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화이트헤드 철학의 미학적 정립 문제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화이트헤드 철학의 미학적 정립 문제"

Copied!
28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조 경 진*

1)

Ⅰ. 서론

Ⅱ. 미적 범주로서 범주적 제약

Ⅲ. 미적 속성과 느낌의 주체적 형식

Ⅳ. 미적 경험의 특성화 문제

Ⅴ. 결론

Ⅰ. 서론

필자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철학이 다음의 명제를 궁극적인 존재론적 사실로 인정하고 그 기초 위에서 구성되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미(beauty)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 사실이자 목적이다.”

1)

본고는 화이트

* 중앙대학교 강사

* DOI http://dx.doi.org/10.17527/JASA.61.0.04

1)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훌륭한 미학적 저술 내지 미학적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들은 꾸준히 있었다. 미학이나 예술론 비평 내에서의 이러한 관점들이나 평에 대해서는 윤자정, 「A. N.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에서 미적 경험의 의미」, 美學 21권, 1호 (1996), pp. 145-166을 참조하라. 국내에서는 주로 윤자정이 화이트헤드 철학의 미학

(2)

헤드의 철학이 온전히 미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이미 미학적이라는 데 착안해 그의 철학이 어떻게 미학적 서술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영미 분석 미학계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비어즐리가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이미 그 자체로 미학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2)

라고 평한 바 있는 것처럼, 그의 철학은 그 자체로나 혹은 미학적 문제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풍부한 미학적 함축을 담고 있다. 그의 철학, 특히 그의 주저 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

3)

는 직접적 경험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말 하는 경험이 궁극적으로 미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미적 경험을 분석 하기 위한 도구로도 손색이 없다. 나아가 미학이 좁게는 정감적, 감각지각적 경험 의 본성과 구조를 다루는 학문이고, 넓게는 한 사물이나 세계를 느끼는 방식과 그 본성을 다룬다고 할 때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느낌의 이론(theory of feeling)’

(PR 219)으로서 마땅히 미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화이트헤드에 대한 미학적 접근은 화이트헤드의 철학(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지침이나 시사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화이트헤드를 미학적 관점에서 읽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두 핵심 조건과 한 가지 미학적 적용의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화이트헤드가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위해 제시한 범주적 도식은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범주임과 동시에 적어도 미적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범주적 제약(categoreal

적, 예술적 함축을 읽어내려는 작업들을 하였다. 해외의 경우, 화이트헤디안인 도널드 셔번(Donald Shurburne)의 미학적 저작, Whiteheadian Aesthetic: Some Implications of Whithehead's Metahysical Speculation(1961),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을 강도라는 미 적 범주로 분석한, 쥬디스 존스(Judith A. Jones)의 Intensity: An Essay in Whiteheadian Ontology(1998), 가장 최근으로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존재론적 미학, 내지 미학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읽고 있는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의 작업들 을 들 수 있다.

2) M. C. 비어즐리, 미학사, 이성훈, 안원현 옮김 (이론과 실천사 1987), p. 386.

3) Alfred North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ed. David Ray Griffin and Donald W. Sherburne (New York: The Free Press 1978[1929]). 이하 본문 내에서 PR로 약칭.

(3)

obligations)’은 생성 과정의 최종 위상이자 느낌으로서 ‘만족(satisfaction)’이 사실상 미적(aesthetic) 만족이 되도록 하는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미학을 거칠게 감성학이라 할 때,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경험에 대한 가장 세심한 분석을 이론화한 느낌의 이론은 그 자체로 이미 미학 이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느낌의 이론은 느낌에 관한 것인 한 항상 정서적인 주체적 형식(emotional subjective form)을 전제하고 있고, 이렇게 주체적 형식이 경험의 모든 요인 안에 전제되는 한 그 이론은 미학 이론이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미학의 주요 문제 중 하나인 미적 경험의 정의 문제에 대해 어떤 시사를 주는지 논의함으로써,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미학적 정립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성의 기능 The Function of Reason에서 “이성의 기능은 삶의 기술(art)를 증진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적자생존에 따른 진화 개념은 적자생존이 삶의 기술에 대한 최상의 예증이라고 믿는 것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4)

문제는 개체나 종의 진화, 무기물에서 유기물로의 진화, 고등 유기체의 발생과 같은 진화의 전 과정과 그 의미는 단지 환경에의 적응이나 적자생존이라는 투쟁의 관점으로는 온전히,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는 환경에의 적응이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설명은 어째서 물질의 비유기체적 분포에서 생존에 불리한 복잡한 고등 유기체로의 상향적 진화가 (개별 유기체들 간에는 적자 생존의 개념이 적용가능해도) 이뤄졌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존속만 하는데 최적화된 기술은 죽어 있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이와 달리 그는 진화의 의미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진화론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자연이나 우주의 궁극적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진다. 화이트 헤드가 볼 때, 자연 안의 모든 존재는 단지 생존(있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족과 만족의 증대를 위한 활동으로 존재한다. 즉, 유기체의 본성은 환경에 순응 할 뿐만 아니라, 주어지지 않은 새로움을 능동적으로 창출하고 “환경을 조정”하는 4) Alfred North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Boston: Beacon Press 1971[1929]),

p. 4.

(4)

활동에서 찾아진다. 그에게 이 능동적 창조의 활동이 모든 존재의 “실제적 사실”

이다.

5)

이런 설명의 방식이 진화론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밝혀 준다. 존재는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족과 만족의 증대

6)

를 위해 있기에 새로움(환경의 능동적 조정)을 창출하려 한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움은 만족의 한 필요조건이 된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단지 우주에서 하나의 존재가 그 이전의 모든 존재와 다른,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는 과정을 기술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궁극적 사실, 즉 모든 존재는 만족과 더 나은 만족을 위해 생겨난다고 하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존재는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기 위해 존재한다. 만약 그 만족이 미적 만족이라면, 존재론은 미학으로 한 발 더 나아가야 온전해 질 것이다.

Ⅱ. 미적 범주로서 범주적 제약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미학적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 그의 철학 자체를 미학적 관점에서 읽기 위해선, 그의 유기체 철학의 근본 전제와 조건들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화이트헤드가 합생 (concrescence; 존재 생성의 구체적 사실을 지칭하기 위한 그의 조어)의 “창조성을 특성화” (PR 29)하는 범주로 제시한 9개의 범주적 제약은 합생의 과정이 하나의 만족을 얻기 위한 활동임을 천명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들로 제시되었다고 주장 하고, 이것이 어떤 근거에서 그러한지를 논의할 것이다. 우선 그 아홉 개의 범주적 제약은 다음과 같다. ⑴ 주체적 통일성 ⑵ 객체적 동일성 ⑶ 객체적 다양성 ⑷ 개념적 평가 ⑸ 개념적 역전 ⑹ 변환(transmutation) ⑺ 주체적 조화 ⑻ 주체적

5)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pp. 4-8.

6) 화이트헤드는 “이성의 일차적 기능이 환경에 대한 공격의 지도(direction)”라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이 공격은 세 겹의 충동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⑴ 사는 것,

⑵ 잘 사는 것, ⑶ 더 잘 사는 것이다.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p. 8.

(5)

강도 ⑼ 자유와 결정성.

7)

여기선 9개의 범주 중 존재를 ‘새로움’이라는 궁극적 사실로 이끄는 제9범주를 제외하고, (1)-(3)을 먼저 다루고, 이어 합생 전체에서 목적인과 같이 작용하고 있는 주체적 강도의 범주를 설명하고, 이어 나머지 범주를 이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이 범주들 중 주체적 통일성과 객체적 동일성, 그리고 객체적 동일성의 다른 표현으로서 객체적 다양성

8)

은 일차적으로 한 개체가 완전히 결정적이고 정합적인 특성을 갖기 위해 객체들의 편에서 규정된 필요조건이다.

9)

이 세 조건은 한 개체가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만족해야 할 기본 조건을 표현하고 있다 (PR 41). 달리 말하면, 이 세 조건은 작용인의 조건을 규정하면서, 창조성을 특성화하는 9개의 범주적 제약의 토대로서의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7) Noël Carroll, Philosophy of Art: A Contemporary Introductio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9), p. 168. 미학에서는 예술을 미적 경험에 의해서 정의할 때, 그러한 정의를 예술의 미적 정의(the aesthetic definition of art), 혹은 기능주의적 정의라 말한다. 즉 예술 작품은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대상이다. 여기서 미적 경험은 예술작품의 미적 속성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 속성은 크게 통일성(unity), 다양성 (diversity), 강도(intensity) 갖는데, 이 조건들은 연합할 때 미적 경험의 충분조건이 된다. 이 미적 특성은 화이트헤드가 제시한 범주적 제약 중 존재론적 함의만 제거하면 화이트헤드의 것과 거의 같다.

8) 주체적 통일성은 초기 위상에서 여건들의 논리적 무모순성을 의미한다. 초기 위상에서 여건들은 최소한 논리적으로 무모순하고 정합적이어야만 후기 위상에서 가치 평가를 통해 상호 조정할 수 있다. 객체적 동일성은 합생에서 한 객체는 두 번 느껴질 수 없다는 조건이다. 다시 말해, 한 객체에 대한 느낌은 양가적이거나 애매하지 않아야 하며, 오직 하나의 느낌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종의 느낌의 통일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만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한 객체에 대해 두 느낌이 존재한다면, 결국 만족 역시 두 느낌으로 나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객체적 다양성은 객체적 동일 성과 한 쌍을 이루면서 객체적 동일성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각각의 객체적 여건 안의 다양한 요소들은 만약 그것들이 합생을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면, 병합되 어선 안 된다. 만약 이 조건이 없다면, 더 지배적인 기능이 다른 요소들을 포용하고 결국 하나의 요소만 갖는 느낌의 통일이 있을 것이다.

9) William A. Christian, An Interpretation of Whitehead's Metaphysic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p. 27.

(6)

존재의 “생성이 새로움을 위한 창조적 전진” (PR 28)이라고 할 때, 새로움과 만족은 이 세 범주의 토대를 벗어나서는 불가능하다.

10)

그러나 강조하건대, 새롭 다는 것만으로는 만족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만족의 충분조건은 위의 세 조건에 또 다른 필요조건들, 즉 4-8의 범주들이 연합할 때 충족된다. 특히 4-8의 범주적 제약은 생성의 최종 상태로서의 만족을 미적 느낌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위의 첫 번째 세 조건은 창조적 생성의 초기 위상에서 주로 적용되는 조건들이고, 따라서 초기 선행하는 현실적 존재의 객체화(objectification)에 직접 관련된 조건들이다. 하지만, 세 범주 에서는 아직 주체적 측면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반면, 뒤의 5개의 범주적 제약은 합생의 보완적 위상(supplementary phase)과 관련된 것이고, 만족을 미적 만족으로 만드는 핵심 조건들이다.

11)

(4)-(8)의 범주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범주들이 제약하고 있는 보완적 위상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존재의 합생 과정은 크게 두 위상으로 나뉜다.

주어진 다수의 여건에 물리적, 인과적으로 순응하는 물리적 느낌으로 구성되는 호응적, 순응적 위상, 이로부터 주체적, 정신적 작용이 주된 기능을 하는 보완적 위상이 그것이다 (PR 212). 보완적 위상은 주어진 것, 물리적인 것으로부터 정신 적인 새로움과 미적 만족의 강화가 일어나는 위상이기에, 화이트헤드는 이 보완적 위상이 미적 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위상을 “미적 보완 (aesthetic supplement)” (PR 213)의 위상이라 부른다. 화이트헤드가 보완적 위상 10) 이 세 범주가 실상 다자로서의 우주가 새로운 일자로 생성하는 데 핵심적인 조건을 제공하고 있으며, 창조적 새로움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근거는 목적인이 아니라 작용인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문창옥의 「창조적 전진: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 철학 연구 61권 (2003), pp. 123-146을 참조하라.

11)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의 2장을 범주적 도식에 할애하고 있고, 이는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구성하기 위한 핵심 개념들과 범주들이 제시되고 설명된다. 일자, 다수, 창조성과 같은 궁극자의 범주, 현실적 존재, 넥서스와 같은 실존 범주, 27개의 설명 범주, 마지 막으로 9개의 범주적 제약이 그것들이다. 범주적 제약은 위의 책의 pp. 26-28까지 간략 하게 제시되나, 실질적으로 과정과 실재 안에서 지속적으로 설명되며, 나아가 모든 저작을 관류하는 존재론적 조건을 규정한다.

(7)

이라 부르는 위상은 구체적으로, 주어진 물리적 느낌에서 개념을 산출하여 느낌의 한정성을 부여하는 개념적 느낌, 만족의 강도와 객체적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실현 하기 위해 여건을 재규정하는 개념적 역전, 주어진 현실 세계에서 더 많은 자원과 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부터 가능한 달리 될 수 있는 유혹들을 수용 하는 명제적 느낌, 그리고 어떤 특정한 명제적 느낌에 주의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더불어 다른 느낌을 그 느낌 아래 대비시키는 지성적 느낌의 과정들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의 종합 과정이 더 나은 만족을 지향한다는 데 있고, 이는 곧 미적 원리에 의해 통제된다. 특히, 화이트헤드는 개념적 느낌과 명제적 느낌의 위상을 통합해 “정서적 평가” (PR 213)에 의한 정서적 “억제와 강화” (PR 213) 의 위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점에서 이 두 위상은 “순수한 미적 보완” (PR 213)의 위상이라 부를 수 있다.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는 자신이 무엇이 될지를 주체적 지향 (subjective aim)으로 갖는다. 따라서 주체적 지향은 존재가 스스로 어떤 느낌으로 통일될지를 지도하는 목적인이다. 여기서 주체적 지향은 “직접적 주체 안에서, 그리고 관련된 미래에서 느낌의 강도를 지향”(PR 27)하는데, 주체적 지향의 이런 본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주체적 강도(subjective intensity)”의 범주이다.

주체적 강도는 다음의 조건에서 달성된다. 강도는 만족으로 통일되는 여러 느낌 들이 서로를 금지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상호 증진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합생 안의 느낌들은 하나의 대비 안에 놓이기 위해 상호 조정되어야 한다. 주체적 강도의 범주는 화이트헤드가 말한 “균형 잡힌 복잡성(balanced complexity)”의 원리로 달리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강도의 조건이기도 하고, 동시에 만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즉 균형 잡힌 복잡성은 주체적 지향의 범주의 결과물이다 (PR 278). 여기서 복잡성은 느낌들 간 대비, 혹은 대비의 대비(contrast of contrast)의 실현을, 즉 통일의 요소로서 더 많은 영원한 객체들을 가지라는 조건 이고, 균형은 최대한 더 많은 영원한 객체를 다른 느낌들의 대비 안으로 수용하되 그 대비의 한 요소로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 균형은 어떤 영원한 객체의 실현이 기존의 대비에 삽입될 때, 그 대비 안의 다른 요소들을 저해

(8)

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다. 따라서 복잡성은 항상 강도의 증진을 전제한 복잡성이다.

예컨대, 임의의 한 합생에서 물리적 느낌의 요소가 A, B, C, D이고, 이 요소 들은 무모순하다고 하자. 즉 주체적 통일성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느낌으로부터 각각 영원한 객체가 파생된다고 하자. 만약 A의 느낌에서 A가 물리적으로 포함하고 있던 영원한 객체와 다른 영원한 객체 E가 느껴질 때, 이 다른 영원한 객체 E는 분명 복잡성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이 복잡성이 언제나 강도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새로 도입된 영원한 객체 E가 기존의 A, B, C, D 중 어느 것, 혹은 그들이 이루고 있던 대비를 약화시킨다면 강도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균형은 결국 더 큰 강도를 위해서는 대비를 이루는 요소들이 서로 배제하지 않고 상호 증진해야 한다는 원리다. 화이트헤드는 균형을 “동일성과 다양성(diversities)의 조정” (PR 278)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사실 미의 가장 오 래된 고전적 원리인 ‘다양의 통일(unity in varieties)’

12)

이나 ‘조화’의 원리에 다름 아니다.

한편,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범주적 제약인 개념적 평가(conceptual valuation)와 개념적 역전(conceptual reversion)은 주체적 강도의 범주로부터 연역 가능하다. 달리 말해, 개념적 평가의 범주와 개념적 역전은 주체적 강도의 범주에 종속된다. 개념적 평가는 “물리적 느낌으로부터 순수한 개념적 느낌이 파생되는 것”, 이때 그 “개념적 느낌의 여건이 물리적으로 느껴진 결합체(Nexus)나 현실적 존재의 한정성을 규정하고 있는 바로 그 영원한 객체” (PR 26)가 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화이트헤드가 굳이 개념적 느낌의 파생을 개념적 평가의 범주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사실상 모든 개념적 느낌, 즉 영원한 객체를 느낌의 여건으로 하는 느낌(좁게는 순수한 개념적 느낌, 넓게는 불순한 개념적 느낌, 즉 명제적 느낌, 지성적 느낌을 포함한다)의 “주체적 형식은 가치 평가” (PR 248)이다. 또 달리,

12) Bernard Bosanquet, A History of Aesthetic (London: Soonenschein 1892), p. 32. 보 상케에 따르면, 다양의 통일은 오늘날까지 이어진 미적 관념으로서 그리스 미학의 정 수를 표현하고 있다.

(9)

화이트헤드는 넓게 “개념적 경험의 본질은 가치 평가(Its essence is valuation)”

(PR 280)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원한 객체가 개입하는 모든 개념적 작용은 단순히 느낌에 한정성의 형식(form of definiteness)을 부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능동적 가치 평가를 동반한다. 그래서 무엇으로서 한 객체를 느낀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무엇 (what)’인지를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것이 만족이 라는 느낌과 그것의 강도를 위해 어떤 기능과 중요성, 관련성의 등급을 갖는지를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념적 느낌의 기원이 주체적 지향” (PR 27)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정성의 규정이나 그에 동반한 가치 평가의 활동이 실은 주체적 지향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적 없이는 어떤 대상도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결국 물리적 느낌에서 개념적 느낌을 파생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현실적 존재의 만족을 위한 활동이 된다.

개념적 느낌의 파생이 곧 개념적 평가의 활동이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이건 결국 현실적 존재의 만족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고, 모든 영원한 객체는 합생에 진입할 때, 만족을 위한 중요성의 등급과 다른 영원한 객체와의 관계에서 평가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범주적 제약인 개념적 역전도 동일한 미적 원리에 따라 발생한다.

개념적 역전은 “정신적 극의 최초의 위상으로서의 개념적 느낌을 구성하고 있는 영원한 객체와 부분적으로 동일하며 부분적으로 다른 여건을 갖는 개념적 느낌이 파생되는 것” (PR 249)이다. 이 이차적 개념적 느낌은 본래의 개념적 느낌과

“대체로 동일한(largely identical)” (PR 278) 것이다. 정신적 극의 최초의 위상은 순수한 개념적 느낌이 파생한다. 즉 물리적 느낌에 내재한 영원한 객체를 느끼는 일이다. 그러나 합생의 과정에서는 순수한 개념적 느낌 외에 다른 개념적 느낌들이 파생한다. 이 역전된 개념적 느낌들은 순수한 개념적 느낌과 다른 개념적 느낌이 파생하는 경우나 근거 있는 간접적 지각적 느낌이나 근거 없는 지각적 느낌처럼 주체나 객체에서 역전을 포함하는 명제적 느낌을 포함할 수 있다. 또 넓게 보아 개념적 역전의 하나의 범주이기에 넓게 상상적 명제적 느낌이나 유보된 직관적

(10)

판단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핵심은 합생의 미적 만족과 개념적 역전의 범주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다. 개념적 역전은 물리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새로 움을 추구하는 개념적, 정신적 기능이 작동하는 범주이며, 이는 결국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하라는 주체적 강도의 범주에 종속된다. 다시 말해, 균형 잡힌 복잡성의 원리에서 볼 때, 개념적 역전의 범주는 복잡성을 실현하라는 조건에 다름 아니다.

분명한 것은 화이트헤드는 개념적 역전의 범주에 의해 순수한 개념적 느낌과

“부분적으로 동일하고 부분적으로 다른”, 혹은 “대체로 동일한” 영원한 객체가 파생된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역전에서 일부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하는가? 이 또한 주체적 강도의 범주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설명 가능하다. 본래 영원한 객체와 전적으로 다른 영원한 객체는 균형의 원리를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새로 도입된 영원한 객체가 동일성을 보존하지 않는다면, 미리 주어진 영원한 객체들 간의 대비에 포함되면서 대비 전체의 강도를 떨어뜨리거나, 다른 영원한 객체를 저해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주체적 강도의 범주를 다음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영원한 객체가 합생에 진입할 때, 그 느낌의 강도는 그 영원한 객체가 영원 한 객체들 간에 실현된 대비의 한 요소가 되는 경우에 고양된다” (PR 278).

마지막으로 주체적 조화의 범주를 다뤄보자. 화이트헤드는 이 범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념적 느낌들의 가치 평가는 그 느낌들이 주체적 지향에 합치하는 대비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방식으로 상호적으로 결정된다” (PR 27). 달리 말해, 개념적 느낌에는 언제나 개념적 평가가 동반되고 이 평가는 그 개념적 느낌의 내적 구성이 강도 있는 만족을 낳기 위해 개념적 평가를 상호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도 있는 만족을 위해 만약 어떤 개념 요소가 다른 개념 요소에 비해 더 중요하다면 높은 가치 절상(value-up)이 이뤄지고, 덜 중요하다면 가치 절하(value-down)가 일어난다. 이 범주는 또 달리 말하면, 만족을 위해서는 주체적 형식을 상호 조정하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만족에서 주체적 형식이 상호 조화를 이룰 때, 바로 이때 그 조화의 상태를 정의하는 주체적 형식이 진입하고, 화이트헤드는 이 주체적 형식을 ‘미(beauty)’라 부른다. 따라서 ‘미’라는 주관적 종의 영원한 객체는 만족이라는 최종의 느낌의 주체적 형식이 된다. 결론적으로, 경험의

(11)

직접성만을 염두에 둘 때, 위의 8개의 범주적 제약은 결국 현실적 존재의 생성 과정을 미적 새로움이 되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을 규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성의 최종 단계에서 성취된 “강도는 만족의 주체적 형식” (PR 89)이며, 만족은 항상 미적 만족이고, “미적 종합(aesthetic synthesis)” (PR 212)이다.

화이트헤드는 고차적 위상의 의식적 경험 분석을 종료한 후, 범주적 조건은 결국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현실적 사실은 미적 경험의 사실이다. 모든 미적 경험은 동일성 아래 대비의 실현으로부터 생겨나는 느낌이다”

(PR 280). 즉 현실적 존재는 동일성, 즉 하나의 새로운 개별 존재라는 동일성이 성립하는 한에서 언제나 미적 경험을 하나의 사실이자 목적으로 성취하는 존재이다.

Ⅲ. 미적 속성과 느낌의 주체적 형식

미학(aesthetics)의 어원은 그리스어 (aisthesis)로서, 이는 지성적 인식과 구별되는 감각적 지각(sensuous perception)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근대 미학을 정초한 바움가르텐에서도 미학은 지성의 하위 인식 기관으로서 감성적 인식을 특성화하기 위한 학문으로 정립됐고, 이런 전통은 오성과 상상력이라는 인식 능력 간의 자유로운 형식적 유희와 그 결과로서 쾌의 감정으로 미적 판단을 규정한 바 있는 칸트에게서도 이어진다. 헤겔이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규정할 때, 이런 규정이 미학이 되는 이유는 이념이 파악되는 방식이 일차적으로 감각과 그 배열, 그리고 그것이 주는 정서적 느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학이 철학이나 과학과 다른 것은 그것이 대상에 대한 인식적 측면보다는, (미적) 대상으로부터 유발되는 미적 감정과 같은 정감적 활동의 본성을 탐구한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에 미학에서 규정하려는 미적 대상이나 미적 속성은 대상의 실재나 본성적 측면이 아니라, 반응 의존적(response-dependent) 속성들

13)

이다. 즉 미학에서 13) Carroll, Philosophy of Art, p. 157.

(12)

다루는 미적 대상이나 속성은 그 자체의 객관적 대상이나 속성이 아니라, 주체의 정감적 반응 안에 있는 속성, 화이트헤드의 표현대로 하면, 주체적 형식(subjective form)

14)

안의 속성들이다. 화이트헤드의 체계에서 모든 느낌은 다음의 삼 항을 기본 요소로 가진다. 느낀다는 것은 존재가 자기 구성 활동을 할 때, 그 활동의 실재적인 내적 구성 요소들이며, 그 구성 요소들의 종합(대비나 대비의 대비…) 역시 느낌이다.

느낌은 느낌의 여건, 느낌의 주체, 느낌의 주체적 형식으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모든 느낌은 필연적으로 주체적 형식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생성의 내적 구성 요소로서 물리적 느낌, 개념적 느낌, 명제적 느낌, 지성적 느낌, 그리고 최종 단계로서 만족의 느낌 모두 느낌인 한 주체적 형식을 포함한다.

화이트헤드를 따라 다른 현실적 존재가 가진 “양적인 정서적 강도”를 에너지라 부른다면 (PR 116), 정서적 에너지의 벡터적, 물리적 전이 (PR 116)라 할 수 있는 물리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은 선행하는 현실적 계기에서 파악한 여건이 본래 가지고 있던 주체적 형식(“에너지의 형식”)을 반복(물론 완전한 반복이란 있을 수 없다)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에 개념적 한정성의 형식을 부여하는 개념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은 가치 평가이며, 명제적 느낌 역시 판단의 여건이라기보다 일차적 으로 “느낌을 위한 유혹(lure for feeling)” (PR 25), 즉 합생의 목적인으로 주어지며, 동시에 사물들의 달리 될 수 있는 이야기, 이론, 가설, 즉 “객체적 유혹(objective lure)” (PR 185)으로 향유된다. 명제가 향유되는 방식은 “신념(belief)” (PR 267) 이라는 주체적 형식, 혹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모든 정서적 형식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물리적 느낌과 명제적 느낌의 대비로서 지성적 느낌은 의식이라는 주체적 형식을 동반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느낌도 주체적 형식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합생의 전 과정은 이 주체적 형식 안에서 여건들의 종합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합생의 전 과정은 그 초기 위상부터 마지막 위상인 만족의 느낌에 까지 정서적으로 물들어 있다. 합생의 최종 느낌으로서 만족의 여건은 현실적 존재 14) 우리가 느끼는 온갖 정서, 목적, 가치 평가, 감각 여건, 의식, 역작용과 혐오 등이 모두

주체적 형식에 속한다 (PR 35).

(13)

(물리적 느낌)나 결합체(변환된 물리적 느낌), 영원한 객체(개념적 느낌), 명제(명 제적 느낌)라는 여건들의 복합적 통일이지만, 이 통일은 그 여건들에 대응하고 있는 주체적 형식들의 복잡한 통일과 함께 느껴진다 (PR 283).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만족이 주체의 것인 한, 주체적 형식 안에서 여건들의 통일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만족이라는 새로움의 느낌이 결국 그 누구의 것이 아닌 합생하는 주체 그 자신의 느낌인 한, 그것의 핵심 근거는 그 느낌의 주체적 형식이 바로 그 자신의 것이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주체적 형식의 통일을 동반하는 만족의 순간을 일러, 현실적 계기가 “정서적 통일성(emotional unity)으 로서의 절대적 자기 획득의 결정적 순간을 향유한다”

15)

라고도 하는데, 결국 만족의 최종 위상은 주체마다 다른 양적 강도와 특수한 주체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정서적 에너지의 느낌이다. 달리 말해, 존재의 “최종 만족의 주체적 형식은 정서적 복합 체이다” (PR 41). 결국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앞서 보았던 범주적 도식이, 합생이 미적 만족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규정한다는 점에서나, 만족에서 정서적인 주체적 형식의 통합이 그 느낌의 통합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미학적이다.

화이트헤드의 이런 미학적 입장은 그가 자신의 진리관을 실용주의적인 것으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유기체 철학의 진리 관이 대응론과 정합론을 모두 포함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실용주의적 진리관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화이트헤드에게 진리는 기본적으로 현상과 실재의 대응관계를 말한다. 그 현상 속에 있는 것은 믿음, 표상, 명제, 의식의 내용 등이 될 수 있고, 이것이 실재에 대응할 때 진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 대응 관계를 유적(generic) (AI 241)인 것, 즉 포괄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유적 진리관은 이렇게 설명된다. 유적 진리관에서는 두 객체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비록 “어느 쪽도 다른 쪽의 구성 요소가 아닐 수 있으며, 그들의 본성에 있어 다를지라도, 그것들이 서로 공통 요인을 포함하고 있다” (AI 241-242)는 것만으로도 진리 관계에 있다.

15) Alfred N.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The Free Press 1967[1933]), p. 227. 이하 AI로 약칭.

(14)

그런데, 화이트헤드가 이렇듯 진리를 엄격한 대응관계가 아니라, 포괄적이고 유적인 대응관계로 정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서 존재론적 원리는 모든 설명의 근거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존재론적 지위의 근거는 현실적 존재 안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진리 관념도 마찬가지다. 진리 관념은 단지 한 명제와 실재의 대응이 아니라, 합생하는 현실적 존재의 내적 과정 안에서 그것에 근거를 두고 설명된다. 다시 말해, 진리 관계가 유적 특성을 갖는 것은 진리 관계를 평가할 관계 항들이 다른 어딘가에서가 아니라, 바로 존재의 생성 과정 내에 있고, 그 요소들도 궁극적으로 존재의 만족의 느낌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 만족은 앞서 말한 것처럼, 최대한의 복잡성과 느낌의 약화를 배제하는 균형의 원리가 지배한다.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하라는 균형 잡힌 복잡성의 원리는 생성 안의 요소들의 엄격한 대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범주적 제약이 허용하는 한에서 느슨하고 포괄적인 대비로 통일될 수 있다. 이는 물론 더 나은 만족이라는 강도의 범주에 근거한다.

이런 유적 진리관은 화이트헤드가 인간의 실제 지각 작용의 구조로 설명하고 있는 상징적 연관(symbolic reference)의 판별 기준 역시 실용주의적 관점을 따르게 한다. 실용주의적 관점이란 다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상징작용에서 전제되는 공통의 근거는 결국 지각자 안에 있는 것이며, 또 어느 종이 상징이고 어느 종이 의미인지 역시 지각자의 경험 과정에 의존한다. 심지어 상징 작용 그 자체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역시 지각자에게 달려 있다 (PR 181-182). 뿐만 아니라, 그 상징 작용이 주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때, 상징 작용의 옳고 그름은 지각자 안에서의 상징 작용이 그 지각자의 만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즉 상징 작용에 관여하고 있는 두 종이 서로 상대방을 강화하는 대비로 묶일 수 있는지의 여부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경험 내에 상징 작용의 근거가 되고 있는 어떤 요소가 있고 이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두 지각 양태, 즉 순수한 양태로서의 직접적 지각 (현시적 직접성)과 역사적으로 계승된 상징 작용(인과적 효과성)이 있을 때, 그 둘의 상징적 연관 작용은 이 두 원천이 서로 상대방을 강화하여 만족을 극대화 시키는 한에서 옳은 것이 된다 (PR 181).

(15)

Ⅳ. 미적 경험의 특성화 문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여러 미학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미학적 대상, 혹은 미적인 것, 예컨대, 미적 속성(aesthetic properties)과 미적 대상(aesthetic objects) 의 본성과 그 존재론적 지위는 물론이고, 미학에서 가장 핵심적 문제가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s)의 특성화 문제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해명할 수 있다.

미학이 다루는 문제 중 예술 정의론 중, 특히 미적 기능주의(aesthetic functionalism)의 정의는 예술 작품을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정의한다.

미학에서 핵심 문제 중 하나는 예술 작품을 필요충분하게 정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 미적 경험을 정의하는 일이다. 미적 경험의 정의 문제는, 미적 대상, 예술의 정의, 예술의 본질적 기능에 관한 문제들을 그로부터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미적 경험은 다른 일상적 경험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경험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경험 분석이 사실상 현실적 존재의 생성을 위한 미적 조건과 범주, 사실에 관한 분석이라면, 그 분석은 결국 미적 경험에 대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은 미적 경험을 정의하는 데 충분한 도구를 제시 한다. 다만,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은 존재 일반의 경험을 미적 경험으로 분석하고 있어 인간적 수준에서 보다 특수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적 경험을 특성 화하는 데는 미시적이고 원리적인 차원과 거시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함께 고려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예술작품은 이미 거시적 결합체의 수준에서 경험되며, 인간의 미적 경험은 몸이라는 유기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선 온전히 분석할 수 없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적용은 명제, 의식, 몸(인과적 효과성과 신체적 효과성)의 수준에서 이뤄진다.

화이트헤드 연구자 중에서 그의 철학을 직접 미학적 문제에 적용한 경우로 두 주요 저자를 들 수 있다. 캅과 셔번이 그들인데, 캅은 미적인 것을 미적 대상을 중심으로 분석한 바 있고, 셔번은 그의 저서 화이트헤드 미학 A Whiteheadian Aesthetic: Some Implications of Whithehead's Metahysical Speculation

16)

에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기반으로 그것을 온전한 미학 체계로 재구축한 바 있다.

(16)

먼저, 캅은 인과적 효과성을 미적 경험과 미적 대상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유력한 지각 조건으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미적 대상을 분석하고 있다. 미적인 것이 대상의 객관적인 속성임을 논구하고자 했던 캅은 미적인 것으로 인지되는 대상들의 공통적이고 차별적인 속성을 미적인 것이라고 전제하며, 이를 논의의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화이트헤드의 개념들을 빌어와 미적인 것을 객관주 의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요약하건대, 한 대상은 인과적 효과 성의 양태에서 그것을 파악함에 있어 그 파악의 주체적 형식이 미적이라면 그 정도에 상관없이 미적이다. 한 경험은 미적인 대상이 전체 경험의 주체적 형식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정도에 상관없이 미적이다.”

17)

다시 말해, “대상의 한 속성 으로서 ‘미적인 것’은 그들의 형식이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에서 만족스러운 것으로 파악됨에 있어 그 원인이 되는 것이며, 미적인 대상은 현시적 직접성에서 만족스 러운 것으로 지각될 수 있다.”

18)

그는 미적 대상의 객관성을 물리적 느낌, 소위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에서 찾고 있다. 주목할 것은 캅이 단순한 물리적 느낌으로서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가 아니라, 인과적 효과성의 지각 양태의 주체적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학적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한 지각양태가 품고 있는 여건의 측면 뿐만 아니라, 그 여건을 파악하는 주체적 형식이다. 미적 경험은 결국 그 주체적 형식의 조화가 미적 특성을 띠는 경험이고, 따라서 주체적 형식 간의 조화의 특수한 구조와 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미적 대상이나 미적 경험을 정의하는 한 방 식이 될 수 있다. 캅이 주체적 형식의 조화로 규정될 수 있는 미적 경험에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특성을 갖는 인과적 효과성에서의 주체적 형식을 그 경험의 주체적 형식이 조화되는 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 것은 미적 경험의

16) Donald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Some Implications of Whithehead's Metahysical Specula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1).

17) John B. Cobb Jr., “Toward Clarity in Aesthetics”, in: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vol. 18, no. 2 (Dec. 1957), pp. 169-189 (DOI: 10.2307/2104382), p. 177.

18) Cobb, “Toward Clarity in Aesthetics”, p. 181.

(17)

대상적 객관성을 보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사적이다.

반면, 셔번은 캅이 미적인 것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규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것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화이트헤드에게 “미적인(aesthetic)”의 일차적 의미는 합생하는 현실적 존재의 주체적 형식들의 조화의 완전성 (AI 252), 내지 “경험 내의 여러 요인들의 상호 적응” (AI 252)이다. 일차적 의미의 미는 결정적으로 주체적 형식의 최종적 조화, 즉 만족에서 주어지는 것이기에, 단순히 여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결과 내에서 주어진다. 이에 비해 이차적 의미의 미적인 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beautiful)”라고 할 때의 그러한 의미의 미(beauty)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객체적 내용이 일차적 의미의 미적인 경험에 순응적으로 공헌하는 경우(AI 255)다. 이렇게 볼 때, 캅이 말하는 인과적 효과성에서의 미적인 것은 “객체 안의 어떤 요소에 귀속” (AI 256)된다는 점에서 미적 속성의 객관성을 주장할 수 있지만, 기껏해야 이는 이차적 의미의 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차적 의미의 미적인 것이 궁극적으로 일차적 의미의 미적인 것(aesthetic)에 의존한다 (AI 255)는 화이 트헤드의 언급을 간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이 아무리 그 자체로 미적이라고 하더라도 주관이 그 자신의 경험에서 그것을 다른 경험의 여건들과 조화롭게 구성하지 못하면 미적 경험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차적 의미의 미적인 것, 즉 주체적 형식들의 조화라는 미적 원리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화이트헤드 안에서는 실패한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캅은 미적인 것의 객관성을 강조한 나머지, 미적 경험의 일차적 작인, 즉 현실적 계기의 자발 성과 목적성, 주관성을 소홀히 다룸으로써 미적인 것의 본성을 잘못 짚고 말았다.

캅의 주장은 도덕, 종교와 구별되고, 또 철학, 과학 등 이론 영역과 미적 영역을 구별하게 하는 고유한 미적 측면(인과적 효과성에서의 주체적 형식의 주도적 측면)이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경험의 고차적 위상, 즉 지성적 느낌의 위상에서 그 지성적 느낌을 가능하게 하는 지성적 측면이 미적 경험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문제가 있다.

미적 경험은 의식적 경험이고, 의식이라는 주체적 형식이 발생하는 한, 그 발생의

(18)

요건으로서 물리적 느낌과 명제적 느낌의 종합 내지 대비의 작용과 그 특성을 온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은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을 갖지만, 동시에 객체적으로 명제적 측면도 가질 수 있다. 이 명제적 측면은 뒤샹 이후, 개념 미술, 감각, 지각, 이론의 차원 모두에서 철학적 반성을 요구하는 문제적(혹은 철 학적) 예술에 이르기까지 현대 예술의 주요 흐름에서 이미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했다. 미적 경험은 단지 정서적일 뿐만 아니라 명제적이다. 물론 캅의 이론은 신체적 차원과 명제적, 지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과적 효과성은 이미 신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고, 인과적 효과성의 지각 양태가 미적 경험에서 인과적 결정성을 가진다는 주장이 명제적 측면을 배제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캅의 주장을 관대하게 읽는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인과적 효과성은 대상의 미적 측면을 물리적이고 인과적으로 수용한 것이므로, 이 파악의 주체적 형식이 미적이라면 경험 내의 다른 개념적, 명제적 파악들과 그 주체적 형식들은 이에 순응함으로써 경험은 미적 종합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미적 경험의 객관성이 물리적이고 인과적 차원에서 주어진다는 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미적인 것이 대상의 편에 온전히 있다거나, 미적 경험이 인과적 효과성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과하다. 다시 말해, 충분하지 못하다.

셔번은 그의 저서에서 화이트헤드의 명제 개념을 중심으로 일종의 명제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학 이론을 개진하고 있다. 먼저 그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미적 대상 내지 예술 대상(art objects)은 “화이트헤드적인 의미에서 명제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며,”

19)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태의 무의미한 복합체가 아니라 수행된 매체 안에서 객체화된(objectified in the performed medium) 명제이다.”

20)

또한, “어떤 경험이 객체화된 명제에 대한 경험일 때 그 경험은 미적(aesthetic)이다. 이때 객체화된 명제는 경험하는 그 계기의 주체적 지향에 대해 유혹으로서 기능해야 하며, 그 계기는 자신의 고유한 자기- 창조 과정 속에 이 유혹을 받아들여, 파악된 실행 가운데 객체화되어 있는 명제를 19)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p. 107.

20)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p. 111.

(19)

재창조함으로써 비로소 미적 경험을 향유할 수 있다.”

21)

셔번은 이런 주장을 통해 미적 경험은 명제에 대한 파악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럼에도 그 명제는 예술가에 의해 객체화된 명제여야 하며, 또 그것을 미적으로 지각하는 자도 그것을 명제 본래의 기능 그대로 유혹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예술적 명제와 그렇지 않은 명제를 구별하는데, 예술적 명제는 “고유한 매력을 행사하는”

22)

명제이며, 달리 말해 지각자의 경험에서 그 경험의 “주체적 지향을 유혹하는 힘을 가진 명제”

23)

여야 한다. 결국 미적 경험은 예술가가 매체를 통해 예술작품 안에 객체화한 명제를 관객이 그 자신의 경험을 위한 유혹, 즉 주체적 지향으로 삼아 추체험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결국 관객이 예술가의 미적 체험의 상태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셔번의 이러한 주장은 전통 미학에서 나타나는 미적 경험의 주관성과 객관 성의 이분화 문제를 훌륭히 해소하고, 또 예술작품이 명제의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고 설명함으로써 예술작품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들에 충분한 시사를 줄 수 있다. 셔번은 특히 명제적 특성을 갖는 현대의 많은 문제적, 철학적 예술 작품을 설명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셔번 역시 명제적 측면이 예술의 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미적 경험을 올바로, 충분하게 특성화하기 위해서는 화이트헤드의 다음과 같은 발언들에 주목해야 한다. 의식 “그 자체가 이미 가장 낮은 단계의 예술의 산물” (AI 271)이다. “경험에서 예술을 가능하게 요인은 의식” (AI 269)이다. “예 술이 성장함에 따라 정신성의 모험은 실존의 물리적 기초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AI 272)라고 말할 때, 또 예술은 성질들의 한갓된 구성이 아니라 “느낌의 깊은 심층부에 호소함으로써 그것을 경험하는 감상자의 경험 속에 불멸하는 개체들이 나타나도록 창조해야 한다” (AI 282).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에서 의식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보자. 미학이

21)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p. 143.

22)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p. 118.

23) Sherburne, A Whiteheadian Aesthetic, p. 124.

(20)

최소한 고등 유기체의 수준에서 거론되는 것이라면, 미적 경험과 예술은 의식적 수준을 최종 위상으로 하는 경험에서 다뤄져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인간적 수준 에서 미적, 예술적 경험은 의식을 필수 조건으로 한다. 이 말은 단지 예술적 경험이 의식적인 경험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의식이 예술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자,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한가?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어떻게 생기는지, 또 의식이 생기기 위해 지성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식은 지성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이다. 지성적 느낌은 물리적 느낌과 명제적 느낌의 대비의 느낌이다. 다시 말해, 지성적 느낌은 무의식적 수준의 명제적 느낌을 다시 한 번 물리적 느낌과 대비하면서 생기는 느낌 이다. 문제는 지성적 느낌에서 지성의 일차적 기능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지성적 느낌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은 윤곽을 선명(sharp-cut)하게 하는 것이다. 지성적 느낌은 이 방식을 통해 추상적 가치평가를 제한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은 결국 한정된 논리적 주어들과 관련된 가능태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이 논리적 주어들이 다른 파악들에 근거하여 흥미의 주된 관심사가 되는 한에서, 명제는 창조적 활동을 조건 짓는 하나의 유혹이 된다. 달리 말해, 그 명제의 파악은 주체적 지향의 변경에 영향을 준다 (

PR

272-273).

우리의 경험에서 명제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성적 느낌은 다른 수많은 논리적 주어와 명제들 사이에서 어떤 논리적 주어와 명제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다른 것들에는 가치를 제한한다. 즉 지성적 느낌에서 지성은 주의-집중의 기능을 한다. 지성은 어떤 것을 선택하기에 지성이고, 다른 것들을 버리기에 지성 이다. 어떤 명제와 논리적 주어에 대한 집중이 바로 지성의 일차적 기능이다.

의식은 이런 주의 집중의 산물이고 그 주체적 형식이다. 지성의 역할과 의식의 본성은 미적 경험의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미적 경험은 인과적 효과성(신체적 효과성)의 주체적 형식(달리 말해 물리적 느낌과 그 주체적 형식)이

(21)

의식이라는 주체적 형식이 출현하는데 지배적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과 명제적 유혹(주체적 지향의 내용, 즉 느낌의 유혹으로서 명제의 기능뿐만 아니라 객체적 유혹 모두에서)의 조건의 결합이 충분조건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물리적 느낌과 그 주체적 형식에 호소함으로써 바로 그로부터 명제(불멸의 객체)가 출현 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자 미적 경험이며, 바로 그런 한에서 예술은 실존의 물리적 기초에 다가가게 된다.

직접적 주체 안에서 정신적 작용들은 그 주체의 최초의 여건으로부터 얻어 질 수 있는 만족과 관련하여 그 주체의 주체적 지향을 성취한다. 이렇게 해서 작용인인 현실 세계로부터 파생된 결단은 목적인인 주체적 지향 속에서 완성 된다 (

PR

277).

실재, 그 실재로부터 현실적 계기가 생겨나며, 그로부터 현실적 계기의 정서의 원천이 파생되며, 그로부터 그 현실적 계기의 목적들이 계승되는 그러한 실재 (

AI

280).

셔번은 예술 작품에 객체화된 명제가 주체적 지향의 유혹이 되는 것이 미적 경험의 조건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 존재의 물리적 기초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 객체화된 명제가 미적 경험을 위한 주체적 지향이 된다 해도, 그 주체적 지향은 최초의 여건, 즉 물리적 여건(인과적 효과성과 신체적 효과성의 양태의 여건)과 그로부터 주어지는 주체적, 정서적 형식에 조건 지워져 있다. 주체적 지향도 현실 세계의 엄중한 물리적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주체적 지향은 현실적 조건 안에서 이상이지, 그것을 초월한 이상이 아니다. 현실적 존재의 경험이 결국 정서적 만족이라 할 때, 그 정서적 느낌의 기초, 원초적 토대는 물리적 느낌으로부터 파생되는 정서이며, 바로 그런 정서가 지배적인 한에서 미적 경험이 성립한다. 결국 미적 경험은 물리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이 지배적인 한에서 그 느낌과 대비되는 명제적 느낌과 그 주체적 형식이 조화와 대비를 이루는 의식적

(22)

경험이다.

이때, 그 미적 경험이 신체를 갖는 고등 유기체의 것인 한, 미적 경험에서 물리적 느낌과 그 주체적 형식이 핵심적 기여를 한다는 것은 미적 경험에서 신체가 차지하는 위치와 기능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화이트헤드는 신체를

“복잡한 증폭기(complex amplifier)” (PR 119)라 말하는데, 여기서 복잡한 증폭이란 감각여건을 물리적으로 반복하는 데서 생기는 정서적 강도의 증폭을 의미하고, 그런 반복이 주는 강도의 무게는 감각이 의식에 하나의 표상으로 떠오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화이트헤드는 “모호성은 변환된 느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 반복의 힘에서 생기는 강도는 이 변환된 지각으로 하여금 그 이상의 통합에 있어서 의식을 주체적 형식 내의 한 요소로서 획득하는 유력한 유형의 느낌이 되도록 한다” (PR 253)고 말한다. 즉 신체를 가진 고등 유기체에서는 물리적 느낌이 의식을 형성하는 데 더 유력한 기제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도 물리적 느낌(인과적 효과성과 신체적 효과성)은 미적 경험을 위한 핵심적 필요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Ⅴ. 결론

이 글에서 필자는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존재의 생성 과정에서 그것의 목적과 구조, 원리가 미적 원리에 의해 지도된다는 점을 들어 크게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미학의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으며, 작게는 그의 경험과 느낌에 관한 이론과 그 내적 원리는 미학적 서술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가 한 존재가 우주에 없는 새로운 개체로 탄생하기 위한 조건을 규정하고 설명하는 범주적 도식과 범주적 제약은 그 자체로 존재론적 범주와 조건 이자 동시에 미적 범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논의했다. 범주적 제약은 한 현실적 존재가 새로운 개체로 태어나게 하는 조건임과 동시에 현실적 존재의 활동을 더 큰 미적 만족을 추구하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충분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23)

바로 이런 한에서 한 존재가 최종적으로 개별성과 완전한 주체적 새로움을 획득 하는 순간이자 생성의 최종 위상으로서 만족의 느낌은 곧 미적 만족이자 미적, 정서적 통일성의 느낌이다. 한 존재는 이 만족의 느낌에서 자기 자신을 미적으로, 정서적으로 향유한다.

다른 한편, 한 존재의 생성의 전 과정은 미적 원리에 의해 지도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모든 느낌의 활동(합생의 구성 요소로서 각각의 느낌과 그것의 종합)이 그 본성상 필연적으로 주체적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느낌의 최초의 위상에서 느낌의 최종 위상으로서 만족에 이르는 느낌의 전 활동은 여건을 주체적으로 자기화하는 과정이며, 주체적 형식은 느낌의 사적 영역을 보장해 주는 근본 요소이다. 주체적 형식은 느낌의 주체적 능동성, 정서적 특성, 강화와 억제라는 가치 평가의 성격을 갖기에 그 자체로 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생성의 활동 전체는 어떤 경우건 이 주체적 형식들과 그 주체적 형식들 안의 여건들이 어떻게 통일되는지에 대한 미학적 고려 없이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나아가 미학적 고려는 어째서 명제가 진위 판단의 요소라기보다 일차적으로 느낌을 위한 유혹으로 향유되는지, 왜 진리가 유적 특성과 실용주의적으로 고려 안에서 판단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화이트헤드의 경험 분석과 느낌의 이론이 그 실상에서 미적 경험의 분석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라 할 때, 그의 이론은 미학에서 핵심적 문제인 미적 경험의 특성화 문제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해명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필자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원용하여 미적 경험을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그가 생성의 과정적, 유기체적 본성을 강조했음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생성은 주어진 물리적 제약과 기초 위에서 시작되며, 이 요인은 정서적 만족의 원초적 요인이자, 생성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유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미적 경험의 분석에서 이 원초적 요인은 다른 모든 요인의 견실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 견실성이 미적 만족의 강도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여기엔, 만족의 폭과 강도를 위해 가능한 영원한 객체(명제적 요소)를 새로움의 요소로 적극 도입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배제, 집중, 주의라는 지성(혹은 서론에서 말한

(24)

이성)의 기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 유기체의 경우. 미적 경험은 인과적 (신체적 효과성)이라는 물리적인 정서적 토대 위에 이 새로움의 요소가 집중적으로 대비될 때 발생하는 강도 있는 의식의 양태라 설명할 수 있다.

24)

* 논문투고일: 2020년 8월 11일 / 심사기간: 2020년 8월 16일-2020년 9월 11일 / 최종게재 확정일: 2020년 9월 12일.

(25)

참고문헌

문창옥, 「창조적 전진: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 철학연구 61권, 2003, pp.

123-146.

윤자정, 「A. N.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에서 미적 경험의 의미」, 美學 21권, 1 호, 1996, pp. 145-166.

Beardsley, Monroe C., 미학사, 이성훈, 안원현 옮김, 이론과 실천사 1987.

Bosanquet, Bernard, A History of Aesthetic, London: Soonenschein 1892.

Carroll, Noël, Philosophy of Art: A Contemporary Introductio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9.

Christian, William A., An Interpretation of Whitehead's Metaphysics, New Haven: YaleUniversity Press, 1959.

Cobb, Jr. John B., “Toward Clarity in Aesthetics”, in: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vol. 18, no. 2, Dec. 1957, pp. 169-189 (DOI:

10.2307/2104382).

Sherburne, Donald W., A Whiteheadian Aesthetic: Some Implications of Whithehead's Metahysical Specula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1.

Whitehead, Alfred N.,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1929), ed.

David Ray Griffin and Donald W. Sherburne, NewYork: The Free Press 1978.

______, The Fuction of Reason(1929), Boston: Beacon Press 1971.

______, Adventures of Ideas(1933), New York: The Free Press 1967.

참조

관련 문서

發熱 惡熱 自汗 口渴 喘 小便短赤 心煩 舌紅 舌苔黃燥 脈洪數. 潮熱 便秘 泄瀉 황٠취 腹脹 腹痛 拒按

- 화가들은 미학적 기능을 넘어 예술이 대다수 민중의 도덕적 사회적 교육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 - 미술은 모든

동일한 무게를 반복해서 들 수 있는 횟수가 많거나, 동일한 상태를 유 지하면서 계속해서 들 수 있는 시간이 길수록. 근지구력이

• CLEs 모형의 주요 원리와 요소를 이해하고 수업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 4CID 모형의 주요 원리와 요소를 이해하고 수업설계에

문자와 식 영역의 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은 문제 상황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 일반화된 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특히 식의 전개 .... 와

총 20차시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디자인씽킹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실생활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 파악하고 직접 해결해나가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본 프로그램을

그림 2에서는 학습을 하는 training model에, 그림 3에서는 최종 작곡을 하는 composition model에 각각 Attention mechanism을 적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적인

즉,다양한 감정이 표현된 미술작품을 보면서 풍부한 정서를 기를 수 있고 감상 후에 갖게 되는 미적 정서의 고양은 심리적 만족감과 안정감을 갖게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