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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실천으로서 공공미술 연구-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ysztof Wodiczko)의 작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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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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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20.12.10 심사기간_2021.01.01-14 게재확정일_2021.02.10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1.28

공론장 실천으로서 공공미술 연구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ysztof Wodiczko)의 작품을 중심으로- A Study on Public Art as the Practice of Public Sphere -Focusing on Krysztof Wodiczko's Works-

주세균,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과 / 김영호(교신저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Ju, Se kyun_Graduate School of Art Science, Chung-ang University /

Kim, Young ho(Corresponding author)_School of Fine Art, College of Arts, Chung-ang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1.2. 연구 방법

2. 확장된 개념으로서 공공미술 2.1. 탈 물질적 공공미술 2.2. 행동주의적 공공미술

2.3. 공공미술을 통한 공론장의 형성

3. 공론장 형성을 위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공공미술 3.1. 프로젝션 시리즈

3.2. 기구, 운송수단 시리즈

4. 결론

4.1. 공적 공간의 전유 4.2. 행동주의

4.3. 비평적 공론장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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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실천으로서 공공미술 연구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ysztof Wodiczko)의 작품을 중심으로- A Study on Public Art as the Practice of Public Sphere -Focusing on Krysztof Wodiczko's Works-

주세균,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과 / 김영호(교신저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Ju, Se kyun_Graduate School of Art Science, Chung-ang University /

Kim, Young ho(Corresponding author)_School of Fine Art, College of Arts, Chung-ang University

요약

중심어 공공미술 공론장 사회적 이슈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본 연구의 목적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을 통해 공공미술이 만들어내는 공론장의 가능성을 확 인하는 데 있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증가하 고 있다. 연구자는 이 갈등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을 공공미술에서 찾고 있 다. 특히 논문에서 다룰 크지슈토프의 두 가지 작품 시리즈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연구 방법은 물리적 장소성에서 공공가치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공공미술의 과정을 시간적 순서로 살펴볼 것이다. 특히 한스하케, 액트업, 리처드 세라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현재 공공미술이 보여주는 탈 물 질적이고 행동주의적 방향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가능성을 보디츠코의 작 업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프로젝션 시리즈>는 사회적 이슈와 시의성을 가진 건물이나 기념비를 선 택하여 그것의 가시적 · 비가시적 구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영상을 투사하는 작업이다. 공 간과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기구, 운송 수단 프로젝트>는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들과 이방인들과 함께 고안한 기구로 도시 곳곳에서 이들이 직접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론 에서는 보디츠코의 작업의 영향력을 공적 공간의 전유, 행동주의, 비평적 공론의 장으로서 정리하였 다. 보디츠코는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및 합의를 넘어, 기존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의 의견을 가시적 형태로 전환시킨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생성되는 공론장은 작가와 참 여자, 일상적 공간 사용자를 비롯한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며, 작업의 완결과 무관하게 지속되기 도 한다. 열린 구조를 지향하는 그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Keywords public art public sphere social issue Krzysztof Wodiczk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possibility of the public sphere created by public art by looking into Krzysztof Wodiczko’ art works. Today, all things change fast. In this circumstance, conflicts between social members are on the constant rise. This researcher considers public art to play a role as the public sphere for finding causes of these conflicts and resolving them. In particular, it is considered that Krzysztof’s two artwork series discussed in this study show the possibility of public art. As for the research method, the process of the public art changing from physical placeness to the area of public value is analyzed in temporal order. In particular, through the process of connecting to Hans Haacke, Act Up, and Richard Serra, the post-material and activism-oriented direction of the current public art is analyzed. In addition, the possibility of the public sphere defined by Jürgen Habermas is looked into on the basis of Wodiczko’ artworks.

<Series of Projections> are the artworks of projecting the images showing implicit ideologies of visible and invisible structures after buildings or moments with social issues and timeliness are selected. <Instruments, Transportation Project>, which was created to overcome temporal and spacial limits, was aimed at communicating directly with urban citizens through the instruments designed together with the socially disadvantaged homeless and aliens. In conclusion, the influence of Wodiczko’s work is summarized as possession of public space, activism, and critical public sphere. Wodiczko goes beyond the diverse collection and consensus of members of society, converting previously unseen socially disadvantaged people who failed to get attention and their opinions into visible forms. The public sphere generated in this work process expands to artists, participants, ordinary space users, and then to the entire community, and remains regardless of the completion of the artwork. Through his artwork pursuing an open structure, it is possible to find the possibility of public art.

이 논문은

2018년도 중앙대학교 CAU GRS 지원에 의하여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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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미술은 작가, 행정, 시민이라는 큰 세 축의 지렛대 사이에서 왕복하고 있다. 하나의 유행처럼 현재의 공공미술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기게 된다.

왜 이 시대에 공공미술이어야 하는가? 연구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높아진 시민의식이다. 한국 사회에서 불과 몇 년 전 시민들은 광장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공공적 담론을 만들어 냈다. 시민이 수신자의 역할을 주로 담당 하던 문화의 민주화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는 문화 민주주의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Im, Y., & Lee, J., 2019, pp.141-142). 시민들은 자기 집 앞에 놓이는 관성적 공공미술과 사진 속 배경에 머무르거나 마치 상품처럼 소비되는 벽화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이유는 공공미술이 장소의 특정성으로 연결되는 담론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현대사 회는 모든 것들이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이다. 디지털 사회는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지만, 이 때문에 도시들의 이미지는 서로를 닮아 가고 있다. 마치 백화점에 진열 된 물건들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표준적인 것들만을 올려놓는 공간 이 되어 버렸다. 공공미술은 이런 지점에서 지역적으로 구별되는 특성을 확인하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시민들은 공공미술 작품 제작을 위한 논의 단계를 통해 해당 지역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며, 해결점을 모색하기 위한 공론장을 만들 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공공미술’에 서 ‘공공’의 개념과 지향점을 재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자는 특히 보디츠코 의 프로젝션 시리즈와 기구, 운송수단 시리즈의 분석을 통해, 미술에서 공론장의 가능성을 확인 해보고자 한다.

1.2. 연구 방법

2장에서 19세기 이후 공공미술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룬다. 도시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과정에 서 미술관과 국가 시스템을 통하여 만들어지던 모더니즘적 공공미술의 과정을 설명하고, 이후 미술에서 진행되는 탈물질화의 영향이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의 작품에서부터 1987년의 액트-업(ACT-UP)과 같은 행동주의 미술로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해 나간다. 또한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1938~)의 <기울어진 호>(1981)를 통해 촉발되는 ‘공공성’의 문제를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Jurgen, H., 2001, p.104) 개념으로 설명한다.

3장에서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 1943~)가 작품을 통해 실현하는 개입 적이고 행동주의적 과정이 어떻게 공론장을 만드는지 설명한다. 그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프로젝션 시리즈는 공공 건축물의 외벽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투사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디츠코는 사회의 불평등한 질서와 체계를 건축물의 구조를 통해 경험해왔다고 말한 바 있다. 프로젝션 시리즈는 건축물의 구조 내에 정박된 정의와 의미의 연결 고리를 전복시키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그 다음으로 살펴 볼 기구와 운송수단 프로젝트는 프로 젝션 시리즈가 가지는 시·공간적 제약을 해결하고 소통을 통하여 공론장을 형성해 나간다.

1970년대 후반부터 뉴욕시는 도시 재건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낙후 지역의 각종 재개발 사업들은 결과적으로 임대료를 상승시켜, 중ㆍ하류층인 원주민들이 거주지를 잃 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문제를 만들어냈다. 보디츠코는 이러한 도시 재개발 사업이 야기한 노숙 자, 이방인들의 문제를 사회 변화의 중심적인 사안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움직이는 <노숙자 수레>(1988~1989), <자율 방범차>(1991), <외국인 지팡이>(1992) 등을 통하여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4장에서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를 중심으로 공공미술의 공론장 개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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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공공미술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장소 특정성<Site-Spacific>(Kwon, M., 2002, pp.84-85)이 라는 단어는 넓은 의미에서 포괄적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본 글에서 연구자는 ‘Site’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정의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푸코는 20세기를 공간의 시대로 정의한 다. 여기서 공간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공간(place)’이나 문화적 내용과 가치로 채워진 ‘공간 (space)’이 아닌, 좀 더 확장된 의미로서 상호간의 관계를 전제로 한 ‘장소(site)’의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Lee, J., 2009, pp.6-7). 공공미술과 관련하여 연구자가 주목하 는 공간은 바로 이 ‘장소’이다.

미술 작품과 공간의 관계는 미술사의 특정 시점들마다 조금씩 변화해왔다. 현대 미술에서, 완성 된 작품들이 화이트큐브의 공간 안에 놓이게 될 때, 대부분, 작품은 그 공간과 무관하다. 이러한 관계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가 모더니즘 시기이다. 작품은 장소의 관계성과는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었고, 특정 작품이 다른 장소에 옮겨지더라도 장소가 작품의 의미 구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특히 모더니즘의 추상 작품들은 시·공간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무장소성’을 나타 낸다(Lee, J., 2009, p.22). 이후, 미술 작품들이 화이트큐브의 갤러리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서, 미술 작품과 장소의 관계가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만들어 낸, 지나가 는 시민들과 미술 작품의 거리에서의 대면은 필연적으로 미술 작품(혹은 그 이상)에 대한 공론 장을 만든다. 확장된 공공미술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이다.

2.1. 탈 물질적 공공 미술

공공미술의 초창기 형식은 설치 장소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접근이나 관람자에 대한 고려보다 는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미술가 개인의 명성과 심미적 조형성 등이 중요하였다. 가장 대표 적인 작가로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의 작품에 서 추정할 수 있듯이 완성된 작품들은 그것이 설치된 공간과는 전혀 무관하였다<Figure 1>.

이러한 초기 모더니즘 조각품들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플롭 아트’, ‘광장의 똥 덩어리’

등 다양한 비난의 중심에 선 초기의 공공미술은 작품이 단순히 갤러리 혹은 미술관의 내부에서 그 외부로 물리적으로 이동하였을 뿐, 장소성(Site)과 시의성(Timeliness) 등에 의해 추동되는 의미 작용으로 확장되지 못하였다. 구체적으로, 공공미술의 제작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예산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필요하였다. 특히 기업들은 세금 감면과 같은 실익을 위해서 공공미술 지원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는 공공미술이 궁극적으로 자본에 잠식되 도록 하는데 일조하였다(Kwon, M., 2002, pp.96-97).

이후 미니멀리즘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부터 장소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기 시작한다(Kwon, M., 2002, pp.14-15). 당시 제도 미술 비평가들은 현상학에서 다루는 공간의 중립성과 ‘순수성’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탈 물질화’ 혹은 ‘대안 공간’과 같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미술을 지지하였다. 1960년도에서 1970년도에 크게 유행한 설치미술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작품들은 분해되고, 재배치되고, 재조합됨으로서 작품과 장소의 관계성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편, 오브제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일련의 시도는 작가의 권리와 미술계의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방식의 미술 흐름도 만들었다. 예를들어, 독일의 조각가이자 설치 작가인 한스 하케는 장소성을 미술로 끌어 들이고 비평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1969년과 1970년에 제작된 하케의 작품에서는 장소를 제도 비판적 도구로 사용하는데, <갤러리를 주로 가는 사람들의 탄생지와 거주지 자료>(1969)는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그는 뉴욕에서 50마일 안쪽의 지역, 미국, 세계 지도를 붙여 놓고 관광객들이 자신의 출생지에 빨간 색 핀을, 현재의 거주지에 파란색 핀을 붙이도록 하였다. 1년 뒤 1970년 당시 시작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732개의 건물 사진을 찍고 위치 정보를 적어서 갤러리에 설치하였다. 결과적 으로 뉴욕의 부유층들이 주로 사는 곳에서 갤러리 방문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미술의 얼마나 제한된 방식으로 교육되고 향유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능력이

<Figure 1> Alexander Calder, <Eagle>,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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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한정된 시민만이 미술에 접근가능하다는 것은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다(Foster, H. &

Krauss, R. et al., 2016, p.621). 한스 하케의 작업은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들어진 설치 미술이었지만 미술 작품이 외부의 장소성과 관계를 설정하고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의미를 논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한스 하케는 작업에서 자료 조사와 자료 수집 과정 등, 과정 전체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전시를 만들었고 이러한 형태의 작업들은 이후 행동주의 미술과 같이 새롭게 논의 되는 공공미술의 형식성에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리고 미술이 사회 내에서 수행 할 수 있는 공적 기능에 대해서도 영감을 불어 넣었다.

2.2. 행동주의적 공공미술

행동주의 미술은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적 측면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1960년대를 기점으 로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 68운동 등이 촉발되었고, 이후 진행되는 유럽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은 인권 평등과 성해방 등의 사회 운동들을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또한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반자본주의 정서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사회개혁 운동 등 진보적 성격의 사회 운동이 연달아 일어나게 된다(Foster, H. & Krauss, R. et al., 2016, p.707).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미술을 통하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동시대의 어두운 지점을 수면으로 올렸다.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계급투쟁과 노동 운동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사회적 이슈를 미술 실천의 중심에 두면서, 대중과의 소통이 작업 에서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행동주의 미술은 소통을 통해 공공의 영역에 접근하고자 한다.

‘행동주의적 공공미술(Activist Public Art)’은 이때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들의 작업은 대부분 한시적인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 등의 형식을 취한다(Kwon, M., 2002, p.44).

행동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예는 1987년 형성된 액트-업과 관련한 그룹들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Figure 2>. 그들은 에이즈 확산에 무관심한 정부를 비판하고 동성애 탄압을 알리기 위해 조직적이고 게릴라적인 작업 방식을 선택한다. 액트-업은 당시 미국 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각기 다른 명칭으로 활동하였는데, 1980년대에는 전체 회원 수가 수천 명에 달하였다. 그들은 동시대 예술 장르에서 쓰이는 장비와 효과를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하였다. 포스터를 제작할 때에는 기존의 기업 광고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고, 언론과 경찰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티셔츠나 배지, 스티 커 등도 선전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2.3. 공공미술을 통한 공론장의 형성

1981년 뉴욕의 맨하튼 연방 광장에 놓인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1981~1989)는 공공 미술에 대한 다른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 작품의 설치와 해체 과정은 미술의 시의성, 미술 작품 과 공간과의 관계, 관람자 등의 다양한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라는 광장 을 가로 지르는 높고 긴 철벽을 만들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한 거주민들의 평가는 부정적이었 다. 그동안 항상 광장을 사용해왔던 시민들은 <기울어진 호>가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시청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었다. 이후 이 작품을 둘러싼 논쟁은 법정 시비로 이어졌고, 결국 1989년 에 철거되었다<Figure 3>.

현재 <기울어진 호>는 공공성을 띄는 조각이라기보다는 작가 주의적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민들은 <기울어진 호>, 혹은 세라가 공간을 독선적 형태로 점유했다고 느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공공미술’에서 ‘공공’의 의미를 재고하기 위한 새로운 논의가 이루어졌다.

작품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과 탄원서, 청문회는 그동안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대중 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즉각적으로 치열한 공론의 장을 형성했다. 예술가 그리고 시민들이 공공미술의 새로운 조건과 공적 장소 자체에 대한 고민 을 시작하면서 이를 통해 활발한 논의와 담론이 형성되었다(Kwon, M., 2002, p.117).

이후 미술가들은 특정한 장소와 연결되는 작품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1970

<Figure 2> ACT-UP, 1987

<Figure 3> Richard Serra,

<Tilted Arc>, 1981-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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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이후 인종 문제, 여성 문제, 노동자 문제, 세대 간 문제 등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공론장 형성의 필요성이 미술의 영역에서는 특히 공공미술로 확장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미술 제작에 참여하는 미술가들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문제와 역사의 문제 혹은 지역 정체성의 문제들을 주요 이슈로 다루 어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 중간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들 모두를 공공미술의 일부로 흡수하 였다. 세라에 의해서 촉발된 공공미술 내 공론장의 개념은 이후 여러 작가들을 통해서 현재까지 도 이어지고 있다. 미술가들은 기업의 후원에 종속되는 위치에서 벗어나, 지역민들과의 지속적 인 소통을 통해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연구자는 여기서 공론장의 개념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공론장 개념을 최초로 주장한 것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1929~)이다. 하버마스는 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에 내재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공론장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최초의 공론장 은 유럽의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시작되었다. 18세기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당시 영국의 커피 하우스나 프랑스의 살롱과 같은 공간들에서 예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지적 교류를 활발히 이어갔다(Kim, S., 2014, p.54).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공간의 등장은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확인하게 했고,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공공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커피 하우스나 살롱에서 출발한 공론장은 물리적 공간 이상의 개념으로 확장되었 다. 공론장은 시민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거나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하면서 국가 권력 과 시민 사이를 매개하는 중요한 담론 공간이 되었다.

공공미술에서 공론장은 확장된 공공성을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미 술에서 공론장 개념은, 단순히 미술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간극을 이해하고 협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Jürgen, H., 2001, p 127). 공론장이 열려 있는 만큼, 공공미술 또한 열린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3. 공론장을 위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공공미술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사회비판적인 이슈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는 개념적, 제도 비 판적 미술의 전형을 보여 주는 작가이다. 보디츠코는 특정 이슈가 공적인 영역에서 드러나고, 그 논의가 지속되고 확장될 수 있도록 작업을 설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여러 작품들은 공공미술이 지향하는 공론장을 활성화시킨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디츠코 의 작업은 ‘개입적 공공미술’(Kwon, M., 2002, p.117)의 특성과 한시적이지만 공론의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시적인 공공미술‘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Foster, H. & Krauss, R. et al., 2016, p.709). 그는 오랜 시간동안 ‘미술의 공공성’에 대해 일관적 태도로 집요하게 질문해왔다. 보디츠코는 중심과 외부, 제도와 비제도, 변해 가는 공공성의 과정에서 자신의 작품이 질문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이 기존의 고정된 질서와 가치 체계 내에서 끊임없이 작동하여 사회적 의식을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보디츠코는 공적 장소를 이미 해결하기 힘든 갈등의 영역으로 인지한다. 그래서 그는 양보와 통합이라는 해결책보다는 ‘비적대적 경쟁’의 형식 속에서 활발하게 담론을 생산해 내는 것이 진정한 공공성 을 만드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보디츠코의 작품은 사회적 약자에게 초점을 맞추며,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한 공론장을 만들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양보와 통합을 통해 결론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포착되는 의견들은 책임감 있으며 비평적 경합을 이루는 ‘공론장’을 형성한다(Go, A., 2014, pp.23- 24). 보디츠코는 공적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형태를 거부한다. 그의 작품은 사회 적 이슈를 도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행동주의 미술과 공통점을 지니지만, 물리적 공간과 투사된 형상의 충돌을 통해 비가시적인 이슈를 가시화시킨다는 측면 에서 행동주의 미술의 형식과 큰 차이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보디츠코의 작품은 특정 장소를 숨겨진 문제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아래에서는 민주적 공공 공간을 만들 어내기 위한 대안적 전략으로서의 보디츠코의 실천적 예술론을 프로젝션 시리즈와 기구, 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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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시리즈로 세분화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1. 프로젝션 시리즈

프로젝션 시리즈에서 보디츠코는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방식으로 공공건물에 대형 프로젝션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투사하는 공공미술 성격의 작업을 진행하였다. 보디츠코에 따르면 그는 공 공 건축물을 권위와 권력의 장소로 인식한다. 그의 출생지가 폴란드라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 이상으로 건축의 선전적 기능을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 짐작 된다. 건축물의 외형 및 구조에 내재적으로 반영되는 사회의 특정 가치와 권위는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가는 공적 건축물이 가장 가부장적 방식으로 인간 을 훈련하고 통제하는 기제라고까지 주장한다(Wodiczko, K. 2017, p.143). 프로젝션 시리즈 는 건축물과 기념비를 대상으로 하여 제작된다. 건축물과 기념비가 점유하는 공간은 모두 사회 권력 체제의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디츠코는 프로젝션을 통해 물리적 공간 및 추상적 구조 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건축과 기념비에 부여된 역사적 의미와 의의를 현재의 정치 · 사회 문제와 연결시키는 방법을 통해 공론장을 만들어 낸다.

보디츠코의 초기 작업 중 캐나다 할리팩스의 스코샤 타워에 프로젝션한 1981년의 작품에서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Figure 4>. 보디츠코는 전형적 스타일의 기업 건축물에 양복 소매의 남자의 손을 투사하였다. 장식이 배제된 고층 건물의 측면에 무미건조한 남성 이미지가 투사됨으로써 완성된 형상은 수직적이고 엄격한 가부장 제도의 상징으로 역할 한다(Go, A., 2014, p.29).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미술관이나 기차역을 비롯한 여러 공공 건축물에 이와 유사한 일련의 작업들을 진행한다.

보디츠코는 <합스반호프 프로젝션>(1983)에서 도시의 랜드 마크인 중앙역의 시계탑에 메르 세데스 벤츠의 로고와 정장 차림의 남성의 가지런히 모은 손을 투사하였다<Figure 5>. 이는

‘권력’과 ‘공공 건축물’,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권력인 ‘기업’들 사이의 관계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Go, A., 2014, p.29). 그는 건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손의 상징적 모습을 통하여 여러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권력의 층위를 비판적으로 드러냈다.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건물이 하나의 의인화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작가는 건물이 지니는 권위적 특성을 프로젝션이라는 비물질적이고 한시적인 방식으로 노출시킨다. 해당 건물을 일상적으로 드나들었던 사용자를 비롯하여 지역 시민들은 이를 통해 건축물이 상징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권력으로부터 잠시나마 거리를 갖고 사유하게 된다. 익숙한 이미지를 일시적으로 낯설게 만듦으로써,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시민들의 일상적 보기와 종속적 인식에 질문을 던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민들 사이에 공론장을 형성하는 촉매제가 된다. 보디츠코의 작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1988년에 제작된 <허쉬혼 뮤지엄 프로젝션>(1989)은 특히 좀 더 적극적 태도로 정치적 상황 을 부각시킨다. 당시는 미국 대통령 선거 일주일을 남겨 놓은 시기였다. 보디츠코는 미술관 벽면에 한 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든 채 언론사 마이크들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상체 일부를 투사했다. 이 작품은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선거 공략으로 내세웠던 반 낙태, 반 총기규제, 반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었다(Mari, B., 2017, pp.121-122).

보디츠코는 이후 미리 협의되지 않은 장소와 시간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게릴라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런던에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관 프로젝션>(1985) 작업이 대 표적이다. 그는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프로젝션 작업을 준비하던 중, 인근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를 목격하게 된다. 보디츠코는 당시 이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서 나치를 상징하는 스와스티카의 이미지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사관 본관에 투사하였 다. 이는 과거 히틀러가 보여준 반유태주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자행되는 인종차별의 유 사성을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이 작품은 2시간 만에 철수되었지만 보디츠코는 ‘공적 소란행위’

라는 죄목으로 고발당하게 된다. 보디츠코가 캐나다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은 캐나다 영사관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Go, A., 2014, pp.31-32).

<Figure 4> Krzysztof Wodiczko, <Scotia Tower>, Scotia Tower, 1981

<Figure 5> Krzysztof Wodiczko,

<Hauptbahnhof>, Stuttgart,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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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보디츠코는 점차 현장성과 시의성이 강한 방향으로 작품을 전개 했다. 그는 미술 작품이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것으로 역할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소의 동시대적 문제를 설정하고, 수신하고, 발신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작업 과정에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디츠코의 이러한 시도는 공공미술의 역할과 방향성에 유의미 한 논의로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보디츠코의 프로젝션 시리즈는 기념비에 투사하는 작품들을 포함한다. 그는 도시 곳곳에 있는 기념비들이 승리자의 일방적인 역사임을 주장하며 이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단편적인 역사에 강하게 반대한다. 초기에는 그러한 목적으로 해당 기념비가 지시하는 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이미지를 투사했다. 1985년의 <넬슨 제독의 열주 프로젝션>(1985)이 대표적이 다. 보디츠코는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넬슨 제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 비에 탱크와 미사일 등 현대 대량 학살 무기의 이미지를 투사하였다(<Figure 6>). 전쟁 영웅 의 조각상 위로 무기들이 투사되면서, 승리의 역사가 아닌 폭력과 공포의 역사라는 숨겨진 측면 이 드러난다(Wodiczko, K., 2017, pp.186-187).

보디츠코는 계속하여 주목받기 힘든 특정 사건의 피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공공의 담론의 장에서 가시화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상황 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에 내재되어 있지만 노출되기 어려운 문제를 작품을 통해 표면으 로 끌어올려 목격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당시, 일본의 원폭 피해자들은 그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전후 일본 정부는 개발에 열중하여 과거의 기억을 상쇄하고자 하였고, 일본 사회 역시 패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는 패배가 아닌 진보의 역사로서 기억되었고, 이를 위해 원폭 피해 는 암묵적으로 이야기해선 안 되는 과거로 강요되었다. 보디츠코는 원폭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했다. 구체적으로, 기념비에 관련된 이미지를 투사하여 기존의 가치 체계에서 일탈하는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방법론에 더 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음성을 녹음하여 확성기를 통해 재생시키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Wodiczko, K., 2017, p.399).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들을 보이도록 하고, 이를 넘어서 그들 스스로가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론장의 역할을 확장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하버마스 의 공론장 개념이 공론장 내에서의 합의에 머물렀다면, 보디츠코의 작업에서는 공론장으로의 진입과 관련한 문제, 그리고 합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소수와 관련한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히로시마 프로젝션>은 사회적 치유의 가능성 또한 제시한다. 개별화된 고 통에 의해 고립된 개인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적 고통 에 집단적 의미가 부여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Figure 7>.

한편, 보디츠코의 프로젝션 시리즈는 기존의 선전에서 활용하는 도구들을 역이용한다. 대형 건물이나 광장의 기념비, 공공 건축물과 같은 공적 장소에서 선보이는 상징적인 대형 이미지와 확성기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정치 선전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보디츠코의 작품 구조는 대립적인 항들이 존재하는데, 특정 장소에 부여된 기존의 가치 체제와 새롭게 부여되는 의미의 가능성, 그리고 숨겨진 구조와 선명한 이미지, 일상적 공간과 정치적 공간이 그것이다. 보디츠 코의 작업은 기존 공간의 성격을 물리적이거나 추상적인 방식으로 전복하지 않는다. 해당 공간 이 상징하고 체화하는 기존의 체계는 보디츠코의 작업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의미 공간과 함께 긴장감을 유지하며 공존한다. 이 긴장 관계 속에서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은 관람자 혹은 시민 의 몫으로 넘겨진다.

3.2. 기구, 운송 수단 프로젝트

1980년대 말부터 보디츠코는 특정한 건물과 장소의 제한적 공간을 벗어나서 도시 전체를 전유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공공성을 띄는 장소들인 공원, 광장, 마트, 지하철, 거리 등에서 자신이 고안한 기구와 장치들을 이용하여 공간을 전유하였다. 보디츠코는 그러한 공적 공간들

<Figure 6> Krzysztof Wodiczko, <Nelson's Column>, Trafalgar Square, London,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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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용 목적과 용도가 뒤틀려 있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서, 다수의 시민을 위한 공간이 오히 려 권위적인 권력의 속성에 가까운, 다양한 의견을 불허하는 일방적이고 사유화된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을 담론의 장이자 민주적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된다(Go, A., 2014, p.46).

특히, 보디츠코는 도시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 에서 1980년대 사이에 미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 재정비 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당시 그가 거주하던 뉴욕은 금융, 서비스 산업으로 도시를 재생시켜 보려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도시는 주변부부터 정리되면서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데, 때문에 당시 가난한 노동자들 을 비롯한 저소득층 거주자들은 오랜 생활 터전을 떠나 도시 밖으로 이주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도시 재정비 사업’은 많은 도시 노숙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도시의 미래와 안정을 위한 조치로 서 시행된 사업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가장 보호받아야 할 하층계급의 시민들이 위기에 처하 게 되었다. 당시 뉴욕 사회는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개발에 편승한 이들은 새로운 중산층 이 되어 도시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러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이들은 한순간에 빈민 층으로 전락하였다. 사회 양극화, 계급과 인종 갈등, 부동산 투기, 경제 구조의 개편에 따른 공동체 파괴, 대량 이주 등, 연계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시 개발 사업 중 새로이 설계되는 건물들과 공간들에 설치되는 공공 미술품들은 우연히도 개발의 기울어진 수혜를 챙겨가는 방관자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보디츠 코의 <홈리스 운송 수단 프로젝트-노숙자 수레>(1988~1989)는 급속히 진행되는 개발의 와중에, 전혀 다른 성격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진행되었다<Figure 8>. 보디츠코는 세심하 게 고안된 기구를 이용하여 우선 노숙자들의 생활을 돕고 싶었고, 이후에는 노숙자들이 생활하 는 거리와 다른 여러 장소들에서 기구들이 하나의 메시지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실제 노숙자들 과의 대화를 통하여 네 가지 버전의 운송 수단들을 만들었다. 화장실, 개수대, 침실, 재활용품을 모으는 창고 등으로 구성된 운송 수단들은 노숙자들의 실질적 필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디자인되었다(Wodiczko, K., 2017, pp.27-35).

보디츠코의 운송 수단들은 뉴욕의 공원과 거리, 광장 등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다. 당시 경찰은 합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운송 수단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주차 위반과 같은 법적 책임을 지우 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큰 뉴스거리가 되어 보디츠코의 운송 수단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도시의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노숙자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발현하였으며, 일상적 공간을 사회적 담론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록 보디츠코의 운송 수단들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사회적 약자 스스로가 자신 들의 인권과 권리를 주장하고, 방관자로 남아있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요컨대, <홈리스 운송 수단 프로젝트-노숙자 수레>는 민주적인 공간을 구현하는 미학적 실 천으로 해석된다.

보디츠코는 위 작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홈리스 운송 수단 프로젝트-자율 방범 차>(1991)라고 이름 붙인 삼륜 자동차를 만들 어 낸다. 전자의 경우, 급속한 도시화에 의해 밀 려난 노숙자들을 돕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시민들이 이를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 다. 한편, <홈리스 운송 수단 프로젝트- 자율 방범차>는 노숙자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목적이 있다. 보디츠코가 고안한 자율 방범차는 실제로 가솔 린 엔진이 탑재되어 기동력이 있었으며 내부에는 노숙자들끼리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Figure 9>. 그는 노숙자들이 통신 장비를 통하여 자율적인 방범 활동을 하고 다양한 종류의 긴급 지원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이 작품 역시, 사회의 구성원

<Figure 7> Krzysztof Wodiczko, <Hiroshima>, Atomic Bomb Dome, Hiroshima, 1999

<Figure 8> Krzysztof Wodiczko, <Homeless Vehicle>, 1988-1989

<Figure 9> Krzysztof Wodiczko, <Poliscar>,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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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 인정받거나 역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 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주고 기회를 제공함으 로써, 노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속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Wodiczko, K., 2017, pp.39-45).

보디츠코는 이민자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 스스로가 폴란드에서 이주한 망명자로서 자신 이 체험했던 차별 문제를 기구 퍼포먼스를 통해서 표출하였다. 특히 그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 시작이 의사소통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보디츠코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 기구를 만든다.

그는 1994년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첨단시각연구 센터에서 연구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그룹 을 ‘의문의 디자인 그룹’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이 그룹의 연구 과정을 통해 설계한 기구들을

‘의문의 디자인’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외국인 지팡이>이 다. <외국인 지팡이>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팡이의 중간에 위치한 투명한 원형 케이스에는 이민자임을 증명하는 각종 물건들을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사전이나 시계, 증명사 진, 출입국 증명서 등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수납할 수 있었다<Figure 10>. 그리고 지팡이의 윗부분에는 소리가 나오는 작은 모니터 하나가 있는데 사용자는 자신의 이주 역사를 미리 녹화하여 재생시킬 수 있었다(Wodiczko, K., 2017, pp.47-50).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진행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민자들은 처음으로 주인공처럼 주목을 받게 된다. 사용자들은 지나가는 행인들 중 지팡이와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과 대화를 하면 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해 이민자들의 문제의식을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지팡이들은 프로젝션된 기념비들처럼 도시의 중심부에서 새로운 공론장 을 만드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Mari, B., 2017, p.95). 보디츠코는 1992년부터 20명이 넘는 이민자들을 선택하여 파리와 뉴욕, 헬싱키, 휴스톤, 바로셀로나, 로틀담 등의 도시들에서 퍼포 먼스를 진행하였다(Wodiczko, K., 2017, pp.47-50).

4. 결론

이 글은 공론장 형성을 위한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을 통해 확인하 기 위해 쓰였다. 연구자는 보디츠코의 작업이 공공미술의 다양한 방법론과 연계되어 검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론에서 살펴본 프로젝션 시리즈와 기구, 운송수단 시리즈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공미술의 형식을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4.1. 공적 공간의 전유

보디츠코는 도시의 건물들과 기념비들을 이데올로기적이고 엄숙한 규율과 질서가 내면화된 장소들로서 파악했다. 도시의 설계와 구조에 내재된 질서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위계를 만들고 교류의 한계를 설정하는데, 이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 다. 보디츠코는 <프로젝션 시리즈>에서 해당 지역의 이슈와 시의성을 고려하여 특정 건물을 선택한다. 대부분 오랜 시간 지역 사회의 랜드 마크로 기능해온 건물의 상징적, 물리적 무게감 은 표면에 투사되는 이미지에 의해 비물질적인 영상으로 흡수된다. 건물 위에 투사되는 단순하 고 명백한 이미지는 감추어진 구조와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오히려 해당 건물의 프로파 간다적 기능을 노출시킨다. 바꾸어 말해, 보디츠코는 건물-더 나아가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 로기가 투영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조하여 보여주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건물이 갖고 있던 기존의 의미와 기능을 역으로 약화시킨다. 이와 동시에 건물-도시-의 폐쇄적인 의미 공간이 열리면서 공론장이 생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정리하자면, 공간의 전유는 물리적 전유와 의미의 전유의 동시적 작용으로 가능하며, 이때 생성 되는 의미 공간은 시민에게 열려 있는 개방적 성격을 지닌다.

4.2. 행동주의

이후 보디츠코의 작업은 시민들을 직접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구, 운송 수단 프로젝트>에서 그는 노숙자와 이민자를 위한 기구를 제작했다. 이 기구들에 장착된 영상과

<Figure 10> Krzysztof Wodiczko, <Alien Staff:

Xenobàcul>,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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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장치는 노숙자와 이방인들이 도시 공간에서 스스로를 가시화하도록 하며, 이와 동시에 사회의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도록 했다. 놀랍게도, 보디츠코의 작품 일부는 실제로 지역 사회의 행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기구, 운송 수단 프로젝트>는 도시 거리의 곳곳에서 일어 나는 소규모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한 다는 측면에서 공적 공간의 전유이면서 행동주의 미술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정치성은 노숙자와 이민자들이 던지는 정치적 발언들, 그리고 비가시적이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가시화 라는 두 가지 차원을 지닌다.

4.3. 비평적 공론장

보디츠코의 두 시리즈에서 생성되는 공론장은 작가와 참여자, 일상적 공간 사용자를 비롯한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공론장은 다양한 의미 교류를 위한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특정 작품과 관련하여, 공론장은 해당 작품의 완결과 동시에 종료될 수도 있고, 지속 될 수도 있다. 이제 현재 한국의 공공미술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는 어디 까지 와 있는가? 연구자는 공공미술과 크지슈포트 보디츠코를 살펴보면서, 다른 많은 연구자들 과 미술가들 역시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영역에서 관련한 논의가 생겨나고 있으며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논의 과정의 몇몇 사례들도 관찰된다. 일례로 <평화의 소녀상>(2011~)은 장소특수성과 행동주의,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이 논의 되는 매 순간마 다 전쟁과 폭력, 역사, 피해자, 치유의 문제들을 공론장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디츠코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공공미술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시각 예술을 통해 사 회적 이슈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을 위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도 비가시적인 대상들을 공론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공론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는 공공미술에서는 갈등과 배제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 이 지점에서, 공론장에 대한 논의는 하버마스의 합의 도출을 위한 공론장 개념을 뛰어넘어, 민주적 합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공공미술이 진행되어온 경로는 시민 사회를 위한 미술의 역할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생각해도 무방해 보인다. 공공미술은 작가가 판단하는 ‘지금, 여기’에 대한 날선 진단으로서 미술 작품에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대부분 시민들의 일상과 겹쳐지기 때문에, 공공 미술은 미술과 사회의 관계라는 넓은 문제의식 속에 놓여있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공적 공간 을 전유하는 공공미술에 의해 생성될 수 있는 공론장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지향점을 중심으로 하는 지속적인 연구와 실천이 요구된다. 이와 동시에 공론장을 가능케 하는 공공미술의 방법론 에 대한 연구도 미술 실천의 장에서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7년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보디츠코 회고전이 열렸다. 보디츠코의 설명대로라면, 그는 미술 관을 “공공미술화”시키고 싶었다고 한다(Mari, B., 2017, p.53).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작품의 현실적 한계를 감안한다면, 한국에서의 회고전을 위해 제작된 <우리의 소원>(2017)은 세계 사와 지역의 역사, 과거와 현재, 주류와 비주류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로서, 사회적 이슈를 도출하는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에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여러 공공 조형물 중 독립 기념관 의 백범 김구 조각상을 선택한 직관은 보디츠코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 느껴졌다. 백범 김구 조각상에는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 성소수자 등을 포함한 13명의 인터뷰 참가자들의 모습이 투사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보지 않으려 했던 이들과 그들의 문제 들이 전시실의 한 가운데, 거대한 조각상의 표면 위에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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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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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은 색상,방위,계절,음과 양 등 관념적인 색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탄생,생명력,부활,쇠퇴,암흑과 같은 색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였다.우리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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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 체험의 단계인 4 차시는 다른 모둠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평가해보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완성된 소속 모둠의 작품을 감상하고

둘째,하정웅 박사의 광주시립미술관 컬렉션에 담긴 내면세계는 자연에 관 한 이야기,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종교적 세계관이 담긴 예술적 카타르시 스를 느끼게 하는

모둠별로 그린 밑그림대로 작품을 꾸며봅시다 ... 빛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