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경제 현황 및 특성
러시아는 1861년 ‘농노해방’을 통해 봉건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이 늦었으며, 그나마 자본주의체제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그리고 사회 주의체제의 집단 정체성(identity) 하에서 성립된 소비에트 연방(聯邦)은 1991년 말까지 존속했다. 소연방의 해체로 인해 실질적으로 소련의 계승자가 된 러시아는 다시금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체제전환이라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11)
러시아에서 130년 동안 3번이나 체제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사회는 이중 혹은 삼중의 체제 내재적 구조 및 요소가 뒤섞이며 존속해왔다. 즉 러시아 사회는 혁명이전의 봉건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요소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이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복합사회적 양상을 띠고 있다. 봉건체제 측면에서는 공동체 정신과 집단주의적 경제문화12)가, 사회주의적 측면에서는 전체 주의와 국가권위에 대한 의존성, 자율성 및 시장정신의 부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시장경제의 원리가 강제적으로 이식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13)
러시아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의 전환도 만 21년째를 맞이하고
11) 한종만, 임현수, 이길주, “러시아의 체제이행에 대한 사회경제학적 분석”, 「슬라브학보」 제10권 (1995), 299-337면 참조.
12) 부족사회의 핵심은 ‘자두르카(zadurka)’라는 씨족 또는 대규모의 가족 공동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영토와 상호이익에 바탕을 둔 더 큰 규모의 촌락(村落) 공동체인 ‘미르(mir)’, 즉 농민공동체 인 ‘오브시치나(obschina)’로 발달됐다. 농민들이 노동자와 수공업자로서 도시로 이주하던 시기에도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그대로 고수했으며 노동협동조합, 즉 ‘아르텔(artel)’을 조성했다. 아르텔은 미 르를 모델로 삼아 조합원들에게 일거리를 분담하고 임금을 분배했다. 예일 리치먼드(이윤선 옮김),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러시아인(From Nyet to Da : Understanding the Russians)」 (2004), 39-41면 참조.
13) 한종만, “러시아의 체제전환과 경제발전: 고르바쵸프에서 메드베데프까지”(2011), 145면 참조.
구분 수치 비고
면적 1,710만 ㎦ 세계 1위
(한국 면적의 170배)
인구 142백만명 세계 9위
(한국 25위)
GDP 2조 218억불 세계 9위
(한국 15위,1조2천억불)
1인당 GDP 약 14,246불 세계 49위,
(한국 34위,23,700불)
경제성장률 약 4.3% 2011년기준
(한국 3.6%)
수출규모 약 400억불
원유/천연가스(65%), 철 금속류(15%), 화학제품
2011년 기준 세계 12위
(한국 7위,466억불) 있다. 과거 70여년 동안 ‘시장(market)’이 없었던 곳에 충격요법 식으로
‘자본주의와 시장적 사회간접자본’의 창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감행했다. 대부분의 시장은 경제주체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자연발생적’
으로 생성되지만 구 소련에서는 이러한 기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제전환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사회 전 분야 에서 무질서와 혼란을 경험했다.
2000년대 들어 정치적 안정 및 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원유‧천연가스‧
비철금속 등 원자재 국제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세는 원자재 의존형 경제 구조14)인 러시아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 올렸고 2000~2007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은 7%에 달하였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성장률은 -7.8%까지 하락하였으나 2010년 들어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국제유가가 상승함에 따라 약 4%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표 3> 러시아의 주요 경제지표
(2012년 기준)
14) 원유, 천연가스, 금속 등 3대 원자재의 수출에 따른 초과이윤을 정부가 세금으로 환수하는데 원자재 관련 세입이 러시아 전체 세입의 약 50%에 달한다. 2011년 원유 등 원자재의 채굴비용은 연간 1,500 억 달러인 반면 수출가격은 6,500억 달러이므로 연간 5,000억 달러의 초과이윤이 발생한 것으로 추 정된다. 이 초과이윤은 광물채굴세 및 수출세 등 정부세입(58%), 석유‧가스 등의 국내가격보조 (18%), 채굴기업의 자본지출(16%), 주주배당(8%) 등으로 배분되었다.;한국무역보험공사 신용조사부,
(6%),기계설비(5%),기타 (9%)
수입규모
약 249억불
기계 및 장비(차량 포함
(50%),화학 제품(14%), 식료품(14%),금속 가공 품(9%),기타(13%)
2011년 기준 세계 18위
(한국 10위,425억불)
※ 자료출처 :2012IMF Report,2011ADB Report,2011CIA CountryReport
현재 러시아의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은 서구형과는 거리가 있으며,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도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 정착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여전히 체제전환이 진행 중이며, 그 기간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러시아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와 공정한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한 제2의 페레스트 로이카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5)
1)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경제체제 운영16)
1917년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직후 러시아는 내전을 겪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시 공산주의 체제”(war communism; 1918~1921)를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전시 공산 주의의 핵심은 전쟁물자의 조달을 위해 시장에 의한 배분대신 행정적 배분제도에 의한 전시 동원체제의 구축에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잉여물의 강제징발정책과 기업국유화, 사적 상업의 폐지 등이다.
내전 승리이후 피폐해진 러시아 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레닌은
“네프: 신경제정책”(NEP : New Economic Policy, 1921~1928)을 실시 하였다. 네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과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농업이 농민의 손에 맡겨졌고 기간산업을 제외한
15) 한종만, 전게서, 146면.
16) 박제훈, 「러시아 체제전환과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연구: 푸틴의 신국가주의노선의 전망을 중심으 로」 (2000), 16면 참조.
공업은 분권화 되었으며 상업과 유통이 국가통제에서 벗어나 소위
‘네프맨(Nepman)’이라는 민간 상인들이 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네프를 통하여 러시아 경제는 급속히 회복되어 1926~27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을 만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1925년 권력투쟁에서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네프의 지속이 과거 자본주의의 부활을 가져올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에 따라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네프는 종식되고 소위 ‘공업의 계획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두 축으로 하는 “스탈린 모델”(Stalinist Model)이 소련의 기본 경제 체제로서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20년대 중반 공업화 논쟁을 거쳐 소련은 이전에 여타 국가에서 실행되지 않았던 중공업 우선 성장전략을 채택한다. 이는 외부의 재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경공업 발전에 의한 수년간의 자본 축적을 거치지 않고 곧장 중공업, 건설에 의한 생산 기반의 확립을 통하여 공업화 기간을 단축시키는 유일한 진로였다.17)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5년 집권한 후르시초프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탈스탈린화 이었다. 경제부문에서는 스탈린 모델의 골격내 에서 부분적인 개혁이 있었다.
후르시초프는 경제의 우선순위 재조정 즉, 소비재 공업 우선과 생활수준의 전반적 개선을 추구했다. 우선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처녀지 개간, 집단농장 합병 및 국영농장으로의 전환, 농산물 가격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이와 동시에 농업 부문에 대한 공산당 통제를 완화하기 위해 1956년 3월 스탈린 모델의 상징이며 농기구를 집단농장에 빌려주는 기관으로써 사실상 농민들을 통제하는 핵심적 관료기구였던
‘기계트랙터스테이션'(MTC)를 폐지하고, 집단농장이 MTC 보유 트랙 터를 양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각 집단농장에 많은 자율권을 부여
하고, NEP 시대와 같이 현금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였다.18)
한편 1956년은 제6차 5개년 계획의 첫 해였으나, 공업성장률은 하락하고 모든 공업부문은 1956년의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목표는 하향조정되어야만 했고, 경제계획과 공업관리에서의 제도적 변화가 요청되자 후르시초프는 경제관리의 비중앙집권화 또는 지방 분권화에 기반한 지역간 ‘인민경제협의체’(소브나르코지, Sovnarkhoz)의 활성화를 도모하여 각 국영기업을 중앙부처가 아닌 지역 인민경제협의체에 종속시켰다.
이어서 1957년 후르시초프는 국가계획위원회가 국가경제 전반의 기획․조정 기능과 장기계획 수립만 책임지고 30여개가 넘는 중앙의 경제관련 부처를 폐지하여 그 기능을 새로 설치된 소브나르코지로 이양시켰다.
이러한 후르시초프의 개혁정책은 스탈린 시대의 경제활동이 너무 중앙에 집중되어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의 분권화 정책이었지만, 신설된 소브나르코지를 조정․통제하기 위해서는 중앙에 새로운 국가위원회들을 설치함으로써 중앙부처의 폐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중앙부처가 생겨나 여전히 중앙의존 적인 소브나르코지의 경향을 초래하기도 했다. 결국 후르시초프의 경제 개혁도 전체 경제의 통제기능은 중앙에 더욱 집중되고, 다만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생산의 감독․협조 기능만 지방에 이전한 것이었다.19)
1965년 후르시초프가 축출되면서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브레 즈네프는 당시 수상이었던 코시킨의 이름을 따서 코시킨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개혁을 시작하였다. 1965년 개혁의 핵심은 통제의 완화 및 자율성 회복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기업들에 부과되는
1965년 후르시초프가 축출되면서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브레 즈네프는 당시 수상이었던 코시킨의 이름을 따서 코시킨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개혁을 시작하였다. 1965년 개혁의 핵심은 통제의 완화 및 자율성 회복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기업들에 부과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