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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은 참 멀었다. 서울에서 지도로도 이미 천리 길을 넘어서는 남녘 마을이었다. 몇 년에 한 번쯤 어머 니를 따라 나서던 유년에는, 가는 내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만리 장천을 헤매거나, 천길 낭떠러지가 도 사리고 있는 지구별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심정에 사로잡혀 잔뜩 겁을 먹곤 했다.
그러나 길고 고된 여로의 끝에 다다른 외갓집은 늘, 설화 속에나 등장하는 상서로운 외딴 섬의 풍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지독한 멀미와 막막한 지루함으로 점철된 고행 길을 보상받고도 남을 만한 값어치 있는 시간여행이었다.
어머니를 닮은 외할머니, 외할머니를 닮아 있는 외할아버지, 어머니처럼 생긴 외삼촌과 이모들, 형제나 자매 같이 낯익은 외사촌들, 외갓집 마당을 닮은 논과 밭, 외갓집 기둥을 닮은 뒷마당 대나무, 외갓집 반찬 거리를 닮은 뒷산과 앞 들의 야생초들, 외갓집 초가지붕을 닮은 뒷산 양지바른 곳의 조상님 무덤들, 외갓집 에서만 맡을 수 있는 수상하게 맛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 그리고 분명히 남인데도 친척인양 반갑고 따뜻하 게 맞이해주던 마을 사람들. 차라리 그토록 다가가기 힘든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에 더욱 간절히‘그곳에 가고 싶어’했던 유년의 이상향이 바로 외갓집이었다.
지금 농촌에는 빈집이 많다. 정부 조사로는 2만 5천여 동에 이른다고 한다. 이농, 폐농으로 폐가나 흉가 로 전락해가고 있다. 빈집의 문제는 그 집으로 끝나지 않는다. 빈집이 많아지니 마을도 점점 비어간다. 집 이 하나둘 비어갈수록 마을에 사는 인간의 무게나, 마을이 딛고 선 그 땅의 무게조차 따라서 가벼워진다.
농촌이 비어가는 동안 도시는 힘겹게 터져나간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게 많은 집들로 도시는 숨이 막히고 시민들은 도시를 벗어나 보려 아우성을 치며 산다.
이럴 때 농촌의 버려진 빈집을 도시민들의 쉼터나 삶터로 리노베이션해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농촌 도 좋고 도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고향을 잊거나 잃어버린 채 도시의 삶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을, 어머 니와 찾아가던 유년의 외갓집 같은 시골집에서 쉬거나 살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정년퇴 직자 100만 명을 귀농시켜 농촌의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려는 운동을 크게 펼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외갓집은 모두 빈집이 되고 만다. 그 누구도, 다시 는, 외갓집을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정기석|생태수필가
외갓집에 가고 싶다
짧 은 글 긴 생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