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Main Building ofChosun University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Main Building ofChosun University"

Copied!
9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특징에 관한 연구

신 웅 주

*

, 김 용 춘

조선대학교, 건축학부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Main Building of Chosun University

Woong-ju Shin

*

, Yong-Cchun Kim

School of Architecture, Chosun University, Gwangju, Korea

(Received : Feb. 20, 2017, Revised : Mar. 24, 2017, Accepted : Mar. 27, 2017)

Abstract :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eginal Architectural Chracteristics of the historic part of Chosun University which began construction in 1947 and was completed in 1954 with a seven-story building with a total area of 10,560m2. The study begins from its founding history and the construction process of Chosun University, explaining how the enlargement of the main building of the Univeristy has been processed in terms of its chronicle timeline since 1950 and how it has been influenced by architectural characteristic details such as Brick Masonry Structure and Roof Truss using a comparison of similar period building. For the investigation of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University, the information of the University Museum and National Archives of Korea will be referenced and provided with details of materials, structures and also changes since 1954. In terms of the building comparison, this study will attempt to conclude with the assumption that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University might be significantly influenced by precedent buildings in the period before its construction

Keyword : Main building of Chosun University, Architectural Characteristic, Brick Masonry Structure, Roof Truss, Precedent Buildings

1. 서 론

1)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조선대학교 본관은 일제 식민통치이후 1946년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으로 개교한 조선대학교에 위치한 건축 물로서 1951년 3개의 박공을 갖는 조적조로 건축된 후 지속적으로 증축되어 현재는 370m에 이르게 되었고 2004년 등록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규모와 시공방법에 있어 사례가 많지 않았던 총 5층의 거푸집

Corresponding Author 성 명 : 김 용 춘

소 속 : 조선대학교 건축학부

주 소 : 광주 동구 필문대로 309 조선대학교 전 화 : 062-230-7144

E-mail :[email protected]

이 논문은 2016년도 조선대학교 학술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연구 되었음.

조적조(Brick masonry structure)와 부분적으로 철 제트러스의 시공이 광주지역에서는 최초로 시도되었다 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 어 해방이후 의 자재와 시공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한국전쟁이 전후 근대건축 연구의 중요한 사료인 현존 건축물과 관련 자료가 남아있는 조선대학 교 본관이 건축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여러 차례 의 건축적 변화양상을 설명하고. 건축기록과 문헌자료 의 내용을 토대로 조선대학교 본관이 갖는 건축적 특징 을 평면, 입면, 구조, 재료 중심으로 분석하여 영향을 주고받을 만한 지역건축물과의 연관관계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통해 1950년대 초반에 완공된 조선대학교 본관이 시대적으로는 1900년 이후 일제식민지 시대와 해방이후 한국 전쟁 이후의 지역 건축물들과의 건축적 특징의 상관관계, 또한 당시 경제, 사회적인 측면을 반 영한 시대적 건축물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 하고자 한다.

(2)

1.2 연구의 방법 및 내용

연구의 진행을 위한 문헌조사는 국가기록원, 국회도 서관, 문화재청의 기록화 조사보고서로부터 자료 수집 을 하였고 조선대학교 내의 시설팀, 총무팀의 업무지원 을 통해 도면과 사진자료를 수집하였다. 조선대학교 사 료집에 수록된 1950년대의 도면자료도 구하였으나 축 척과 구조 그리고 재료에 대한 내용이 충실하지 않았다.

연혁조사는 조선대학교와 조선대학교출판부에서 발간 했던 자료들을 수집한 후 연대별로 다시 배열하는 방식 으로 진행하였다. 조선대학교 본관이 1951년 신축된 이후 광주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 착안 하여 광주광역시청과 관계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광주의 전경사진을 검색하여 연도순으로 변화된 양상도 파악하 였다.연구의 진행은 첫째, 조선대학교의 설립과 조선대학 교 본관의 건축 배경 및 과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둘 째, 조선대학교 본관의 분석은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 는 조적식 벽체구조와 개구부포치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평면의 형태와 구조적인 변화, 그리고 지붕 트러스를 이어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대학교본관 의 건축적 특징을 기준으로 당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근대건축물을 건축적 요소를 비교 분석함으로 써 조선대학교 본관건축물과의 상관관계를 기술하였다.

2.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 2.1 조선대학교의 설립

1919년 3․1운동이 좌절되자 민족지도자들은 일제 식민교육을 철폐하고 교육정책의 서광을 일구어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민족교육을 펴나가자는데 의 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민족과 국가의 장래 운명 개척 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21년 11월 이상재, 이승 훈, 송진우 등을 주축으로 『민립대학기성준비위』가 조직되었다.1)2)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민립대학 건립운동이 펼쳐져 발기인이 1,000여 명에 이르자 1922년 3월 29일 중 앙기독교청년회관(현 서울YMCA)에서 『조선민립대학 기성회』발기총회를 개최하고 ‘기성회원은 조선인으로 회비 1원 이상을 납입하는 사람’으로 한다는 결의를 하 고 발기취지문을 채택하였다. 그 후 중앙집행위원들은 전국 순회에 나서 민립대학설립취지를 알리고 전 민중 의 성금을 호소하였다.3)4)

그러나 각종 재해로 모금활동이 고르지 못했고, 조선 총독부는 민족운동을 방해하여 좌절되었다. 결국 해방 을 맞으면서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다시 추진되어 광주 와 전남지역에도 민립대학설립의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서민호지사와 이규정검사의 공동명의로 조선대학교건립 1) 조선대학교사편찬위원회, 조선대학교 50년사, 1997,

pp31~32

2) 조선대학교 대학소개, 이념과 비전

3) 조선대학교사편찬위원회, 조선대학교 50년사, 1997, pp32~34

4) 설립 60주년 사립대학, 경향신문, 2006. 9. 28

모금을 위해 광고를 냈고 서민호지사는 민립대학 설립 을 위해 당시 전남도청의 운수과장에게 학교설립에 필 요한 모든 자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으며 지방 유지와 관공서, 공무원 및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협조 공문을 보냈다.5)

Figure 1. Establishment solicitation of Chosun University 50-Year History

서민호지사와 이규정검사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조선 민립대학 설립추진 당시의 취지문을 기초로 하여 조선 대학 설칩취지문과 설립동지회칙을 마련하고 문교부장 관 등을 고문으로, 전남도청 고위관직자, 교육관계자, 지방유지 등을 참의 및 명예이사로 추대하여 1946년 4 월 5일 조선대학원으로 개원하였고 그 해 9월 도지사 명의로 정식 인가를 받게 되었다.6)

2.2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 변화 고찰

1946년 9월 29일 개교한 조선대학교에 약 1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으나 당시에는 수용할 교사(校舍)가 없어 설립동지회의 기금(基金)으로 1946년 3월 20일 첫 교사가 완공되었다.

이듬해인 1947년 4월에는 현재의 조선대학교 본관건 물이 착공되어 8년 후인 1954년에 연면적 10,560㎡, 7층의 교사가 완공되었다. 무등산 기슭에 터를 닦기 시 작한 조선대학교 본관은 웅장한 규모로 완성되었다.

5) 조선대학교사편찬위원회, 조선대학교 50년사, 1997, pp42~47

6) 두산세계백과사전, http://terms.naver.com/entry.

n h n ? c i d = 2 0 0 0 0 0 0 0 0 & d o c I d = 1 1 4 1 7 9 8 &

ategoryId=200001857

(3)

Figure 2. Site views of

the university (1946) Figure 3. The ground- breaking ceremony of the university (1947)

Figure 4. The first building of the university (1949)

Figure 5. Construction of the main building

(1951)

Figure 6. Main Building in 1950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7. Main Building in 1952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8. Main Building in 1964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9. Main Building in 1972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73)

Figure 10. Main Building in 1977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78)

Figure 11. Main Building in 1979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80)

Figure 12. Main Building in 1981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82)

.Figure 13. Main Building in 1986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87)

Figure 14. Main Building in 1992 Chosun University yearbook (1993)

지상 7층의 본관은 유치원부터 대학의 부속건물까지 를 포함하는 조선대학교의 거대한 건설계획 가운데 중 추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건축 자재가 소실되어 한때 공사의 진척상황이 부진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전체 계획의 1/4에 해당하는 본관이 완 성되었다. 원래 계획한 294강당 가운데 74강당이 1955년 말 준공되었는데, 신속한 시공을 위해 제재소 와 벽돌공장 등 부속기관 등이 시설되어 자립적으로 공 사가 진행되었다.

신축 당시부터 증축에 대한 여지가 있었던 조선대학 교 본관은 1970년대 초반부터 1단계 증축공사가 시작 되었다. 여러 박공의 건물을 이어가는 것이 조선대학교 의 숙원사업이었을 지라도 건물의 효율성, 안전성 그리 고 단과대학별 교사 분산의 추세 등을 감안한다면 무리 가 따랐으나 증축이 단행되어 1976년 3월 2일 대학 최 장의 건물을 완공하였다.

1977년 당시 본관의 모습은 기존 건물의 좌우에 3 개동씩 덧붙인 형태로 11개의 박공지붕이 연결된 형태 였다. 2단계 증축공사도 곧바로 시작되어 남쪽현관부분 의 4개 박공이 1979년 3월 7일 완공되고 1983년 북 쪽현관부분의 4개 박공도 완공되었다.

이어 1985년에는 본관의 남쪽에 위치하며 현재는 법 학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당시의 학생회관이 증축되 어 연결되었고, 1992년에는 본관의 북쪽에 연면적 4,340㎡, 6층 규모의 교수연구동이 완공되어 현재의 본관으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4)

3.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적 특징 3.1 조선대학교 본관의 원형

조선대학교 본관은 74개의 강의실을 갖춘 교사로 1 층의 일부는 행정업무 실로 사용하였고, 2층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학교관계자들의 실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판 단된다. 본관의 신축당시 도면은 찾을 수 없으나 1950 년대에 단선으로 간략하게 그린 개략도면은 국가기록원 에서 구할 수 있었다. 도면이 사본인 탓에 글씨가 혼탁 하여 실의 구분이 어려우나 확대하여 관찰한 결과 일부 소강당, 중강당, 대강당, 변소, 행정실 등의 공간구성을 파악할 수 있다.

1955년에 완공된 본관은 부속교사(附屬校舍)들이 지 어지기 전, 현재의 대학원 교사와 더불어 전교생이 수 업을 받아야 하는 까닭에 대부분의 실은 크고 작은 강 당(講堂)으로 구획하여 많은 학생을 수용하였다.

Figure 15. General Arrangement drawings of Chosun University from National Archive of Korea 조선대학교 본관은 정면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 을 이룬다. 외관은 정면 가로의 길이가 375m, 처마까 지의 높이는 36m, 최고높이는 남쪽과 북쪽의 현관이 있는 부분의 박공 용마루로 46m이다. 19개의 크고 작 은 박공은 지붕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거대한 매스를 분 절하여 5층부터 9층까지 다양하게 층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중앙 5개 박공 중 정중앙은 7층, 좌우

첫째 박공은 6층, 좌우 둘째 박공은 5층으로 구성되어 차차 낮아지는 박공지붕이다.

외부 치장으로 사용된 주재료는 적벽돌이지만 건축 초기인 1950년대부터 흰색 수성페인트로 두껍게 도장 되었기 때문에 흰색의 벽체로 인식된다. 이는 1930년 대에 건축가 김순하(金舜河)의 설계로 금남로의 구(舊) 전라남도청 내에 건립되어 1981년 광주광역시유형문화 재 제6호로 지정된 전남도청회의실(全南道廳會議室)과 흡사하다.

Figure16. Constructionphotosof ChosunUniversitymainbuilding (1951)

Chosun University Museum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 첫째 박공의 지붕과 좌우 둘째 박공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다시 공사가 진 행되어 1955년에 5개의 박공지붕형태를 갖추었을 것으 로 판단된다.

그림 18(우)은 1953년의 자료로 중앙 3개 박공만 공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증축7)을 하기 위해 비계를 매 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내부의 실은 일부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측면도 벽돌쌓기와 모르타르 미장으로 마무리되어 있 지만 부벽의 역할을 하는 기둥에는 켜들여쌓기를 하여 당시에도 증축의 여지를 남겨 두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19는 1955년 준공직전의 본관으로 1, 2, 3층 의 측면이 마감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배면의 복도 공간은 마감이 없이 뼈대만 세워져 있어 차후에 복 도 공사가 진행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로서 공사 장면을 촬영한 그림 17(좌)와 그림 22가 있다. 사진 상에서 보이는 부분은 강의실의 벽체 로 복도는 없다. 즉 강의실 부분이 먼저 시공되고 나중 에 복도, 계단, 화장실 등이 시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면의 벽체는 정면보다 벽돌쌓기의 흔적이 잘 보인 다. 배면의 벽체는 수성페인트 도장의 탈락된 부분이

7) 조선대 본관은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현재의 형태 와 규모로 완성이 되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 21과 같이 중앙 5개의 박공으로 측면이 변화 되고 다시 측면의 위치가 바뀌어 그림 16과 같이 증축되어 중앙 박공으로부터 좌우 맨 끝인 9번째 박공이다.

(5)

많은데 이는 산의 사면과 건물의 높이에 의해 햇빛이 차단되고 사람들의 시선 밖에 있어 도장(塗裝)의 횟수 가 정면에 비하여 많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Figure 17. Side View of the main building (1953)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18. View of the main building (1955)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19. View of the main building (1957)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20. View of the main building(early 1960s) Chosun University Museum

Figure 21. Rear Elevation of the University Main Building (1951)

Chosun University Museum 3.2 벽돌 거푸집 공법의 시도

조선대학교 본관에는 여러 구조가 복합적으로 사용되 었다. 구조는 확인할 수 없어 외부와 내부에서의 관찰, 과거 사진자료 및 문헌자료 등을 통해서 각 부의 구조 형식을 파악하여 다음의 표 3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위치 구조

벽체 조적조(220㎜×105㎜×60㎜ 소성적벽돌 사용) 기둥 벽돌거푸집을 이용한 철근콘크리트구조 보,슬래브 철근콘크리트구조(일부 철근외의 철물사용)

지붕 철골구조(철골트러스위 골슬레이트 박공) Table 2. Main Construction Element and Structure

벽체는 220㎜×105㎜×60㎜의 소성 적벽돌이 조적되 면서 내부에 철근이 조립되고 콘크리트가 타설되었다.

벽체의 두께는 층과 장소별로 각기 다른데 최대 3.0B [미장을 제외한 벽돌부분만 680㎜]부터 최소 1.5B[335㎜]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벽돌쌓기법은 영 국식쌓기[英式積, English bond], 화란식쌓기[和蘭式 積, Dutch bond], 이를 응용한 변형쌓기법이다.

대부분의 벽체는 내력벽으로 상부의 하중을 지탱하도 록 매우 두껍다. 개구부의 비율은 전체의 52%로 비교 적 안정적이다. 여기에 7.2m 간격으로 벽체에 기둥처 럼 부벽이 세워져 있다. 모르타르는 두께가 10㎜~30

㎜로 다양한데 수성페인트 칠이 벗겨진 부분에서는 여 러 겹의 수성페인트 안으로 회(灰) 마감도 확인할 수 있다.

위치상세 층수두께

위치

정면외벽 내벽 배면외벽

벽두께(㎜) 벽두께 (B) 벽두께

(㎜) 벽두께 (B) 벽두께

(㎜) 벽두께 (B) 6층 470 2.0 360 1.5 360 1.5 5층 470 2.0 360 1.5 360 1.5 4층 470 2.0 360 1.5 360 1.5 3층 470 2.0 360 1.5 360 1.5 2층 590 2.5 470 2.0 360 1.5 1층 590 2.5 470 2.5 470 2.0 1층하부 710 3.0 590 2.5 470 2.0

Table 3. Wall thickness of Main Building

벽체와 연결되어 부축벽(扶築壁)의 형태를 하고 있는 기둥들은 위치마다 그 형태가 제각각이다. 가장 큰 기 둥은 중앙박공 부분의 네 모서리에 위치한 기둥으로 철 (凸)자 형태이고 크기는 1,150㎜×960㎜이다.

외관상 벽체와 기둥의 구분이 모호하나 1951년 신축 중인 본관의 사진 1장을 통해 당시에 구조적인 보강을 위해 철근을 사용하였던 점을 공사과정의 사진인 그림 23을 통해 기둥의 위치에 철근을 조립하고 벽돌을 쌓아 둔 모습이다. 이 사진을 통하여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전의 단계로서 조적벽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크리트 의 타설 압력을 고려하여 벽체를 두껍고 기장 튼튼한 쌓기 방법인 화란식/영국식 변형쌓기로 축조하였을 것 으로 추측된다.8)

7.2m의 간격으로 정면과 배면의 외벽과 복도의 내벽 에 배치된 기둥들은 보와 슬래브에 연결되어 일체화되 지 않아 불안정한 조적조를 보조하여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고 장기간 구조적 안정을 보장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대학교 본관은 조적조에 철근콘크리트와 철골로 보강한 구조로서 지금도 학교 교사로 사용되고 있다.

8) 그 근거로 철근이 조적 벽체로부터 많이 후퇴하여 조립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6)

Figure 22. Construction View of the main building (1951), Chosun University Museum 벽돌로 둘러싸인 부분에서 철근을 관찰할 수 있음

수직의 조적조에 수평의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조합되 므로서 여러 층의 슬래브가 구현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서 일부 구조적인 보강이 있었으나 1996년 8월에 최초 로 시작된 안전진단 이후 다섯 차례의 구조적 검토와 안전진단을 토대로 한때 폐쇄되었던 3층 이상의 층이 현재는 다시 사용되고 있다.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곳은 보(Girder, Beam) 와 슬래브(Slab)로 지금은 탄소섬유, 철판, 에폭시 인 젝션으로 보강하여 구조적인 하자가 없는 상태이다.09)

09) 본 진단대상 건축물의 보수 ․ 보강이 실시된 부분 의 하자여부 및 결함상태 등을 중점적으로 육안조 사를 통하여 살펴본 결과 전반적으로 각 실마다 실시된 탄소섬유 보강 및 각 계단실 좌우측실의 철판 보강상태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수 보강이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후 유지 관리 상태 등도 대체적으로 양호하게 관리되어지 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관 6층, 7층의 경우 각 모체의 구조체 균열들에 대해서 에폭시 주입공 법을 이용한 보수 보강이 이루어진 상태였으며 상 부 지붕층에서 발생되어지는 내하력의 경우 경량 철골트러스를 사용하여, 발생되어지는 각 응력에 대해서 적절한 분산을 통한 상부구조의 하중을 하 부층으로 안전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

안전진단 조사보고서10)에 의하면 인장재(引張材)로 철 근보다는 드럼통의 갓테나 P.S.P(Punched Steel Plate)를 섞어 사용하여 배근간격이 일정치 않은 것으 로 추정하고 있다.

본 건물의 현장조사 결과 각 층 보와 슬래브의 보수 현황을 파악하면 아래의 [표 8]과 같다. 슬래브의 두께 는 기본적으로 약 10㎝~15㎝이고, 보의 크기는 160

㎜×130㎜부터 510㎜×1,000㎜까지 측정되었다.

3.3 철골 트러스의 사용

1930-1950년대까지 신축된 이지역의 교육시설물들 은 조적조 건물에서는 대부분의 지붕 가구(架構)가 목 조트러스였으나 1950년대 준공된 조선대학교 본관의 2 층규모의 지붕가구는 철골트러스구조이다. 조선대학교 본관에는 중앙 박공의 최대 폭인 21.6m를 지지하기 위 하여 지붕 상층부는 형 핀크 트러스(Modified fink Truss)와 워렌 트러스(Warren Truss)와 응용하고 하 층부는 웨런 트러스를 사용하였다.

지붕박공의 상층부는 트러스의 주 골조인 ㅅ자보의 재료로 종도리 부근에는 L-90㎜×75㎜×6㎜의 등변산형 강(等邊山形鋼, Equal Angle) 두 개가 밀착되고 그 중간에는 가셋플레이트(繫板, Gusset Plate)가 설치된 후 양 경사방향으로 각각 다섯 개의 볼트가 체결되었다.

역시 등변산형강으로 제작된 24개의 중도리는 흘러내리 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용접절단된 구름멈춤 등변산형 강을 ㅅ자보에 볼트로 연결되고 그 위에 중도리를 걸려 다시 볼트로 고정되었다.

Figure 23. Roof Truss Concept of the main building 현재는 슬레이트판에 구멍을 내고 머리가 넓고 스폰

었으며 더불어 ‘지붕층 구조내력에 의한 구조계 산부분’을 검토해본 결과 구조안전상으로도 문제 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략, (주)정진, 2004 년 8월, 조선대학교 본관 건축물 중앙부분 정밀안 전진단에서 발췌

10) 한국건설기술안전협회, 조선대학교 안전진단보고 서, 1998년 7월, p.49

(7)

지가 달린 긴 못의 끝이 구부려져 형강에 고정됨으로써 경사가 심한 슬레이트지붕이 구현되었다. 평보를 포함 한 나머지의 철골부재는 1본의 등변산형강이 사용되어 골조가 형성되었다. 부재의 교차지점에는 가셋플레이트 와 가셋앵글을 덧대지고 볼트로 체결되었다.

지붕면의 가새는 정면과 배면의 벽에 붙어 있는 2본 을 제외한 나머지 6본의 플랫(plat)형 트러스가 2쌍씩 연결되어 더욱 안정적으로 지지된다. 트러스 지점의 거 리가 멀기 때문에 6층의 바닥에서는 정중앙을 제외하고 3.6m마다 슬래브바닥에 수직재가 사용되어 지지된다.

이는 7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트러스 부재이면서 7층 슬래브를 지지하고 있는 기둥은 180㎜×90㎜의 ㄷ자형 의 홈형강(Channel Steel)이다.

Figure 24. Roof Truss on

the 6th floor Figure 25. Roof Truss on the 5th floor

Figure 26. Roof Truss Shape of the second

gable

Figure 27. Roof Truss structural Details of the

second gable 중앙을 기준으로 두 번째에 위치한 박공도 워렌 트러 스(Warren Truss)와 변형 핀크 트러스(Modified fink Truss)가 응용되어 제작되었다. 다른 점은 폐단 면(閉斷面)인 각파이프와 원형파이프를 리벳(Rivet)치 기되어 조립된 점과 죌 수 있는 체결철구(締結鐵具)인 가새의 재료로 후크가 달린 철선과 인장을 주기 위한 턴버클(Turn Buckle)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내부의 벽체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적벽돌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다. 가샛플레이트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수 평 및 수직 트러스 부재와 결합된다.

트러스의 꼬리 부분은 벽돌벽의 상부에 각종 철물이 사용되어 고정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벽돌의 강도가 저하되어 트러스의 처짐을 지지해 주는 철물로 보강되 었다. 수평보의 처짐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벽체의 테 두리에 경량철골에 앵커볼트가 고정되고 C형강 2개를 맞붙여서 가로질러 건너댄 다음 약 1.2m의 높이차를 두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부분에 C형강을 수직으로 세워 용접되었다. 신축당시 목재 비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통나무는 내부에서 구조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통나무를 동여맨 새끼줄도 보인다.

3.4 현장 생산 벽돌의 사용

조선대학교 본관이 건립되던 당시, 대부분의 학교 교 사는 적벽돌(赤色壁乭, Red Brick)로 건축하였고 붉은 벽돌의 색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견고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외벽용 치장벽돌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내구 성, 색깔, 질 및 갈라짐의 여부 등인데 본 건물에 사용 된 벽돌은 2급 제품으로서 현장에서 직접 구워 만든 벽 돌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헌상에 교내 벽돌공장의 위치가 명시11)되어 있고 다음의 사진에 보이는 부속중 학교 자리에 벽돌공장이 위치한 것으로 보아 조선대학 교 본관을 짓기 위해 사용되었던 약 640만장의 벽돌은 이곳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벽돌의 현장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량 요인이 벽돌의 모양과 색깔에 영향을 주었고 이 벽돌들을 본관에 사용 함으로서 미관상 건축 초기부터 페인트칠을 했을 것으 로 판단된다.

Figure28.ExposedBrickswithout paintshowsarangeofnaturalcolour

다양한 벽돌의 색깔 (박공 내부)

Figure 29. The ground breaking ceremony

(1947) 뒤에 보이는 적재장소가

벽돌생산공장 벽돌의 자세한 실측치수는 표 3과 같고 의도적으로 제작했던 기준치수는 220㎜×105㎜×60㎜ 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4.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적 가치 4.1 해방 이후 광주건축과 조선대학교 본관 일제강점과 해방, 한국전쟁 및 국토 분단 등 1940~1950년대의 사회적 여건은 우리의 건축을 정상 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건설 산업 의 발전으로 건축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음은 부 정할 수 없다.12)

1945년 서울의 건축계는 조선건축기술단을 결성하여

‘건축에 관한 각종 연구, 조사, 연락 및 지도를 행하여 사계(斯界)의 발전을 도모하고 아울러 건축국책(國策) 에 합력함’을 목표로 하였고 1947년 조선건축사협회를 결성하여 ‘장차 탄생될 신 국가의 명실상부한 건축사가 되기를 지향함’을 기본 목표로 다양한 계획과 활동을 기

11) 조선대학교사편찬위원회, 조선대학교오십년사, 1996, p.89

12) 해방 이후 한국 및 지역 건축계의 양적인 발전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8)

획하였다.13)

그러나 위와 같은 의욕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의 여건은 건축가들에게 이상적인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고 일본이 남기고 간 건축을 그대 로 답습하는데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광주지역도 지역적 한계와 낙후성으로 인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 러졌다.다만 해방 직후 광주지역에서는 학교 건축물을 중심 으로 건축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김한 섭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합동강의실, 조선대학교 본 관 및 약학대학 등을 시작으로 광주교육대학교 부속초 등학교,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등이 건축되었다.

이 시기에는 페디먼트(박공)에 의한 건축의 외관 형 성, 현관의 상부에 루버 및 수직띠의 설치, 좌우대칭, 정면진입, 편복도 등의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형태의 건 축이 유행하였다. 특히 3층 이상의 건축물이 경쟁적으 로 건축되는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 편으로 조적조에 철근콘크리트조가 조합된 구조가 실험 적으로 적용되었고 콘크리트 수직기둥 및 코니스(수평 또는 경사띠)가 선택적으로 사용되었다.

Figure 30. The Word 'Pyramid' to describe the main building was first used by the

Chosun University Newspaper

Figure 31. Main Building photo from the Chosun

University Newspaper (1947)

1947년 조대신문(조선대학교 신문)에는 조선대학교 본관의 건축 배경, 경위 등의 글이 사진과 더불어 실려 있는데,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그 모티브를 얻어 설계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4.2 새로운 구조기법 적용과 건축적 가치 구현 위와 같은 사실을 통해 조선대학교 본관도 당시 건축 가들의 이상이었던 ‘신건축’14)에 대한 갈망과 7만2천 조선대학교 설립동지회의 민족대학 설립이라는 의지가 담긴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13) 천득염외 2인, 광주건축사,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1년 p.150

14) 손석기,1940년대 후반 한국건축에서“신건축”관 련 논의의 성격,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9권 3호, 2003년 p.98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민족대학 설립의 취지와 의지 를 건축적으로 표현하여 인식시켰던 랜드마크적 구성, 조적조 거푸집을 사용하여 기둥과 슬래브의 일체화를 통한 고층 조적조 건축의 구현, 광주지역에서는 최초로 시도했던 철제트러스 지붕틀의 구현 등은 기존에 팽배 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일본 스타일의 건축물에서 탈피 하고자 했던 신건축계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이는 해방이후 비교적 높은 수준을 갖지 못했던 광주지역 건 축계가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성공적인 실험이었다고 평 가할 수 있다.

(실험)시도 건축적 가치와 의의

입지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랜드마크적 구성

형태 서양 고대(피라미드) 및

중세(포인티드아치)의 고전언어를 도입

구조

조적조 거푸집을 사용하여 기둥과 슬래브의 일체화를 통한 고층 조적조

건축의 구현

광주에서 최초로 시도했던 철제트러스 지붕틀의 구현

디자인의창조성

기존의 교육시설의 모방이 아닌 박공을 연속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산세를 따라한

건축 디자인 창조성

트러스 구조를 완전한 이해하고 기술을 응용한 철제트러스

Table 6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Signicance in terms of the main building's location shape,

structure, and design creativity

4. 결론

본 연구는 조선대학교 본관의 특징을 분석하여 당시 일제 식민지의 잔재의 단순한 모방적 건축특징이 아닌 지역 대학건축의 특유한 상징성, 일제 식민지 이후 교 육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산물, 한국전쟁 전후로 건 축물의 자재의 극심한 부족으로 각 재료의 특성을 이해 하고 응용한 건축적 특성, 지역교육시설건축물의 영향 으로 결론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조선대학교 본관은 과거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교육시설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본관 건축물은 산의 형 상을 따라 중앙 박공을 중심으로 연속되어 반복되어짐 으로써 당시에 교육시설물이 중앙의 하나의 박공을 중 심으로 강한 대칭을 이룬 과거 일제식민지의 봉건적 특 징과 대조를 이룬다.

둘째, 조선대학교 본관은 일제식민지 이후 교육시설 의 중요성을 자각한 우리 민족의 열망의 산물이다. 이 는 본관의 위치가 평지가 아닌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지 대가 높으면서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무등산 밑 자락에 위치한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관의 위치성의 비교는 아테네 언덕 위에 위치한 아크로폴리 스가 갖는 신전의 위치로부터 우리는 신전의 신성함, 위엄 그리고 중요함을 알 수 있듯이 조선대학교 본관의

(9)

위치는 당시 해방 후 교육에 대한 우리 민족의 교육에 열망을 나타낸다.

셋째, 조선대학교 본관은 당시의 지역에서 가장 고층 건물인 7층 건물로 과거의 건축기술의 단순한 복제가 아닌 응용한 건축물이다. 과거 목재트러스 지붕을 그대 로 답습하지 않고 철재트러스를 응용한 시공, 영국식 벽돌쌓기를 이해한 조적조 콘크리트 거푸집, 한국전쟁 후 산물인 드럼통이나 P.S.P(Punched Steel Plate) 의 조각을 이용한 보나 슬래브는 지역에서 가장 높은 7 층을 완공하기 위한 각 재료의 특성과 건축물의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고 적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지역건축의 영향성으로써 50년대 같은 지역에 건립된 전남대 인문대 1호관의 영향성을 살펴 볼 수 있 다. 중앙 입면의 수직성은 붉은 벽돌의 조적조 버틀레 스 강하게 강조된 점과 박공의 수직 아치 창호는 조선 대학교의 본관의 수직성을 강조한 기둥과 박공의 포인 티의 아치와도 디자인의 영향성을 고려할 수 있다.

결론을 짓자면 해방 후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은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의 건축 양식,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 건설자재나 자금 부족 등 다양한 부정적 사회적 영향에 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와 확연히 구별 짓는 지역의 정 체성과 민족의 긍지를 반영, 표현된 건축물이다. 이는 일제 식민통치기간의 건축특징인 봉건적, 비과학적,모순 적15)이라는 평가를 사회적, 지역적 특성과 대학교육의 상징성을 반영한 연속되는 입면의 페디먼트,트러스의 철제트러스 응용, 조적조 콘크리트 거푸집은 공업기술 의 응용과 적용으로 극복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는 당시 새로운 건축방향을 지칭하는 ‘신건축’16)의 의미 를 넘어 교육 시설에 대한 지역민의 긍지와 정기의 표 현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Cheon, Deuk-Youm , The 100 years story of Gwangju education facilities, 2002.

2. Historic Gwangju City Archive, The history of Gwangju City Vol 1,2 , 1993 .

3. Gwangju Folk Museum of Art, Meet through Gwangju Historic images, 2007.

4. Institute of Chosun University History, , The 50 years history of Chosun University, 1996.

5. Korea Construction safety Association, Chosun University Safety Inspection Report, 1998.

6. The Kyunghyang Shinmum, April 28 ,2006.

7. Song, Seok-Ki, Korean Architecture Research, Vol 19 No 3, 2003.

8. Dusan Encyclopedia, http://terms.naver.com/doopedia.

15) 손석기,1940년대 후반 한국건축에서“신건축”관 련 논의의 성격,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9권 3호, 2003년 p.100

16) 손석기,1940년대 후반 한국건축에서“신건축”관 련 논의의 성격,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9권 3호, 2003년 p.98

참조

관련 문서

• 대부분의 치료법은 환자의 이명 청력 및 소리의 편안함에 대한 보 고를 토대로

• 이명의 치료에 대한 매커니즘과 디지털 음향 기술에 대한 상업적으로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치료 옵션은 증가했 지만, 선택 가이드 라인은 거의 없음.. •

The English Language Centre The University of Adelaide Level 9, 115 Grenfell Street Adelaide SA 5005 Australia Phone: + 61 8 8313 4777 Fax: + 61 8 8313

Maxwell reduced the entire theory of electrodynamics to four differential equations, specifying respectively the divergence and the curl of E and B.  Since E and B are

12) Maestu I, Gómez-Aldaraví L, Torregrosa MD, Camps C, Llorca C, Bosch C, Gómez J, Giner V, Oltra A, Albert A. Gemcitabine and low dose carboplatin in the treatment of

„ „ Problem: Excessive Leverage & Risk in Problem: Excessive Leverage & Risk in Global Financial System.

Levi’s ® jeans were work pants.. Male workers wore them

The taste-stimulating effect of tasting sampling will depend on: whether the consumer has previously been exposed to the related product (purchasing experience)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