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관한 연구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관한 연구"

Copied!
12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투고일_2021.02.10 심사기간_2021.03.01-14 게재확정일_2021.03.22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2.10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f ‘Movement’ in Sculpture

노해율,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Noh, Hae Yul_College of Arts, Dankook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운동성의 영역별 개념 규정 2.1. 시공간의 물리적 운동성

2.2. 운동의 지각방식으로서의 심리적 운동성

3. 조각에 나타난 운동성에 관한 사례 연구 3.1. 인체 모사를 통해서 발생하는 운동성 3.2. 속도의 표현을 통해서 발생하는 운동성 4. 조각의 운동성

5. 결론 References

(2)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f ‘Movement’ in Sculpture

노해율,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Noh, Hae Yul_College of Arts, Dankoo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조각 운동성 시지각

이 연구의 목적은 형식적, 개념적, 정치적으로만 다뤄지던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을 시도하는 것이다. 연구 대상은 정지된 조각에 있어서 시 · 공간과 운동의 관계 그리고 조각에 있어 서 운동성의 발생 원리이다. 이 연구는 20세기 전후 시간, 공간, 운동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 중 베르그 손의 지속이론과 아른하임의 지각이론에 이론적 바탕에 둔다. 먼저 시간은 정지되거나 구분 지어서 생 각할 수 없으며, 의식의 흐름에 의해서만 지각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또한 운동과 부동의 실현 조건 에 있어서 시 · 공간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서 시 · 공간이 지각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러한 과정에서 운동과 운동성은 필연적이지 않음을 증명하고, 결국 운동성은 사물의 운동에서 발현하 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서 미술사에서 등장하였던 조각에 나타난 ‘운동성’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확인하고, 그 양상을 세 가지 형식으로 분석한다. 첫째는 인체 조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운동성’이고, 둘째는 미래주의와 구조주의에서 발생한 ‘운동성’의 표현이다.

그리고 셋째는 실제적 운동을 표현한 조각이다. 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의 양태는 다섯 가지로 분 류된다. 첫 번째는 생동감 있는 인체 표현이다. 두 번째는 로뎅의 인체 조각에서 나타나는 주체적 ‘운 동성’의 양태이다. 세 번째는 미래주의에서 시작된 개념적 운동과 현실 운동이 결합 된 초월적 ‘운동 성’이다. 네 번째 양태는 러시아 구조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현실적 ‘운동성’이다. 다섯 번째 양태는 실제 운동을 통한 ‘운동성’의 발생이다. 이 연구는 운동성으로 조각의 분석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운동 성이 만들어 내는 시각적 효과에 가려서 충분한 해석의 기회를 갖지 못한 다양한 장르의 조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ABSTRACT

Keywords sculpture movement visual-perceptual

This study aims to try new interpretation about the ‘movement’ in sculpture that has been handled formally, conceptually and politically. The subjects of the study are to consider the relationship between space-time and motion in the static sculpture, and the generating principle of movement in sculpture. This study is theoretically based on the theory of duration of Bergson and the visual perception theory of Arnheim among the theories about time, space and motion around the 20th century. First, this study verifies that time doesn’t stand still and can’t be classified, but can be perceived only by the stream of consciousness. Moreover, the implementation requirements for motion and stoppage isn’t premised on space-time, but space-time is perceived through motion. The analysis proves that motion and movement are not inevitable and that movement is not made through the motion of an object but perception.

Various cases of ‘movement’ appearing in sculptures that have appeared in art history are identified, and analyzed in three forms. The first is ‘movement’ that appears through human body sculpture, and the second is the expression of ‘movement’ that arises from futurism and structuralism. And the third is a sculpture that expresses the actual motion. There are five types of ‘movement’ that appear in sculpture. The first is a lively representation of the human body.

The second is the aspect of independent ‘movement’ that appears in Rodin's human body sculpture. The third is a transcendental ‘movement’ that combines the conceptual motion and the real motion that originated from futurism. The fourth aspect is a realistic ‘movement’ originating from the Russian structuralists. The fifth aspect is the generation of ‘movement’ through actual motion. In conclusion, This study verified that sculpture can be analyzed by ‘movement’ and proposed the possibility for new interpretation on various kinds of sculpture that has been buried by the visual effect of movement.

본 연구는 2021학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 지원으로 연구되었음.

(3)

1. 서론

인류 역사에 있어서 스스로 움직이는 물체, 혹은 죽어있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 넣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행위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 의 ‘피그말리온’이 만들고 아프로디테가 생명을 불어 넣은 상아 조각상부터,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주가 흙으로 빚어서 생명을 불어 넣은 아담과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가 그러하다.

이는 사람이 만들어낸 목각인형이 생명을 가지게 되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우화에서도 같은 관심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연결부분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이집트의 작은 조상(彫像), 동서양에서 모두 만들어진 꼭두각시 인형, 물의 힘에 의해서 조각상이 움직이게 되어 있는 고대 극장의 무대장치 등도 선구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자동인형(automaton)의 기원이다(Yoon, N. J., 1990, p.10). 과거의 이러한 기록과 자료들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비록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도, ‘운동’에 대한 인간의 관심 과 그것을 재현해 내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일 것이다.

미술사에서도 표현대상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움직임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그리려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시도나, 입체파 화가들의 복수시점(multiple perspective),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의 흘러내리는 시계형상도 그러한 시도들이다(Kern, 1983/2010, p.74). 구체적인 표현기법으로는, 전통 조각이나 회화에서 관찰되는 바람에 날리 는 형상이나 움직이는 자세의 표현이 그러하고, 인상주의 미술에서 원색의 붓 자국을 병치하는 표현방법 등도 그러하다. 특히 조각에서 보이는 ‘운동’은 세 가지 기본적인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다수의 인체조각에서 관찰되는 인체의 역동적 움직임을 모사함으로써 얻어 지는 형식, 둘째는 미래주의에서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로 연결되는 ‘역동성’

자체를 추구하는 형식, 셋째는 구조주의와 키네틱아트에서 보이는 실제 ‘움직임’을 통해서 표현 하는 형식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시각적 ‘운동’은 강렬한 색채나 인상적인 형태가 그러한 것처럼 시선을 사로잡 는 효과가 있다. 그 이유는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운동’이 작품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움직임이 관객에 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고, 관객의 지각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운동 성’의 작용방식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각에서의 ‘운동성’의 연구의 방법은 형 식적인 분류보다는, 형식이 만들어내는 내용과 그것을 인지하는 지각적 측면의 연구가 더 중요 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운동성’에서 보이는 형식을 철학적, 심리적, 예술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과 시공간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토대 를 마련할 것이며, 이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의 의미를 밝힐 것이다.

또한, 미술작품에 있어 ‘운동’의 역사적 · 현재적 가치를 조명하는 가운데, ‘운동성’이라는 테제 가 현대조각을 분석하는데 유효한 개념이 되고 있음을 밝히게 될 것이다.

본 논문의 ‘운동성’의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전후 시간, 공간, 운동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을 살펴보고 그에 관한 이론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서 ‘운동성’의 예비적 개념 규정을 한 후, 시공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논의들의 등장과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베르그손의 지속이론과 아른하임 의 지각이론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이다.

또한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의 세 가지 형식을 분석함으로써, 그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첫 째, 허버트 리드(Sir Herbert Read),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의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

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서, 인체의 움직임을 모사한 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의 특징들을 확 인하고, 베르그손의 지속이론과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의 지각이론과의 관계를 고 찰할 것이다. 둘째, 미래주의에서 보치오니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흐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역동성’을 추구한 조각의 특징들을 확인할 것이다. 셋째, 실제 ‘운동’을 표현한 조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구조주의에서 키네틱으로 이어지는 ‘운동성’의 특징을 확인할 것이다.

이상의 절차를 통해서 현대조각의 해석에 있어서 ‘운동성’의 문제가 재검토되어야 할 뿐만 아니

(4)

라 충분히 부각되어야 할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2. 운동성의 영역별 개념 규정

움직이는 조각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접근은 널리 알려진 ‘키네틱 아트’의 수준에서 ‘조각적 움직임’을 이해하는 접근일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서 ‘움직이는 조각’은 일반적으로 기계의 도 움으로 움직이는 조각, 곧 예술에 기술이 더해진 단순한 표현형식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키네 틱 아트’로 분류되어 온 움직이는 조각의 동태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양태의 ‘조각적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조각적 움직임은 물리적, 신체적, 정신적 경계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역동성’의 양태와 연관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조각적 움직임을 이해할 경우 흔히 말하는 ‘키네틱 아트’의 움직임이란 다양한 ‘조각적 움직임’의 한 유형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런 까닭에 ‘조각적 움직임’을 다루는 연구는 ‘키네틱 아트’라는 단어의 사용을(동시에 ‘키네틱 아트’로 대변되는 기존의 이해를)일단 유보하고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그 양상과 효과, 의미 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조각적 운동성’은 두 가지 기본적인 형식으로 나눠질 수 있다. 첫째는 움직이지 않지만 운동성 이 느껴지는 작품의 가상적 ‘역동성’이고, 다른 하나는 ‘움직이는 조각’이 가진 실제의 ‘움직임’

이다. 조각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가상의 환영을 지각하게 하는 ‘역동성’과, 실제

‘운동’은 개념상 서로 상반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표현은 ‘움직임’과 ‘비움직임’,

‘상대적 속도’의 차이, 그리고 ‘확정성과 불확정성’과 같은 현대예술에 있어서 중요하게 다뤄지 는 주제들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 두 가지 표현양식을 구분해서 개념화하게 되면, 결국 형식의 물리적 분류와 같은 매우 단순한 연구를 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편협한 지각을 지양하고 현대미술에 있어

‘조각적 운동성’으로 포괄할 수 있는 보다 넓은 논의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정지된 물체에서는 운동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시간개념에서 운동은 시간과 공간의 변 화에 의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지된 조각에서 역동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인체 조각들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되는 ‘운동성’은 결국 지각의 문제에 귀 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지된 조각에서의 ‘운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적인 시간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연구자는 먼저 조각에 있어서 운동을 정의하기에 앞서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과거의 논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현대미술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물리학 적 연구들은 미술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컨(Kern, 1983)은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은 보편적 이며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이한 시간적·공간적 경험을 하는데 비록 무의 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관념을 갖게 마련이라는 것이다(Kern, 1983/2010, p.21).

이러한 견해는 자연스럽게 미술작품에도 적용된다. 특히 입체작품의 경우 시간적·공간적 경험 이 있어야만 인지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일률적인 속도의 시간의 흐름과 절대적 인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이동이 운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러나, 19세 기말 이래 자연과학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빠른 변화를 거듭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물론 칸트조차도 불변의 기초라고 생각했던 유클리드적 공간 개념은 로바체프스 키-보요이와 리만의 새로운 기하학으로 인해 그 유일성을 상실했고, 절대공간 개념의 물리학 적 잔상이었던 에테르의 존재가 그것을 확증하려던 마이켈슨-몰리 실험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부정되었으며, 절대적인 시간개념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특수상대성이론으 로 인해 무너졌다.

1915년에 발표된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이 별도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계이 며, 시간은 더 이상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고, 공간은 중력장에 의해 구부러져

(5)

있다는 것을 널리 공언하기에 이른다(Lee J. K., 2002, pp.169-171). 이제 자연과학은 공간은 물론 시간조차도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며, 초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 빛의 속도는 어느 관측자에게 나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사방으로 가지를 쳐서 널리 퍼져 나갔는데 1905년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은 어떤 좌표계에서 일정한 속도로 움 직이는 시간이 (그 좌표계와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정지해 있는) 다른 좌표계에서 관찰해보 면 얼마나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계산했다(Kern, 1983/2010, p.59). 그리고 1916년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가속도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의 시간 변화 이론으로까지 확장하고 있 다. 우주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들의 갖가지 중력을 산출하기 때문에, 그리고 중력은 가속도와 상응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물은 자기 자신의 특정한 시간을 갖는다.”고 결론지었다 (Einstein, 1916, p.26). 이러한 결론은 각각의 물체에 경험적 시공간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물체가 상대적 속도를 지니고 있고 정지된 물체에서도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조각의 ‘운동성’을 설명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물리적으로 정지된 물체는 없다 는 것을 증명해 줄 뿐, ‘운동성’이 어떠한 방법으로 지각되는지는 설명해 주지 못한다. 결국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은 작품에서 발생되어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지각 을 통해 정신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1. 시공간의 물리적 운동성

시간과 공간이 전제된 상황에서 운동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이다. 운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속도의 단위가 거리/시간인 것이 그 예가 되겠다. 하지만 시간이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일반적인 견해의 오류는 쉽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은 운동을 통해서 인지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 공간, 운동은 어느 하나가 먼저 전제되거나 선행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 철학적 개념에서 시간, 공간, 운동을 함께 다루고 있는 이유도 그러하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보편적이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 이한 시간적·공간적 경험을 하며, 비록 무의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관념을 갖게 마련인데 이는 과거 시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Kern, 1983, p.24).

뉴턴(Isaac Newton)의 시간에 대한 정의에 의하면, 시간은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일률 적으로 흐르며 동등한 부분으로 분할할 수 있다. 그렇지만《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칸트 (Immanuel Kant)는 뉴턴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시간론(우리가 그것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 라는 이유에서)을 부정하고, 시간은 모든 경험의 주관적 형식 혹은 기초라고 주장했다. 시간은 비록 주관적인 것이지만 모든 이에게 동일하다는 점에서는 또한 보편적인 것이었다(Kern, 1983, p.40). 하지만 19세기 후반, 이전에 제시되었던 균질성을 통한 시간에 대한 이론들은 시간을 표현하려는 작가들의 노력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작품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그에 비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지속’ 개념은 조각에 있 어서 ‘운동성’을 이해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실제로 베르그손의 이론은 미래주의자들 특히 보치 오니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베르그손의 ‘지속’ 이론에서 설명되는 시간은 나누어질 수 없는 불가분한 연속적 전체이다. 기하학이나 도식에서 보이는 시간이 제거된 상태에서의 공간은 관 념적인 도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지속’의 개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이 질적 변화의 연속이라면, 질적 변화를 인지하기 위해서 중요 해지는 것은 과거를 보존하여 현재로 연장하는 기억의 운동이다(Bergson, 1896/2008, p.80).

또한 조각의 ‘운동성’은 현재 시간의 ‘지속’ 위에 또 다른 층위를 가진 시간의 ‘지속’을 중첩시킨 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베르그손 논의들은 ‘운동성’을 지각의 범주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각에 있어서 운동과 관련된 가장 간단한 구분점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일부 키네틱 아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지상태의 물체가

(6)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시간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실제 운동이 발생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운동성’은 지각의 문제가 된다. ‘시간’과 ‘공간’이 ‘운동’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라면 움직인다는 것, 정지되어 있다는 것을 지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지되지 않은 모든 것이 ‘운동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베르그손에 의하면 진정 한 의미의 운동이라는 것은 질적인 변화이고, 질적 변화라는 것은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가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의 질적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의식의 경우일 것이고, 그 다음이 신체의 경우, 그 다음이 사물들의 경우일 것이다(Bergson, 1896/

2008, p.78). 결국 정지와 지속을 구분하는 기준은 지각에 있을 것이다.

‘역동성’을 표현하는 작품의 경우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단일시점을 거부하고 질적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운동성은 부동성을 가진 물체로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할 수 있다. ‘움 직이는 조각’의 경우에는 실제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반복되는 움직임은 개념적으로 볼 때 질적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운동’의 표현이 항상 ‘운동성’의 발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태는 다시 말해서, ‘운동성’은 정지와 지속이라는 양쪽 개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각에 있어서 ‘역동성’은 정지 안에 지속을 담고 있고,

‘움직이는 조각’은 운동 안에 정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운동성’이 정지와 지속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 긴장감을 표현해주는 것은 ‘속도’

가 될 것이다. 속도는 미래주의자들이 숭상했던 개념이기도 하고, ‘역동성’을 다루는 작가들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운동성’은 속도의 빠르고 느린 정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가 병치되었을 때 지각되는 속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차이가 클수록 역동적이며 그 차이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병치된 속도들 중 하나가 정지 상태에 가까워야 한다고 할 수 있다.

2.2. 운동의 지각방식으로서의 심리적 운동성

정지된 조각에서의 ‘운동성’의 발생이 지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철학적 개념들을 바탕으 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거론되어야 할 문제는 조각에서 ‘운동성’이 지각되는 구체적 인 방법일 것이다. 루돌프 아른하임(Arnheim, 1954)은 이러한 지각의 문제를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아른하임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본다는 행위는 눈에 비친 대상을 단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본질 자체를 알아가는 과정의 하나이며, 인간의 시각은 무한하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본다는 행동과 직결되는 의식작용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에 대해 어떤 특질(特質)을 보고 느끼면서 서술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면, 이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눈과 생각이 그러한 일을 수행할만한 보편성 내지는 특성을 발견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Arnheim, 1954/

1995, p.6). 또한, 시각은 감각적 요소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창의적으로, 즉 상상적이고 아름답게 파악하는 것이다. 마음이 언제나 하나의 전체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모든 지각은 또한 사고(思考)이고, 모든 이지(理智)는 또한 직관이며, 모든 관찰은 또한 발명이 다(Arnheim, 1954/1995, p.8). 이는 다시 말해서 관찰하는 대상의 운동여부와 상관없이 어떻 게 지각하느냐에 따라서 심리적 기준을 통해서 운동 혹은 부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각에 있어 ‘운동성’이란 시간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물체의 속도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 니라, 사물을 통해 연상되는 사건에서 발생된다고 할 수 있다.

아른하임의 인지 심리학에서 있어서 지각은 베르그손의 지속개념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아른하임에 의하면 시간은 변화의 차원(dimension of change)이다. 시 간은 변화를 기술하는 것을 도우며 변화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운동이 정지된 우주에 시간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부동 상태의 대상은 우리에게 시간 밖의 존재와 같은 인상을 준다(Arnheim, 1954/1995, p.368). 시간은 순서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서가 시간을 만들어낸다. 지나간 사건의 순서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우리의 주의력을 집중할 경우, 마치 암실 속의 하나의 고립된 맑은 사물이 주변의 공간

(7)

과 아무런 관련을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는 그 사건이 시간과 아무런 관련을 가지지 못함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 사건이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경우에도, 하나의 조직된 맥락에서 보여질 때와 같이 충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Arnheim, 1954/1995, p.370). 운동에 대한 경험 은 결국 심리적 기준점의 차이에서 지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른하임의 인지심리학적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과 ‘부동’ 모두 운동현상의 하나이며 ‘운동’이 ‘운동성’을 만들 어내지는 않는다. ‘운동성’은 사건으로부터 발생하며, 사건은 사물이 가진 형태를 인지함으로써 발생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측면에서 보면, 조각에 있어서의 ‘운동성’ 역시 조각의

‘운동’이나 관객의 기억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각이 가진 형태만으로도 ‘운동성’

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3. 조각에 나타난 운동성에 관한 사례연구 3.1. 인체 모사를 통해서 발생하는 운동성

정지된 조각에 있어서 ‘운동’ 혹은 ‘운동성’은 큰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조각은 정지된 형태이고, ‘조상(statue)’이라는 말의 어원이 ‘정적(靜的, static)’ 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임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Read, 2001, p.192).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조각에서 ‘운동’을 표현하기 위한 집요한 욕망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인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조각에서

‘운동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작품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고, 그러한 표현이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그의 저서 󰡔조각이란 무엇인가󰡕에서 운동을 효과적으로 표현하 기 위해서 작가들이 고안한 두 가지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에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러한 방법 중 하나는 ‘율동적인 선구성(線構成)’에 의한 것이다(Read, 2001, p.21).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의 <추상적인 속도연구>,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8)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다. 영상에서 몇 개의 장면들 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은 실제로 근대 화가들이 영화예술에서 시사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ad, 2001, p.21).

리드의 이러한 설명들은 조각에 있어서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 하지만 구체적 으로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형식과 내용 그리고 운동에 관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의 글에서 ‘운동성’의 발생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짐멜은 예술작품을 내용과 형식의 측면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운동’의 위치를 확인시킨다. 그리고 ‘운동’이 내용과 형식의 매개자에서 스스로 조각 작품의 내용 또는 형식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짐멜은 그리스 조각에서 고딕 조각에 이르기까지 조각의 형식과 ‘운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 조각은 그리스 정신이 구성하는 이상은 확고하고 완결적이며 실체적인 존재 로 회귀했기에 이 존재가 형태화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 형태는 시간과 운동의 피안에 존재한다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그리하여 그리스 조각은 지속적인 것, 육체의 운동에 의해 발생 하는 모든 특별한 자세를 넘어서는 육체의 본질적인 형태, 그리고 육체의 해부학적-물리적 형상을 추구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은 ‘운동성’을 통해서 이상과 본질을 표현하려 하였고, 고딕 조각예술은 영적 표현을 위해 ‘운동성’을 이용하였다. 그리스와 고딕의 조각이 ‘운동’의 표현을 통해서 내용을 드러내고자 하였다면,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이르러서는 ‘운동’이 형식과 내용의 사 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뫼니에는 조각을 통해 ‘운동’이 포함된 노동을 표현함으 로써, 조각의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내었다. 로댕에 이르러서 조각의 ‘운동’은 새로운 표현수단 을 획득한다. 그의 조각에서 ‘운동’은 그 스스로 형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로댕 이전의 인체 조각들이 사건 혹은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운동성’을 이용했다면, 로댕의 조각은

(8)

인체의 움직임이 가진 균형을 이용해서 ‘운동성’ 자체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로댕의 ‘운동성’

은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3.2. 속도의 표현을 통해서 발생하는 운동성

‘미래주의’는 기계의 위력에 의해서 출현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영이면서 과거에 대한 거부이 기도 했다. 그들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가져오는 진보적인 미래를 찬양했다. 그래서 미래 주의자들이 가졌던 ‘움직임’과 ‘속도’에 대한 태도는 직접적인 관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산업과 과학의 발전에 대한 찬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래주의 조각은 운동이 만들어내는 생동감을 통해서 형식과 동떨어진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계문명이 보 여주는 운동자체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 하였다는 점이다. 연구자는 본 장에서 ‘미래주의’의 미술사적인 위치와 대표작가인 보치오니의 작품을 통해서 미래주의 조각 이 가진 ‘운동성’의 성격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통상 ‘벨 에포크(belle é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지칭되는 1880년 에서 1914년 사이의 유럽을 배경으로 탄생한 예술운동이다. 이 기간 중 유럽 사회는 오늘날 과학기술이 초래한 변화에 상응하는, 또는 그것을 능가하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의 중심 에는 역시 과학과 기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래주의를 검토하는 일은 이 시기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연관된 사회 변화를 언급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먼저 이 기간 중에는 자동소총(1882)과 합성섬유(1883), 파슨스 증기 터빈(1884), 디젤 엔진 (1892), 포드 자동차(1893), 영사기(1894) 등 수많은 발명품이 선보였다. 라디오 방송을 가능 케 했던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의 무선 송수신기,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ère)의 영화촬영기가 개발된 것도 이 시기다. 이러한 기술혁신과 더불어 이 기간 중 유럽 에서는 전등과 전기, 중앙집중식 난방, 엘리베이터, 전화사용이 본격화되었다. 또한 거리에는 자동차, 전차, 버스 등이 다니고 도로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게 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비 행기를 발명한 1903년부터는 비행기가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화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도 않 은 원소들이 존재한다고 예언했고, 의학은 끊임없이 진료방식을 개선시켰다(Kern, 1983/

2010, p.241). 1895년의 X선 발견은 그 대표적 예이다. 또한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특수상 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이 보 다 나은 세상에 살게 되리라 낙관하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된 미래주의운동은 다양한 양태로 표현되었다. 이들은 기계문명이 만들어 내는 강력한 ‘운동’을 찬양하고, 속도의 표현을 통해서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실적 방법으로 미래를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 가 있었을 것이다. 미래주의에 있어서 ‘운동’은 순수한 표현의 주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주 의 조각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운동’과 ‘속도’의 표현이 인체의 동세를 표현하기 위한 부수적인 조건이 아니라 ‘운동성’ 자체가 가진 특성을 이용한 의미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래주의자들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며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모든 이상과 열정을 미술작품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서 공동된 방법은 없었다. 또한 그들의 과장된 연설 내용에 부합 하는 미술이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표방한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하 였더라도 그들의 시도는 의미 있는 것이었고 그 결과도 훌륭한 것이었다(Lynton, 2003, pp.88-89). 보치오니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인 동시에 훌륭한 미술사가였다.

조각은 그 본성이 정태적이므로 움직임을 통해 전개되는 시간을 재현하기에는 가장 부적합한 매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각의 양식을 개혁하는데 가장 헌신적이었던 미래주의 미술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사물에 내재된 각기 분리된 두 가지 존재방식을 융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첫 번째의 존재방식은 사물의 구조적이고 물질적인 본질, 즉 생래적인 특질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보치오 니는 이것을 “절대적 움직임”이라 일컬었다. 이에 대해 두 번째 존재방식은 사물의 “상대적 움직임”이라 하였다. 이것은 실제 공간 속에서의 사물의 우연한 존재양태를 의미한다(Krauss,

(9)

1998, p.59). 절대적 존재방식과 상대적 존재방식의 통합을 재현하기 위해서 보치오니는 “분리 라는 낡은 개념을 지속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치할 하나의 기호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독특한 형태”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Martin, 1968, p.169).

“돌진한다. 이것이 바로 힘의 형태다”(Kim, Y. N., 1996, p.282). 보치오니는 개념체계가 물질 적 경험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즉, 개념체계는 관람자의 형식화하려는 의식에 의한 본질적으로 불활성적인 재료의 중심부에 투입된다는 것이다(Krauss, 1998, p.71). 절대 적 운동과 상대적 운동은 각각 개념체계와 물질적 경험세계로 환원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보치오니는 개념체계가 물질적 경험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즉 정신적 공간과 그 구조를 반역하는 사물 모두가 미완의 물질영역이라 할 수 있는 실제공간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 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Krauss, 1998, pp.73-74).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의 작품은 실제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4. 조각의 운동성

본 연구는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발생 원리와 양태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자 한다. 먼저 각각의 조각이 가진 운동과 부동의 상태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운동성’의 원인을 철학적 시지각적 개념을 바탕으로 확인한다. 또한,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성’의 역할을 과거 조각 작품들의 구성요소와 비교 분석한다.

구 분 부 동 운 동 운 동 성

지 속 개 념

실현불가능 피크노렙시와 같은 지각을 통해서만 경험가능

지각을 통한 질적 변화에서 발생

병치된 질적 변화들의 상대적 속도차이에서 발생

시지각 개 념

운동과 부동 모두 힘의 균형을 취하는 운동현상일 뿐 구분될 수 없다.

실제운동이 아닌 형태의 인지로부터 발생

<Table 1> The Development Process of ‘Movement’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Table 1>와 같다.

지속 개념에 있어서 ‘부동’은 피크노렙시와 같은 의식의 부재 상태에서만 경험 가능하며 실제로 는 불가능하다. ‘운동’은 시공간 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서 시공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물체는 물리적 운동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물체가 의미 있는 ‘운동’

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각을 통해서 질적 변화가 발생할 때만 진정한 의미의 ‘운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지각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의 속도는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운동은 각각의 상대적 속도를 지닌다. 그러므로 상대적 속도의 차이를 가진 운동들이 병치될 때 ‘운동성’은 발생되며, 그 속도 의 차이가 클 때 더 큰 ‘운동성’이 발생된다.

시지각 개념에서 ‘운동’과 ‘부동’은 양쪽 모두 운동현상이다. 지속 개념에서 ‘부동’이 전적으로 부정되었다면, 시지각 개념에서의 ‘부동’은 힘의 균형을 가지고 있는 ‘운동 현상’으로 설명된다.

시지각 개념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보이는 것이며, 보는 것과 동시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이 아닌 사물의 형태 자체가 ‘운동성’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성’이 단순히 사물의 형태에서 발생되는 것은 아니며, 사물의 형태가 발생시키는 사건과 상황을 보게 됨으로써 ‘운동성’이 발생된다.

조각에 있어서도 이 두 가지 ‘운동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정지된 조각이 ‘운동성’을 가지려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운동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이론 모두 정지상태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지속개념의 경우 지각을 통한 질적 변화의 상대

(10)

적 속도차이로써 해석이 가능하며, 시지각 개념에 있어서는 실제 운동이 아닌 형태의 인지로서 해석이 가능해진다.

앞 장의 연구를 통해서 시공간이 운동을 통해서 지각되며, 지각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운동 성’이 발생됨을 확인하였다. 조각에 있어서도 다양한 종류의 ‘운동성’이 존재한다. ‘운동성’의 역할을 과거 조각 작품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통해 확인하고 비교 분석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Table 2>과 같다.

구 분 운동의 표현 ‘운동성’의 양태

인체의 생동감

(고대조각) 인체의

모사

극적인 하나의 상황을

인체의 동작을 통해서 표현 생동감 발생을 통한 효과적 내용 전달

‘운동성’을 위한 인체

(로댕)

인체를 이용한 균형의 이동을 통해서 표현 인체를 통해서 ‘운동성’ 자체를 드러냄

초월적

‘운동성’

(미래주의)

추상적

속도의

표현

진보의 표현을 위한 재료로써 사용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속도를 직접 표현, 또는 속도를 만들어내는 기계에 대한 표현

개념적 운동과 현실적 운동이 하나의 형태로 합쳐지는

초월적 상태를 통해서 ‘운동성’이 표현됨

현실적

‘운동성’

(구조주의)

재료의 물리적 성질과 실제적 사건, 장소를 모 두 포함함으로써 표현됨

이상적 추상적 표현이 아닌

현실적 실제적 구조적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

실제 운동 (키네틱)

물리적, 지각적으로 가능한 모든 움직이는 재 료를 이용해서 운동 자체를 표현

운동 자체에 대한 표현으로 ‘운동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Table 2> Expression of Move and the Aspect of 'Movement’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은 역할에 따라 다섯 가지 양태로 나누어진다. 그중 두 가지는 인체의 표현에서 두드러지며, 나머지 세 가지는 운동을 직접 표현하는 추상조각에서 그 특성이 많이 나타난다. 첫째는 생동감 있는 인체 표현이다. 생동감 있는 인체 표현은 내용전달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을 압축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역동적 인체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때의 ‘운동성’은 내용전달을 위한 표현의 보조 수단 정도 로 생각된다.

그러나 로댕에 이르러서는 그 양상이 변화된다. 로댕의 조각 역시 다양한 목적을 위해서 제작되 었지만, 인체의 ‘운동성’이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로댕의 조각에서 ‘운동성’은 상황 설명을 위한 역동적 동작이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이 가진 균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는 동시에 인체를 통해서 균형이 표출된다. 그러므로 로댕의 조각은 ‘운 동성’을 드러내기 위한 인체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양태이다.

세 번째 양태인 초월적 ‘운동성’은 개념적 운동이다. 개념적 운동과 현실적 운동이 하나의 형태 로 합쳐지면서 초월적 상태로서의 ‘운동성’이 표현된다. 미래주의 조각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형식의 조각은 ‘운동성’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양태는 러시아 구조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현실적 ‘운동성’이다. 구조주의자들의 작품 에서 발견되는 ‘운동성’의 특징은 재료의 물리적 성질과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를 모두 작품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주의자들이 보여주는 초월적 측면과 대치되는 실제 적 ‘운동성’을 가진 작품을 보여준다. 여기에서의 ‘운동성’은 실제 시간과 작품사이의 간격을 없애줌으로써, 이상적 그리고 추상적 표현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표현을 위한 필수 요소

(11)

로 사용된다.

다섯 번째 양태는 실제운동이다. 앞 장에서의 고찰을 통해서 실제 운동과 ‘운동성’은 필연적 관계가 아님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소위 키네틱 아트라는 명칭으로 운동을 표현하는 조각 작품 의 양상들이 ‘운동성’을 표방하는 경우가 있고, 정지된 조각의 ‘운동성’ 표현이 극단에 이르러서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이 된 경우도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운동성’의 양태에서 제외하기는 힘들 다고 생각된다.

5. 결론

이 연구에서는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의 발생을 지속 개념과 시지각 개념으로 나누어 그 특성 을 고찰하였다. 또한 다섯 가지 ‘운동성’의 양태로 분류하여 그 각각의 특성을 재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운동성’을 정의하기에 앞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과거의 논의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20세기 전후 시간, 공간, 운동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 중 베르그손의 지속이론과 아른하임의 지각이론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 · 공간이 전제된 상태에서 운동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서 시 · 공간이 인지되는 것에 집중하였다. 특히 베르그손의 시간 개념을 통해 시간 은 정지되거나 구분 지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과거 · 현재 · 미래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에 의 해서 지각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운동과 부동의 실현 조건과 운동의 성립조건을 확인하 고 그 결과 ‘운동성’은 지각을 통한 질적 변화가 발생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어 아른하임의 시지각이론을 통해서 조각에 ‘운동성’은 운동에서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의 인지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미술사에서 등장하였던 조각에 나타난 ‘운동성’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확인하고, 그 양상을 세 가지 형식으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 형식은 인체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이다. 허버트 리드와 게오르그 짐멜의 연구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 · 로마 시기의 인체 조각에서 나타나는 표현 수단으로써의 ‘운동성’부터, 로댕에 이르러 나타나는 주체로서의 ‘운동성’에 이르기까지의 형식적 개념을 정의하였다. 이를 통해 고대 인체 조각이 사건과 상황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운동성’을 사용하였다면, 로 댕에 이르러서는 내용 전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체를 통한 균형감과 ‘운동성’의 표현이 주체가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두 번째로는 역동성을 추구한 조각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특히 미래주의에서 발생한 ‘운동성’

의 표현 양태에 집중하였고, 베르그손의 지속이론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함으로써 역동성의 조 각들이 지각을 통해서 발현됨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운동성’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물과 사건에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관계를 유추할 수 있으며, 특히 조각 작품 안에 서 재료로 혹은 주체로서 사용되거나 변형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로는 실제적 운동을 표현한 조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구조주의에서 키네틱아트로 이어지는 ‘운동성’의 특징을 확인하였다. 구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운동은 조각을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도구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조각은 재료의 물리적 성질과 실제적 사건을 모두 포함하는 실제적 표현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조각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의 양태에 있어서는 특징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생동감 있는 인체 표현이다. 이러한 양태는 내용전달을 위한 표현의 재료로서의 ‘운동성’이다.

두 번째는 로댕의 인체 조각에서 나타나는 주체적 ‘운동성’의 양태이다. 로댕의 조각에서 ‘운동 성’은 상황 설명을 위한 역동적 동작이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이 가진 균형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 그리고 동시에 인체를 통해서 균형이 표출된다. 그러므로 로댕의 조각은 ‘운동성’을 드러내 기 위한 인체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운동성’의 양태인 초월적 ‘운동성’은 개념적 운동이다. 개념적 운동과 현실적 운동이 하나의 형태로 합쳐지면서 초월적 상태로서의 ‘운동성’

이 표현된다. 미래주의 조각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형식의 조각은 ‘운동성’ 자체가 작품의 중 요한 개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양태는 러시아 구조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현실적

(12)

‘운동성’이다. 구조주의자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운동성’의 특징은 재료의 물리적 성질과 작 품이 설치되는 장소를 모두 작품에 포함하며,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표현을 위한 필수 요소로 사용된다. 다섯 번째 양태는 실제 운동을 통한 ‘운동성’의 발생이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 ‘운동성’의 발생 원리와 다섯 가지 ‘운동성’의 양태를 통해서 본 연구는 표본작가와 표본 연구작을 유효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형식적, 개념적, 정치적으로만 다뤄지던 조각에 있어서 ‘운동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운동성’

자체만으로 조각의 해석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References

Arnheim, Rudolf. (1954/1995).

Art and visual perception

. Mijinsa, 6, 8, 368, 370.

Bergson, Henri. (1896/2008).

Matière et mémoire

. Sallimbooks, 78, 80.

Einstein, Albert. (1916/1952)

Relativity : The special and the General Theory

. University of Sheffield, 26.

Kern, Stephen. (1983/2010).

The culture of time and space 1880-1918

, Humanist, 21, 24, 40, 59, 241.

Kim, Y. N. (1996).

Origin of Contemporary Art 1880~1914.

Sigongsa, 282.

Krauss, Rosalind. (1998).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 Yekyong Publishing Co, 59, 71, 73-74.

Lee, J. K. (2002).

The birth of modern time and space

. Prunsoop, 169-171.

Lynton, Notbert. (2003).

The Story of Midern Art .

Yekyong Publishing Co, 88-89.

Martin W. Marianne, (1968)

Futurist Art and Theory, 1909-1915

. Oxford:Clarendon Press, 169.

Read, Herbert. (2001).

(The) Art of sculpture

. Youlhwadang, 21(2), 192.

Yoon, N. J. (1990).

A Study on kinetic art : expanded concept of art work.

Ewha Womans University, 10.

참조

관련 문서

또한 다양한 소리를 들었을 때 각각 나타나는 뇌파의 변화를 인지함으로써, 운전자에게 졸음이 오는 것을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소리를 알고 이를 적용해 보았다..

현재 개발도상국의 비교우위전환에 대한 논술이 비교적많은 것이다.학술계 에서는 비교우위전환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는

’즉 같은 주 제와 구도로 이루어진 표현이라 하더라도 목탄과 펜촉,연필은 다양한 강도와 단색 조의 표현이,콘테(conte),크레용(crayon)은 색조와 질감이 풍부한 표현이

[r]

미술활동에 있어 재료의 확대는,아동에게 어떠한 재료든지 활용하여 미술 표현의 재료가 됨을 인식시킴으로써 주위환경에 대한 관찰력을 높이고,서로 다른 종류의

따라서 한국인 영어 학습자의 작문을 모은 학습자 코퍼스를 분석하여, 한국 인 학습자의 OE 심리동사 사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어

- 이 class에서 가시화를 담당하는 함수는 RenderScene() 함수이다. 이를 위해 OpenGLVeiw class에서는.. 이를 위해서는 CColorDialog class를 이용해야

본 연구에서는 집의 사전적 정의 및 G,Haywar d가 정리한 9가지 집의 의미와 학술논문인 집의 의미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통한 집의 의미를 이론적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