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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족부인 서사에 나타난 신화적 상상력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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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족부인 서사에 나타난 신화적 상상력 연구*

– ‘반인반수’를 중심으로 –

1) 강 상 대**

❙국문초록❙

신화는 자연 현상과 만물의 이치에 대해 과학적 인식을 갖지 못한 고대인들이 상상적 사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상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존재 또는 현상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반인반 수(半人半獸)는 이러한 신화 관념이 탄생시킨 존재이다. 그러므로 신화에서 반인반수는 등장인물로서의 역할 이나 모티프의 기능상 매우 중요한 서사 요소이다.

녹족부인(鹿足婦人) 이야기는 고대인의 원형적 사유를 구현하고 있다. 녹족부인은 사슴의 동물성을 가진 아 내이자 어머니이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후손에게는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이다. 그녀는 양육자이자 조력자 로, 그리고 환란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여인으로 기억될 것이므로 그녀의 사슴 표상은 친근함과 경외감으 로 다가오는 동물적 요소이다. 이처럼 녹족부인 서사는 우리 민족이 지녔던 동물에 대한 고대 관념을 사슴 표 상을 통해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집단의식 속에 동물이 어떤 관계로 존재하는가를 말 해 주며, 사슴 토템의 흔적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일본 신화에 다양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반인반수에 비하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우리 신화 에는 반인반수의 등장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가운데서 녹족부인은 특색있는 반인반수 존재로 등장한다. 녹 족부인은 인성(人性)과 수성(獸性)의 결합이 한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반인반수이며, 그녀의 수성은 유화(柳 花)와 알영(閼英)의 경우처럼 제거되어야 할 속성이 아니라 존귀한 위계와 비범한 능력을 담보하는 속성이다. 녹족부인의 반인반수에 표상된 사슴은 우리 설화의 변신 모티프에서 매우 드문 동물이다. 녹족부인 서사의 반 인반수가 보여주는 이러한 성격들은 우리 신화에서는 드문 반인반수 존재의 영역을 더욱 넓혀 고찰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제어] 녹족부인, 서사, 신화, 상상력, 반인반수

* 이 연구는 2012학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 지원으로 연구되었음.

** 단국대학교 부교수 / kangg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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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머리말

Ⅱ. 자료 검토

Ⅲ. 반인반수 존재의 특징과 의미

Ⅳ. 맺음말

Ⅰ. 머리말

본고는 녹족부인(鹿足婦人) 서사에 나타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존재 양상과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녹족 부인 서사가 구현하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의 면모를 확인하고자 한다. 사슴발을 닮은 녹족부인이 잃었던 아 들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줄거리를 근간으로 한 녹족부인 서사는 북한의 평양 및 안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 된 설화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민중의 입으로 전해지다가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 며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분단 이후에는 남북한에서 공히 전설이나 전래동화 형태로 다양하게 재현되어 왔다. 이처럼 녹족부인 서사가 시공간적 범주를 넘어 지속적으로 전승·전파된 사실은 이 이야기에 우리 민 족의 원형 심상이 충분하게 간직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원형 심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반인반수인 녹족부인의 존재적 성격이다.

세계 각국의 신화에는 여러 형상의 반인반수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중국 신화에서 농업의 신인 신농씨는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졌고, 대홍수 후에 인류의 시조가 된 복희·여와 남매는 인간의 몸에 뱀의 꼬리 를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황소 머리에 인간의 몸인 미노타우로스, 인간의 상반신에 말의 하반신인 켄타우로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인 세이렌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는 인간의 몸에 매의 얼굴이며, 장례를 주관하는 신인 아누비스는 자칼의 머리를 한 남자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건국신 화 속의 유화와 알영에게서 반인반수 성격이 보인다. 특히 반인반수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과 미국 헐리우드의 판타지 영화, 그리고 비근하게는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늑대소년」이나 TV 드라마 「구 가의 서」와 같은 예로 보듯이 오늘날 대중적인 영상 매체가 앞다투어 그려내는 환상 세계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티프이자 등장인물이 되고 있다.

반인반수는 신화 속에 간직된 고대인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중요 기제이다. 주지하다시피 고대의 인간은 동물에 대해 복합적인 경험과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에게 동물은 먹잇감이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생명을 빼앗아가는 두려운 존재였다. 또한 동물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 빠르고 강한 발과 같은 인간에게는 없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기에 인간에게 공포와 숭배라는 양가치적인 심리를 안겨 주었다. 이와 같은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자신과 동물을 동일시하거나, 동물에 신격(神格)을 부여하 는 초월적 관념을 전이시킨 대상이 바로 반인반수이다. 따라서 반인반수는 인간과 동물이 결합된 이미지를 통해 신성 존재를 구현한다는 점에 본질이 놓인다. 이런 이유로 해서 반인반수는 동·서양 신화의 주인공으 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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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녹족부인 서사의 반인반수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반인반수는 녹족부인 이야기의 서사 가치를 담보하는 신화성을 발현한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녹족부인 서사 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신화적 성격을 지적한 연구는 있지만,1) 그와 같은 신화적 성격의 핵심 요소인 반인반 수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없다.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양상과 의미를 통해 이 이야기가 지닌 신화성과 신화적 상상력의 본질이 더욱 명확해질 수 있으리라 본다.

Ⅱ. 자료 검토

녹족부인 이야기는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문·일본어·한글 등의 문자에 의해 기록되는 가 운데 잡지(雜志)·전설·전래동화 등 다양한 서사 유형으로 소통되어 왔다. 녹족부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 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자료를 일별해 보면,2) 그 서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여덟 단락의 내용으로 이루어 져 있음을 보게 된다.

첫째 단락은 주인공의 호칭·신분이나 시공간적 배경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사슴발을 닮아 녹 족부인이라 불리는 여인이 있었고, 이 여인은 고구려 때의 왕(또는 동명왕)의 어머니[王妣]나 아내[王妃], 또 는 궁실의 여인 등으로 적시된다. 둘째 단락은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헤어지는 원인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 기에서는 녹족부인이 사슴발을 닮은 아들 아홉(또는 열둘이나 일곱) 명을 한 번에 낳아 이것이 상서롭지 못 한 일로 여겨지거나, 사슴발을 감춘 버선을 벗지 말라는 어머니의 금기를 위반해서 아들들이 버림을 받게 된 다. 셋째 단락은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헤어지게 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녹족부인 스스로, 또는 왕의 지 시로 아들들을 상자에 넣어 대동강이나 바다로 흘려 보낸다. 상자는 궤짝, 돌함, 목함 등으로 변이된다. 넷째 단락은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헤어진 이후의 상황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아들들은 중국에 닿아 훌륭 하게 성장하여 장군이 되는데, 중국은 지나(支那)·한나라·당나라 등으로 변이된다. 다섯째 단락은 녹족부 인과 아들들이 다시 만나는 원인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아들들이 병사를 이끌고 조선(또는 고구 려)을 치러 오는데, 아들들이 각각 3천명씩의 병사를 이끌고 왔다는 사실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여섯째 단락 은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녹족부인이 아들들을 만나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사실을 힐책하거나, 또는 아들들에게 사슴발을 보이거나 젖을 짜서 먹임으로써 모자간임을 확인한다. 일곱째 단락은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다시 만난 이후의 상황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아들들이 부모의 나라

1)권도경, 「북한 지역 녹족부인 전설의 존재양상과 역사적 변동단계에 관한 연구」, 󰡔비교한국학󰡕 16: 1, 국제비교한국학회, 2008, 135~168쪽 참조.

2)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녹족부인 이야기가 이른바 반침략애국투쟁전설의 하나로서 북한 주민에 대한 정치이념을 강화하고 사 상교화를 수행하는 텍스트가 되었고, 이에 따라 남한에서는 이 이야기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방 이후의 남북한에서 소통되는 녹족부인 서사 자료를 두루 포함하는 검토는 뒤로 미루 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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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침범한 잘못을 깨달아 불문(佛門)에 귀의하거나, 부모에게 사죄한 후 함께 살거나 군사를 거두어 중국으 로 돌아간다. 여덟째 단락은 서사 관련 유적·지명 또는 인물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녹수암·두 타사의 아홉 부처, 합장천, 열두삼천리벌, 열귀리, 장군성지 등의 유적 또는 지명과 녹족부인 이야기와의 연 관성이 언급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사 내용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반인반수 형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양상에서는 각 텍스트에 차이가 있다. 즉,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이미지를 전면화하여 동물성을 강화시키는 텍스트가 있는 반면에 동물적 성격을 부분적으로 소거 또는 약화시키는 텍스트도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많은 이본과 변이 형 텍스트로 전승되고 있을 경우,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화해 가는 텍스트의 내용과 왜 그렇게 변하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텍스트 간의 변화와 차이를 통해서 각 텍스트가 지향하고 있는 서사 가치가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녹족부인 서사의 각 텍스트가 구현하고 있 는 동물 표상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조선 시대 자료

민간에 구전되던 녹족부인 이야기가 문자로 남겨진 것은 조선 후기인 1727년(영조 3년)에 유학자 이시항 (李時恒, 1627~1736)이 쓴 「광법사사적비명(廣法寺事蹟碑銘)3)이 현재로서는 가장 이른 기록으로 보인다. 이것은 평양 대성산에 있는 광법사의 사적비 명문인데, 광법사가 위치해 있는 대성산이 불가(佛家)의 신성함 을 갖춘 산이라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녹족부인 이야기를 예로 들어 말하고 있다. 녹족부인이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았는데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바다에 떠내려 보냈고, 그들이 장성하여 본국을 침범하였으나 부모의 나라인 것을 깨닫고 불문에 귀의하여 성불하였으며, 녹수암과 두타사의 아홉 부처가 그 유적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옛날에 녹족부인이 있어 한 번 출산에 아들 아홉을 낳았다(古有鹿足夫人一産九子)”

고 하여 ‘녹족부인’이 최초로 기록 서사의 주인공이 되고 있으며, 그녀는 한 번에 아들 아홉을 낳는 기이한 출산을 한다. 이는 그녀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서 다산(多産)의 ‘동물성’을 소유한 존재임을 두드러지게 하 고 있다. 이와 같은 녹족부인 이야기는 1730년(영조 6년)에 평안관찰사 겸 평양부윤을 지낸 윤유(尹游, 1674~1737)가 편찬한 사찬(私撰) 읍지인 󰡔평양속지(平壤續誌)󰡕4)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의 두 녹족부인 이야기는 평양 지역의 대성산에 산재한 불교 유적의 유래를 설명하는 불교설화적 성격을 지닌 텍스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안주 지역의 읍지에 기록된 녹족부인 이야기는 지명설화적 성격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1757~1765년(영조 33~41년)에 홍문관에서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5)에 “고려 때 왕의 어머니인 녹족 부인이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았다(高麗時王妣鹿足夫人一産十二子)”라 하여 녹족부인 아들의 숫자가 열두

3) 이시항, 「광법사사적비명」; 조선총독부 편, 󰡔조선금석총람·하󰡕, 경성: 조선총독부, 대정8(1919), 1116~1118. 4) 󰡔평양속지󰡕 권3, 「잡지」; 이태진·이상태 편, 󰡔조선시대 사찬읍지 46:평안도 2󰡕, 한국인문과학원, 1990, 258. 5) 󰡔여지도서󰡕, 30, 「고적」; 국사편찬위원회 편, 󰡔여지도서·상󰡕, 1973, 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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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되고 있다. 이를 상서롭게 여기지 않아서 아들들을 상자에 담아 버렸고, 훗날 이들은 당나라 장수가 되 어 각각 삼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다. 녹족부인이 이를 듣고 들판으로 나아가 그들을 맞이했 다. 먼저 열두 젖을 맛보게 하니 모두 입으로 넘겼고, 열두 개의 버선을 주었더니 모두 발에 들어맞았다. 이 에 열두 장수가 부모의 나라를 침범할 죄를 빌며 항복하고, 행성을 쌓고 그곳에서 지냈다. 그 땅을 일러 ‘열 두삼천벌’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명 유래가 열두 명의 아들에서 기인하고 있는데, 특히 열두 개의 젖으로 아들들을 먹이는(十二乳試之乳皆入口) 모티프가 주목된다. 열두 명의 아들을 낳는 다산의 동물성과 아울러 열두 개의 젖을 지닌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상이 좀더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 이다. 이런 내용은 1820년대 이후의 자료로 추정되는 찬자 미상의 필사본 문헌인 󰡔안주목읍지(安州牧邑誌)󰡕6) 와, 대한제국기에 접어든 1899년에 간행된 󰡔평안남도안주군읍지(平安南道安州郡邑誌)󰡕7)에도 동일하게 기록 되어 있다.

2. 일제 강점기 자료

경술국치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녹족부인 서사는 일본어 문헌에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 시초가 1911년 조선연구회(朝鮮硏究會)에서 발간한 󰡔평양속지(平壤續誌)󰡕8)이다. 이 책은 앞서 살핀 윤유의 한문본

󰡔평양속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녹족부인 이야기의 내용은 윤유의 것과 동일 하므로 따로 검토할 만한 사항은 없다.

1919년에 미와 다마끼(三輪環)가 일본어로 펴낸 󰡔전설의 조선(傳說の朝鮮)󰡕에 「대성산(大聖山)9)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녹족부인 서사는 유념해서 보아야 할 텍스트이다. 이것은 평양 대성산의 녹수암·두 타사, 대성산 기슭을 흐르는 합장천, 안주의 열두삼천벌에 유래하는 세 가지의 녹족부인 전설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며 「대성산」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세 전설을 각각 하나의 각편으로 보았을 때, <녹수암·두 타사> 각편은 이시항의 「광법사사적비명」 및 윤유의 󰡔평양속지󰡕와 유사한 내용이다. 즉, 녹족부인이 한 번 에 아홉 명의 아들을 낳고, 이를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아이들을 버리게 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적장이 되어 침입해 오고, 녹족부인은 아들들을 힐책하여 부모의 나라임을 알게 한다. 단지 <녹수암·두타사> 각편 은 첫째 단락에서 녹족부인의 신분을 고구려 동명왕의 부인으로 제시한다는 점, 셋째 단락의 녹족부인과 아 들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아들들을 ‘대동강’에 던진다는 점, 여섯째 단락의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만나는 과 정에 있어 녹족부인이 “대동군 부산면의 산봉우리에 올라” 부모의 나라에 활을 겨눈 아들들을 힐책하고 아들 들이 ‘대성산성’으로 돌아와 살게 된다는 점으로 봐서 이 이야기가 역사적·지역적 실재성을 매우 강하게 부 여하고 있다는 것이 색다르다.

6) 󰡔안주목읍지󰡕, 「잡지」; 이태진·이상태 편, 󰡔조선시대 사찬읍지 48:평안도 4󰡕, 한국인문과학원, 1990, 250~251. 7) 󰡔평안남도안주군읍지󰡕, 「신이」; 안주군민회 편, 󰡔내 고장 안주:안주군지󰡕, 방진사, 1989, 415~416.

8) 조선연구회 편, 󰡔평양속지󰡕, 경성: 조선연구회, 명치44(1911), 153.

9)미와 다마끼, 「대성산」, 󰡔전설의 조선󰡕, 동경: 박문관, 대정8(1919), 8~12. 이 서사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강상대, 「미와 다마끼의 녹족부인 서사 연구」, 󰡔어문학󰡕 118, 한국어문학회, 2012. 12, 155~17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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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천> 각편은 평양 합장천의 유래를 녹족부인 이야기에서 찾고 있는데, 이것은 이전의 한문 기록으로 는 확인된 바 없는 서사 내용이다. 즉, 이것은 현재 확인된 자료로만 볼 때는 비록 일본어이기는 하지만 미와 다마끼가 처음 문자 기록으로 남긴 각편일 가능성이 높은 텍스트로 판단된다. 이 이야기는 녹족부인의 아들 이 일곱이고, 대성산 기슭을 흐르는 강을 ‘합장천’이라 하는 것은 일곱 아들이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불효를 사죄하며 녹족부인 앞에 합장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음을 적고 있다. 여기에서 첫째 단락은 “녹족부인은 그 이름처럼 다리가 사슴과 비슷하고 또 그 머리카락은 짧고 밤송이 같았다”라 하고, 여섯째 단락인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만나는 과정에서는 “내 젖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라 하여 녹족부인에게 동물 형상을 더욱 뚜 렷하게 부여한다. 그리고 둘째 단락에서는 “녹족부인에게는 일곱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모두 엄마를 닮아서 사슴다리였다. 부인은 항상 이 아이들에게 버선을 신게 해두었다. 어느 때에 막내가 버선을 벗었기에 부인은 매우 화를 내며 이 일곱 명의 형제를 대동강에 던져 넣었다”라고 하여 이 각편의 매우 특징적인 면을 보인다. 우선 여기에서는 녹족부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아들들도 ‘사슴다리’라는 반인반수 형상을 갖고 있음을 드러 낸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녹족부인 이야기들에서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헤어지게 되는 원인은 ‘한 번에 아홉 또는 열두 아들’을 낳은 사실을 상서롭게 여기지 않은 까닭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사슴다리를 닮은 아이들에 게 버선을 신게 해두었으나 막내가 이를 어겼기에 부인이 화를 내어 아이들을 대동강에 버린다. 여기에서 녹 족부인 아들들의 동물성은 그 동물성을 감추어 두고자 하는 금기와 이를 어기는 위반의 서사로 이어지기 때 문에 ‘금기와 위반’이라는 신화적 모티프를 생성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열두삼천벌> 각편은 󰡔여지도서󰡕·󰡔안주목읍지󰡕·󰡔평안남도안주군읍지󰡕와 유사한 내용이다. 그런데, 둘 째 단락의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헤어지는 원인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동명왕의 비가 한번에 열두 아들을 낳 았다. 그들은 모두 엄마를 닮아 다리가 사슴다리와 같았다. 이것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상자에 넣어 바 다에 흘려보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합장천> 각편과 비슷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즉, 이 각편도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들들이 모두 엄마 다리를 닮아서 사슴다리와 같기에 이를 상서 롭지 못한 것으로 여겨 아이들을 버린다. 이 경우 녹족부인의 아들들은 반인반수로의 비범한 출생으로 인하 여 기아(棄兒)가 되는데, 이는 영웅서사의 전형적인 패턴을 이루는 모티프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미와 다마끼의 「대성산」에서는 이전의 한문 서사보다 녹족부인과 아들들의 반인반수 형상 및 성격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세 가지의 각편이 함께 있어서 녹족부인 서사의 전승 양상 을 비교하여 검토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고, 비록 일본어이기는 하지만 녹족부인 이야기가 본격적인 제목을 갖춘 서사 텍스트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34년에 나까무라 료헤이(中村亮平, 1887~1947)가 간행한 󰡔지나조선대만신화전설집(支那朝鮮臺灣神話 傳說集)󰡕에 수록된 「녹족부인의 아들(鹿足夫人の子供)10)은 미와 다마끼의 「대성산」에서 제목을 달리하고 서사 구성이나 내용은 미와 다마끼의 것과 동일한 자료로 보아도 무방하다.

1936년 11월호의 󰡔여성󰡕에 게재된 차상찬(1887~1946)의 「녹족부인과 십이삼천평」11)은 ‘고구려의 옛 전 10) 나까무라 료헤이, 「녹족부인의 아들」, 󰡔지나조선대만신화전설집󰡕(3), 동경: 대양사출판부, 소화13(1938), 199~205

(초판발행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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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라는 연재 기사의 하나로 발표된 것이다. 따라서 전설 내용의 소개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필자의 소회 가 담긴 수필 형식 속에 전설을 이야기하는 점이 색다르다. 전반적인 서사는 안주에 있는 ‘열두삼천벌’의 유 래를 담은 다른 녹족부인 자료들(󰡔여지도서󰡕, 󰡔안주목읍지󰡕, 󰡔평안남도안주군읍지󰡕, 󰡔전설의 조선(傳說の朝 鮮)󰡕 소재 자료)과 유사하지만, “젖이 또한 열둘씩이나 있어서 누구나 기괴하게 생각하였다”고 적시하고 있음 이 눈에 띈다. 그리고 녹족부인과 아들들이 ‘노루대(櫓樓臺)’라는 곳에서 만나게 되고, 모자가 서로 만나 기쁘 게 돌아온 동네라 해서 ‘열귀리(悅歸里)’라 한다는 유래가 덧붙여 있기도 하다.

1940년에 박영만(1914~1981)이 펴낸 󰡔조선전래동화집󰡕에는 「열두삼천」12)이라는 제목의 녹족부인 이야 기가 실렸다. 이것은 녹족부인 서사가 전래동화 장르로 수용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도 어투나 구성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걸맞게 씌어진 것이 다를 뿐, 이야기의 줄거리는 차상찬의

「녹족부인과 십이삼천평」과 마찬가지로 안주 지역에 유래하는 다른 녹족부인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다. 차상 찬의 자료와 비교했을 때 ‘열두 장군이 삼천씩의 군병을 거느리고 상륙한 곳’이라 해서 ‘삼천포(三千浦)’라 한 다는 내용이 추가된 반면에 ‘노루대’ 장면이 빠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녹 족부인이 사슴발을 닮은 열두 아들을 낳자 이를 나라에 흉한 일이 생길 징조로 생각한 임금이 아이들을 없애 버리도록 하고, 아이들을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들은 녹족부인은 다른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 을 바다로 띄워 보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아이들을 버리는 행위가 곧 아이들을 죽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물론 아이들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다). 이는 ‘친자 살해’라는 신화적 모티프에 속하는 이야기로서, 융(C. G. Jung)이 말하는 이른바 ‘공포의 어머니’를 통해 여신으로서의 녹족부인의 신격을 드러 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영만의 이 이야기에서 녹족부인은 애초부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조처로 그들 을 바다에 버린다. 이러한 의미 변화에는 이 작품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 대한 작가의 고민 이 엿보인다. 즉, 신화성의 측면에서는 친자 살해 모티프가 의미심장한 요소이지만,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 속 에서 부모가 스스로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장면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13) 이 런 작가의 선택은 이후 전래동화로 수용되는 녹족부인 서사가 대부분 뒤따르고 있는데, 이 경우 녹족부인 서 사의 본질적인 요소인 신화적 성격을 희생시킨 것임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이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에 걸친 녹족부인 서사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각 텍스트들이 표상하 는 동물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표 1> 참조). 이에 따르면 녹족부인의 동물 표상은 ① 사슴발 이다, ② 머리칼은 짧고 밤송이 같다, ③ 한 번에 아홉 또는 열둘이나 일곱 아들을 낳는데, 그들이 모두 사슴 발이다, ④ 일곱 또는 열두 개의 젖이나 젖구멍을 가지고 있다 등이다. 이러한 동물 표상을 바탕으로 아래에 서는 녹족부인 서사에서의 반인반수 형상이 지닌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1) 차상찬, 「녹족부인과 십이삼천평」, 󰡔여성󰡕 1: 8, 조선일보사출판부, 1936, 11쪽 및 26~27. 12) 박영만, 「열두삼천」, 󰡔조선전래동화집󰡕, 학예사, 1940, 3~7.

13) 강상대, 「전래동화에 수용된 녹족부인서사 연구」, 󰡔한국문예창작󰡕 25, 한국문예창작학회, 2012, 8쪽 및 449~45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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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녹족부인 서사에 나타난 동물 표상

연번 출전 제목 편저자 출판년 동물 표상

1 광법사사적비명 이시항 1727 –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음

2 평양속지 윤 유 1730 –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음

3 여지도서 1757~1765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4 안주목읍지 1820년대

이후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5 평안도안주군읍지 1899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6 평양속지 조선연구회 1911 –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음

7 전설의 조선 대성산 미와 다마끼 1919

<녹수암·두타사>

–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음

<합장천>

– 발이 사슴과 비슷하고 머리카락은 짧고 밤송이 같음

– 일곱 명의 아이들이 사슴발임 – 젖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음

<열두삼천벌>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 엄마를 닮아서 아들들이 모두 사슴발임 – 젖이 열두 줄기가 되어 나감

8 지나조선대만

신화전설집

녹족부인의 아들

나까무라

료헤이 1934

<1>

– 발이 사슴발이고 머리카락이 짧음 – 한 번에 아홉 아들을 낳음

<2>

– 일곱 명의 아이들이 엄마를 닮아 사슴발임 – 일곱 개의 젖이 있음

<3>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 엄마를 닮아서 아들들이 모두 사슴발임 – 젖이 열두 줄기가 되어 나감

9 여성 녹족부인과

십이삼천평 차상찬 1936

– 발이 사슴의 발같이 생김 – 젖이 열두 개임

– 한 번에 열두 형제를 낳음 – 아들들이 모두 사슴발임

10 조선전래동화집 열두삼천 박영만 1940

– 발이 두 쪽진 사슴의 발임 – 한 번에 열두 아들을 낳음 – 열두 아들도 모두 사슴발임 – 열두 개의 젖구멍을 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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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반인반수 존재의 특징과 의미

1. 사슴 표상 반인반수

세계 신화에서 보듯이 반인반수 관념은 “인간과 세계의 존재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사유가 반영된 것이며 신적인 신성한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14)로서 신화성을 구현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이 논리는 신화적 모티프를 풍부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설인 녹족부인 서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녹족부인 서사의 반인반수 요소도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에 값하는데,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상에서는 몇 가지의 특징 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녹족부인은 인성(人性)과 수성(獸性)의 결합이 한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반인반수 존재라는 점이 다. 우리 설화에서는 흔히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을 낳은 유화와,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의 왕비 알영을 반 인반수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반인반수의 개념을 넓게 보아서 동물에서 인간으로, 또는 인간에서 동물로 변 환하는 ‘변신’의 한 과정으로 반인반수 영역을 설정하는 경우이다.15) 그러나 유화와 알영의 반인반수 성격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형태의 수성을 보유한다.

하백이 그 딸에게 크게 노하여, “네가 내 훈계를 따르지 않아서 마침내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

하고, 좌우를 시켜 딸의 입을 옭아 잡아당기어 입술의 길이가 석 자나 되게 하고 노비 두 사람만을 주 어 우발수 가운데로 추방하였다. (중략) 어사 강력부추가 고하기를 “근자에 어량 속의 고기를 도둑질해 가는 것이 있는데 무슨 짐승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어사를 시켜 그물로 끌어내니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당겨서 돌에 앉아 있는 여자를 얻었다. 그 여자는 입술이 길어 말을 못하므로 그 입술을 세 번 잘라내게 한 뒤에야 말을 하였다.16)

이날 사량리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났는데,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자태와 얼굴이 남달리 고왔지만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는데, 월성 북천에 데려가서 목욕시키자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그 냇물 이름을 발천이라 했다.17)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에게 버림받은 수신 하백의 딸 유화는 가문을 욕되게 한 벌로 ‘입을 옭아 잡아당기어 입술의 길이가 석 자’가 되어 쫒겨나고, 금와왕에게 끌려나와 그 입술을 세 번 잘라낸 뒤에야 비로소 말을 한다. 이 대목에서 강물의 고기를 훔쳐 먹는 유화의 긴 입술은 ‘고니(鵠)’로 추정되는 물새의 수성 표상이지 만,18) 금와왕에 의해 입술을 잘라내고 다시 말을 하게 됨으로써 유화는 그 수성을 잃고 인성만을 보유하게

14) 이인영, 「동·서양 신화의 반인반수테마연구」, 󰡔카프카연구󰡕 13, 한국카프카학회, 2005, 240.

15) 오세정, 「한국 신화의 여성 주인공에게서 나타나는 반인반수의 성격」, 󰡔기호학연구󰡕 31, 한국기호학회, 2012, 230~234. 16)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동국이상국집Ⅰ󰡕, 민족문화추진회, 1980, 133~134.

17) 일 연, 󰡔삼국유사󰡕, 「신라시조혁거세왕」; 이가원·허경진 옮김, 󰡔삼국유사󰡕, 한길사, 2006,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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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물론 후일에 알을 낳게 되므로 수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라 잠복된 상태라고 하겠으나 형태상으 로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 된 것이다. 알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룡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알영의 자태와 얼굴은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고, 북천에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따라서 ‘신성한 아이’로 받들어 궁실에서 길러지는 알영은 닭부리를 한 반인반수 존재가 아니라 자태와 얼굴 이 아름다운 온전한 사람의 아이이다. 알영은 태어날 때 잠시 닭이 지닌 수성을 나타냈을 따름이며, 부리가 떨어져 나간 이후로는 사망할 때까지 닭과 관련된 다른 어떤 표상도 남기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유화와 알 영은 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형태상 한시적으로 수성을 보유할 뿐이고 변신 이후에는 인성으로만 존재 한다.

그런 반면에 녹족부인은 인성과 수성의 결합 자체로 고정된 존재로서 형태상의 변화가 없는 반인반수이 다. 가령, 녹족부인이라 불려질 만큼 그녀의 사슴발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아들 들을 출산하고, 버림받은 그 아들들이 장성하여 다시 돌아와 만나게 될 때까지도 여전히 그녀는 사슴발과 일 곱 또는 열두 개의 젖이나 젖구멍으로 표상되는 수성을 갖는다. 이처럼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상은 생래적 인 것이며, 생애에 걸쳐 항상 지속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화와 알영을 변환형 반인반수로 하고, 녹족부인 은 고정형 반인반수로 구분할 수 있다.

둘째, 녹족부인의 수성은 유화와 알영의 경우처럼 제거되어야 할 속성이 아니라 존귀한 위계와 비범한 능 력을 담보하는 속성이라는 점이다. 유화는 물새의 수성인 ‘석 자 입술’을 끊어내고, 알영은 닭의 부리같은 입 술이 떨어져 나간 후에 인간세계로 받아들여진다. 이때 그들의 수성은 인간세계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부정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신화는 “신과 인간, 짐승, 자연이 서로 단단히 얽혀 있어 모두 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같은 신적 질료로 이루어졌다”19)고 믿는 고대인의 생각이 탄생시킨 이야기 이다. 이런 관념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간에 층차나 우열이 없는 존재이고, 그 경계도 분명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인간세계로 들기 전에 수성을 제거하는 유화와 알영에게서는 인간과 동물간의 경계가 뚜렷하며, 동물 징표를 열등 요소로 여기는 인간의 사고가 보인다.

이와는 달리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상에 항구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수성은 녹족부인을 존귀하고 비범한 존재로 이끄는 속성이다. 사슴발로 널리 알려진 녹족부인이 왕의 어머니나 아내, 또는 궁실의 여인 같은 왕 족의 위계에 올라 있다는 것은 그녀의 수성이 신분상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특히 미와 다마 끼의 「대성산」, 나까무라 료헤이의 「녹족부인의 아이」에서는 녹족부인을 동명왕의 어머니 또는 아내로 설정 하고 있는데, 이 경우 녹족부인의 수성은 고구려의 건국 시조와 밀접하게 이어지는 매우 고귀한 자질이다. 또한 오래 전에 잃었던 아들들을 되찾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비범한 능력이 녹족부인의 수성에 기인하고 있 다. 녹족부인은 적장들에게 자신의 사슴발을 내보이고, 일곱 또는 열두 개의 젖을 먹여 모자간임을 확인시킨

18) 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유화가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몽에게 주었으나 주몽은 이를 잊어버리고 떠난다. 유화는 한 쌍의 고 니를 통해서 씨앗을 보내는데, 주몽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활을 쏘아 고니를 떨어뜨려 씨앗을 얻는다. 이런 사실에서 고 니와 유와의 친연성이 확인되는데, 이를 유화의 정체성과 관련시킬 수 있다. 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민속원, 2006, 125~129쪽 참조.

19) 카렌 암스트롱, 이다희 역, 󰡔신화의 역사󰡕, 문학동네,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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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로써 적장들은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죄를 알고 뉘우친다. 녹족부인의 수성이 아들들을 되찾고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셋째, 녹족부인의 반인반수에 표상된 사슴은 우리 설화의 변신 모티프에서 매우 드문 동물이라는 점이다. 녹족부인은 사슴발이고, 머리칼이 짧고 밤송이 같아서 암사슴의 머리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일곱 개 또는 열두 개의 젖이나 젖꼭지를 지닌 여인이다. 그녀는 한 번에 아홉 또는 열둘이나 일곱 아들을 낳는데, 아들 들의 발도 모두 사슴발을 닮았다. 이러한 녹족부인의 형상과 기이한 출산의 행적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인 사슴 표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즉, 녹족부인은 인간과 사슴이 결합된 반인반수인 ‘사슴 인간’ 이다.

우리 설화에는 변신 모티프를 통해 여러 종류의 동물이 인간으로 바뀌고, 또 인간이 여러 종류의 동물로 바뀌기도 한다. 한국 변신설화를 대상으로 변신형태를 통계화한 이상일에 따르면,20) 동물변신의 경우 숫적 으로 가장 많은 짐승은 뱀, 호랑이, 여우 순이고 용, 지렁이, 곰, 쥐, 지네, 소, 개, 닭 등이 차례를 잇고 있다. 이 통계가 보여주듯이, 우리 설화에 사슴은 더러 등장하지만 변신 모티프의 주인공으로 사슴이 등장하는 경 우는 찾기 힘들다. 특히 사슴 수성을 지닌 반인반수 존재는 현재로서는 녹족부인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앞서 유화와 알영을 변환형 반인반수로, 녹족부인을 고정형 반인반수로 구분하였는데, 이 구분은 엄밀한 의 미에서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태가 정격(正格)임을 시사한다. 생애 동안을 한결같이 사슴 인간으로 살아가 는 녹족부인은 반인반수가 희소한 우리 설화에서 존재적 가치가 크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2. 신격 구현과 원형적 사유

한 집단이 오래도록 전승시켜 온 설화 속에는 삶과 역사의 공유가 형성한 집단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특 히 신화는 특정 집단의 원형적 사고의 보고이다. 고대인에게 우주와 자연, 사물과 현상은 대부분 미지의 세 계였을 터여서 그런 세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방식은 상징과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 상징과 상상력이 신화를 만들고 원형적 사고를 유전시켜 왔다. 따라서 우리는 설화 속의 상징과 상상력을 통해서 우 리 민족의 집단의식의 양태에 접근할 수 있는데, 우리 설화의 문제적 인물인 녹족부인의 반인반수 형상이 더 욱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서 신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에 대한 우리 민족의 원형 심상 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녹족부인의 사슴 표상에서 보이는 고대적 사유 또는 신화적 상상력은 수성을 통한 신격(神格) 구현이다. 대다수 문화권에서 동물은 자연 세계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초자연적 힘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고, 그 때문에 동물은 신의 대리인이자 협력자로서 존경을 받거나 스스로 권력을 지닌 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21)그래서 인간이 동물에게서 태어나거나 동물과 혼인하고, 동물 형상이 섞인 인체를 갖는 것은 초자연 적 힘이나 초월적 존재와 결합하게 되는 신성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관념이 토템 의식 속에, 그리고 동물이 20) 이상일, 󰡔변신 이야기󰡕, 밀알, 1994, 94쪽 참조.

21) 니콜라스 J. 손더스, 강미경 역, 󰡔동물의 영혼󰡕, 창해, 2005, 3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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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창조하기도 하고 인류 또는 민족의 시조가 되기도 하는 신화 속에 남아 있다. 이때의 동물은 미지의 존재인 신을 시현하기 위한 인간의 관념이 탄생시킨 신성의 주체이다. 특히 사슴은 보편적으로 창조와 풍요, 장수와 재생, 초자연적 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22) 녹족부인 역시 이런 통상의 고대 관념에 따른 것으 로, 사슴의 수성을 통한 신성 존재의 형상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반인반수 형태라는 사실은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사람모습을 지닌 ‘신의 시현’은 짐승이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탯거리를 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 것이 발전된 단계에서는 인간모습으로 점차 전이된다. 그런 단계에서 인간은 반인반수(半人半獸), 혹은 일부수형(一部獸形) 형태의 기이(奇異)를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인간화 과정에서는 동물이 완전히 사람으로 변신함에 있어서 모습이 작다든지 알몸이라든지 하는 기이한 형상이 부수적으로 남을 뿐이 다. 그런 식으로 동물형태의 접령(接靈)은 인간형태의 신상(神像)으로 발전하고 동물의 인간화나 신의 동물화 등이 옛 마음가짐에서 가능하게 된다.23)

이처럼 신을 시현하는 형태는 동물형, 반인반수형, 인간형의 순서로 변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인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상상도 어려운 신의 모습을 처음에는 동물 형체에 투사함으로써 형상화했다. 이는 물론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고, 또 인간을 능가하는 동물들의 비범한 능력에 대한 경외감이 낳은 결과이다. 이후 점차 인지가 계발되고 동물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동물 형체의 일부분을 인간 과 결합시킨 반인반수형을 거쳐 온전한 인간 형체를 통해 신을 현시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선자는 신의 형태가 동물형에서 인간형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류의 사유가 진화해서 나타난 신화의 고급 형태라고는 말할 수 없고, 인간 사유의 진화와는 상관없이 인간 중심주의의 사고가 생겨나고 이성적 사유를 하게 된 것의 표 현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24) 이를테면 앞서 살핀 유화와 알영의 수성 제거는 신의 형태를 반인반수형에 서 인간형으로 바꾸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세상을 사유하는 태도가 비교적 선명해졌음을 뜻한다. 그 반면에 녹족부인은 반인반수형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 동물 표상이 존귀하고 비범하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신화적 사유’의 무게가 여전하다. 녹족부인이 비록 유화와 알영처럼 국조신화의 주인공이 되지 는 못하고 민간전설에 남아 있지만, 그녀는 반인반수 형상을 통해 풍부한 신화성을 체현하는 신격 존재인 것 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녹족부인 이야기에 대해 현재의 전설화된 텍스트 이전의 원형 서사로서 수조신화(獸 祖神話) 성격의 텍스트를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처럼 녹족부인 서사를 신화 텍스트의 차원으로 읽는 경우, 우리 민족의 원형적 사유에 있어 사슴 토템으 로 구현된 동물 숭배 관념이 부각된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유화와 알영의 새, 칠성본풀이의 뱀 등은 우리 민족이 간직해 온 대표적인 토템 동물이다. 여기에 녹족부인 서사를 통해 사슴을 의미심장한 토템 동물 의 하나로 편입시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앞서 보았듯이 녹족부인 서사에서 사슴은 반인반수형 신격을 매우

22) 잭 트레시더, 김병화 역, 󰡔상징 이야기󰡕, 도솔, 2007, 67쪽 참조. 23) 이상일, 앞의 책, 70.

24) 김선자, 󰡔중국변형신화의 세계󰡕, 범우사, 2001, 7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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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것은 동물형 신격에서 변신하여 인간형 신격이 됨으로써 동물 형상을 소거하는 곰, 새 토템과 비교할 때 사슴 토템의 성격이 더욱 강하게 남겨진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권도경은 녹족부인 서사의 한 각편인 「열두 삼천 벌」25)에 대해 사슴 토템 모계부족의 시조 신화의 한 부분으로 논의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몽골 신화에서 순록을 뜻하는 알란 코아가 여성 시조신 으로 등장하는 예와 같이 사슴 토템은 바이칼호에서 발원하여 순록을 사냥하며 살아간 유목민들에게 공통적 으로 확인되는 사실로서 「열두 삼천 벌」은 이처럼 시원이 오래된 북방 유목민들의 신화가 전승되어 평안도 의 지명전설로 남은 것이다. 녹족부인 신화는 고구려의 고대국가로서의 성립 이전에 존재한 풍요와 다산의 근원적인 창조신으로 숭앙된 사슴 토템의 여신 관념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부계제의 성립과 함께 출현한 남 성 신격에 의해 신화적 위계질서가 본격적으로 변동하기 이전에 존재한 모계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 다.26) 이 견해를 바탕으로 녹족부인 서사에서는 우리의 고대 민족 구성원의 하나로 사슴 토템 부족의 존재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며, 녹족부인의 반인반수는 사슴 토템 부족에 의해 숭배된 여신의 형상화로 봄직하다. 잘 알다시피 우리 신화에서는 인간에서 뱀으로 변신한 후 곡물과 재복의 신으로 좌정하는 이야기인 칠성본풀 이를 제외하고는 동물이 직접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문데, 녹족부인 서사는 사슴 형상을 한 모계형 시조신 또는 수호신을 숭배 대상으로 전경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특히 녹족부인과 그녀의 아들들이 산, 강, 평야 등의 자연물과 연관된 지명전설의 주인공으로서 대지적 상 상력을 유발하고 있음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즉, 녹족부인의 아들들이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죄를 뉘우치고 불문에 들어 성불했다는 대성산, 아들들이 불효를 사죄하며 녹족부인 앞에 합장했다는 합장천, 열두 형제가 삼천 명씩의 군병을 거느리고 왔다는 열두삼천벌 등의 지명 유래는 해당 지역에서 녹족부인과 그녀의 아들들 이 신성 존재나 영웅적 인물로 받들어졌음을 시사한다. 산, 강, 평야는 인간의 생존과 풍요한 삶을 담보하고 있는 대자연이다. 녹족부인과 그녀의 아들들은 대자연 속에 깃든 영적(靈的) 주체로서 고대의 지역민에게 애 니미즘 관념과 생태적 친연성을 품게 했으리라 본다. 다시 말하면 반인반수형 신격인 녹족부인은 대자연의 섭리와 생산력을 주관하는 산신이나 수신, 또는 지모신의 위계로 숭배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인간이 동물성 을 구유하는 것은 자기 생존의 능력과 가치를 확대시키는 것이고, 이런 관념은 자연스럽게 특정 동물을 인간 의 현세와 내세에 관여하는 신격으로 삼게 된다. 이처럼 인간을 관장하는 동물 신격은 ‘자연에 기반한 영성 (nature-based spirituality)’27)을 현현한 샤머니즘 세계관에 따른 존재인바, 녹족부인 서사는 이러한 고대인 의 사유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25) 임석재, 「열두 삼천 벌」, 󰡔한국구전설화(평안북도Ⅲ·평안남도·황해도편)󰡕(임석재전집③), 평민사, 1988, 167~168. 26) 권도경, 앞의 논문, 138~155쪽 참조.

27) 범박하게 말하자면,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을 신격화 또는 인격화하는 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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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맺음말

신화는 자연 현상과 만물의 이치에 대하여 과학적 인식을 갖지 못한 고대인들이 상상적 사유를 통해 세상 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상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존재 또는 현상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이러한 신화 관념이 탄생시킨 것이기에 반인반수는 신화에서 등장인물로서의 역할이나 모티프의 기능상 매 우 중요한 서사 요소이다.

고대인은 동물이 자신의 먼 조상이라는 막연한 관념을 지녔고, 자신이 특정 동물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 스럽게 여겼다. 또 자신의 부모 중의 한쪽이 동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자신 의 우수성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동물은 자신을 키워 주고, 보살펴 주고, 어려울 때 도와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28) 녹족부인 이야기는 이런 고대인의 원형적 사유를 구현하고 있다. 녹족부인은 사슴의 수 성을 가진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후손에게는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일 것이다. 그녀는 양육자이자 조력자로, 그리고 환란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여인으로 기억될 것이므로 그녀의 사슴 표상 은 친근함과 경외감으로 다가오는 동물적 요소이다. 이처럼 녹족부인 서사는 우리 민족이 지녔던 동물에 대 한 고대 관념을 사슴 표상을 통해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집단의식 속에 동물이 어떤 관계로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금은 잃어버린 사슴 토템의 흔적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일본 신화에 다양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반인반수 존재에 비하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우 리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등장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가운데서 녹족부인 서사가 특색있는 반인반수 존재를 구현하고 있음은 우리의 신화적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 의미가 크다. 앞에서 살폈듯이 녹족부인은 인성(人性) 과 수성(獸性)의 결합이 한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반인반수 존재이며, 그녀의 수성은 유화와 알영의 경우처 럼 제거되어야 할 속성이 아니라 존귀한 위계와 비범한 능력을 담보하는 속성이다. 그리고 녹족부인의 반인 반수에 표상된 사슴은 우리 설화의 변신 모티프에서 매우 드문 동물이다. 이러한 성격들은 우리 신화에서 반 인반수 존재의 영역을 더욱 넓히고 깊이를 더하여 고찰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닌다.

반인반수인 녹족부인의 정체성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우리 민족 구성 원이 받들어 모신 신성 존재를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녹족부인 이야기는 대모신 (大母神)이나 민족 시조, 영웅 또는 토템 동물 같은 신격을 현현시키는 신화로서, 우리 민족의 고대 관념과 신화적 사유를 품고 있는 중요한 서사 텍스트가 된다. 특히 사슴 숭배는 북방 유목문화의 독자적 특색을 지 닌 전통이자 전형적인 토템 신앙의 일종이므로,29) 녹족부인 서사가 갖는 사슴 표상의 반인반수는 우리의 민 족 기원과 관련된 논의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 판단된다.

오늘날 영향력이 큰 대중문화 콘텐츠인 영화, TV드라마 등에서 반인반수는 신화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반인반수 모티프는 환상적 서사의 구성과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핵심 요소이며, 반인반수 존재는 매력 28) 김현주, 󰡔토테미즘의 흔적을 찾아서󰡕, 서강대학교출판부, 2009, 113쪽 참조.

29) 王其格, 「紅山諸文化的鹿與北方民族鹿崇拜習俗」, 󰡔赤峰學院學報󰡕 29: 1, 2008, 13~1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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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캐릭터로 수용된다. 이때 반인반수 캐릭터에 대한 성격 부여가 단순한 흥미 위주의 기괴성을 부각시키 는 역할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반인반수가 대중적으로 공감되고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고대로부터 간 직해 온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민족의 원형 심상에 닿는 것이어야 한다. 녹족부인 서사의 반인반수 존재가 환기하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이 이야기가 대중서사이자 민족서사로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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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3년 12월 27일에 투고되어,

2014년 1월 14일까지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14년 1월 28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4년 1월 29일에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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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mythical imagination shown on narrative of Lady Nokjok

; focused on ‘therianthropy’

30)Kang, Sangdae*

Myth was born to understand the world through imaginative thinking by ancient people who did not have scientific recognition on natural phenomena and reasoning of all the beings.

Accordingly, it was natural that they created existence or phenomenon which could not be experienced. Therianthropy was born by such concept of myth. So, therianthropy is very important narrative element in role as a figure in the midst of myth or in function of motif.

Story of Lady Nokjok(鹿足婦人) embodies prototype thinking of the ancient people. Lady Nokjok would be a wipe and a mother with animality of deer, and also an ancestor who is holy and proud to descendants. As she would be remembered as a rearer, assistant, and a great woman who saved a nation in disarrangement, symbol of deer representing Lady Nokjok is an element of animal that provides intimacy and awe. Thus, narrative of Lady Nokjok clearly discloses ancient concept of animal which our nation had through a symbol of deer. This shows in what relationship animal exists in the midst of group consciousness of our nation. This is also a trace of lost deer totem.

Therianthropy frequently appears in myths of China or Japan but it appears very limitedly in our myth though in same East Asia cultural circle. In the situation, Lady Nokjok appears in unique existence of therianthropy. Connection of humanity and brutality in Lady Nokjok is not contemporary but permanent so that Lady Nokjok is an existence of therianthropy. Her brutality is not an attribute which should be removed like Yuhwa(柳花) and Alyeong(閼英). But this is an attribute including high, noble rank and extraordinary capability. Deer symbolized in therianthropy for Lady Nokjok is very rare animal in transformation motif of our tale.

Such characters that therianthropy of Lady with deer feet narrative broaden and deepen domain of existence of therianthropy that is rare in our tale. As a source of mythical imagination, therianthropy is essential element to assure construction and meaning of narrative providing high

* Professor, Dankoo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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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agement in cinema, TV drama etc. which are popular culture contents with high influence today. It is expected that mythical imagination evoked through Lady with deer feet can continuously expand value of national narrative.

[Key Words] Lady Nokjok, narrative, myth, imagination, therianthrop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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