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황
카자흐스탄은 1730년대부터 러시아에 합병되었다가 1920년~1925 년까지 약 5년간의 짧은 독립기를 가진후 구 소련의 구성국가로 편입 되었다. 약 70년간의 계획경제 체제하에서 카자흐스탄은 광물산업을 중심으로한 산업화를 통하여 석유, 비철금속 등 원재료와 밀, 가축 등 농산물을 구 소련 구성국가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1991년 독립하여 시장경제로의 적극적인 체제전환을 추진하여 1999년까지 경제정책 부재, 높은 인플레율, 낮은 국제원재료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0년 이후 국제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면서 연평균 8%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으며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가장 개방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표 6> 카자흐스탄의 주요 경제지표
(2012년 기준)
모,육류,석탄)12% 수입규모
약 288억불
기계 및 장비,금속 가 공품,식품
2011년 기준
※ 자료출처 :2012IMF Report,2011ADB Report,2011CIA CountryReport 나. 경제 및 산업 특성
①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으로서의 경제‧산업 구조
1991년 독립하기 직전까지의 카자흐스탄 산업구조는 농업 34%, 공업 37% 및 서비스산업 39%의 유사한 비율로 균형을 갖춘 특이한31) 구조를 갖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전통적으로 가축을 방목하는 유목 농업경제 국가 였는데 대규모 농작물 재배는 1950년에 약 350만 헥타르의 처녀지와 휴경지가 개간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 이후 카자흐스탄은 구 소 연방에서 주요 농작물 생산지로 등장했는데 1991년 농업은 전체 국민 소득의 약 34% 가량을 생산했다32).
한편 공업부문은 1940년대 초반 형성되었는데 그 후 막대한 천연 자원을 기반으로 주요 중공업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다. 1940년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하여 독일, 폴란드 등지에서 공업 분야의 기업체 들이 카자흐스탄으로 이전하여 공업부문이 도입되었다. 그 후 막대한 양의 원유, 천연가스, 비철금속, 철광석 등이 잇따라 발견되자 원자재 생산을 중시하게 되었고 원자재 채굴분야가 전체 공업 산출의 대부분 (65% 이상)을 차지한 반면 제조업 분야는 다양성 뿐만 아니라 발전 속도도 훨씬 뒤떨어졌지만 1991년 공업 부문은 전체 국민소득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31) 대다수의 선진 산업국가의 경우 국민소득에서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이다.
32) Arystan Esentugelov, A. "Kazakhstan : Problems and Prospects of Reform and Development"
in B. Rumer, Central Asia in Transition - Dilemmas of Political and Economic Development (New York : M.E. Sharpe. 1996), p. 198.
구 소련 연방체제하에서 카자흐스탄은 위와 같은 원재료 채굴을 위주로 하는 공업 부문의 집약적인 발달과 함께 2억 헥타르에 달하는 광할한 농경지가 밀 등 곡식생산과 가축사육에 활용됨으로써 농업 부문도 계속하여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공업은 주로 원료 및 중간재를 생산하며, 농업부문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도 대체로 1차 원료로 구성되어 따라서 카자흐스탄은 원자재 생산에 강하게 특화된 농공업 경제를 가지고 있었다.
구 소련 연방체제하에서 카자흐스탄의 기업은 국가 소유의 기업 으로서 일반적으로 대규모이고 고도로 특화되어 있으며 모든 기업은 기본적으로 각 시장에서 독점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당시 카자흐스탄의 소비시장은 15백만명의 적은 인구로 인하여 내수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1인당 국민 소득도 480불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육지에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외국과의 운송망 연결이 취약하고 세계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도 결여되었다.
결국 카자흐스탄은 자신들이 생산한 원자재를 활용하여 최종 소비재로 생산할 제조업 발달이 미약하였고, 최종 소비재를 소비할 국내시장도 규모가 작은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결국 원자재 생산기지의 역할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약 40년 동안 소연방은 카자흐스탄의 천연자원을 개발하여 광범위하게 이용하였다. 이러한 일은 전적으로 소연방의 전체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졌다. 중앙부처와 지방 행정조직은 최대한의 원료 추출이라는 생산목표 만을 중시함으로써 카자흐스탄의 기본적인 수요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을 도외시하였다. 그 결과 매장량이 풍부한 다수의 광상과 유정이 급속도로 고갈되어 이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더욱이 소련 체제는 카자흐스탄에 초기 공정작업
만을 할당하고, 그 다음 단계의 원료는 카자흐스탄 외부의 최종 목적 지로 운송하였다. 그 결과, 카자흐스탄 경제의 효율성은 대단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으며 거시경제의 불균형이 뿌리 깊게 남겨졌다33).
② 1999년까지 시장경제 체제전환 시련기
카자흐스탄이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채택한 전략은 사실상 매우 단순했는데 가격자유화와 국유기업 사유화 라는 두 가지 정책에 기반을 두었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신속하게 실시 되도록 의도되었고 따라서 카자흐스탄은 이른바 ‘충격요법’의 전형 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34).
가격자유화에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한 이유는 명확했다. 시장 경제의 각 경제주체는 가격신호, 즉 재화와 서비스, 원료, 노동, 자본, 외환 등의 상대가격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의 가격은 행정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생산비용을 반영하지 않고, 따라서 효율적인 자원배분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일정한 가정 하에서만 타당하다. 즉 가격자유 화의 전제조건은 효율적 자원배분을 위하여 거시경제가 균형(통제가능 하고 적절한 인플레이션, 가격변화에 대하여 높은 수요 및 공급 탄력성, 높은 고용수준 및 생산능력 활용 수준 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35). 특히 인플레이션율이 적당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가격의 전반적인 수준이 급격하게 상승한다면 투자자와 생산자 및 소비자들이 상대가격과 이윤인센티브의 작은 변화를 감지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따라서 가격 체계는 자원배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제전환 초기 경제정책 부재로 인하여 카자흐스탄 경제는
33) Arystan Esentugelov, op. cit., at 199-200.
34) 김영진, “카자흐스탄의 체제전환과 경제발전: 초기조건, 전략, 경제실적”, 「슬라브문화」 제25권 1호 (2009), 115면 참조.
35) 김영진, 전게논문, 116면 참조.
구분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GDP 성장률 -5.3 -9.2 -12.6 -8.2 0.5 1.7 -1.9 2.7
인플레이션 1,381 1,662 1,892 176.3 39.1 17.4 7.1 2.7
1인당 GDP(달러) 349 331 735 1,042 1,341 1.431 1,457 1,132
실업률 0.4 0.5 8.0 10.1 7.6 6.5 13.1 13.5
인구수(백만명) 16.9 16.9 16.2 16.0 15.7 15.5 15.2 14.9
외부 환경변화에 보호막 없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체제 전환 이후에도 루블화 경제권에 남아 있음으로써 러시아의 금융, 통화, 신용정책에 같이‘묶여(binding)’버렸다36). 그 결과 러시아의 경제정책은 의회내에서 격렬한 정치투쟁에 따라 변화하였으나 카자흐스탄은 이 경제정책 형성과정에 참여할 기회도 없이 그 결과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카자흐스탄의 세입의 상당 부분은 구 소련으로부터의 보조 금에 의존하였는데 독립이후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자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에 직면하였고 이를 증세와 지출 삭감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고 화폐 증발 통하여 보전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급격한 인플레를 유발 하게 되었다.
아울러 계획체제 하에서 각 국유기업은 구매자와 밀접한 결합관 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 중 다수는 다른 공화국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구 소련의 붕괴와 각 구성국가의 독립으로 인하여 기존의 교역체계는 붕괴되었고 이는 곧 카자흐스탄이 생산한 원자재의 주된 시장이었던 시장 상실을 의미하였으며 결국 산출이 하락함으로써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그 결과 1990년대 전반기에 심각한 경기침체와 폭등하는 인플레 이션으로 1995년 GDP는 1991년의 60%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표 7> 체제전환 초기의 주요 경제실적(1992~1999)
(단위 : %)
카자흐스탄의 체제전환전략이 기초한 두 번째 기둥인 사유화는 1997년 5월 현재 18,500개 이상의 기업이 사유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약 3,000개의 대규모 및 중규모 기업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사유화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도 못했으며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사유화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은 잘못된 우선 순위와 전략 실패 때문이라고 평가된다37).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국영기업의 문제는 단지 소 유권 이전에 의해 치유될 수 없었다. 국영기업들은 관리시스템을 개혁 하고 공장과 설비를 현대화하는 방법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었다. 국영 기업이 민간기업과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는 피고용자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해야할 책임을 면해야 했지만,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기 전까지는 이로부터 벗어 날 수 없었다. 또한 소유권 이전이 조세수입의 상실과 대규모 예산적자 및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세개혁이 사유화 이전에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이러한 제도적 보완이 없는 상태에서 사유화가 먼저 진행되었다.
둘째, 체제 전환기 동안에는 기존 기업을 사유화하기 보다는 신 규 민간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설립하는데 더 높은 우선순위가 주어져 야 한다. 중소기업은 자본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되며, 집약적인 고용 능력을 갖고 있으며, (가격과 같은) 시장신호에 탄력적이며 즉각적으로
둘째, 체제 전환기 동안에는 기존 기업을 사유화하기 보다는 신 규 민간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설립하는데 더 높은 우선순위가 주어져 야 한다. 중소기업은 자본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되며, 집약적인 고용 능력을 갖고 있으며, (가격과 같은) 시장신호에 탄력적이며 즉각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