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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크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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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예술의 토톨로지에 대처하는 뒤샹의 ‘화해’론

손 지 민*

1)

Ⅰ. 서문

1. 작품 속에서 교차하는 뒤샹과 히틀러의 역사 2. 논문의 개요

Ⅱ. 작품 관찰

Ⅲ. <추크츠방>은 “차이에 대한 의식의 실패”를 드러내는 “촉매”

Ⅳ. “괴물”로서의 토톨로지

Ⅴ. 차이와의 “화해”

Ⅵ. 결론

* 프랑스 파리 카톨릭대학교 철학과 포스트닥터 과정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4.0.06

(2)

[도 1] 루돌프 허츠(Rudolf Herz), <추크츠방

Zugzwang

>(디테일), 2010, 실크스크린 인쇄, 가변크기, MUDAC(스위스 로잔)

두 눈은 블랙 커피를 본다. 거기에는 감각의 검열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언제나 동어 반복이다.1)

Ⅰ. 서문

독일 작가 루돌프 허츠(Rudolf Herz, 1954-)는 1994년 뮌헨에서 열린 ≪호프 만과 히틀러: 독재자 신화의 미디엄으로서의 사진 Hoffmann & Hitler:

Fotografie als Medium des Führer-Mythos≫전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 나치정권 의 사진이미지들을 수집, 연구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대외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그의 전속 사진가 하인리히 호프만(Heinrich Hoffmann) 이 맡은 역할에 주목했다. 이 전시는 뮌헨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평가되었으나, 히틀러 이미지의 도상화에 대한 논란 속에 베를린(Berlin)과 자르브 뤼켄(Saarbrücken)에서는 두 번이나 계획된 전시가 취소되기도 하였다.2)

1)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정병관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0), p. 202.

(3)

그는 이듬해인 1995년에 독일 에센(Essen)의 쿤스트베라인 루어 (Kunstverein Ruhr)에서 <추크츠방 Zugzwang>을 전시한다. “추크츠방”은 체스 에서 쓰이는 용어로, 자신에게 불리한 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 이다. 허츠는 이 설치작에서 호프만이 촬영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와 마르 셀 뒤샹(Marcel Duchamp)의 흑백사진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복제한 뒤, 두 인 물사진을 번갈아가며 병치시켜 체스판을 연상케 하는 배치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벽면을 모두 도배 해놓았다. 에센에서의 첫 전시는 전전(戰前) 유대계 독일인들을 위한 회당의 바로 아래층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여기에 서 역시 히틀러 이미지는 ‘호프만과 히틀러’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후 허츠가 <추크츠방>을 출품한 ≪미러잉 이블 Mirroring Evil: Nazi Imagery/Recent Art≫(2002. 3. 17-6. 30)전의 기획자 노먼 클리블라트(Norman Kleeblatt)는 <추크츠방>에 대해, “미학적으로 꽤나 보수적인 에센의 유태인 역사 박물관장도 <추크츠방>의 핵심을 이루는 예술적, 도덕적 양의성을 높이 평가했 다”3)고 말했다.

이후 <추크츠방>은 독일을 비롯한 다른 4개국에서 2011년까지 9번 더 전시 되었고, 허츠는 2013년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하인츠 슈츠(Heinz Schütz)와 함 께 작품에 대한 책 Zugzwang: Duchamp, Hitler, Hoffmann(추크츠방: 뒤샹, 히 틀러, 호프만)을 펴냈다. 이 편저는 허츠와 슈츠의 <추크츠방>에 대한 에세이, 대담, 전시평론과 논평들을 180페이지에 걸쳐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2) Norman L. Kleeblatt, “The Nazi Occupation of the White Cube: Piotr Uklański's The Nazis and Rudolf Herz's Zugzwang,” in: Impossible Images: Contemporary art after the Holocaust, ed. by Shelley Hornstein, Laura Levitt et Lawrence J.

Silberstein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3), pp. 179-194, p. 188;

Reesa Greenberg, “Mirroring Evil, Evil Mirrored: Timing, Trauma, and Temporary Exhibitions,” in: Museums After Modernism: Strategies of Engagement, ed. by Griselda Pollock et Joyce Zemans (Malden[MA]: Blackwell Publishing 2007), pp.

104-108 (DOI: https://doi.org/10.1002/9780470776636.ch5), p. 110.

3) Reesa Greenberg, “Mirroring Evil, Evil Mirrored”, p. 110.

(4)

1. 작품 속에서 교차하는 뒤샹과 히틀러의 역사

뒤샹과 히틀러는 한번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관계가 겹치 는 부분도 없고, 서로에 대해 언급한 기록도 전무하다. <추크츠방>이 예술작품으 로서 갖는 의미는 그러므로 두 인물의 역사가 개념적으로 교차하는 지점들에서 그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교차점들을 찾는데 있어 인물사, 지 정학사, 그리고 사진의 역할에 관련된 설명이 예비적으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 다.

먼저, 허츠가 모델로 삼은 사진들은 각각 20년의 세월에 걸쳐 1932년과 1912 년 호프만에 의해 촬영됐다. 1932년은 히틀러가 나치 독일의 총통이 되기 2년 전 으로, 쿠데타에 실패한 이후 독일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에게 패한 해이다. 1912년은 ≪독립전 Salon des indépendants≫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의 출품에 실패한 뒤샹이 포비 즘(fauvisme)과 후기인상주의에서 분석적 큐비즘(cubisme analytique)으로 잠시 관심을 돌리며 실험적 모색을 하던 시기에, 파리 예술가들과의 교류에 실증을 느 끼며4) 독일 뮌헨(München)을 방문한 해이다.

두 인물의 예술에 대한 경험은 매우 상이하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빈 미 술 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Wien)에 입학하려 했지만 두 번 낙 방하였고, 상징주의 작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였다. 그의 풍경화에 대한 편향과 회화 일반에 대한 낭만주의적 성향

4) “예술가들과 매일같이 만나는 일, 예술가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하 는 일이 나는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1912년에 나를 좀 ‘화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독립전 Indépendants≫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를 출품했을 때였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전시회 개막식 전에 철거하라고 내게 요구했다 […] 그 당시 그 일은, 내가 자유롭다고 믿었던 예술가로부터 나온 그러한 행위에 대한 반동

으로 직장을 구할 만큼 나를 크게 낙담시켰다. 나는 생트-주느비에브

(Sainte-Geneviève) 도서관의 사서가 되었다”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38).

(5)

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호프만은 히틀러의 수채화들을 직접 소장하기도 하였으 며, 히틀러 정부의 예술작품 검열을 맡기도 했다).5) 뒤샹은 파리의 사립 예술 학 교인 아카데미 줄리앙(Académie Julian)에 입학했지만, 당구를 치고 풍자만화를 그리는 데에 심취해 있다가 결국 낙방했다. 그는 1912년까지 다양한 예술양식들 을 차례차례 익혔고 손재주가 있었으며 여러 가지 기법을 따라 하기도 하였다.6)

뒤샹 특유의 다다이즘이 형성되던 시기가 호프만이 뮌헨에서 그의 초상사진 을 찍은 이 1912년 무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뒤샹은 피에르 까반느 (Pierre Cabanne)와의 대담에서 뮌헨을 방문하기 직전 <장기 두는 사람들의 초 상>을 그릴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미 [세잔의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이후 정말 빠르게 변했다. 입체주의[큐비 즘]는 단 몇 달 동안만 나의 흥미를 끌었다. 1912년 말에는 나는 이미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념이라기보다는 경험의 한 형태였다. 1902년 에서 1910년까지 나는 썩 잘 헤엄을 쳤다. 나는 8년간 수영 연습을 한 것이다.”7) 이렇게 호프만의 사진 속에 나타나는 뒤샹은 촬영 당시 많은 변화를 경험하며 회 화에 회의를 느끼고 실험적 모색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기 변혁을 토대로 뒤 샹은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비판했고 이 요인들을 이동, 도치, 변 형시키는데 일생을 보냈다.

이는 히틀러의 정권의 나치 사상과 대비된다. 히틀러는 프롤레타리아의 삶 을 그 목적이 이미 상정된, 필연적 변증법을 따르는 전체주의에 귀속시켰다. 그는 나치주의를 체계화시키며 정권의 사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경계심을 모두 말 소시키려 했다. 거기에는 허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정치의 심미 화(Ästhetisierung der Politik)”를 언급하며 말하는8)) 국가사회주의 프로파간다 이 5) Robert G. L. Waite, The Psychopathic God: Adolf Hitler (New York: Da Capo

1993), p. 66.

6)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p. 46-47.

7)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56.

8) Heinz, Zugzwang: Duchamp Hitler Hoffmann (München: Belleville Verlag 2013), p.

23.

(6)

미지의 드라마틱한 사용과 분배가 큰 역할을 하였다. 나치 정권은 대중에게 이데 올로기의 즉각적 재현과 사회의 완벽한 현동(玄同)을 요구했고, 사회주의적 이상 에 대한 일정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복제기술과 선전을 통해 반복하였다. 또한 사 회 속 개별자와 제작물의 특유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이상을 즉각적 으로 시각화하여 분배하였다. 반면, 뒤샹은 하나의 사상적, 철학적 목적을 상정하 는 것 자체를 부인했으며, “진리와 절대적인 판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믿 지 않는다”9)고 말했다. 또한, 프락시스로서의 실험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이나 진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인정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자신의 실험에 비판적이게 했고, 그의 판단을 더욱 논리적으로 만 들었다.10) 또한, 나치 정권이 복제기술과 반복적 선전을 사상전파의 도구로 사용 했다면, 뒤샹은 레디메이드라는 이름으로 “복제를 강박적으로 반복”11)하며 예술의 무목적성을 드러냈다.

2. 논문의 개요

본 논문의 개요를 미리 짧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의 관찰을 통해 <추크츠방>의 반복성을 분석하고, 허츠가 왜 이 러한 부조리한 반복형식을 방법론으로 채택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허츠는 앞 서 언급한 그의 편저 Zugzwang: Duchamp, Hitler, Hoffmann을 통해 이 이유를

9)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136.

10) 뒤샹은 “체스(échecs, 불어에서 실패를 뜻함)는 우리로 하여금 논리적이게 한다(Les échecs vous obligent à être logique)”고 말한다 (Francis Robert와의 대담, Dalia Judovitz, Déplier Duchamp: passages de l'art [Villeneuve d'Ascq: Septentrion 2000], p. 37에서 발췌).

11) 클리블라트가 인용하는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은 뒤샹의 예술을 “탄성적 신체 와 기하학적 체계 사이의 계주”, 그리고 “복제의 강박적 반복”이라 일컬었다: “David Joselit's recent observations about Duchamp's ‘relay between the ‘elastic’ body and a geometric system’ and his ‘compulsive repetition of reproduction’ are pertinent her” (Norman L. Kleeblatt, “The Nazi Occupation”, p. 190).

(7)

설명하는데, 이 책에서 그가 <추크츠방>을 전시하게 된 배경, 그리고 작품에 대 한 관객의 반응에서 그가 가장 주목하는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점은 바로 작 품에 등장하는 히틀러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반응에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권력, 그것이 일으키는 폭력성이다. 이 폭력성의 원인을 그는 재현으로서의 사진이 단 순한 재현 매체로서의 역할을 초월하는 상황, 즉 재현과 재현 대상이 간극에도 불구하고 ‘동일화’되는 상황에서 엿본다.

다음으로 허츠가 어떻게 이 동일화 문제를 예술의 개념과 역사 서술의 문제 와 연관 짓는지를 살펴본다. 허츠는 “히틀러와 뒤샹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어떠 한 예술도 불가능하며, 모던한 것(die Moderne)를 이야기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 다”12)고 말한다. 즉, 허츠는 모던 예술이 재현 속의 지시대상과 재현의, 더 넓은 의미에서는 기의와 기표의 임의적 ‘동일화’에 대한 자각과 비판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예술적 창조의 조건인 재현은 역사학의 근본적인 서술 방식과 현 상에 대한 의식의 수용방식에도 적용된다. 히틀러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증오적 반응은 재현될 수 없지만 재현하여 기억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의 근원을 확인 시켜주는 동시에, 재현과 재현의 대상 간의 “차이에 대한 의식의 실패”를 드러낸다.

필자는 이 “의식의 실패”와 예술의 정의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지점이 역사상의 동어 반복 또는 토톨로지의 문제라고 본다. 허츠에게 있어 예술 에 필요불가결한 두 인물의 이미지를 끝없이 반복함은 곧 예술작품과 역사의 재 현적인 한계로 인해 역사상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동어 반복 또는 토톨로지에 대한 자각이자 이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토톨로지란 예술의 이름으로 실재를 재현하려는 작품이 그 물리적, 맥락적인 특유성에도 불구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로 회귀하는, 진정한 새로움 또는 창조가 불가능한 상황을 가리킨다. 또한 필 자는 이러한 토톨로지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추크츠방의 상황’, 즉 재현에 의존하 는 의식의 교착 상태로 해석한다. 뒤샹에 따르면 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예술이 짊어진 가장 큰 숙제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과 체스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12)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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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작품 관찰

<추크츠방>에서는 복제된 사진들이 공간을 체스판과 같이 균등하게 나누고 그 반복성으로 인해 객체와 배경의 구분을 거의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 는 하나의 전체로서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는 단위개념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즉, 재현된 단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는 방식과 재현 자체의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사유를 확장시키려는 것이 허츠의 의도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제된 인물사진들이 전시공간을 포화상태로 만들며 점령한다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전시공간의 물리적, 작품의 장소특정적 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여기서 반복은 공간을 장악하여 작품의 특유성을 확보한다기보다 작품의 물리적(화이트 큐브), 재현적(사진) 한계를 시험하고 확장시키려는 허츠의 노력으 로 읽혀야 할 것이다.13)

앞서 언급한 클리블라트는 뒤샹과 히틀러의 병치를 “믿기 힘든 결혼 (implausible marriage)”이라 서술하며 둘을 각각 나치즘(Nazism)과 다다이즘 (Dadaism)에 비추어 양극화한다: “허무주의는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전체론

13) 사진이미지와 인간 의식에 관한 허츠의 관심은 일찍이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허츠 의 첫 작품은 한스 되링(Hans Döring)과 합작해 뮌헨 미술원(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München) 입구 계단을 계단의 사진으로 덮은 <일루전의 계단. 계 단의 일루전 Die Treppe der Illusion. Die Illusion der Treppe>(1979)이었다. 그는 사진과 사진이 재현대상으로 삼는 것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작가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재현과 그 대상을 중첩하는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이미지의 역사성에 대해 연구한다. 또한, 그는 드레스덴 (Dresden)에 1974년 세워진 후 독일 통일 직후 철거된 레닌과 다른 두 익명의 흉상들 을 대형 수송차량에 싣고 유럽 전역을 돌았다. 이 <레닌 온 투어 Lenin on Tour>(2004)에서 그는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거대 흉상들을 두고 많은 대화를 했고, 이 “투어”에서 있었던 대화와 사건들을 사진과 문서 등의 기록으로 남겨 에세이 들과 집대성해 출판하였다 (Rudolf Herz, Lenin on Tour [Göttingen: Steidl 2009]). 여 기에서 허츠는 대중의 뇌리 속에 움직이고 있고, 매번 다른 모습, 담론, 문맥으로 드러 나는 레닌의 이미지와 그것이 전달하는 역사에 대한 기억들을 듣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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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itarian holism)의 모순적 결과물이다 […] 뒤샹의 자진적 허무주의 (self-imposed nihilism), 모순적 발상과 정체성을 이용한 유희는 사실상 고갈되지 않는 무한적 탐색으로의 길을 열었다.”14) 한편에는 전통적 회화에 꿈을 투영하고 정치로 꿈을 현실화하려는 사람의 이미지, 다른 한편에는 예술의 취미성, 취향과 오락성을 벗어나려 애쓰며 기계적인 제도 내에서 가장 무관심하게 자기자신을 비 판한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두 인물의 시선이 전시공간을 가득 메운다. <추크츠 방>은 복제된 두 사람의 “1000개의 죽은 시선(1000 tote Augen)”15)이 반복적인 구조와 융합되며 전시공간을 가득 메우는 작품이다. 허츠는 또한 작품을 체스판 에 비유하며 이를 이루고 있는 반복패턴을 “두 모티프에서 시작되는 이미지 흐 름”16)이라 서술한다. 말하자면 반복으로 인해 이미지들 간의 같음과 다름이 교차 하는 흐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반복으로 인해 일정한 주 파수와 같은 모종의 리듬감까지 일으킨다. <추크츠방>의 반복은 두 인물과 그에 얽힌 역사에 대한 판단의 “유예”를 불가피하게 하고, 사유를 연장시키며, 양의성 을 존속시킨다. 즉, 뒤샹과 히틀러 이미지의 시선은 이 반복적 연속성으로 인해 우리 내부에 남고, 허츠의 이러한 부조리한 반복을 전시장 바깥으로 연장한다.

동시에, 허츠는 전혀 상이한 두 인물 간의 차이를 드러내려 하기보다 도리 어 유사성을 드러내려는 것 같다. 둘 모두 부르주아풍 복장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히틀러는 배지나 휘장을 달고 있지 않으며, 뒤샹도

“R. Mutt”와 같은 익명이나 “Rrose Sélavy”라는 제 2의 자아를 고안하기 전의 모

14) “Nihilism was the paradoxical result of Hitler's totalitarian holism, the havoc his terrorism wreaked for history. […] On the other hand, Duchamp's self-imposed nihilism, his play with contradictory ideas and identities, opened infinite avenues for exploration that have proved to be virtually inexhaustible.” (Norman L.

Kleeblatt, “The Nazi Occupation”, p. 190).

15) “Es geht darum, die Präsentation von Porträts zu radikalisieren: 1000 tote Augen schauen einen an.”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3).

16) “ZUGZWANG erzeugt aus zwei Motiven eine Bilderflut”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4).

(10)

습이다. 허츠의 반복은 두 인물의 시선에서 최대한 신화적 믿음을 없애려는 노력 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추크츠방>에는 어떠한 두 인물에 대한 “신화”,

“객관성의 허상”17)도 존속되지 않는다. 허츠는 이렇게 같은 듯 다른 히틀러와 뒤 샹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두 인물에 관한 모든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인 물들에 대한 되물음을 반복하게 하여 이들의 이미지가 갖는 기존의 의미들을 마 모시키는 양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조의 기능을 가진 현동적 반복과 말소의 기능을 가진 부정적 반복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작품에 대한 모든 판단을 유예시 킨다. <추크츠방>은 이미지 속 인물에 관한 모든 확실성을 연장하면서도 이들의 이미지가 갖는 기념비성18) 또는 오라(Aura)19)를 말소시키는 양의성으로 나타난다.

Ⅲ. <추크츠방>은 “차이에 대한 의식의 실패”를 드러내는 “촉매”

허츠는 <추크츠방>을 두고 “차이”에 대한, 즉 재현으로서의 인물 재현과 인 물 그 자체 간의 차이에 대한 “의식의 테스트”20)라 말하며, 르네 마그리트(René 17) “[…] geht es zuerst einmal um eine nüchterne Herangehensweise. Was nun Zugzwang anbelangt, handelt es sich um eine absolut künstliche Situation, hier wird nichts dokumentiert, keinerlei Schein von Objektivität inszeniert”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32).

18) “Surrounded by and immersed in this room of overwhelming photo-portraits in checkerboard arrangement pushes the portraits to a parodic commentary that dismantles the very idea of monumentality or the emptying of the commemorative that these portraits might otherwise invite” (Shelly Hornstein, “Body Double:

Portraits, Memory, and the Face of Evil”, in: Ethics, Art, and Representations of the Holocaust: Essays in Honor of Berel Lang, ed. by Simone Gigliotti, Jacob Golomb, Caroline Steinberg Gould [Lanham: Lexington 2014], p. 21).

19) “추크츠방은 반복으로 인해 하나의 이미지가 갖는 모든 아우라의 실행적 와해를 의미 한다 (ZUGZWANG bedeutet die praktische Zerstörung jeglicher Aura eines einzelnen Bildes in der Wiederholung)”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4).

20) “ZUGZWANG macht die Nagelprobe auf das Bewusstsein der Differenz”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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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ritte)의 <이미지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s>에 등장하는 문구인 “이것 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언급한다. 예술은 기표와 기의의 동일화를 꿈꾸지만 이 동일화 과정은 결국은 이미지를 재현한 작가의 특유성과 임의성에 기인하며, 그 의도는 기표와 기의 간의 간극, 즉 재현과 재현의 대상 간 의 간극, 다시 말해 예술작품과 그것이 표현하는 이상 간의 ‘존재론적 간극’을 완 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 간극을 인식할 때 비로소 예술은 스스로를 비판하게 된다는 점을 허츠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21) 의식은 이미 지에 대한 완벽한 인식과 표현에 실패하고, 이 실패는 같은 이미지에 대한 다른 해석을 불러들이며, 이 과정이 역사상에서 반복된다. 허츠는 이러한 재현의 한계 를 의식하고 또 다른 재현의 제시를 거부하기 위해 방향성, 하나의 “촉매”만을 넌 지시 제시할 뿐이다. 이 촉매는 우리의 사유세계를 그저 건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장 깊숙하게 내재된 역사의 기억 또는 트라우마를 계속 소환하게 한다.

허츠는 <추크츠방>의 이러한 반복성을 “촉매적 실험 배열(Katalytische Versuchsanordnungen)”22)이라 칭한다. 여기서 촉매란, 특정한 가치에 대한 허츠 의 주관적 평가도 아닌,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쾌한 메시지도 아닌, 끝없는 역사 의 반복, 트라우마의 반복, 이미지의 반복, 즉 모든 ‘판단의 유예’와 사유 연장의 단초이다.23)

Herz & Heinz Schütz, Zugzwang, p. 24).

21) “Denn das Bewusstsein der Differenz von Abbild und Abgebildeten ist substantiell für selbstreflexive Kunst (Das is keine Pfeife)”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3).

22)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14.

23) 이를 의식하는 허츠는 <추크츠방>을 처음으로 전시한 후 2년 뒤 1997년 독일 카셀 (Kassel) 인근의 도로구간을 자갈로 메우고 속도제한을 시속 30km로 지정하는

<Überschrieben>을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억물(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공모에 제안한다. 비록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쇼아의 역사에 대한 대 중의 사유의 속도를 느리게 함으로서, 의식과 실재의 불가피한 분리와 이 둘을 잇는 기억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들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추크츠방의 상황을 보여주는 작 품이다.

(12)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추크츠방은 체스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수를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체스 용어이다. “추크(zug)”는 전달되는 경로, 기차, 행진 등 움직임의 횡단적 흐름을 가리키고, “츠방(zwang)”은 강박, 힘, 강제, 구 속, 필연성의 뉘앙스를 품고 있다. 어떠한 지점으로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상황 을 의미한다. 강박(zwang)적으로 미래를 향해 과거가 제시하는 경로(zug)를 따라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예술작품의 역할은 재현과정이 계속하여 반 복되는 ‘강박의 경로’를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이것이 허츠가 전 통적인 의미에서의 “작품”보다 “촉매”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촉매”가 갖는 의미는 <추크츠방>이 히틀러와 뒤샹에 대한 또다른 재해석이 되 기를 원치 않는 허츠의 전략이기도 하다.

허츠는 이렇게 다원주의 세계의 개별자, 개별성이 낳는 “거듭되는 재해석들 (häufigen Überinterpretationen)”의 ‘원인’을 ‘의식’의 문제로 본다. 그는 자문한다:

“트라우마적인 이미지를 마주할 때 차이에 대한 의식은 실패하는가?”24) 즉, 그는 사진과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 간의 존재론적 차이를 의식이 더이상 ‘픽션’으로 간 주되지 못하는 상황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 실패가 관객에게 히틀러의 사진이 역사상에 잔존하는 재현물 그 이상으로 인식되어 증오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 유이다. 허츠는 이 실패를 인정할 때 비로소 예술의 정의에 대한 무관심적, 또는

“냉철한 접근(nüchterne Herangehensweise)”이 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다소 부조 리해 보일 수 있는 <추크츠방>의 이미지 반복은 뒤샹과 히틀러에 대한 재현과 해석이 낳는 또 다른 재현과 해석들을 통해 계속적으로 연장되고 재고되는 재현 비판의 역사 그 자체를 비판하는 방식, 즉 재현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의식의 실패를 드러내는 방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분명 재현과 대상 간의 존재론 적 간극을 극복하려는 모든 예술작품들과 미학 이론들, 즉, 미메시스와 예술적 모 방의 전통, 그리고 각기 새로운 해석들을 내놓으며 이 전통에 구두점을 찍으려는 예술의 상황을 반영하고 재고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24) “Versagt dieses kritische Bewusstsein bei traumatisch besetzten Bildern?”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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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완전한 의식의 문제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히 틀러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폭력성이다: “나는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느낌들, 적극성과 기억들에 관심이 있다. 또한 이미지들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권 력과 폭력, 그리고 이미지들에 가해지는 폭력, 그들을 파괴하고 와해하며 역사를 해체하는 폭력성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성상파괴주의가 디지털 이미지 형성의 비물질성이 짙어진 오늘날에도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한편, 성 상파괴의 제스처는 하나의 대응물, 하나의 오리지널을 필요로 한다.”25) 이 이미지 의 폭력성 문제는 허츠가 1996년 전시한 <박물관 사진들, 다하우, 1976/80 Museum Photographs, Dachau, 1976/80>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다하우 강제 수용소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들 중 히틀러와 그의 동조자들의 얼굴 이 방문객들에 의해 훼손된 부분을 촬영해 9점을 전시했다. 히틀러의 이미지를 예술의 이름으로 차용함은 재현에 실패하면 안 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대상 인 ‘쇼아(Shoah)’를 상기시킨다. 쇼아는 그 고통의 완벽한 재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동시에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영원히 기억해야 하지만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범이 예술의 이름으로 전시되는 것이 관객의 분노는 물론 “야만”적인 행위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은 당연하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성은 야만적이라 말 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미메시스적 재현은 더 이상 예술의 장막 뒤에 숨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예술의 서정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26) 아도르노의 이 말은 대학살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과 사유는 재현을

25) “Mich interessieren die Gefühle, Aggressionen und Erinnerungen, die von Bildern ausgelöst oder hervorgerufen werden. Und eben auch die Macht und Gewalt, die Bilder symbolisieren, und die Gewalt, die sich gegen Bilder richtet, sie zerstört und demontiert und damit Geschichte ungeschehen machen will. Ich finde den Ikonoklasmus sehr aufschlussreich, auch heute angesichts der Immaterialität der digitalen Bilderwelten, während die ikonoklastische Geste eigentlich ein materielles Gegenüber, ein Original braucht” (Rudolf Herz & Heinz Schütz, Zugzwang, p. 34).

26) Theodor W. Adorno, Dialectique négative, trad. le Groupe de traduction du Collè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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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연장되어야만 하고 예술은 이러한 상황을 자각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져야 한다. 그는 가장 깊은 고통이 재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 고통의 진실은 언제나 재현으로 인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 던 것이다. 고통 받는 이의 절규가 기억되어야만 하는 표현이라면, 이 절규의 재 현도 절규가 기억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가장 깊은 고통의 근원은 항상 기억 되어야만 하고, 어딘가에서 살아남아 또 다른 재현의 종축(種畜)이 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모든 진실의 이해는 재현의 시도, 즉 의식의 실패로 시작된다.

재현의 불가피성은 모든 재현의 근원인 진실로부터의 편향을 야기하고, 진실은 오직 윤리적인 주장으로만 긍정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재현의 불가피성과 근 원의 부재의 문제는 분명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에서 주체가 윤리적 이상으로 부터 분리되고, 노동의 고통이 진실로부터의 최초의 편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말 한 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의식의 실패”의 원인을 찾는 일은 인 위적으로 상정된 유토피아적 목적을 위한 노동으로서의 반복일 수도 있고, 거듭 되는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목적을 찾는 과정의 반복일 수도 있다. 물론 전자의 반복은 편향론을 역이용한 나치 정권이 요구한 반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는 표어를 강제수용소들에 내걸고 목적론적 노동 의 끝없는 반복을 요구하였다. 후자의 반복은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트라우마의 의식적 반복 또는 ‘답습(Durcharbeitung)’에 가깝다. 뒤샹 자신도 일찍 이 이러한 재현의 조건을 비판하였고, 그의 삶은 이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다각 도적 답습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허츠는 이 둘을 반복적으로 교차시켜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수없이 반복되어온 진실에서의 편향과 이 편향을 극복 하려는 노력의 반복을 동시에 암시한다.

de philo (Paris: Payot 2003), p.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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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괴물”로서의 토톨로지

물론 허츠의 <추크츠방>도 재현의 역사로서의 미술사에 귀속된다. 뒤샹과 히틀러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미러잉 이블≫전에도 여러 번 등장하고,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예술을 재해석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다른 맥락에서 꾸준히 시도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본 지면에서 <추크츠방>을 뒤샹의 족적이 갖는 새로 운 의미를 ‘찾는’ 일, ‘도출하는’ 일에 끌어들이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없다고 본 다. 다만 여기에서는 허츠의 작품을 통해 뒤샹의 사유가 (예술의) 역사의 토톨로 지를 어떻게 초월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다음 관건이라 생각한다. 이를 한 만화 작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27)이 2002년 더 뉴요커 The New Yorker지에 실은 <뒤샹은 우리의 불행이다 Duchamp is Our Misfortune>28) 다. 슈피겔만은 이 작품을 통해 <추크츠방>이 출품된 ‘미러잉 이블’전을 풍자한 다. 작품의 제목은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Heinrich von Treitschke)가 19세기 말 반유대주의적 선전문구로 사용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문구인 “유대인들은 우리의 불행이다!(Die Juden sind unser Unglück!)”를 변형시킨 것이다. 6컷 페이 지 한 장으로 이루어진 이 만화에서는 해골문양이 그려진 까만 민소매 웃옷을 입 은 전형적인 스킨헤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슬그머니 빨간색 페인트를 들고 나타난 다.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빨간 페인트로 연한 초록색 담벼락에 스와 스티카 문양을 그어놓고 유유히 사라진 뒤, 그 벽을 그대로 떼어내 ≪미러잉 이 블≫전에 전시해놓고 그 앞에서 얌전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과 와인잔을 들고 이 야기를 나눈다.

27) 그는 아버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잔혹한 경험을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 Maus: A Survivor's Tale>라는 제목의 만화연작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 작품은 만 화작으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수상한다.

28) 이 만화작은 이후 독일 함부르크(Hamburg)의 DIE ZEIT지 2002년 8월 14일자에 전 재된 후, “Rudolf Herz & Heinz Schütz, Zugzwang”에도 다시 한 번 실렸다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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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역사 에 대한 “야만적” 해석이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도리어 그러한 해석 이 가능하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야만적 재현이 더 이상 충격을 줄 수 없는 “불행”한 ‘추크츠방 의 상황’을 반영한다. 그뿐만 아니라 뒤샹의

‘레디메이드’ 관념이 ≪미러잉 이블≫전은 물 론, 무한한 쇼아의 중압감마저도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레디메이드로 인해 예술이 비예술로 간주되던 것들을 디딤돌 삼 아 새로운 레디메이드들을 낳고, 이는 모든 역사의 기억이 예술의 이름으로 재현 되고 전시될 수 있다는 확인이기도 하다. 센스가 난센스와 교차, 충돌하며 예술과 연관된 모든 영역들(종교, 정치, 경제 등)이 탈영역화되고 새로운 해석을 낳는 이 상황에서 스킨헤드는 그 해석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악명이 높은 정권을 대표하는 문양도 이제는 레디메이드를 표방하며 전시에 등장할 수 있다. 스킨헤드는 이러한 예술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 리한 쪽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스킨헤드는 화이트 큐브의 영역 바깥에서 비예술 요소를 다시 화이트 큐브로 끌고 들어오는데, 이 요소는 그가 발견한 것이 아닌, 남의 눈을 피해 만들어낸 위조된 레디메이드다. 뒤샹의 최초 레디메이드 관념을 뒤집어 자신이 만들어낸 오브제를 스스로 차용하여 레디메이 드의 이름으로, 즉 “불행”을 감수하며 전시하고 자신의 해석을 알린다. 관객은 이 오브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고 싶어 할뿐, 충격을 받지 않는다. 뒤샹의 최초 레 디메이드 이후 충격요법은 수없이 반복되었고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일은 더 큰 충격, 더 적나라한 난센스를 요구한다. 예술은 충격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점점 변해간다. 물론 허츠의 <추크츠방>도 여기에 포함되며, 작가 자신도 이를 시인한 다: “나는 이 초상 이미지들을 평범한 기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비기능화시킨다.

[도 2] 아트 슈피겔만, <뒤샹은 우리의 불행이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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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레디메이드와 유사한 프로세스다.”29) 스킨헤드가 레디메이드를 “위조”하였듯 이, 허츠도 뒤샹과 히틀러의 이미지들 중 일부러 비슷한 것들을 선정했고, 선정된 히틀러의 사진에서 휘장과 스와스티카도 지웠다. 그것들을 복제해 화이트 큐브 내부에 제시하였고 이에 대한 설명과 작품이 낳은 평가, 해석들을 엮어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허츠가 말하는 “촉매”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미

“사전 준비된(readymade)” 첨가물인 것이다.

뒤샹은 레디메이드가 주는 충격 역시 감각적 “표현”의 일종이며, 현상으로서 제시된 표현은 언제나 “중독될 수 있는 마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30) 레디메 이드는 전통적 미술이 필요로 하는 감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레디메 이드를 전시하는 과정도 전통적 예술과 마찬가지로 망막적 효과, 즉 감각의 중독 의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이 효과가 거듭될수록 감각적 수용에 의존하는 예술은 우리 눈의 내성(耐性)을 키워 결국은 “철저한 마비(anesthésie complète)”31)를 초 래한다. 작품에 대한 관찰은 감각 또는 지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예술작품도 감각과 지각을 통해 수용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작품들을 계속적으로 수용할수 록 시지각적 감각은 마비되어가고, 의식은 조금씩 이 마비로 인해 작가의 본의에 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감각적인 것에서 감성적인 것을 도출해내는 미학의 전 통적 역할도 이 “마비”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가? 감각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29) “Ich nehme sie aus der alltäglichen Funktion raus, mache sie unfunktional, das ist so ein ähnlicher Prozess wie bei den Ready-mades” (Rudolf Herz & Heinz Schütz, Zugzwang, p. 32).

30) “Très tôt me rendis compte du danger qu'il pouvait y avoir à resservir sans discrimination cette forme d’expression et je décidai de limiter la production des readymades à un petit nombre chaque année. […] l'art est une drogue à accoutumance et je voulais protéger mes readymades contre une contamination de ce genre.’’ (Marcel Duchamp, Duchamp du signe. Écrits, ed. by M. Sanouillet et E.

Peterson [Paris: Flammarion 1975], p. 192: 이하 모두 자체 번역).

31) “Le choix de ces readymades ne me fut jamais dicté par quelque délectation esthétique. Ce choix était fondé sur une réaction d'indifférence visuelle […] en fait une anesthésie complète” (Marcel Duchamp, Duchamp du signe. Écrits, p.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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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경험은 이미 그 자체로 근원에서 한 발 떨어진 재현으로부터 시작되 지 않는가?

이렇듯 허츠는 사유가 예술의 근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즉 시간이 흐 르면서 예술의 정의에 대한 해석과 발견이 거듭되며 쌓여갈수록, 역사는 “괴물 (Ungeheuer)”32)을 만들어 나간다고 말한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와 해석 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거대해진 몸집으로 짓누르고 이에 대한 비판으로 상식을 자꾸만 벗어나려는 괴물을 마주해야만 하는 추크츠방의 상황은 허츠를 그 사이에 서 반복적으로 진동하게 만드는 듯하다.

Ⅴ. 차이와의 “화해”

레디메이드의 도래가 불가피했던 이유는 완전한 창조, 즉 ‘새로움’이 불가능 하다는 자각 때문이고, 이 자각은 뒤샹으로 하여금 ‘창조개념’ 자체를 의심하게 했 다.33) 새로움의 불가능성은 예술에게 끝없는 실험을 요구하지만, 예술활동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기성 오브제, 재해석, 재생산된 것들의 조합을 통한 주관적 상상 력의 발현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회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 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기성요소들의 조합이다. 회화작가도 이미 복제 생산된 튜 브물감을 사용하며, 물리적인 틀인 캔버스와 그 위의 재현은 결국 주조체, “결합 체(assemblage)”다: “작가들이 회화에 사용하는 튜브물감들이 가공되고 기성 생산

32) “우리는 신뢰 가능한 근원의 부재와 거듭되는 재해석이 실제로 괴물을 낳는 과정을 계속해서 목격할 수 있다 (Man kann immer wieder beobachten, wie der Mangel an verlässlichen Quellen zusammen mit häufigen Überinterpretationen wahre Ungeheuer gebiert)’’ (R. Herz & H. Schütz,, Zugzwang, p. 32).

33) “나는 창조라는 말을 두려워한다. 보통 사회적 의미에서는 창조라는 말은 매우 잘된 말이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예술가의 창조적 기능을 믿지 않는다. 예술가도 다른 사람 과 똑같은 사람이다.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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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듯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그림이 보조적 레디메이드이며 결합 작업이라 결 론 내려야 할 것이다.”34) 뒤샹은 레디메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디메 이드에는 어떠한 특유성도 없다. 레디메이드의 복제품은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사실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레디메이드는 엄밀한 의미에서 오리지널이 아니 다.”35) 어떠한 레디메이드도 감각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재현적 작품 개념을 탈피하려는 뒤샹의 실험이었다. 이 재현성을 벗어나야만 비 로소 진정한 새로움, 창조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레디메이드는 재현과 재 현성을 초월하려는 예술의 이상 사이에서 불거지는 대립의 구도 (난센스와 센스, 비예술과 예술, 비의식과 의식)의 대립 사이의 축소불가능한 간극 또는 차이, “앵 프라맹스(inframince)”36)를 드러내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이 앵프라맹스는

“차이에 대한 의식의 실패”, 즉 의식의 순수표현의 실패를 드러내고, 다른 문맥이 나 장소에서 또다른 앵프라맹스를 발생시킨다. 이 개념은 예술에서 재현이 갖는 기표와 기의의 ‘동일화’ 기능을 뒤집는 개념이다 (히틀러는 나치사상의 종결점을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명목하에 상정해놓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말 살하려 했다. 즉, 그는 상정된 이상과 차이를 드러내는 것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반면, 뒤샹은 기존 의미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차이 또는 앵프라맹스를 현실에 노 출시키며 규정된 “의미”라는 종결점 자체를 비판, 부인했다).37)

34) “comme les tubes de peinture utilises par l’artiste sont des produits manufactures et tout-faits [sic], nous devons conclure que toute les toiles du monde sont des readymades aidés et des travaux d’assemblage” (Marcel Duchamp, Duchamp du signe. Écrits, p. 191).

35) “[Le readymade] […] n'a rien d'unique […] La réplique d'un readymade transmet le même message; en fait presque tous les readymades existant aujourd'hui ne sont pas des originaux au sens reçu du terme” (Marcel Duchamp, Duchamp du signe. Écrits, p. 192).

36) Marcel Duchamp, Notes, (ed.) P. Hulten et P. Matisse (Paris: 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 1980), passim.

37) 뒤샹은 미국에서 처음 채택한 레디메이드인 <부러진 팔에 앞서서>에 대해 다음과 같 이 말한다: “물론 나는 그것이 의미가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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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 즉 레디메이드들의 조합을 통 해 이러한 축소불가능한 차이를 실험을 통해 드러내며 논리에 의거한 작가의 두 뇌적 분석, 종합능력을 어떤 특정한 재현적 목적에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이었 다. 뒤샹은 비예술과 예술, 비의식과 의식, 비의미와 의미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어 떠한 의미나 종합을 이끌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새로움”을 주장하는 의미나 종합 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재해석이며, 새로운 토톨로지 운동의 씨앗이 될 수 있 기 때문이다. 레디메이드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원성을 넘어서는 “화해 (réconciliation)”의 의미가 중요하다. 뒤샹이 이 “화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공동으로 집필한 체스이론서를 예로 든다:

“대립”은 이러저러한 작전을 하게 하는 하나의 체계이다. ‘결합된 칸(cases conjuguées)’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좀 더 최근의 발명인데 거기에 다 른 이름을 부여했다. 물론 옛날 방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 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승강이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반대 명제를 제거한 하나의 체계를 발견했기 때문에 ‘화해했다(réconciliation)’는 말을 썼다. 그 런데 이것이 관여하는 장기의 최종적인 게임은 어떤 서양 장기꾼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가장 우스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세계에서 서너 명만이 공동으로 책을 쓴 할버슈타트(Vitali Halberstadt)와 내 연구와 유사한 연구 를 시도했다. 장기 챔피언들조차도 이 책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이 제기한 문제는 일생에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능한 게임들의 최종적인 게임의 문제이지만 그 가능성은 너무 희박해서 거의 유 토피아적이다.38)

뒤샹이 여기서 언급하는 저서는 프랑스의 체스 챔피언 할버슈타트와 공동으 로 집필한 대립과 결합된 장기판의 칸들이 화해하다 L'Opposition et les cases

지니는 것으로 끝이 난다.”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104).

38)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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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juguées sont reconciliées(1932)이라는 저서로, 체스의 엔드게임(endgame)에 대한 연구였다. 체스게임에서 말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의 종결점으로 치달으며 추크츠방을 초래하는 몇몇 상황들을 연구한 책이다. 두뇌가 상황을 기 억하고 종합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게임논리의 기계적 현실에서 어떻게 양자대립 적 구도를 “화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연구였던 것이다. 빗대어 말하면, 뒤샹에게 있어 기존의 의미(즉, 사용할 수 있는 체스의 말)를 차용해 작 품(즉, 작전의 논리적 개시)을 내놓는 방식은 게임의 룰을 벗어날 수 없다. 작가 는 게임의 룰을 벗어나는 완전한 승리(작가가 추구하는 진정한 새로움)를 추구해 야 하지만 그 결과물은 항상 인위적인 종합(‘잉여’로서의 승리)다. 다시 말하면, 예 술에서 작품제시의 시작은 기존의 어떤 단위에서 시작하고, 이에 대한 재해석은 이 단위와 대립하며, 이는 또 다른 단위를 만들어내는 잉여의 행위다. 뒤샹의 말 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는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한데, 비교적인 관점에 서가 아니라 기수법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단위이며, 둘은 사본, 이원성이 며, 셋은 잉여이다. 3이라는 단어에 접근하자마자 우리는 3백만을 가질 수도 있겠 지만 그것은 3과 마찬가지다.”39) 거의 모든 체스 챔피언들은 1대1의 대립적 구도 를 벗어나 종합적 승리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이 대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별 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립이 낳는 것은 화해되어야 하지만 화해의 기회를 놓치는 잉여물이다.

<추크츠방>에서 체스판을 이루는 두 인물들의 이미지는 반복되면서 그리드 를 이루고, 그 위에서 움직이는 말들의 모든 움직임과 역할은 게임의 룰에 의해 제한된다. 체스판 그 자체는 기성오브제를 복제하여 만들어졌지만, 체스판의 기능 은 어떠한 종합을 이끌어내는데 있지 않다. 이와는 매우 다르게, 그 안에서 뒤샹 과 히틀러에 얽힌 수많은 정보와 기억들이 조합되어 사유의 역학을 만들어낸다.

이 역학은 “미학적 감동이 없는 일종의 무관심성에 도달”40)한 시선으로만 가능하 다. 그래야만 “의식의 실패”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츠는 이 룰 39)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94.

40)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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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들어내는 역학의 내부로부터 룰을 잡아당기고 늘이고 뒤틀면서 차이(뒤샹이 말한 앵프라맹스)가 만들어내는 대립들을 끝없는 실험의 반복으로 화해시키는, 일 종의 유토피아를 암시한다. 이렇게 허츠는 “뒤샹”과 “히틀러” 간의 차이를 반복해

“결합된 칸”들로 연장시켜 화해를 타진한다.

Ⅵ. 결론

예술은 그 시작부터 재현하는 이와 재현 당하는 것의 대립적 구도에서 도출 되는 동일화 과정을 토대로 사유되어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대립적, 이원적 구도는 상징단위, 단어, 기표의 조합의 반복, 즉 토톨로지를 초래하며 ‘새로움’의 개념을 끝없이 의심하게 한다. “예술의 종말”론이 팽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뒤샹이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는 단서는 찾지 못했다.) 우 리가 각기 특유하다고 믿는 예술적 프로세스의 시발점은 뒤샹에게는 모두 기성이 다. 뒤샹은 이 기성을 벗어날 수 있는 실험적 사유를 계속하였지만, 레디메이드 역시 궁극적인 종합이 될 수 없었기에, 결과물이나 의미에 의존하면 의존할 수록 그는 실패를 경험하였다:

카반느: 당신은 레디메이드를 일종의 만남의 약속(rendez-vous)과 비교했 습니다.

뒤샹: 한때는 그랬다. 그 때 나는 앞서서 어떤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 “어 떤 시간 안에 이것을 만들리라…” 하고 선언하는 것에 집착했다. 나는 그것 을 한 번도 성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그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41)

그는 그가 거의 유일하게 아름다움이라 칭할 만한 것을 체스에서 찾았지 만,42) 40대 후반이 지나면서 이마저도 실패한다. 이는 그로 하여금 “미학적 의미 41)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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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일, 하나의 형태, 또는 색채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 을 반복하는 일을 부인”43)하게 했으며, 위에 언급했듯이 “미학적 감동이 없는 일 종의 무관심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뒤샹이 말하는 “화해”론은 예술의 근원인 재현과 재현하는 이의 의도 간의 대립적 구도에 대한 대안이다. 뒤샹은 이 화해를 위해 재현 대신 ‘조합’에 집중한 다. 하지만 조합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 역시 재현의 간극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시에 닫힐 수 없는 이 간극을 사유해야만 다음단계로의 진척 또는 “발전”을 암 시할 수 있다. 어쩌면 뒤샹은 레디메이드 이후 조합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 법론을 ‘찾지’ 못한 이유로 모든 작품활동을 멈추고 체스로 눈을 돌렸는지도 모른 다. 그리고 이 때문에 체스(échecs, 불어로 “실패”를 뜻함)게임의 기계적 현실과 조합논리마저도 초월하는 화해를 추구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뒤샹과 히틀러를 조합하여 화해시키려한 허츠의 전략을 읽어야 할 것이 다. 허츠는 자신이 아카이브에서 뒤져 찾아낸 두 레디메이드를 레디메이드로서 전시하지 않는다. 만약 사진 두 점만을 그대로 전시한다면 그것은 복제된 기성일 것이고, 레디메이드의 동어 반복이며, 새로움이 아닌 토톨로지적 퇴행이 될 것이

42) “장기 두기는 시각적으로 조형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어의 정태적 의미에서 기 하학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역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움직이니까. 그것 은 드로잉이며, 기계적인 현실이다. 장기라는 게임의 형식이 그 자체로 예쁜 것이 아 니듯이 장시의 말들은 그 자체로는 예쁘지는 않다. 그러나 예쁜 것은 ― 이 예쁜(joli)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 운동이다. 그것은 예컨대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의 작품의 의미에서 기계적이다. 장기 놀이에서 확실히 아름다운 것은 운동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영역에는 전혀 없다. 이 경우에 아름다움 을 만드는 것은 운동 또는 행위의 상상이다. 그것은 완전히 두뇌에 의한 것이다.” (피 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40). 뒤샹은 13살부터 이미 체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후 세미프로기사로도 국제활동을 한 전력이 있으 며, 적어도 40대 중반까지는 체스에 많은 열정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세 남매와 체스를 두는 자신의 모습을 후기인상주의적인 양식과 큐비즘 양식으로도 그린 바 있다. 1911년 그는 <장기 두는 사람들의 초상 Portrait de joueurs d'échecs>를 그 리는데, 이를 기점으로 그는 회화와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43) 피에르 카반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p.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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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판 위에 더 이상 둘 말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두 레디 메이드를 복제해 반복한다. 예술의 본질을 찾는데 있어 토톨로지를 벗어나지 못 하며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상황을 반복으로 그대로 제시한 것이다.

이 “화해”란 변증법적 종합이 아니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대립되는 두 특유 성이 논리를 통해 완전히 하나의 종합으로 지양될 수 있다는 “믿기 힘든” 필연성 을 기정사실화하고 추상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도르노가 가장 통렬하게 비판했 던 변증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시발점, 테제는 그 자체로 이미 기성적 재현 이며 인위적으로 동일화되었고 이미 의미의 잉여 또는 지정된 상대편을 이기는 단편적, 잉여적 “승리”만을 낳고 있다. 이 승리에는 재현의 한계 앞에 바쳐지는 희생양, 미리 마련된(readymade) 재현이 있을 뿐이다. 흔히 포스트모던 이론들이 언급하는 예술의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도 사실 필연적 변증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모터니즘의 추크츠방을 드러내는 상황을 야기하지 않았는가?

추크츠방의 개념은 실향증(atopie)적이다. 정해진 시공간적 특정성, 오브제, 통사론적 틀을 벗어나 선결된 의미론적 구조의 결을 거스르며 항상 ‘질문의 형태’

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필연적 연대기적 연결고리를 쉽사리 찾을 수 없는 허츠의 뒤샹-히틀러 조합은 둘을 대립시켜 설명할 수 있는 확인이 나 규정이라기보다는 “왜 이러한 조합을 제시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두 인물의 실체와 이 실체의 재현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에 대한 의식, 즉 “차이에 대한 의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도리어 이 의식의 실패로서의 간극이 뒤샹 과 허츠의 의도를 이루는 사유적 근간이며, 항시 비논리적, 비의미론적으로 드러 날 수밖에 없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예술의 추크츠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었 고, 이 대안은 허츠의 <추크츠방>에서 다시 돌아갈 곳을 잃고 우리의 사유에 맡 겨졌다.

44)

* 논문투고일: 2018년 3월 6일 / 심사기간: 2018년 4월 16일-2018년 5월 15일 / 최종게재 확정일: 2018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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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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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목록

[도 1] 루돌프 허츠(Rudolf Herz), <추크츠방 Zugzwang>(디테일), 2010, 실크스 크린 인쇄, 가변크기, MUDAC(스위스 로잔)

[도 2] 아트 슈피겔만, <뒤샹은 우리의 불행이다>, 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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