하천, 2차(1929~1938년)로 11개 하천

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그 중 하천개수가 필요한 11개 하천을 선정해 공사를 시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 적 혼란 및 재정 악화로 민심 안정과 양곡 수탈 계획 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6개 하천 (한강, 낙동강, 만경 강, 재령강, 대동강, 용흥강)만을 실시하였다.

한강은 1920년 6월 대홍수 이후 제방공사의 필 요성이 대두되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착수되었는데, 주요 공사로 한강 하류부 개수공사의 32,684m 제 방이 1927~1938년에 축조되었다. 이 공사 중 신용 산 방수공사(용산역전 전 구간 0.6~0.9m 침수로 구분

제Ⅰ기 일제 강점기 (1911~1945년)

제II기 건국 초기 (1946~1960년)

제III기 경제개발기 (1961~1980년)

제IV기 경제성장기 (1981~1997년)

제V기 선진국 진입기 (1998~2012년)

치수 하천 환경 개선

• 양재천 하천환경 개선

• 오산천 하천환경 개선

• 청계천 복원

• 경안천 하천환경 개선

• 함평천 하천환경 개선

• 황구지천환경 개선

방재 방재 대책

• 1925년 을축년 대홍수

• 1936년 남선의 홍수

• 1936년 병자년 대홍수

• 1959년 태풍 사라호

• 1961년 영주·남원 수해

• 1962년 순천 수해

• 1972년 중부지방 호우

• 1980년 중부지방 호우

• 1981년 태풍 애그니스

• 1984년 대홍수

• 1987년 태풍 셀마

• 1990년 폭설피해

• 1990년 한강 대홍수로 일산제 유실

• 1991년 태풍 글래디스

• 1998년 집중호우로 파주시내 침수

• 1999년 문산시내 침수

• 2000년 태풍 루사

• 2003년 태풍 매미

• 2007년 태풍 에위니스

• 2011년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

• 2012년 태풍 볼라벤, 덴빈으로 서울 광화문 일대 침수

홍수 예경보

• 한강,낙동강,금강, 대동강 수위 추정도에 의해 홍수예보

• 한강에서 미8군 공병단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홍수예보

• 자동화 이전의 홍수예보

• 한강홍수통제소 개소와 예경보 자동화

• 낙동강,금강,영산강 홍수통제소 개소와 예경보 자동화

• 소규모 하천 홍수예경보

• 홍수예경보시설 장비,

소프트웨어 확충 표 1. 치수 및 방재의 100년간의 흐름 <계속>

(3)

20일간 열차 운행 중단)가 1923~1925년에, 구용 산 방수공사가 1921~1925년에, 영등포 방수공사가 1922~1923년에 실시되었다. 또한 지류인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개수공사가 실시되었다.

낙동강은 1919년에 발간된 치수 및 수리답사 서에 따르면 개수계획구역이 본류 280km, 남강 27.2km, 기타 160km 등 도합 467.2km로 나타나고 있다. 이중 낙동강 본류 개수공사로 제방 121km를 1926~1945년에 축조하였다. 또한 남강 방수로공사 는 1934년 홍수로 진주시가 유사 이래 대수해를 입 게 되자 1937~1945년까지 남강댐을 막고 사천만까 지 방수로 20km(깊이 4m, 폭 400m)를 건설해 진주 시의 홍수 방어와 낙동강 계획홍수위를 0.5~0.7m 저하시켜 하류 제방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이 공사는 8.15 광복 당시 공사 진척율이 70%에 이르렀다.

만경강의 경우 유역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호우 시 마다 곡창지인 만경평야가 범람해 피해가 극심함에 따 라 만경강 본류공사 29,340m를 1925~1938년에, 전 주천 개수공사 11,610m를 1925~1926년에, 익산천 개 수공사 76km를 1925~1938년에 실시하였다. 또한 곡 창지대인 재령평야는 소규모 홍수에나 견딜 만한 빈약 한 제방뿐이어서 그 개량을 위해 방수제 보수 수로 굴 착, 첩수로 체절 등을 1925~1928년에 실시하였다.

대동강은 평양시가지 방수공사(1923년 홍수 시 시가지의 3/4 침수)와 평양 하류의 수운개량사업이 시급해 축제, 수제 준설 굴착을 1926~1935년까지 실시해 시가지 방수와 대동강 항운을 개량해 평양 부근에 풍부하게 매장된 탄전을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용흥강은 미개수 상태인 영흥평야의 방 수를 위한 공사를 1926~1936년까지 실시하였다.

한편 민심 달래기에 좋은 궁민(窮民), 즉 빈민구제 사업과 시국(時局)응급시설사업도 실시하였다. 해방 직전까지 총하천개수율은 요개수연장 20,600km의 10.2%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의 태풍, 홍수, 폭설 등 자연재해 피 해를 기별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가장 큰 순으로 분석 해보면, 제I기 방재대책은 응급 및 이재민 구호 위주

의 시기였다. 기간 중 재해는 46회 발생했는데 1925 년 을축년 대홍수, 1934년의 남선의 홍수, 1936년의 병자년 대홍수가 대표적이다. 이 중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 11~18일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발생 했으며 인명피해 517명, 재산피해 1억 322만엔(당시 가격 기준)의 미증유의 피해를 남겼다.

일제강점기는 홍수예경보가 시작되었던 시기로 1911년 대동강에서 최초로 시도했으나 홍수전파시간 과 수위 상관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 지 않을 때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홍수예경보는 수위 추정도에 의해 1922년 한강, 1924 년 대동강과 금강, 1926년 낙동강에서 실시되었다.

3. 제II기 건국 초기(1946~1960년):

전재복구 위주의 치수사업

건국 초기의 하천개수는 전재복구 중심의 치 수사업으로 실시되었다. 미군정과 6.25동란 등 혼란기를 맞아 ECA(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와 UNKRA(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경제 원조로 중요하천 63개소(직할하천 19개소, 지방하천 44개 소)에 680km의 하천개수를 실시하였다.

당시의 공사 시행은 제III기 초반까지 설계용역제 도가 없을 때여서 공무원이 직접 현지에 장기 출장 을 나가 현장 조사측량에서부터 개수계획서 작성, 공사 발주, 감독까지 1인 3역을 하는 방식이었다. 열 악한 공사비로는 제방높이도 중규모 홍수에 견딜 정 도의 임시단면(소위 전시단면)으로 설계해 발주했으 며, 수문자료를 얻기 위한 수문관측소 증설(특히 자 기관측소)도 하기 어려웠다. 이 시설의 유지보수도 공무원들이 전도사업 시행으로 직접 현장에 출장해 검측하고 보수(수선, 도색)하는 등 정부의 재정형편 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였다.

한편 방재대책은 정부재정 지원과 의연금에 의한 복구 및 구호 중심 체제로 이루어졌다. 기간 중 재

(4)

해는 13회가 발생했는데 1958년에 태풍 그레이스, 1959년에 태풍 사라호가 내습하였다. 태풍 사라호 는 1959년 9월 15~17일에 영동과 영호남지역에서 사망 750명, 이재민 379,459명의 인명피해와 622 억원의 재산피해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재해대책업무는 1945~1948년까지 군정토목부에 서 담당했으나, 1948년 정부직제가 개편(대통령18 호)되면서 내무부 건설국 이수과에서 맡다가 1956 년부터 내무부 토목국 이수과에서 담당하였다.

홍수예경보는 1953년 미8군 공병단에서 시도했을 뿐 전체적인 업무는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4. 제III기 경제개발기(1961~1980년):

낙동강연안 개발 등 대규모 치수사업 전개

경제개발기의 치수사업은 긴급구간 위주로 하천 개수를 실시하는 것으로 추진되었는데 외국의 지원 양곡을 주재원으로 하였다. 1964~1972년까지 실 시한 범국민치수사업(美公法 480-II), 1964~1984 년까지 5차에 걸쳐 74개 지구 789.5km를 개수한 WFP(World Food Programme) 지원 치수사업 등 이 대표적이다. 정부도 치수사업의 중요성을 인지해 경제개발5개년계획사업으로 직할하천 개수사업인 일반하천개수사업을 비롯해 접적(接敵) 지역 군사시 설 보호와 농경지 보호를 목적으로 한 특수지역 하 천개수, ADB차관으로 1978~1984년에 제1단계 낙 동강연안개발사업(안동~왜관) 270km를 실시하였 다. 또한 사업비를 정부예산에만 의존할 수 없어 비 관리청 하천공사를 하기로 하고 한강의 여의도지구 를 비롯해 잠실·압구정·반포·서빙고와 낙동강 구미 지구, 남강댐 하류부의 상평·월하·남성·진성지구를 개수해 홍수로부터 농경지와 인가 보호는 물론 택지 수요 공급과 공업단지 조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비관리청 공사에서는 굴지의 피면허권자들 이 윗선의 권력인을 믿고 면허조건을 지키지 않는 부 작용이 속출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고자 자연

하천에 대한 수리모형실험(팔당~행주 58km)을 처음 으로 시도해 그 결과에 따라 하천 측으로 돌출한 불법 매립지를 원상 복구시킨 것은 일벌백계로 좋은 본보 기가 되었으며, 이때에 결정된 한강 하류부의 하천 법 선은 한강종합개발계획 시행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또한 방재조직 정비 등 적극적인 방재 정책을 구 현하였다. 이 기간 중의 재해로는 1961년의 영주·

남원 수해와 1962년의 순천 수해, 1972년과 1980 년의 중부지방 호우피해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영주 수해는 1961년 7월 10~11일 5시간 동안 337

㎜에 이르는 폭우로 원당천이 범람해 영주시가지의 3/4이 침수된 것으로 사망 14명, 이재민 15,319명 의 인명피해를 냈다. 남원 수해는 4시간 동안 300㎜

의 폭우로 효기저수지가 붕괴되어 사망 110명, 이재 민 1,366명의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당시 피해복 구를 위해 1961년 8월 21일 각령 제104호로 영주와 남원에 임시수해복구사무소를 설치해 범국민적으로 복구에 전력을 기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전반기의 재해대책본부 업무 수 행은 전근대적 방법을 면할 수 없었다. 업무의 주된 피해 집계는 주로 수작업인 주산에 의존(여상고 출신 아르바이트 학생)하였다. 통신도 회선수가 노후되고 제한된 행정전화에 목을 맸고, VIP에 대한 현황보고 는 군사문화인 차트 브리핑(Chart Briefing)으로 했 으며, 근무체제도 전문인력 부족으로 교대 없이 2~3 일씩 연속 근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편 경제부흥기로 접어들며 방재대책의 일환인 홍수예경보시설의 자동화가 시작되었다. 특히 1974 년 한강홍수통제소를 개소하며 현대적인 T/M 통신 장비와 전산기를 구비하며 자동화를 이루었다.

5. 제IV기 경제성장기(1981~1997년):

한강 등 대단위 종합개발

이 기간에는 수계 일관 하천개수를 실시해 하천등 급에 관계없이 수계를 일괄해 동시 개발하는 수계치 수사업(1989~2000년 금강 수계치수, 1990~1999

(5)

년 섬진강과 영산강 수계치수, 199~2000년 한강 수계치수, 1995~2005년 낙동강 수계치수), 반복적 으로 수해를 당하는 지구의 수해상습지 개선사업, 대단위 치수사업인 한강종합개발사업·금강종합개발 사업·금호강 지류인 신천개발사업, 오랫동안의 숙 원사업이었던 굴포천 종합치수사업을 실시하였다.

ADB차관으로는 1985~1995년에 2단계 낙동강연안 개발사업(왜관~부산) 321km를 개수 완료하였다.

한편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하천 수질이 극도 로 악화되면서 낙동강 페놀사건 등이 발생하자 경제 성장기 초반부터 하천을 살리자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시에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도시와 하천환경 개 선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하천과 주변환경을 개선하 기 위한 환경정비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건설 교통부는 1996년부터 준용하천과 직할하천을 대상 으로 생태 측면보다 경관과 친수 위주로 저수로, 고 수부지, 제방 등의 환경 정비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행정자치부는 1995년 소하천정비법을 제정한 후 전 국 9개소의 소하천정비사업을 시행했으며, 환경청 은 1980년부터 오염하천 정화사업을 시작으로 하천 환경사업을 계속해 왔다. 각 광역시·도와 시·군도 1990년 이후 경쟁적으로 하천환경사업에 뛰어들어 일종의 붐처럼 확산되었는데 주로 재정적으로 안정 된 대도시 구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기간 중 의 치수사업 방향은 치수·이수 위주 사업에서 환경 개선까지 병행하도록 방향이 변경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에 정부조직법에 의해 환경청이 창설되었다.

한편 방재대책은 예방 위주의 방재제도를 도입한 시기로 기간 중 408회나 되는 크고 작은 재해가 발 생하였다. 이는 제I기~제V기 동안 가장 많은 재해 발생 횟수로 기록된다. 기간 중 큰 재해로 1984년의 대홍수, 1981년의 태풍 애그니스, 1987년의 태풍 셀 마, 1990년의 한강 대홍수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 인 재해인 한강 대홍수는 1990년 9월 11일 일산제 334m를 유실시키며 이재민 51,698명, 재산피해 261 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복구공사에 연인원 11,300명,

덤프트럭 1,039대, 중장비 175대, 헬기 86대, 일반차 량 119대가 투입되는 등 군·관·민이 적극적으로 참 여해 단시일 내에 복구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강 대 홍수는 인명피해 163명, 이재민 187,265명을 비롯해 재산피해 5,203억원의 물적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와 함께 1987년 낙동강, 1990년 금강과 섬진강, 1991년 영산강에 홍수통제소를 각각 개소하면서 홍 수예경보의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6. 제V기 선진국 진입기(1998~2012년):

4대강살리기사업 등 유역종합치수

선진국 진입기는 유역종합치수사업을 실시한 시기 로서 2000년대 들어 국민들의 삶의 질이 선진화됨에 따라 하천개수사업도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부터 도입된 하청환경 개념이 하천개수 사업에 정착되어 치수·이수 기능 중심의 하천정비 에서 생태·수질·친수 등 하천환경기능을 고려한 하 천환경정비사업으로 전환되었고, 하천공간은 국민 의 여가·휴식·체육·학습·위락·정서공간으로 바뀌 게 되었다. 치수관리도 종래의 치수대책인 제방 축 조나 하도 확폭 등 하천 중심의 선(線)적인 치수대 책에서 벗어나 유역이 가진 치수기능을 최대로 살리 기 위한 면(面)적인 치수 개념의 종합치수계획으로 전환되어 도시홍수에 대한 방어시스템도 함께 할 수 있는 저류시설을 검토하게 되었다. 수자원종합관리 차원인 유역종합치수사업 추진을 위해 국가하천정 비사업(2004~2020년 2,458km), 지방하천정비사 업(1999~2018년 9,707km)을 실시하였다.

지난 100년간의 법정하천 개수율은 2012년 말 현 재 76.9%(불완전 개수연장 포함)로 소하천 개수율 은 43.8%에 그쳤다. 하천관리를 위한 하천등급도 1999년 국가하천, 지방하천으로 단순 구분하였다.

또한 굴포천종합치수사업과 연관된 경인아라뱃길 사업을 2012년에 완공하고 4대강살리기사업을 추 진했다. 4대강살리기 프로젝트는 기후변화에 대비

(6)

한 홍수 및 가뭄 등 물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하천공간을 합리적으로 정비해 이용을 극대화한다 는 목적 아래 2008년부터 국가정책으로 추진되었 다. 2009년 10월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해 2012 년 12월에 완공했는데 투자사업비는 약 22조 2천억 원이 소요되었다. 주요 사업은 홍수 대비를 위한 하 상 준설과 골재 채취로 하상 유지 및 극한가뭄 대비 를 위한 다기능보 16개소(한강 3개소, 낙동강 8개 소, 금강 3개소, 영산강 2개소) 건설이 주를 이루었 다. 또한 연관사업으로 홍수조절지 2개소(담양, 화 순), 강변저류지 2개소(여주, 영월), 중규모 다목적 댐 2개소(영주, 보현산) 노후제방 보강, 하구둑 배수 갑문 증설, 농경지 리모델링 140개소, 저수지 둑 높 이기 93개소, 수질 개선 1,281개소, 자전거길 포장 1,657km, 지천 살리기 310km를 시행하였다.

이 기간의 하천환경개선사업은 청계천 복원사업 을 비롯해 경안천, 황구지천, 함평천 개선 등 여러 하천에서 추진되었다. 국가하천에서는 테마가 있는 도시생태 하천조성사업이, 지방하천에서는 환경·문 화·레저 등을 감안한 ‘고향의 강’ 생태하천 조성사업 이 시행되었다.

한편 주요 방재대책 업무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방재시스템 구축에 주력하였다. 이 기간 중에는 200회나 되는 재해가 발생하였다. 1998년과 1999년 임진강수계의 집중호우로 파주와 문산시가지에 막심 한 침수 피해가 일어났으며 2002년 태풍 루사, 2003 년 태풍 매미,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2012년 집중호우 시 도시홍수로 서울 광화문일대 도시 침수 등이 발생하였다. 특히 태풍 루사는 2002년 8월 30 일~9월 1일에 강릉 일대에 일 최대 871.5㎜의 기록 적인 강우로 인명피해 246명, 재산피해 5조 1,479억 원의 피해를 일으켰다. 이는 연도별(1916~2012년) 피해액 순위 중 가장 큰 피해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이 시기에 홍수예경보 통합시스템을 구축했 는데, 기상 이변으로 대형재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해 항구적인 수해 방지를 위한 홍수예경보 체제를 본격 적으로 구축하였다. 실제적인 홍수피해는 대하천의

본류뿐만 아니라 소규모 하천이나 지류에서도 많이 일어나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하천 지류에 홍 수예경보시설을 구축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1999년 만경강, 동진강, 탐진강에 홍수예경보시설을 설치 해 영산강홍수통제소에서 관리하고 1998년 삽교천 유역, 2001년 금강 지류인 갑천유역에 홍수예경보 시설을 설치해 금강홍수통제소에서 관리하도록 하 였다. 2002년에는 한강유역 4개 지천인 중랑천·안 양천·탄천·왕숙천에 설치해 한강홍수통제소에서 관 리하고 1998년 형산강, 1999년에 태화강, 2002년 금호강에 설치해 낙동강홍수통제소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2005년 섬진강홍수통제소를 영산강홍 수통제소로 흡수통합했으며, 임진강은 1997년 홍수 예경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홍수예경보업무를 한 국수자원공사에서 한강홍수통제소로 이관해 2003 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7. 맺음말

과거 100년간의 치수 및 방재대책을 되돌아보고 사업계획과 시행의 잘잘못이 없었는지를 분석해 앞 으로 보다 나은 정책과 제도, 계획과 집행이 이루어 지도록 수자원 정책을 마련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 과 국민 안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의 치수 및 방재 기록을 찾아 체 계적으로 엮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치수공사가 전국에 산재되어 그 기록을 찾기란 댐 공사처럼 공사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일이 문서나 각종 문헌(조선하천조사서, 토목사, 한국토목 개발사 등)에서 관련 사항을 발췌한 후 기록의 오류 와 집필자 간의 인식의 차이점은 없는지 검토해 수록 하는 과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며 일목요연하계 엮을 수 있었던 것은 집필진(이상태, 김창완, 강명수, 김성환, 박노선, 박영일)의 노고 덕 분이라 하겠으며 이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7)

한강 하천개수 변천도

(8)

낙동강 하천개수 변천도

(9)

금강 하천개수 변천도

(10)

영산강 하천개수 변천도

참조

관련 문서

의료기기 기준규격 또는 그 외 국제규격에 따라 시험 규격에 설정한 각각의 시험항목에 대한 시험자료 제출.. 원재료 및 완제품에

- 즉, 싱크로의 최소 단위는 싱크로 발신기(transmitter)와 싱크로 수신기 (receiver)의 결합으로 구성되며, 발신기 측에서 처음 만들어진 각 변위 신 호는

• 주택소유여부의 판단에 있어 공급신청 당시 입력 값(자료)으로 우선 입주자선정을 하고 국토교통부 전산검색 결과에 따른 세대주 및 세대원의 주택소유 여부에 따라

농어촌학생전형과 특성화고교졸업자전형, 기회균형전형의 전체 모집단위의 모집인원은 수시모집 최종 등록마감 결과에 따라 그 인원이 정해지며

안전생산 책임 강화, 중대사고 예방 중심으로 , 기업의 자체점검과 정부감독 연계, 지역별 책임제 및 부서 감 독 연계 방식으로 집중적으로 안전검사를 실시할 계획임..

서울과학고의 경우 2010년부터 GLOBE반에 서는 서울과학고 주변 암석 및 토양에 관한 연구 및 서울지역 주요 하천 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도에 대한 연구를

청주향교는 역사적으로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재양성에 공헌해왔으며, 시대의 변천 에 따라 현재는 젊은 세대에게 문묘에 모시고 있는 성현들의 큰 덕과 선비 정신의

편지들 속에서 키츠는 완전히 비자의식 진지성( 비록 많은 유머의 불꽃이 빛 나지만) 으로,시에 대한,그리고 시인으로서 그 자신의 여러 목적에 대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