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규범(안)에 대한 검토 및 보완 방안 연구
2012. 12.
아시아경쟁연합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규범(안)에 대한 검토 및 보완 방안 연구
2012. 12.
아시아경쟁연합
제 출 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귀하
본 보고서를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규범(안)에 대한 검토 및 보완 방안 연구」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12년 12월 21일
연구책임자: 이 기 종 공동연구원: 임 영 재 이 원 열
연구기관: 아시아경쟁연합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규범(안) 검토 및 개선방안 검토
목 차
Ⅰ.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개요 ··· 1
1.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설립목적 ··· 1
2.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연혁 ··· 1
가. 독립국가연합의 탄생․발전과 한계 ··· 1
나. CIS내에서의 경제통합 진전 ··· 4
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 ··· 6
3. 유라시아경제위원회 현황 ··· 8
가. 개황 ··· 8
나. 권한 및 임무 ··· 8
다. 집행구조 ··· 9
라. 유라시아경제위원회 3개 회원국의 통합 경제현황 ··· 10
4.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담당 부서 ··· 11
가. 설립근거 ··· 11
나. 권한과 임무 ··· 11
다. 집행구조 ··· 11
Ⅱ. 각 회원국 경쟁법 및 집행 ··· 13
1. 러시아 ··· 13
가. 경제 현황 및 특성 ··· 13
나. 경쟁법 성립 배경, 연혁, 내용 및 특징 ··· 26
다. 경쟁법 집행결과 검토 및 평가 ··· 41
2. 카자흐스탄 ··· 42
가. 개황 ··· 42
나. 경제 및 산업 특성 ··· 43
다. 경쟁법 ··· 50
3. 벨라루스 ··· 63
가. 개황 ··· 63
나. 경제 및 산업 특성 ··· 63
다. 경쟁법 ··· 66
라. 기타 경쟁 관련 법 ··· 75
Ⅲ. 지역통합 경쟁규범 관련 검토 ··· 76
1. 지역통합과 경쟁규범 ··· 76
2. 지역통합 경쟁규범 법제 및 운영현황 ··· 77
가. 카리브경제공동체 ··· 77
나.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 78
Ⅳ. 유라시안경제위원회 경쟁규범(안) 내용 검토 ··· 80
1. 일반적인 제언 ··· 80
가. 경쟁법ㆍ정책의 발전에 대한 점진적 접근방법의 유효성 ··· 80
나. 경쟁규범(안)을 통한 EEC 역내 경제통합의 촉진 ··· 86
2. 한국의 경쟁법 집행경험이 EEC 3국에 대해 주는 정책적 시사점 ··· 95
가. 카르텔 ··· 95
나. 경쟁주창 관련 법집행 ··· 100
3. 개별항목에 대한 제언 ··· 104
가. 착취적 행위와 배제적 행위 ··· 104
나. 경쟁제한성과 불공정성 ··· 105
다. 당연위법의 원칙과 합리성의 원칙 ··· 105
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반경쟁적 협정 ··· 106
마.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의 판정기준과 기업결합 심사기준
··· 106
바. 합작투자 ··· 106
사. 기타 ··· 106
Ⅴ. 결론 ··· 108
참고문헌 ··· 111
부록 ··· 115
1) Review on Eurasian Economic Commission’s Model Law on Competition ··· 115
2) Model Law on Protection of Competition For Common Economic Space ··· 133
일자 내역 비고
1991.12 독립국가연합 창설
1995 관세동맹(CustomsUnion)합의 러시아‧벨라루스
1999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에 관한 협정체결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 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 탄 등 5개국
2000.10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EurasianEconomicCommunity)설립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
형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제기구
2006.8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3개국 관세동맹 우선
추진 결정
Ⅰ.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개요 1.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설립목적
2012년 2월 설립된 유라시아경제위원회(EEC :EurasianEconomic Commission)는 러시아,카자흐스탄,벨로루스 등 3개 국가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정부기구1)로서,회원국간에 이미 형성된 ‘관세 연합’
및 ‘공동경제구역’(CES : Common Economic Space)2)을 운영하며, 2015년 설립예정인 경제통합체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창설 추진을 목적으로 한다.
2.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연혁3)
가. 독립국가연합의 탄생‧발전과 한계
유라시아경제위원회의 기원은 구 소련의 해체 직후 출범한 ‘독립 국가연합’에서부터 출발한다.
<표 1>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연혁
1) 이 공동체는 일반적인 국제기구와는 그 성격이 다른데 회원국 주권의 일부분이 공동체로 이양되는 것을 기초로 하는 일종의 ‘초국가 기구’ 라고 할 수 있다. 초국가 기구는 유라시아경제위원회의 성질을 잘 나타내는 용어이다.
2) 공동경제구역은 일종의 '공동시장'(Common Market)을 의미하는데, 이 구역 내에 있어서 상품‧사람‧
서비스‧자본이라고 하는 4가지의 생산 활동에 필요한 요소가 회원국 간의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 동할 수 있는 구역을 의미한다.
3) 이재영 외 3인, 「CIS의 경제통합 추진현황과 정책시사점: 관세동맹을 중심으로」 (2011), 38-40면 참조.
2007.10 관세동맹위원회
(CommissionoftheCustomsUnion)설립 각 국의 일부 권한 이양 받음
2010.1. 관세동맹(CustomsUnion)출범
공동 관세 및 비관세 규제를 위하여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내에서 출범
2010.7. 통합관세법 발효 회원국간 통관절차 폐지 및 수
입관세 할당 제도 실시
2011.7. 회원국간 공동 관세영역 구축
관세동맹의 국경에 설치된
세관 통제권을 관세동맹위원 회에 이양
2012.1. 공동경제구역 출범함으로써 협정 효력발생
자본의 자유이동을 위한 금융 시장 조성에 관한 협정 등 인력 이동, 조달, 통화정책 등 17개 협정이 일괄 발효
2012.2. 유라시아 경제위원회(Eurasian Economic
Commission)설립
관세동맹위원회 권한을 법적 으로 상속함
2015 유라시아 경제연합(EurasianEconomicUnion)설립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한 이후 실시된 개혁 (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정책은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15개 국가로 구성된 구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Soviet Union)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자각의식을 고취하였고,이러한 민족적 자각의식에 기초하여 1990~1991년 소련의 해체 추세가 심화되었다.
결국 러시아,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 등 11개국은 1991년 12월 완전한 독립적 권리를 가진 국제법의 주체인 정치공동체 ‘독립국가연합’
(CIS:CommonwealthofIndependentStates)창설 조약 의정서에 서명 하였다.여기서 참여국 수뇌들은 11개 회원국들간의 평등권 보유 원칙, 공동경제구역,전 유럽 및 유라시아 시장의 발전을 위한 충실한 협력, 구 소련 공화국들의 충실한 국제적 의무이행 보장 등을 합의하였다.
CIS가 탄생한 이후의 발전 과정은 크게 체제전환 단계(1991년~1999년), 회복단계(2000년~2008년),현대화 단계(2009년~현재)등 3단계로 구분된다4).
체제전환 단계는 구 소련 공화국들이 충돌 없이 평화롭게 결별을
4) Михайл Кротоь, Взаймовыгодная интеграция- условиемодерниэац ия в Содружестве,
이행한 시기로서 CIS내에서 원심력이 우세한 시기였다.우선 이 시기 구 소련에서 탄생한 신생 독립 국가들의 주요과제가 진정한 독립국가 수립과 급진적인 시장경제체제 개혁이었다.
회복단계에서 모든 CIS국가들은 중요한 시장개혁이 수행되었고 경제협력에 대해 실용적인 접근방식을 추구하면서 실질적으로 경제 통합을 위한 다양한 수준과 속도의 조건이 나타났다.즉 CIS 국가들 간에는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자유무역지대가 작동하고,유라시아 경제공동체가 창설되었으며,공동경제구역(CES)협정이 조인되었다.
현대화 단계는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하여 CIS국가들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사실 CIS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낮은 경쟁력 때문에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는데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지 않고 혁신적인 경제발전 모델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더욱 뒤처지게 될 것 이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CIS 역내 통합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특징이다.이는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3개국 정상들이 2010년 1월 1일부터 3개국간 관세동맹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CIS는 아직까지 강력한 통합체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데, 출범 당시부터 CIS는 어떤 공동의 장기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또는 초국가적인 기구로서 고안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수립하지 않은 일종의 과도기적인 구조였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특히 CIS가 출범 초 상당기간 동안 새로 탄생한 독립국가들의 지도자들은 건설적인 통합 작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생각하지 못하고,‘공동경제구역,전 유럽 및 유라시아 시장의 형성과 발전에 관한 협력에 충실한다’라고 하는 CIS창설 헌장에 규정된 주요 원칙을 망각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각 국의 주권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독립국가의 모든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즉 국가구조가 갖추어지고,자체 군대가 창설되었으며,관세장벽이 높아지고,독자적인 통화가 도입되었다.또한 각 국의 민법이 채택되었으며,경제 및 금융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 시스템이 더욱 다양화되었다.
그 결과 CIS는 창설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활동 능력이 부진 하였고 효율적인 협력형태를 확립하지 못하고 “모임 장소이자 논의의 플랫폼”역할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따라서 회원국들은 CIS활동과는 별도로 보다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통합체를 구성하기 위하여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유라시아경제공동체 창설,관세동맹 창설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 CIS내에서의 경제통합 진전
CIS지역에서 추진된 경제통합의 시초는 1993년 9월 CIS국가들 가운데 9개국5)이 조인한 ‘경제연합협정’(EconomicUnion Treaty)이다.
이 협정은 CIS경제통합을 위한 궁극적인 목적하에 CIS국가들의 양자‧
다자간 ‘자유무역연합’(Free Trade Association)6),‘관세동맹’(Customs Union),상품 및 서비스,자본,노동 부문에 대한 CIS 공동시장,CIS
‘통화동맹’(MonetaryUnion)을 결성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경제연합협정은 그 자체로서 CIS경제통합체를 결성하는 직접적인 제도라기보다는 1994년의 ‘자유무역지대 협정’(Agreementon a Free Trade Area),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2000년 유라시아경제공동체 등 보다 구체적인 협정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협정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자유무역지대 협정의 목적은 협정국 12개국이 무역장벽을 제거
5) 1993년 12월 CIS 회원국인 투르크메니스탄, 비회원국인 그루지야가 협정에 조인하였고, 1994년 CIS 마지막 회원국인 우크라이나가 준회원으로 참여하여 모두 12개 회원국이다.
하고 경제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협정국간의 단계적인 FTA를 추진하는 것이다.그러나 러시아가 원유,가스 등 중요 품목을 FTA 양허 제외 품목으로 우선 설정하고 농산물 등 일부 민감 품목에 대해 수출쿼터제를 도입하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의회 비준이 무산되었다.결국 러시아를 제외하고 CIS 모든 국가에서 비준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IS 지역의 자유무역지대 구상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자유무역지대 구축에 실패한 CIS국가들은 1990년대 동안 수많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이는 당시 CIS 지역은 시장제도, 결제방법,외환태환성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바터무역이 주요 지역 무역의 주요 요소였던바,이러한 양자간 FTA를 통해 CIS 역내 상품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던 목적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양허 제외품목 설정,다양한 비관세 조치로 인 하여 FTA의 실효성이 제한받았다.특히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과의 FTA 중 일부는 양허 제외 품목이 광범위하게 설정됨으로써 FTA의 실 질적인 역내 무관세 혜택이 제공되지 못하였다7).
한편 CIS 국가들은 양자간 FTA 체결 이외에도 다자간 협상을 통하여 경제통합을 추구하고자 중앙아시아협력기구,공동농업시장,관세 동맹 및 공동경제구역 등 여러 개의 협정을 체결‧추진하였는데 실질적인 성과를 보이는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 협정이다.
관세동맹은 1995년 1월 러시아와 벨라루스 간에 양자간 관세동맹 협정이 체결되었고,이 협정에 1999년까지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차례로 가입함으로써 세를 불려나갔다.
당시 이 관세동맹 협정은 비록 법적‧제도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7) 1996년 러시아의 WTO 가입 협상시, 러시아 정부는 FTA를 체결한 CIS 국가와의 교역중 40%가 FTA를 적용받지 않았음을 인정한 바 있다. Michael Roberts, Peter Wehrheim, Regional Trade Agreements and WTO Accession of CIS Countries, in Intereconomics, November/December
유명무실한 상태로 소멸되었으나,이를 기반으로 위 5개국 정상들은 1999년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8)(Common EconomicSpace:CES)에 관한 협정9)을 체결하였다.
위 2006년 8월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3개국만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 협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나머지 국가는 관세동맹 설립 이후 가입할 수 있도록 결정하였다.
이후 각 국의 관세에 관한 권한을 위임 받아 2007년 관세동맹위원회 (CommissionsoftheCustomsUnion)을 설립하고 관련 법 개정 등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9년 11월 3개국 통합관세율을 채택하였고,2010년 1월 관세동맹을 공식 발효시킨 후 2010년 7월 세관행정 및 통관업무 전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정한 ‘통합관세법’을 공동으로 발효하였다.
마침내 2010년 1월 공동관세 및 비관세 규제를 위하여 관세동맹 (CustomsUnion)이 출범하게 되었고,아울러 2012년 1월 공동경제구역이 출범함에 따라 궁극적 경제 통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설립을 향한 중요한 기반이 구축되었다.
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 : Eurasian Economic Community) 위 5개국 정상들은 1999년 체결된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 협 정을 추진하는 기구로서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 : Eurasian Economic Community)를 창설하는 협정에 2000년 10월 서명10)하였고, 2001년 5월 법적 효력이 발생하여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는 CIS국가가 역내 관세동맹과 공동경제구역
8) 공동경제구역은 일종의 '공동시장'(Common Market)을 의미하는데, 이 구역 내에 있어서 상품‧사람‧
서비스‧자본이라고 하는 4가지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요소가 회원국간의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는 구역을 의미한다.
9) 위 5개국 협정은 2006년 8월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3개국만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나머지 국가는 관세동맹 설립 이후 가입할 수 있도록 결정하였다.
10) 회원국은 관세동맹 5개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아르메이아, 몰도바, 우크라이나가 옵저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2006
정부간 회의 (Interstate Council)
EurAsEC내 최고의사결정기구 (국가수반회의:대통령)
(정부수반회의:총리)
의회간 위원회 (Inter-Parliamentary
Assembly) EurAsEC의 틀 안에서 각국 의회간 협력도모, 회원국의
법 제도를 단일화하기 위한 준비
통합위원회 (Integration Committee) EurAsEC 기구간 연락, 정부간 회의 의제제안, 예산 편성/집행 관리, 활동보고서 발간
경제심판소 (Community Court)
EurAsEC이 합의한 결정의 공정한
실행을 감독, 회원국간 갈등 조율
설립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경제기구로서 관세동맹을 창설하고 그 후 CIS 공동경제구역을 설립함으로써 CIS 경제권을 세계 경제와 세계무역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는 기구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하고,기구의 결정에 대한 국제법적인 구속력이 부여되었으며,기구운영을 위한 예 산부담 및 의결권을 국가별로 배분하고 가중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 체계가 확립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CIS체계와 차별화된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의 조직구조를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그림 1>유라시아경제공동체의 조직과 기구별 기능
특히 유라시아경제공동체 회원국 중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3개국은 관세동맹을 추진하기 위하여 각 국의 관세에 관한 권한을 위임 받아 2007년 관세동맹위원회(CommissionsoftheCustomsUnion)을 설립하였고, 전술한 바와 같이 2010년 1월 관세동맹(CustomsUnion)및 2012년 1월 공 동경제구역이 각각 출범하였다.
곧이어 관세동맹 및 공동경제구역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2012년 2월 관세동맹위원회의 권한을 법적으로 상속한 ‘유라시아경제위원회’가 출범함에 따라 협정을 발판으로 삼아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Union) 설립의 토대가 마련되게 되었다.
3. 유라시아경제위원회(EEC : Eurasian Economic Commission) 현황 가. 개황
유라시아경제위원회는 2011년 11월 체결된 「유라시아경제위원회에 관한 협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고 모스크바에 소재하며 총원은 약 1,000명이다.
나. 권한 및 임무
위 협정에 기한 유라시아경제위원회의 권한과 임무는 다음과 같다.
◦ 관세 업무 : 세율 결정 및 비관세 규제 ◦ 세관 운영 업무
◦ 기술도입 규제 업무
◦ 제3국과의 무역제도 구축 업무 ◦ 거시경제 정책 업무
◦ 통화 정책 업무
◦ 산업 및 농업 보조금 업무 ◦ 에너지 정책 업무
◦ 경쟁정책 입안 및 집행 업무 ◦ 자연독점 관련 업무
◦ 국가 또는 지자체 조달 업무
◦ 서비스 및 투자에 과한 양자 무역협정 관련 업무 ◦ 지적재산권 및 저작권 보호 업무
◦ 금융시장(은행, 보험, 외환시장, 증권시장 등)에 관한 업무
다. 집행구조
유라시아경제위원회의 주요 운영기구는 ‘운영위원회’(Board of Commission) 인데 의장(부총리급)을 포함한 9명의 장관이 각각 2-3개의 실무부서 (총 30여개 부서)를 관장하며 협정에 규정된 각 업무를 집행한다.
중요 사안은 3명의 부총리급 위원으로 구성된‘평의회’ (Council of Commission)에 회부되고, 최종적인 의사결정기구로서 회원국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으로 구성된‘최고평의회’ (Supreme Eurasian Economic Council)에서 결정된다. (그림 2 참조)
구분 수치 비고
면적 2천만 ㎦ 남한 면적의 200배
인구 169백만명 세계 8위
GDP 2조3천억불 전세계 GDP의 4%
(세계 8위,한국 15위)
1인당 GDP 약 13,500불 세계 52위,한국 34위
경제성장률 6.8% 2011년기준
수출규모
(전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천연가스 :34.8% -원유 :18.7%
-광물성비료 :19.2% -비철금속 :6.1% -곡물 :4.3%
라. 유라시아경제위원회 3개 회원국의 통합 경제현황
유라시아경제위원회 3개 회원국의 통합 경제지표와 수출규모는 다음과 같다.
<표 2> 3개국 통합 경제지표
(2012년 기준)
<그림 3> 수출규모(전세계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4. 유라시아경제위원회 경쟁담당 부서
가. 설립근거
유라시아경제위원회의 주요목적인 공동관세와 공동경제구역을 운영 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경쟁정책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3개국은 2010년 12월 ‘공동 경쟁법‧원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2012년 1월 발효시켜 유라시아경제위원회 내에 경쟁‧반독점규제부를 설치하였다.
나. 권한과 임무
경쟁‧반독점규제부는 3개국간 경쟁법 불일치를 조정하고, 경쟁법 공 통조항 집행 업무를 관장한다. 경쟁법 공통조항은 2개 국가 이상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행위, 공동행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를 금지한다.
경쟁법 공통조항 집행업무를 위하여 유라시아경제위원회는 다음의 권한을 가진다.
◦ 3개국의 정부기관, 사업자, 개인의 신청 또는 경쟁‧반독점규제 부의 직권에 의한 조사절차 개시권
◦ 벌금을 포함한 의무적 시정조치 부과권 ◦ 비밀자료를 포함한 자료제출 요구권
◦ 공동경쟁법원칙 협정 조항 위반을 이유로 유라시아공동체 경제법원에 항소제기권 및 소송참여권
◦ 기타 공동경쟁법원칙 협정조항 이행을 위해 필요한 권한 행사권
다. 집행구조
경쟁‧반독점규제부 장관은 경쟁정책, 가격규제, 정부 및 지자체 조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반독점규제국과 경쟁‧공공조달정책국을 관장한다.
<그림 4> 경쟁반독점규제부 조직도
경쟁․반독점 규제부 장관
반독점/
규제국
경쟁정책/
공공조달 정책국
반독점법 감시과
시장 분석과
시장지배적 기업 행위 규제/조사과
일반 경쟁법 집행과
정부조달 단일규정 적용감시과
Ⅱ. 각 회원국 경쟁법 및 집행
1. 러시아
가. 경제 현황 및 특성
러시아는 1861년 ‘농노해방’을 통해 봉건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이 늦었으며, 그나마 자본주의체제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그리고 사회 주의체제의 집단 정체성(identity) 하에서 성립된 소비에트 연방(聯邦)은 1991년 말까지 존속했다. 소연방의 해체로 인해 실질적으로 소련의 계승자가 된 러시아는 다시금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체제전환이라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11)
러시아에서 130년 동안 3번이나 체제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사회는 이중 혹은 삼중의 체제 내재적 구조 및 요소가 뒤섞이며 존속해왔다. 즉 러시아 사회는 혁명이전의 봉건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요소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이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복합사회적 양상을 띠고 있다. 봉건체제 측면에서는 공동체 정신과 집단주의적 경제문화12)가, 사회주의적 측면에서는 전체 주의와 국가권위에 대한 의존성, 자율성 및 시장정신의 부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시장경제의 원리가 강제적으로 이식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13)
러시아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의 전환도 만 21년째를 맞이하고
11) 한종만, 임현수, 이길주, “러시아의 체제이행에 대한 사회경제학적 분석”, 「슬라브학보」 제10권 (1995), 299-337면 참조.
12) 부족사회의 핵심은 ‘자두르카(zadurka)’라는 씨족 또는 대규모의 가족 공동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영토와 상호이익에 바탕을 둔 더 큰 규모의 촌락(村落) 공동체인 ‘미르(mir)’, 즉 농민공동체 인 ‘오브시치나(obschina)’로 발달됐다. 농민들이 노동자와 수공업자로서 도시로 이주하던 시기에도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그대로 고수했으며 노동협동조합, 즉 ‘아르텔(artel)’을 조성했다. 아르텔은 미 르를 모델로 삼아 조합원들에게 일거리를 분담하고 임금을 분배했다. 예일 리치먼드(이윤선 옮김),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러시아인(From Nyet to Da : Understanding the Russians)」 (2004), 39-41면 참조.
13) 한종만, “러시아의 체제전환과 경제발전: 고르바쵸프에서 메드베데프까지”(2011), 145면 참조.
구분 수치 비고
면적 1,710만 ㎦ 세계 1위
(한국 면적의 170배)
인구 142백만명 세계 9위
(한국 25위)
GDP 2조 218억불 세계 9위
(한국 15위,1조2천억불)
1인당 GDP 약 14,246불 세계 49위,
(한국 34위,23,700불)
경제성장률 약 4.3% 2011년기준
(한국 3.6%)
수출규모 약 400억불
원유/천연가스(65%), 철 금속류(15%), 화학제품
2011년 기준 세계 12위
(한국 7위,466억불) 있다. 과거 70여년 동안 ‘시장(market)’이 없었던 곳에 충격요법 식으로
‘자본주의와 시장적 사회간접자본’의 창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감행했다. 대부분의 시장은 경제주체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자연발생적’
으로 생성되지만 구 소련에서는 이러한 기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제전환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사회 전 분야 에서 무질서와 혼란을 경험했다.
2000년대 들어 정치적 안정 및 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원유‧천연가스‧
비철금속 등 원자재 국제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세는 원자재 의존형 경제 구조14)인 러시아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 올렸고 2000~2007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은 7%에 달하였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성장률은 -7.8%까지 하락하였으나 2010년 들어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국제유가가 상승함에 따라 약 4%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표 3> 러시아의 주요 경제지표
(2012년 기준)
14) 원유, 천연가스, 금속 등 3대 원자재의 수출에 따른 초과이윤을 정부가 세금으로 환수하는데 원자재 관련 세입이 러시아 전체 세입의 약 50%에 달한다. 2011년 원유 등 원자재의 채굴비용은 연간 1,500 억 달러인 반면 수출가격은 6,500억 달러이므로 연간 5,000억 달러의 초과이윤이 발생한 것으로 추 정된다. 이 초과이윤은 광물채굴세 및 수출세 등 정부세입(58%), 석유‧가스 등의 국내가격보조 (18%), 채굴기업의 자본지출(16%), 주주배당(8%) 등으로 배분되었다.;한국무역보험공사 신용조사부,
(6%),기계설비(5%),기타 (9%)
수입규모
약 249억불
기계 및 장비(차량 포함
(50%),화학 제품(14%), 식료품(14%),금속 가공 품(9%),기타(13%)
2011년 기준 세계 18위
(한국 10위,425억불)
※ 자료출처 :2012IMF Report,2011ADB Report,2011CIA CountryReport
현재 러시아의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은 서구형과는 거리가 있으며,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도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 정착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여전히 체제전환이 진행 중이며, 그 기간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러시아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와 공정한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한 제2의 페레스트 로이카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5)
1)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경제체제 운영16)
1917년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직후 러시아는 내전을 겪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시 공산주의 체제”(war communism; 1918~1921)를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전시 공산 주의의 핵심은 전쟁물자의 조달을 위해 시장에 의한 배분대신 행정적 배분제도에 의한 전시 동원체제의 구축에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잉여물의 강제징발정책과 기업국유화, 사적 상업의 폐지 등이다.
내전 승리이후 피폐해진 러시아 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레닌은
“네프: 신경제정책”(NEP : New Economic Policy, 1921~1928)을 실시 하였다. 네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과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농업이 농민의 손에 맡겨졌고 기간산업을 제외한
15) 한종만, 전게서, 146면.
16) 박제훈, 「러시아 체제전환과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연구: 푸틴의 신국가주의노선의 전망을 중심으 로」 (2000), 16면 참조.
공업은 분권화 되었으며 상업과 유통이 국가통제에서 벗어나 소위
‘네프맨(Nepman)’이라는 민간 상인들이 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네프를 통하여 러시아 경제는 급속히 회복되어 1926~27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을 만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1925년 권력투쟁에서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네프의 지속이 과거 자본주의의 부활을 가져올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에 따라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네프는 종식되고 소위 ‘공업의 계획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두 축으로 하는 “스탈린 모델”(Stalinist Model)이 소련의 기본 경제 체제로서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20년대 중반 공업화 논쟁을 거쳐 소련은 이전에 여타 국가에서 실행되지 않았던 중공업 우선 성장전략을 채택한다. 이는 외부의 재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경공업 발전에 의한 수년간의 자본 축적을 거치지 않고 곧장 중공업, 건설에 의한 생산 기반의 확립을 통하여 공업화 기간을 단축시키는 유일한 진로였다.17)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5년 집권한 후르시초프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탈스탈린화 이었다. 경제부문에서는 스탈린 모델의 골격내 에서 부분적인 개혁이 있었다.
후르시초프는 경제의 우선순위 재조정 즉, 소비재 공업 우선과 생활수준의 전반적 개선을 추구했다. 우선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처녀지 개간, 집단농장 합병 및 국영농장으로의 전환, 농산물 가격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이와 동시에 농업 부문에 대한 공산당 통제를 완화하기 위해 1956년 3월 스탈린 모델의 상징이며 농기구를 집단농장에 빌려주는 기관으로써 사실상 농민들을 통제하는 핵심적 관료기구였던
‘기계트랙터스테이션'(MTC)를 폐지하고, 집단농장이 MTC 보유 트랙 터를 양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각 집단농장에 많은 자율권을 부여
하고, NEP 시대와 같이 현금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였다.18)
한편 1956년은 제6차 5개년 계획의 첫 해였으나, 공업성장률은 하락하고 모든 공업부문은 1956년의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목표는 하향조정되어야만 했고, 경제계획과 공업관리에서의 제도적 변화가 요청되자 후르시초프는 경제관리의 비중앙집권화 또는 지방 분권화에 기반한 지역간 ‘인민경제협의체’(소브나르코지, Sovnarkhoz)의 활성화를 도모하여 각 국영기업을 중앙부처가 아닌 지역 인민경제협의체에 종속시켰다.
이어서 1957년 후르시초프는 국가계획위원회가 국가경제 전반의 기획․조정 기능과 장기계획 수립만 책임지고 30여개가 넘는 중앙의 경제관련 부처를 폐지하여 그 기능을 새로 설치된 소브나르코지로 이양시켰다.
이러한 후르시초프의 개혁정책은 스탈린 시대의 경제활동이 너무 중앙에 집중되어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의 분권화 정책이었지만, 신설된 소브나르코지를 조정․통제하기 위해서는 중앙에 새로운 국가위원회들을 설치함으로써 중앙부처의 폐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중앙부처가 생겨나 여전히 중앙의존 적인 소브나르코지의 경향을 초래하기도 했다. 결국 후르시초프의 경제 개혁도 전체 경제의 통제기능은 중앙에 더욱 집중되고, 다만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생산의 감독․협조 기능만 지방에 이전한 것이었다.19)
1965년 후르시초프가 축출되면서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브레 즈네프는 당시 수상이었던 코시킨의 이름을 따서 코시킨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개혁을 시작하였다. 1965년 개혁의 핵심은 통제의 완화 및 자율성 회복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기업들에 부과되는 수 많은 기업목표의 감소(과거 20~30개에서 8개)였으며 그 중에서도
18) 윤해수, “후르시초르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비교연구”, 「국제정치논총」 제33집 2호 (1994), 253 면 참조.
19) 윤해수, 전게서, 254면 참조.
기업의 제일의 성공지표가 과거의 ‘총산출량’에서 ‘실현된 산출량’
또는 ‘판매량’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에서 더 많은 몫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추가 몫은 노동자들에게 인센 티브로 배분되거나 향후 더 많은 산출을 위한 투자기금으로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개혁은 농업 부문에서도 일어났는데, 의무적인 전국적 옥수수 파종이 폐지되었고, 텃밭이 회복되었다. 계획을 초과한 곡물의 판매시 국가가 기본 수매가격의 50%를 추가 지불함으로써 인센티브를 주었다.
이러한 개혁은 초기에는 좋은 성과를 보였다. 노동생산성이 증 가하였고, 신발, 가구, 라디오, 냉장고, 식료품 등의 소비재 상품의 생 산이 급증여 공급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나 1968년 체코사태를 계기로 소련의 경제개혁은 급격히 보수화되어 여러 가지 제약과 법규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경제성장률은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거의 영에 가까웠다.
고르바쵸프는 1985년 권좌에 오르자 쇠퇴하고 있는 계획경제를 부흥하고자 ‘가속’(acceleration)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노동규율을 강화하고, 품질관리와 감독을 강화하며, 법과 질서를 회복하고, 알콜 남용을 억제하였다. 고르바쵸프는 정치적 변화 없는 경제변혁을 목표로 하였으나 비대해진 관료 지배계급은 변화를 원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민중들의 분노만 일으켰다.20).
2)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경제체제 운영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친 고르바쵸프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절감한 후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돌파하기로 하고 개방과 자율의 길을 선택하였고, 1987년 6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페레스트 로이카를 제출하였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요 내용은 기업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기 업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하며, 특정 서비스업 분야(택시, 세탁, 식당, 수리 등)에서 개인의 상행위를 허용하고, 국가 부문의 고용자들이 협동 조합을 만들어 소비재를 생산하여 납세 후 잔여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허용하였다. 특히 국영기업법에 따라 기업은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다른 기업들과 계약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국가주문방 식에 따라 기업생산품의 일부를 정해진 가격으로 국가에 납품하는 의 무적으로 생산하고, 그 이상의 생산물은 기업 스스로 투입물을 확보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구조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 내적인 불일치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중앙의 통제와 지역의 자유 사이에 불가능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고,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도 핵심 필수요건 중 하나인 사유화를 적극 추진하지 않고 거의 무시하였다.
둘째, 제도시행의 선후 문제와 보완성에 문제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기업 상호간의 계약체결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인 제도가 필요한데 법제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업간 계약체결을 장려하였다.21)
그 결과 일시적으로 경제 실적은 호전되어 1986-88년 사이에는 경제성장률과 생산성이 증가하였지만, 1989년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1990년에는 감소의 정도가 더욱 커졌다. 결국 1991년말 보수파의 쿠테타로 말미암아 소련연방은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3) 1992년-1999년 러시아 경제체제 운영
① 일반적인 체제전환 경제정책22)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의 체제전환에는 공통적으로 안정화 정책과 구조개혁 정책이 필요하다.23)
21) 이재율, 전게서, 172면 참조.
22) 이재율, 전게서, 173-176면 참조.
먼저 안정화 정책은 다음과 같은 정책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가격자유화로서 보조금의 감축과 가격규제의 완화, 그리고 국내 거래의 자유화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둘째는 조세증가와 정부지출 삭감을 통한 정부예산 균형이다. 셋째는 실질 이자율 회복을 위하여 중앙은행 이자율 인상을 통한 억제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넷째는 인플레의 악순환을 중단시키기 위한 소득정책이다. 다섯째는 수출과 수입의 허가제를 폐지하여 무역자유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경상 계정의 태환제도가 도입된다.
구조개혁 정책에는 다음의 정책이 포함된다. 첫째는 사유화와 국가독점의 해체이고, 둘째는 은행, 금융기관 및 조세의 개혁을 통한 시장환경의 조성이며, 셋째는 사회안전망의 구축, 마지막으로 넷째는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시행이다.
안정화 정책과 구조개혁 정책의 수행에 있어서 선후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은 안정화가 구조개혁에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성의 문제가 매우 중요 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 사유화와 비독점화로 급속히 이행하는 것이 전문가들에 의해 강력하게 촉구되기도 하였다. 우선 순위와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집중 논의 되었다.
첫째 문제는 가격자유화이다. 통제와 보조금이 제거되면 계속적인 인플레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광범위한 우려가 있었다. 대부분의 생산 자와 판매업자가 대규모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독점자처럼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고 그 결과 임금이 인상되어 인플레의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며 가계부문에 과잉 유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격자유화 즉시 시장에 초과수요로 나타나면 사태는
23) Lawrence Summers는 체제전환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으로 다음의 네가지 개혁의 범주 를 들었다. 1. 거시경제적 안정화, 2. 가격 자유화 및 시장개혁, 3. 기업개혁(공기업 사유화 포함), 4.
제도개혁(국가 역할 재정립, 법 및 규제의 개혁 등) 이 가운데 첫 번째가 안정화정책이고 나머지는 구 조개혁 정책으로 묶을 수 있다. Hough, Jerry F., The Logic of Economic Reform in Russia,
악화된다. 그래서 반독점화와 과잉유동성의 제거가 먼저 수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논쟁은 곧 사라졌는데, 반독점화는 사유화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고 대규모 국영기업은 이윤극대화 보다는 생존 극대화를 지향하며, 과잉 유동성은 인플레 과정에서 급속하게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문제는 외국 무역 자유화이다. 통화를 크게 평가절하하고 경상계정의 태환을 시작하면서 국내시장을 개방하면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국내시장의 독점업체가 가격 인상하는 것을 막아주고, 과거 로부터 내려오는 왜곡된 가격구조를 시장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통화의 평가절하는 수입을 감소시키므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국내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경제가 황폐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대두되었다.
셋째 문제는 은행과 재정의 개혁이다. 이 개혁은 구조개혁 정책에 속하지만 금융과 재정의 안정화에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기능 정상 화와 현대적인 조세제도가 필요하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도 삭감해야 하지만 조세징수도 향상되어야 한다. 이전에 기업의 수입가운데 일부를 자의적으로 징수하고 조세액에 대해서 협상의 여지가 있던 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적인 안정화의 전제조건 이라면 완전한 금융 및 조세개혁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한 안정화 정책 시행의 예상되는 초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보조금을 중지하면 가파르게 물가가 상승한 다음 인플레는 진정될 것 이고, 재정적자는 감소될 것이다. 그리고 국제수지 상황은 개선될 것이 고, 실물부문에서 산출과 소비 투자의 감소가 예상되나 이것은 제한적 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며 시장정책의 시행에 따라 곧 회복될 것으로 예 측되었다.
한편 구조개혁 정책의 핵심은 사유화이다. 사유화의 광의적 의 미에는 경제활동의 비국가화에 기여하는 모든 조치들을 포함한다. 이
런 의미에서 국영기업이 시장규칙에 의해 운영되고 경쟁에 노출된다면 대규모 국영부문도 사유화에 포함될 수 있으며 장기 임대형식의 이전 이나 전혀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사유화가 시작되면 소매거래와 소규모 사업 부문에 사기업들이 자생적으로 생기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노점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서비스 활동이 시작된다. 특히 주요 투입물이 인간자본인 컨설팅, 사설교육, 엔지니어링, 컴퓨터 서비스 등이 빠르게 발달한다. 반면에 대기업의 대규모적인 사유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 는데 국영 대기업 사유화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외국투자자에게 매각 하는 방식, 국내 자본에 매각하는 방식, 무상배분방식, 자생적 사유화 등이 있고 하나 또는 두 가지 이상의 방식이 결합될 수도 있다.
가격자유화, 사유화, 구조개혁, 자본시장 창출, 금융개혁, 조세 개혁 등의 경제정책 시행은 필수적이고 어떤 정책을 우선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만이 남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상적 체제전환 방식을 정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②러시아의 가격자유화 및 사유화
소련연방이 해체된 후 1992년부터 옐친은 급진적으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개혁 설계사로서 가격자유화 및 사유화 정책을 진두지휘 하였던 가이다르 부총리는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와의 대립으로 물러나는 등 우여 곡절이 매우 많았으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향한 개혁은 계속되었다.
러시아는 1992년 1월 2일 가이다르 부총리에 의하여 즉각적인 가격 자유화가 단행되어 도매가격의 80%와 소매가격의 90%에 대해서 통제를 중단하였다. 이어서 3월과 5월 많은 기본식품 가격이 자유화되 었고, 에너지, 식량, 항공료 등의 가격은 정부에 의해 결정되다가 2004년 자유화 되었다.
년도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물가상승률 2,510 842 224 131 22 11 84.4 36.5 20.0
GDP 성장률 -14.5 -8.7 -12.6 -4.2 -3.5 0.8 -4.9 5.4 9.0
이와 같은 점진적 가격 자유화의 이유는 첫째는 시장은 가격을 설정할 수는 있지만 상품을 분배할 수는 없다고 정부가 믿었으며, 독점적 상업관계를 유지하면서 가격을 자유화함으로써 독점적 가격 설정이 촉진되게 되었다. 둘째는 기존제도의 기득권층, 특히 대외무역과 에너지 부문의 기득권층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독점유지, 규제, 보조금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품 공급 붕괴 위협을 통해 정부를 착취하였다.
최초의 자유화 조치에는 자유화가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행과정에서 개혁적인 정부와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립되는 법률을 공포하였으며 중앙과 지방 정부에 남아 있는 과거 통제경제의 잔존자들은 과거의 규칙과 관행에 기초하여 의사 결정을 하였다. 특히 지방정부는 경제를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 받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 중앙 정부의 다양한 규제완화 조치를 무력화 시켰다.
결국 자유화는 당초보다 완만하게 수정되었고 새로운 규제는 국가보조나 잠재적 세수상실을 의미하여 결국 수정된 가격 자유화가 국가 재정에 미치는 결과는 심대했다. 불충분한 자유화는 초 인플레이션과 가격왜곡을 낳아 구조조정이 지연되었으며 이로 인해 생겨난 사각지대는 범죄의 원천이 되었다.
<표 4> 체제전환기 러시아의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단위 : %)
※ 출처 : Aslund(1999) 및 http://russianeye.com/business/data
한편 본격적인 러시아의 국영기업 사유화를 위한 법적 조치는 1991년 7월의 사유화법에 의해 시작되었다. 1992년 10월 러시아 정부 는 ‘국유재산위원회’(State Property Committee)의 지도하에 대규모
사유화개혁을 2단계에 걸쳐 추진하였다24).
1단계는 소위 바우처 사유화 단계였는데, 모든 국민에게 분배된 바우처(사유화 증서)로 사유화 대상기업의 주식을 살 수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1992년 10월 1일을 기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10,000루블 액면의 사유화 증서를 무상으로 배포하였다.
사유화대상기업 가운데 중․대기업은 먼저 주식회사로 전환되고, 일정비율의 주식은 노동자들과 경영자들에게 무상분배 되거나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반 대중에게 바우처나 현금으로 팔렸다. 이러한 바우처 사유화는 1994년 6월에 끝났다.
바우처가 사유화가 정부나 기업의 재정에 전혀 기여를 하지 못 함에도 불구하고 시행된 이유는 당시 러시아에는 방대한 국유재산을 매일할 자산가가 없어 현금 매각방식으로는 사유화가 진척되진 않았을 것이고, 신속하게 개혁지지세력을 형성하여 개혁을 역전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정치적인 측면도 있었다.
1단계 사유화 조치의 다른 특징은 노동자에 대한 배려인데, 이 것은 사유화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가 사회주의 유산에 따라 생산수단의 노동자 소유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 내부자 중심의 소유구조로 인하여 효율적인 운영보 다는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향상 중심의 기업경영이 이루어져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고용조정을 저해하고 경쟁력이 없는 기업의 퇴출을 저 해함으로써 결국 기업의 효율성 제고에는 별반 기여하지 못하였다.
2단계 사유화 조치는 1994년 7월 1일 이후에 시장되었는데, 1단 계와는 달리 대상기업이 바우처 대신 현금 경매 방식으로 매각되었다.
지표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G D P
성장률 5.1 4.7 7.3 7.2 6.4 8.2 8.5 5.2 -7.9 4.0
공 업
생산율 2.9 3.1 8.9 8.0 5.1 6.3 6.8 0.6 -9.3 8.2
경상수지
(10억 불) 33.9 29.1 35.4 59.5 84.6 94.7 77.8 103.7 49.0 72.6
외 환 보 유고(10 억불)
36.6 47.8 76.9 124.5 168.4 303.0 476.4 427.1 439.0 479.4
매각 대상기업에는 부동산과 대형 석유․가스 회사, 자동차 회사 등의 국가기간산업이 포함되었다. 매각대금의 51%는 사유화대상기업에, 나 머지 49%는 연방 및 지역정부에 귀속되어졌다.
그런데 러시아의 산업조직, 특히 공업부문의 산업조직은 매우 독과점적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산업조직의 개편 없이 단순한 사유화 만으로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는 어려웠다. 이 점은 앞에서 언급한 기업내부자 중심의 기업소유구조와 더불어 러시아 사유화가 효율성을 증대시키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4) 2000년 이후 러시아 경제체제 운영
러시아 경제는 원자재 의존형 경제구조로서, 2000년대 들어 원유‧
천연가스‧비철금속 등 원자재 국제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세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은 2000~2007년 동안 평균 7%에 달하였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성장률은 -7.8%까지 하락하였으나 2010년 들어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국제유가가 상승함에 따라 약 4%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표 5> 2001-2010년 러시아 주요 거시경제지표 추이
(단위 : %)
원유, 천연가스, 금속 등 3대 원자재의 수출에 따른 초과이윤을 정부가 세금25)으로 환수하여, 사회복지 예산 등으로 재분배한다. 2011년
원유 등 원자재의 채굴비용은 연간 1,500억 달러인 반면 수출가격은 6,500억 달러이므로 연간 5,000억 달러의 초과이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과이윤은 광물채굴세 및 수출세 등 정부세입(58%), 석 유‧가스 등의 국내가격보조(18%), 채굴기업의 자본지출(16%), 주주배당 (8%) 등으로 배분되었다26).
나. 경쟁법 성립 배경, 연혁, 내용 및 특징
1) 경쟁법 성립 배경
러시아에서 반독점 정책을 도입하게 된 배경은 러시아는 거대 독점기업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자유화(즉 민영화)보다는 반독점 기업에 대한 규제를 통하여 시장경제로 이행하여야 한다는 보수주의자 들의 주장에 있었다. 이런 주장은 첫째 러시아가 특별히 독점적이고, 둘째 독점은 거래보다는 생산에서 생기며, 셋째 러시아는 경쟁보다는 가격규제를 통해 독점과 싸우기를 원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총계적 집중 또는 산업 집중의 정도는 낮았으며 독과점이 고용과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서구의 표준적 정의에 따를 경우 국가 차원의 독점은 극 히 적었다. 제조업 부문의 공기업 21만여개 중 오직 43개만이 국가 차 원에서 독점이었다. 시장점유율이 35% 이상인 기업의 전체 피고용자의 4%만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라 1990년 7월 ‘소련 반독점 정책 및 신경제구조지원위원회’(이하 반독점위원회)가 설립되고 1991년 4월 ‘상품시장에서의 경쟁과 독점 활동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다.
1991년 10월 대통령령에 따라 반독점위원회가 독점기업을 등록하고 규제하도록 하였는데 독점기업 생산물 가격 규제를 위하여 고정가격, 최대 가격, 최대 이윤율 그리고 자유가격 공시 등과 같은 가격통제를 할 수
25) 원자재 관련 세입이 전체 세입의 약 50%를 차지한다.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1년 말 반독점위원회의 관할을 정부로부터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의회로 이전함으로써 옐친 등의 개혁주의자들이 독점기업들을 통제할 수 없게 하였다. 독점의 정의는 엄격하지 못하고 자의적이었는데, 어떤 생산물의 시장점유율이 35%가 넘거나 반독점위 원회가 지정하면 독점으로 정의되었다. 1993년 6월까지 641개 기업과 협동조합이 연방 독점자로, 5천개 기업이 지방 독점자로 지정되었다.
독점자들의 이윤폭(mark-ups)은 대개 25%로 제한되었다. 지방과 지역 반독점 위원회는 자의적으로 식량산업 가격을 통제하였으며 결과적으 로 지역시장을 분리시키고 관리들의 착복만 부추겼다.
“반독점 정책”은 사실 반시장 정책이었으며 가격통제는 보수파 들이 개혁 정책 특히 가격자유화를 방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러시아에서 생산은 당초부터 독점이 아니었으며 또한 러시아의 사유화 과정에서 탈집중화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반독점을 명분으로 한 가격통제는 불가능하고 정당성도 없었다. 본질적 문제는 지역시장 분할과 소규모 기업의 부족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자유화와 국가의 기업경영 개입중단, 그리고 긴축적 통화정책을 통한 경성예산이 중요하였다.
기업들이 경성예산 제약에 직면하면 판매를 다른 지역으로 확장시키고 채산성 없는 사업장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3년 의회 해산과 함께 옐친 정부가 반독점위원회를 관할하게 되었고 국영기업 민영화를 담당하는 국유재산관리위원회와 협조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말에 와서야 독점 판정과 그에 따른 규제법이 제 안되었다. 1994년에는 반독점 정책에 대한 법적 틀이 완전히 개편되었다.
1994년 4월에는 “탈독점과 경쟁발전 프로그램”이 채택되어 과거의 규제조치들이 폐기되고 시장장벽 완화를 위한 조치 등 경쟁촉진 노력이 강조되었다.
2) 경쟁법원과 체계
러시아의 경쟁법원(法源)은 헌법, 경쟁법, 독점법, 소비자보호법, 민법, 행정벌칙법, 형법 및 국제조약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중 경쟁법은 1991년 제정되어 수 차례 개정되었고, 하위 법령으로서 대통 령령과 고시지침이 있다.
① 헌법
러시아 헌법은 제1장 제8조에서 “(공동)경제구역 참여하여 상 품, 용역, 자본의 자유이동과 경쟁보호 및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
하고, 제2장 제34조에서 “독점화를 목적으로하는 경제활동과 불공정 경쟁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② 경쟁법
러시아의 경쟁에 관한 주요한 법률은 2006년 7월 제정된“경쟁 보호법”(On the Protection of Competition, Federal Law No. 135-FZ) 이다.
이 경쟁법 위반행위에 대한 벌칙(과징금 및 형벌)은 행정벌칙에 관한 법 (The Code on Administrative Offence, Federal Law No. 195-FZ)과 형법 (The Criminal Code, Federal Law No. 63-FZ) 제178조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경쟁법의 중요사항 개정시에는 행정벌칙법과 형법의 관련 조항도 함께 개정되는 관계로 주요 경쟁법 개정 법률은‘패키지(package)’
라고도 불린다.
이 법은 최초의 제정되었을시의 경쟁법을 ‘패키지 1’(2006년 7월), 그 이후 2차례 개정되었을 시 각각 ‘패키지 2’(2009년 10월)와
‘패키지 3’ (2011년 12월)로 불리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③ 경쟁법 시행령 및 고시
◦ 조사절차 규칙(Procedural Rule for Inspection, FAS Decree No. 340, 2012.5.25.)
④ 기타 특정분야의 경쟁 관련법
◦ “전력 산업에서의 반독점 규제에 관한 법”(Federal Law No. 35-FZ, 2003년 5월)은 전력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지위 조항과 경쟁자 배제 조항을 도입하고 있으며,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경제을 제한․배제하는 행위의 유형을 예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 “전환기간 중 전력산업 운용 특성에 관한 법”(Federal Law No. 36-FZ, 2003년 5월)은 전력시장에서 전력 생산 및 판매 사업과 전력 송배전 사업간의 결합을 금지한다.
◦ “외국인투자에 관한 법”(Federal Law No. 160-FZ, 1999년 7월)은 자기 기업이나 지점을 파산시키는 방법 등으로 러시아 내에서 상품 공급 부족을 초래하는 행위, 가격․공급 분할․입찰 참여에 관한 위법한 합의행위 등 외국인 투자자의 불공정 행위와 경쟁제한 행위를 금지한다.
◦ “러시아 연방내에서의 무역 규제 체계에 관한 법”(Federal Law No. 381-FZ, 1999년 7월)은 연방내 무역거래시의 반경쟁 행위를 특정하고 있다.
3) 경쟁법 집행기관
① 연혁
러시아의 경쟁법 집행기관은 2004년 3월 설립된 ‘연방반독점처’
(FAS : Federal Antimonopoly Service)이다.
연방반독점처의 근원은 구 소련이 개혁화를 추진하였던 시기인 1990년 7월 설립된‘소련 반독점 정책 및 신경제구조지원위원회’이다.
구 소련 붕괴이후 구 경쟁법인 "상품시장에서의 경쟁과 독점 활동에 관한 법률”(1991년 4월)을 집행하기 위하여 1992년 8월 ‘러시아 반독점 정책 및 신경제구조지원위원회’(이하 반독점위원회)로 새로운 업무27)및 증가된 인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997년 3월 옐친은 국영기업 사유화 등 경제구조 개혁업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반독점위원회’(State Antimonopoly Committee of Russian Federation)를 설립하였고, 곧이어 1998년 9월 반독점위원회, 교통독점규제위원회, 통신독점규제위원회, 중소기업발전 지원위원회 등 4개 부처를 통합하여 ‘반독점 및 기업지원부’(MAP : Ministry of the Russian Federation for Antimonopoly Policy and Support to Entrepreneurship)를 설립하였다.
2004년 3월 ‘반독점 및 기업지원부’(MAP)는 폐지되고 연방 반독점 업무, 자연독점 규제업무, 광고법 감시 업무 등은 신설되는 경쟁법 집행 전담 부처인 ‘연방반독점처’(FAS)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② 기능
연방반독점처는 총리에게 직속되어 있고, 법령제정 입안권이 있으나 FAS의 위원장은 내각회의 구성원은 아니다.
FAS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 반독점법 집행
27) 1991년말 반독점위원회는 개혁주의자가 주도하는 정부 소속기관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장악한 국회 소속기관으로 관할권이 이양되어, 시장개방 및 가격자유화에 역행하는 독점기업의 가격책정 업무 등
◦ 자연독점 사업자에 대한 규제법 집행 ◦ 광고법 집행
◦ 연방정부 조달업무
◦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방 또는 안보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승인 업무
◦ 독점사업자 등록 및 법준수 여부 모니터링
◦ 영리 혹은 비영리 법인의 파산․설립․재설립에 대한 관리
4) 경쟁법의 주요 내용
“경쟁보호법”은 구 경쟁법인 “상품시장에서의 경쟁과 독점 활 동에 관한 법률”(1991년 4월)을 15년만에 대대적으로 보완하여 2006년 7월 제정되었다. 신 경쟁법의 중요내용(예를 들면 금지하는 사업자의 행위 등)들은 구 경쟁법의 내용과 동일하나 법위반 억제력을 제고하고,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부문에서 개선이 이루어 졌다.
즉 구 경쟁법과의 가장 큰 차이점 두 가지는 첫째, 법위반 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대폭 높여28) 경쟁제도를 실제로 도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대내외에 표출하였으며 둘째, 기업결합시 심사대상 기준을 대폭 상향29) 하여 경쟁적 관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에 경쟁당국의 역량을 집중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경쟁보호법이 금지하는 행위 중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공동 행위, 불공정거래행위, 경제력 집중제한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제10조)
28) 구 경쟁법에서는 최대 1700만원에 불과하였는데, 이마저도 실제 집행에 있어서는 시정조치 불이행과 자료제출 명령 불이행시에 과징금을 부과하였을 뿐, 법위반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는 대부분 행위금 지명령에 국한되었다. 개정된 과징금은 시지남용 행위와 공동행위시 각각 관련 매출액의 2% 및 4%
이내이다. 이후 2009년 개정시에는 두 행위 모두 10%를 기본 과징금으로 하되 감경 또는 가중사유를 두어 최저1%에서 최대 15%까지 부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법 위반 억제력을 더욱 높였다.
29) 사전승인대상 기업결합은 ①거래규모의 경우, 2천만 루블에서 30억 루블(약 1100억원)로 올리고 신고 대상은 2억 루블로 하고, ②지분의 경우, 20% 이상에서 25%+1주(의사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지분), 지배지분(50%+1주), 절대지분(75%+1주)을 취득하는 거래로 한정함으로써 연평균 25,000건의 기업결합 신고 사건을 대폭 줄이고 행정력의 낭비를 방지할 수 있게 하였다.
시장지배적 지위는 어느 한 경쟁사업자가 특정한 상품시장에서 상품의 유통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거나, 다른 경쟁사업자를 제거하 거나, 또는 다른 사업자가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지위를 말한다.
시장지배적 지위로 판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장점유율이다.
• 단일 기업의 시장지배력
시장점유율이 50%를 초과하는 사업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다. 사업자는 시장지배적 지위가 없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만약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35%~50%의 범위에 있다면 경쟁당국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입증해야 한다. 경쟁당국은 예외적인 경우로서 추가적인 정황에 의하여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35% 미만인 경우에도 시장지배적 지위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
• 복수 기업에 의한 시장지배력
만약 상품 수요가 가격 비탄력적이고, 상품이 비대체적이며, 경쟁사업자들의 시장점유율이 안정적일 때, 상위 최대 3개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이 50%를 초과하거나 최대 5개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이 70%를 초과하면(하나 이상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8% 미만이면 이 규정은 적용하지 않음) 하나 또는 복수의 사업자들의 시장지배적 지위가 입증될 수 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 행위는 독점적으로 높거나 낮은 가격을 설정․유지 하는 행위, 재판매 행위 등으로 예시되어 있고, 다른 경쟁사업자를 해하고 경쟁을 방지, 감소, 제한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
그러나 지위남용 행위가 경쟁보호법 제13조의 규정된 다음 3개항
• 그러한 행위가 경쟁이 없어질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을 경우 • 부적절한 행위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
• 그러한 행위가 경영을 개선하거나 제품 판매를 증진하거나 또는 혁신을 촉진하거나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
② 공동행위(제11조 및 제12조)
2011년 12월 개정된 경쟁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기존의 수평적 합의를 대체하여‘카르텔’에 대한 정의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경쟁보호법은 카르텔과 수직적 합의를 구분하고 있다. 카르텔은 절대적 금지의 대상인 반면에 수직적 합의가 위법한 것으로 판단받기 위해서는 추가 근거가 요구된다.
경쟁을 제한하는 모든 카르텔과 수직적 합의는 원칙적으로 금지 되지만 법 제13조에서 규정한 조건(운영 효율성 증대, 소비자 이익 증대 등)을 충족하는 경우 그러한 합의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수직적 합의 중 가맹사업 거래일 경우 또는 양 당사자의 시장 점유율이 20%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용인될 수 있다(제13조).
합의 행위에 적용되는 규정은 동조적 행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형법 제178조에 따르면 카르텔에 의한 개인, 기업 또는 정부의 피해가 100만 루블(3,600만원)을 초과하거나 불법수익이 500만 루블 (18,000만원) 초과하는 경우 형사책임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법 제11조 제1항에 규정된 카르텔 이외의 수평적 합의와 수직적 합의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연방반독점처는 카르텔 규제와 관련하여 화학, 의약품, 장례업, 에너지 상품, 식료품, 항공화물, 금융서비스, 보험 등의 업종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카르텔 사건은 가성소다(sodium hydrate) 건으로서 연방반독점처는 주도자에 대하여 사상 최대인 9억 루블 (3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③ 불공정거래 행위(제14조)
불공정거래 행위는 경쟁자에 대하여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거나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퇴출하려는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로 인한 별개의 위법행위이다. 부당한 행위의 예를 들면 허위, 부정확 또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지적 재산권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상품을 유통시키는 경우 등이다.
④ 법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 심판 및 제재조치
ⅰ) 조사
법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는 법 제24조~26조까지와 연방반독점처 규칙 제340호에 근거하고 있다.
현장 조사는 연방반독점처가 확보한 자료가 완전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한 때 또는 현장조사가 아니고서는 피조사인의 경쟁법 준수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때에 실시하는데, 사전통보 현장조사와 불시 현장조사로 나뉜다.
사전통보 현장조사는 법인 설립 후 3년 또는 사전통보 현장조사가 완료된 후 3년 이내에 실시된다. 반면에 불시 현장조사가 개시되는 근거는 다음의 5가지 경우이다.(법 제25.1조 제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