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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學硏究院 50년의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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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東洋學硏究院 50년의 성과와 과제

21)

김 철 웅*

❙국문초록❙

동양학연구원의 전신은 東洋學硏究所로

1970

9

28

일에 설립되었다

.

동양학연구소는

2011

9

월에 동 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올해로 동양학연구원은 開院

50

주년을 맞이하였다

.

동양학연구 원

50

년의 활동과 성과를 되짚어보면서 향후 발전을 위한 과제들을 제시해보았다

.

동양학연구원의 가장 큰 업적은 󰡔韓國漢字語辭典󰡕과 󰡔漢韓大辭典󰡕의 완간일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30

여 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 편찬을 완성하였다

.

이들 사전을 완간한 이후

,

󰡔이두사전󰡕

,

󰡔한국고유한자자전󰡕 등 학계가 필요로 하는 각종 사전을 지속적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등재학 술지 󰡔東洋學󰡕 발간

,

동양학학술회의의 개최

,

동양학총서 간행 등을 통해 동양학 발전에 기여해 왔다

.

앞으로 도 󰡔東洋學󰡕과 동양학총서의 지속적인 간행

,

학술 가치가 높은 동양학학술회의 개최 등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역사문화연구소

,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의 산 하 연구소를 두고 있다

.

앞으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원 체제의 근간인 산하 연구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체제 개편과 함께 새롭게 아시아학을 표방하였다

.

이제 아시아학을 표 방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연구 영역과 목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자 확충과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

연구 활동의 확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좀 더 안정적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

현재 동양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효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동양 학연구원의 앞날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향후

60

, 70

주년에 즈음해서는 동양학연구원이 단 국대학교의 중추 연구기관을 넘어 국내외 아시아학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괄목상대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

[

주제어

]

동양학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

한국한자어사전

,

한한대사전

,

아시아학

❘목 차❘

.

머리말

.

東洋學硏究院의 沿革

.

활동과 성과

.

과제와 전망

.

맺음말

*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 kim9963@dankook.ac.kr

(2)

Ⅰ. 머리말

대학의 사명은 교육에 의한 인재 양성과 연구 활동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을 것이다

.

이에 대학들은 많은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독려한다

.

단국대학교 역시

1947

년 개교 이래 지 금까지 여러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연구와 학문 발전에 매진해 왔다

.

단국대학교에서 가장 유서 깊고 중요한 연구기관은 東洋學硏究院이라고 할 수 있다

.

동양학연구원의 전신은 東洋學硏究所로

1970

9

28

일에 설립되었다

. 2007

8

월에 대학이 캠퍼스를 이전함에 따라 동양학연구소도 서울 한남동캠퍼스에서 용인 죽전캠퍼스로 옮기게 되었다

.

동양학연구소는

2011

9

월에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고1) 교책중점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이러한 변 천과 함께 동양학연구원은 다양한 연구 사업을 수행하였고

,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축적해 왔다

.

가장 큰 업적은 󰡔韓國漢字語辭典󰡕과 󰡔漢韓大辭典󰡕의 완간일 것이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은

2020

,

올해로 開院

50

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

孔子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 양학연구원은 올해가

知天命

의 해인 것이다

.

공자는

, “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

서른에 뜻이 확고 하게 섰으며

,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다

.”

2)고 하였다

.

이를 통해 비유해 보 자면 동양학연구원은

30

주년

, 40

주년을 지나면서 그 동안 세운 뜻을 얼마나 이루어내었는지

,

그리고 흔들림 없이 연구기관의 사명을 실천하였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

이제 개원

50

주년에 즈음하여 동양학연구원은 동 양학 연구의 사명을 재정립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에 동양학연구원

50

년의 활동과 성과를 되 짚어보면서 앞으로의

50

년을 기약해보고자 한다

.

Ⅱ. 東洋學硏究院의 沿革

단국대학교는 초창기부터 동양

·

동양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기관을 설립하였는데

, 1958

년에 동양문화연구 소가

, 1962

년에는 동양문제연구소가 발족하였다

.

그러나 이 두 연구소는 연구 범위와 학문 분야가 광범위하 여 연구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다

.

3) 이는 당시 학계의 사정과 함께 단국대학교의 연구 활동이 활발하 지 못했던 상황에 기인하였다

.

당시의 열악한 연구 상황은 연구 활동을 심도 있게 진척시킬 수 없었던 것이 다

.

이에 연구기관의 활성화와 동양학 연구의 발전을 위해 동양학연구소가 새로 출범하게 되었다

.

1) 2011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동양학연구소로, 그 이후는 동양학연구원으로 표기하겠다.

2) 󰡔論語󰡕 「爲政」,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3)동양문화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한국을 중심으로 하여 동양 諸民族의 문화를 조사 연구하여 과학적 인식을 확립함으로 인류 의 상호 이해와 문화의 증진에 공헌”하는 것이었다. ‘동양 諸民族’이란 극동 지역은 물론 동남아시아 및 중동 지역까지를 두 루 망라하는 광범위한 개념이었다. 동양문제연구소의 연구 영역은 한국·중국·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동양 민족의 역사· 정치·경제·문화 등 인문·사회 전반을 포괄하고 있었다. 동양문화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연구 영역이 광범위하였다.

(3)

동양문화연구소와 동양문제연구소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향을 모색한 결과

, 1970

9

28

일에 동양 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

4) 동양학연구소는 한국을 기축으로 하여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양의 역사

·

문화 를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

앞의 두 연구소에 비해 연구 대상과 분야를 보다 세밀하고도 구체적으로 설정 한 것이다

.

일찍이 동양

·

동양학에 관심을 갖고 두 번에 걸쳐 연구소를 설치한 끝에 단국대는 비로소 이 분 야를 집중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다운 연구소를 갖게 되었다

.

1971

1

5

일에 국문학계의 원로인 이희승 박사가 제

2

대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

이때부터 동양학연구소 의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

동양학 관계 희귀 자료를 수집하여

東洋學叢書

를 간행하기로 하 였는데

,

그 첫 권으로

1971

8

월에 󰡔訓蒙字會󰡕를 출간하였다

.

그리고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로 한

東洋 學學術會議

는 같은 해

10

월에 첫 번째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그리고 연간으로 간행하기로 하였던 학술지

󰡔東洋學󰡕은 역시

10

월에 제

1

집이 발간되었다

.

또한 동양학연구소의 제

1

차 연구 사업으로 한

·

·

일 관계 자료집인 󰡔二十五史抄󰡕의 간행을 추진하였다

.

󰡔二十五史抄󰡕는

1977

년에

3

책으로 출간되었다

.

한편 동양학연구소는 개소 이후 중앙도서관

4

층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

.

그러나 연구소 인원과 장서가 증 가함에 따라 넓은 연구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

이에

1976

3

5

일에 동양학연구소는 중앙도서관 옆에 신 축한 건물로 이전하였다

.

연구소 건물은 일석 이희승 소장의 업적을 기리어

一石紀念館

이라고 명명하였다

.

일석기념관

으로 이전한 동양학연구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 1977

년은 단국대학교 개교

30

년이 되는 해였다

.

이즈음에 동양학연구소는 연구소의 중점사업인 동시에 대학 차원의 인문학 사업인 󰡔漢韓大辭 典󰡕 편찬 사업에 착수하였다

.

5) 사전 편찬 사업은 장충식 총장의 특별한 관심과 집념에 의해 시작되었다

.

장 충식 총장은 유구한 세월 동안 한자문화권에서 민족문화를 발전시켜온 우리에게 한자와 한자어에 관한 이렇 다 할 사전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현실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미 자국의 학문적 수준을 보여주는 대형 한자사전을 편찬하였다

.

일본에서는 󰡔大漢和辭典󰡕6)

,

대만은 󰡔中文大辭典󰡕7)을 간행 하였던 것이다

.

장충식 총장은 일본과 대만의 辭典을 양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능가하는 한글로 된 󰡔漢韓大 辭典󰡕의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피력하고 있었다

.

8) 그리하여

1977

6

월에 장충식 총장은 사전 편찬 계획을 수립하도록 동양학연구소에 요구하였다

.

이때의 편찬 계획은

1978

3

월부터 시작하여 약

15

년 동안 총

4

책 의 󰡔韓國漢字語辭典󰡕과 총

17

책의 󰡔漢韓大辭典󰡕을 발간한다는 것이었다

.

사전 편찬은 동양학연구소가 이때 까지 진행해온 연구 사업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거대하고도 장기적인 사업이었다

.

그리고 󰡔한국한자어사전󰡕

4)동양문화연구소는 개소만하고 활동이 없었다. 동양문화연구소를 이어 동양문제연구소가 개소하였으며, 동양학연구소가 출범하 자 동양문제연구소는 해체되었다. 동양학연구소는 동양문화연구소와 동양문제연구소를 계승 발전시킨 연구소였던 것이다. 5)󰡔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의 편찬 과정에 대해서는 東洋學硏究所, 「東洋學硏究所 略史」, 󰡔東洋學󰡕20, 단국대 동양

학연구소, 1990; 黃浿江, 「東洋學硏究所의 回顧와 展望」, 󰡔東洋學󰡕30, 2000; 장충식,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 노스보스, 2011; 윤승준, 「󰡔漢韓大辭典󰡕의 편찬 과정과 향후 계획」, 󰡔東洋學󰡕52, 2012; 박찬규, 「편찬실의 역사」, 󰡔東洋學󰡕80, 2020 등이 참고 된다.

6) 1960년에 諸橋轍次에 의해 13권으로 완성되었으며, 2000년에 보충 1권, 색인 1권 등 총 15권으로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약 5만이 넘는 한자와 53만에 달하는 어휘를 수록하고 있다.

7) 1968년에 全40册(正文 38책,部首摠索引 1책,摠索引 1책)으로 완성되어 수록어 49,905개, 어휘 37만 개를 수록하였다. 1976년에 修訂普及本이 총 10책으로 간행되었다.

8) 장충식,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 노스보스, 2011, 619~620쪽.

(4)

과 󰡔한한대사전󰡕 편찬 사업은 한국학과 동양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

동양학연구소는

1977

9

월에 편찬실을 새로 설치하고

,

이듬해

6

월에 편찬원을 채용하여 본격적으로 사 전 편찬을 시작하였다

.

그러나 막대한 인원과 예산이 필요하였던 사전 편찬 사업은 원래의 계획대로 순조롭 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

결국 편찬원 확보의 어려움과 재정 부담의 과중으로 인해 편찬 사업은 애초 계획보다 상당히 지체되었다

. 1992

9

월에 드디어 󰡔한국한자어사전󰡕 제

1

권이 출간되었다

.

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한 지

15

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 1996

11

월에 제

4

권이 간행됨으로써 󰡔한국한자어사전󰡕은 완간되었다

.

󰡔한국 한자어사전󰡕의 완간으로 사전 편찬의

1

단계 계획이 마무리되자

2

단계 편찬 사업인 󰡔한한대사전󰡕의 편찬을

1997

년부터 시작하였다

.

󰡔한한대사전󰡕 편찬 사업 역시 재정 부담과 편찬원의 미충원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해 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

9) 결국 총

17

책으로 간행하기로 했던 것을

16

(

부록

1

)

으로 조정하였다

. 1999

3

월에 󰡔한한대사전󰡕 제

1

권이 발간되었으니

,

이는 원래 계획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 2008

9

30

일 에 색인 작업까지 마침으로써 마침내 󰡔한한대사전󰡕

16

책에 대한 편찬 사업이 완료되었다

.

연구소가 발족한 지

38

년 만에

,

그리고 사전 편찬 착수

30

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

한편

1976

3

월부터 단독 건물인 일석기념관에 자리했던 동양학연구소는 학교 이전과 함께 새로운 터전 을 마련하게 되었다

. 2007

8

월에 대학이 죽전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동양학연구소는 퇴계기념중앙도서관 건물

6

층 일부에 연구소 공간을 마련하였다

.

죽전캠퍼스로 이전한 단국대학교는 대학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여 캠퍼스 특성화를 통한 대학

·

학과 경쟁 력 강화와 연구기관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

그리하여

IT(

정보기술

), CT(

문화기술

), BT(

생명공학기술

)

분야를 특성화 전략 분야로 선정하였다

.

그리고 동양학연구소를 특성화하여 동양학 분야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계획 을 수립하였다

.

10) 이러한 발전 계획에 따라 교책중점연구기관을 설립

,

지정하였다

.

이에

2011

9

1

일에 동양학연구소는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고 교책중점연구기관으로 지정되었다

.

교책중점연구기관으로서 동 양학연구원의 설립 목적은

, “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학의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연구원의 설립을 통해 전문화된 연구지원 체제를 갖추어 아시아학의 거점 연구센터로 도약하고

,

이를 바탕으로 한국 인문학 분야에 서 특화된 연구역량을 확보하여 세계적인 인문학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

확대되어가는

CT

분야의 기본 컨텐 츠를 제공하며 학제간 융합 연구를 유도하는 아시아학의 선도적 연구센터로 도약하고자 함

11)이었다

.

2011

9

월에 확대 개편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실

,

편찬실

,

번역실 등

3

개의 연구센터와 동양학자료실

,

행정지원팀 등을 두게 되었다

.

그리고 연구원 산하에

3

개의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 2013

4

월에 역사문화연

9) 지체된 요인은 다음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보다 많은 문자와 어휘를 수록하려는 사전 작업상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의 양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둘째, 당초 계획했던 상근 편찬원에 비하여 실제 인원은 항상 모자랐다. 셋째, 전산 조판 시스템의 설치가 늦어졌고 넷째, 교열과 교정에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한자어사전󰡕 발 간 후 중국에서 새롭게 나온 󰡔漢語大字典󰡕과 󰡔漢語大詞典󰡕을 참고하여 일일이 대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大漢和辭典󰡕과 󰡔中文大辭典󰡕을 저본으로 출발하였던 󰡔한한대사전󰡕은 󰡔한어대자전󰡕과 󰡔한어대사전󰡕에 새롭게 수록된 문 자와 어휘를 포괄하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한한대사전󰡕의 체제도 새롭게 바로잡아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윤승준, 「󰡔漢 韓大辭典󰡕의 편찬 과정과 향후 계획」, 󰡔東洋學󰡕 52, 2012, 154~155쪽.

10) 단국대학교 70년사편찬위원회, 󰡔단국대학교 70년사󰡕Ⅰ, 단국대학교, 2017.

11) 󰡔단국대학교 규정󰡕 「6장 교책중점연구기관에 관한 규정」 제7조의2(동양학연구원)

(5)

구소를

, 2015

3

월에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와 한중관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

한중관계연구소는

2016

5

월에 대학 부설연구소로 독립하게 되어

2016

11

월에 동아시아교류연구소를 새로 산하 연구소로 두게 되 었다

.

그리하여 현재는 산하 연구소로 역사문화연구소

,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을 두고 있다

.

동양학연구소의 연구 활동이 연구실

,

편찬실 중심이었다면 동양학연구원은 거기에 번역실이 추가 되었고

, 3

개의 산하 연구소를 두는 등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

이러한 동양학연구원의 체제는 현재까지 유지 되고 있다

.

Ⅲ. 활동과 성과

설립 당시의 「동양학연구소 규약」을 보면 연구논문집 및 연구자료 간행

,

연구발표회 및 학술토론회 개최

,

기타 설립 목적에 수반하는 사업 등을 수행하도록 규정하였다

.

이는 현재 동양학연구원이 수행하는 사업과 크게 차이가 없다

.

이러한 학술 활동은 업무 성격에 따라 동양학연구원 내의 연구실

,

편찬실

,

번역실 등이 담 당하고 있다

.

12) 그리고

3

개의 산하 연구소가 활동하고 있다

.

이들

3

개의 실과 산하 연구소의 활동을 중심으 로 주요 성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1. 󰡔韓國漢字語辭典󰡕과 󰡔漢韓大辭典󰡕의 편찬

(1) 󰡔한국한자어사전󰡕의 완간

󰡔한국한자어사전󰡕은 󰡔한한대사전󰡕 편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

󰡔한국한자어사전󰡕의 목표는 한국 고유의 한자 및 한자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

사전 편찬을 진행하면서 󰡔삼국사기󰡕

,

󰡔삼국유사󰡕

,

󰡔고려사󰡕

,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자료를 비롯하여 운서

·

자전

·

경전

·

문학 등 각종 서적과 문서

120

여 종

,

3,500

여 책을 섭렵하여 한국 고유한자와 이두

,

어휘 등을 채록하고 주석을 달아

15

만 단 어를 원고화하였다

.

이렇게 해서 󰡔한국한자어사전󰡕은 총

4

권으로 완간되었는데

,

전체

4,550

여 면에 표제자

5,174

,

한자어

89,705

개가 수록되어 있다

.

용례는 표제자

1,347

,

표제단어

99,889

개로 총

101,236

개를 수록하였다

.

13) 한자어

89,705

개 가운데 이두

·

구결

·

차자어는

4,475

개로 전체의 약

5%

를 차지하는데 이두

1,427

,

구결

349

,

차자

2,699

개 등이며

,

각각의 구성비는 이두

31.88%,

구결

7.79%,

차자

60.31%

등 이다

.

이두

·

구결

·

차자어의 출전 문헌의 종류는

227

종이며

, 6,717

건의 전거 자료를 채록하였다

. 227

종의

12) 연구실의 업무는 동양학학술회의와 연구발표회 및 심포지엄 등 각종 학술회의의 기획과 운영, 해외교류사업의 기획과 진행, 학술지 󰡔東洋學󰡕과 동양학 관련 자료집 및 연구총서 등을 발간하는 것이다. 편찬실은 사전 편찬, 사전학 학술회의의 기획과 운영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번역실의 업무는 한국고전번역원의 협동번역사업을 담당하고 아울러 각종 고서 를 국역하는 것이다.

13) 박찬규, 「편찬실의 역사」, 󰡔東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209쪽.

(6)

출전 문헌 가운데

14

세기의 󰡔대명률직해󰡕가

641

회로 가장 많은 이용 빈도를 보였다

.

14)

󰡔한국한자어사전󰡕이 다른 한자사전과 차별되는 주요 특징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1,031

종의 고문헌에서 우리 고유의 한자 및 한자어 자료만을 채록하여 수록하였다는 점이다

.

그리고 우리 고문헌을 독해하는데 도 움이 되는 일반어

·

제도어

·

전문어

·

인명

·

지명

·

서명

·

字號

·

이두

·

차자어

·

동식물명

·

成句

·

속담 등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

문자의 배열은 󰡔강희자전󰡕의 예에 따라

214

부의 부수 순으로 분류하였다

.

15) 󰡔한국한 자어사전󰡕이 또 다른 특징은 각 한자어의 이용 예를 볼 수 있는 전거의 출전과 예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거를 제시해 놓았다

.

또한 표제자에 있어서 우리 고유의 순 한국식 한자인

(

)’

이나

(

)’

201

개의 國字와

380

여 개의 國義字를 수록하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

16)

완간 이후 󰡔한국한자어사전󰡕은 학계와 일반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

사회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 았다

.

󰡔한국한자어사전󰡕이 완간된 직후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 “

한국에서 사용되는 고유한 한자 어와 어휘

,

고사에서 나오는 용어와 용례 등을 집대성한 󰡔한국한자어사전󰡕이 완간되었다

.

단국대 동양학연구 소가

50

억 원을 투입해 착수한 지

18

년만에 마무리한 이 사전은 󰡔한한대사전󰡕

(

17

, 2004

년 완간 예정

)

발간을 위한 기초 작업이자 국학분야에서 쓰이는 다양한 용어의 의미와 개념을 재정리한 국학연구의 길잡이 로 평가받고 있다

.”

17)고 하였다

.

이 기사는 󰡔한국한자어사전󰡕의 출간이 갖는 학문적

·

사회적 의미를 잘 대 변해 주고 있다

.

그리고 󰡔한국한자어사전󰡕은

1997

2

5

,

한국일보사 주최 제

37

회 한국출판문화상 시상 식에서 출판상

(

事典

·

辭典 부분

)

을 수상하였다

.

한편 완간된 󰡔한국한자어사전󰡕은 학계와 일반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인터넷 환경에 대응하지 못해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

그리고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한자사전은 전문 연구자들은 물론 이고 일반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

이에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의 웹서비 스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

두 사전을 통합하는 과정이어서 우선 󰡔한국한자어사전󰡕을 웹서비스하기로 하였 다

.

그리하여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업체인 네이버와 협약을 체결하고

2017

9

월부터 󰡔한국한자어사전󰡕의 웹서비스를 시작하였다

.

󰡔한국한자어사전󰡕 웹서비스는 󰡔한국한자어사전󰡕에 수록된 내용 중에서 인명을 제외 한

80,599

개의 표제어와

68,559

개의 용례를 제공하고 있다

.

이로써 일반인들이 󰡔한국한자어사전󰡕을 이용하 기가 편리해졌다

.

(2) 󰡔한한대사전󰡕의 완간

󰡔한한대사전󰡕 편찬 사업의 계획은 우선 󰡔한국한자어사전󰡕을 편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한한대사전󰡕

을 편찬하는 것이었다

.

그리고 󰡔한한대사전󰡕의 목표는 국내외 문헌 및 사서류에 실린 한자

·

한자어를 총정 리하여 수록하는 것이었다

.

그런데 편찬 사업은 막대한 재정 부담과 그로 인한 편찬원의 미충원 등의 여러

14) 박찬규, 「󰡔한국한자어사전󰡕에 수용된 이두·구결·차자어의 구성과 출전문헌」, 󰡔東洋學󰡕52, 동양학연구원, 2012, 273쪽. 15) 동양학연구소, 「일러두기」, 󰡔한국한자어사전󰡕 1, 동양학연구소, 1992.

16) 박찬규, 앞 논문, 󰡔東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210쪽. 17) 󰡔한국일보󰡕 1996년 11월 11일자.

(7)

요인에 의해 발간이 계속 지연되었다

.

결국 󰡔한한대사전󰡕은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22

년 만인

1999

3

월에 제

1

책이 간행되었다

.

그리고 마침내

2008

9

월에

4·6

배판 전

16

(

색인

1

),

20,786

면의 한국 최대의 한자 사전으로 마무리되었다

.

18)󰡔한한대사전󰡕

16

권에는 표제 한자

54,964

,

한자어휘

420,269

개가 수록되어 있다

.

19)

󰡔한한대사전󰡕은 우리나라 국학 및 동양학 연구의 필수적인 도구를 제공한다는 데에 목적을 두고

,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모든 한자와 한자 어휘를 빠짐없이 수록하도록 노력하였다

.

󰡔한한대사전󰡕은 일반 어휘 는 물론 제도어와 종교어 등의 전문어

,

인명

·

지명

·

동식물명

·

광물명 등의 고유명사도 수록하여 백과사전 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

또한 어휘와 함께 정확하고 풍부한 용례를 수록하고 있어 이용의 범위가 매우 넓 다

.

20)

󰡔한한대사전󰡕은

5

천년 민족문화의 정수가 담긴 것이다

.

이 사전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한자사 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저작물이다

.

이 사전의 간행으로 이제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소규모의 한자사전이나 중국과 일본의 한자사전에 의존해 오던 불편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리고 󰡔한한대사전󰡕이 완간됨으로 써 우리도 한자문화권에 속한 다른 나라와 학문적인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

21)

일석 이희승 선생은 동양학연구소 창설

10

주년을 맞는 소회를 밝히면서

󰡔한한대사전󰡕 편찬의 핵심은 중 국에서 쓰이지 않고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국식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주해가 될 것 이며

,

이는 곧 전통문화의 단절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주체의식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

이라고 하였다

.

22)󰡔한한대사전󰡕의 편찬은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달을 위해 필수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사업이었으며

,

국가와 민족의 체면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였다

.

따라서 󰡔한한대사전󰡕의 편찬은 동양 학과 한국학 진흥이라는 사명을 묵묵히 실천해 온 동양학연구소에 부여된 소명의식의 결정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

󰡔한한대사전󰡕이 완간되자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 2012

년에 교수 신문사가 창간

20

주년을 기념하며 마련한 특별 기획

대학의 유산

,

한국의 미래다

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에 󰡔한한대사전󰡕이 선정되었다

.

23)

2010

12

월 말부터 진행된 기획을 통해 교수신문사는 우리나라 대학이 보유한 유형

·

무형의 자산 가운데 한국 사회의

문화 국격

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 유산으로

13

편을 선정하였 는데

,

그 가운데 󰡔한한대사전󰡕을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

동 양학연구원이

30

여 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한한대사전󰡕 완간이라는 대과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적과

18) 張三植 편, 󰡔大漢韓辭典󰡕(1975)은 41,388 字가, 󰡔明文漢韓大字典󰡕(1992)은 51,853字가, 󰡔敎學大漢韓辭典󰡕(1998)은 37,823 자가수록되어 있다.

19) 단국대학교 70년사편찬위원회, 󰡔단국대학교 70년사󰡕Ⅰ, 단국대학교, 2017, 288쪽.

20) 정재철, 「󰡔한한대사전󰡕의 편찬 방향과 사전사적 의의」, 󰡔東洋學󰡕 46, 동양학연구소, 2009, 330쪽.

21) 󰡔한한대사전󰡕은 다른 나라 사전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대사전이다. 청의 󰡔康熙字典󰡕(1716)은 47,035자, 중화민국의 󰡔中 華大字典󰡕(1915)은 48,200자, 일본의 󰡔大漢和辭典󰡕(1960)은 49,964자, 대만의 󰡔中文大辭典󰡕(1973)은 49,880자, 중국의 󰡔漢 語大字典󰡕(1986)은 54,678자를 수록하였다. 가장 많은 한자를 수록하고 있는 사전은 85,568자의 󰡔中華字海󰡕(1994)이다. 22) 李熙昇, 「󰡔東洋學󰡕지 10주년 기념호 첫머리에」, 󰡔東洋學󰡕 10, 동양학연구소, 1980.

23) 󰡔교수신문󰡕 2012년 5월 4일자.

(8)

󰡔한한대사전󰡕의 학술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한한대사전󰡕 완간 이후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의 내용을 통합

·

수정

·

증보 하고 디지털화하여 웹상에서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후속 사업을 진행하였다

.

두 사전은 분리되어 있어 이 용에 불편하였고

, DB

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접근성에도 한계가 있었다

.

따라서 두 사전의 통합

DB

구축은 향후 웹서비스를 가능하게 하여 접근성 및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

그리고 통합

DB

는 표제자 총

5

3

천여 자

,

어휘 총

49

만여 개를 수록한 방대한 규모의 한자사전으로 재탄생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다

.

또한 웹서비스를 위한 자형표준화는 서체 난립 현상으로 인한 혼란을 해소하고

,

한자 학습과 검자상의 편의 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표준한자 제정 논의에도 기여할 수 있다

.

24)

󰡔한한대사전󰡕 통합

DB

구축사업은

2009

12

월부터

2017

12

월까지 진행되었다

.

25) 동양학연구원은

2016

6

월에 네이버와 협약을 맺고

, 2017

9

월부터 󰡔한국한자어사전󰡕 웹서비스를 시작하였다

.

멀지않은 장래에

󰡔통합 한한대사전󰡕의 웹서비스가 이루어져 여러 방면에서 󰡔한한대사전󰡕이 잘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2. ‘東洋學學術會議’의 개최와 성과

동양학학술회의는 한국 및 동양문화를 연구하는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하여 발표 및 토론을 통해 각 분야 에서 이룩한 연구결과를 종합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모색하는데 이바지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매년 정기 적으로 개최되었다

.

동양학학술회의는

1971

10

월에

1

회 동양학학술회의

가 시작된 이후

2020

11

월까 지 총

50

회에 걸쳐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

동양학학술회의의 대주제는 지금까지 크게 다섯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

첫 번째는

1971

년부터

1997

년까지 「한국문화의 특징」을 대주제로 설정하여 총

27

회에 걸쳐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 1971

10

26

일과

27

일에 제

1

회 대회로서 「한국사학과 한국문학 연구의 현황」을 주제로 이 틀간 개최되었다

.

첫날은 발표회가

,

둘째날에는 토론회가 열렸다

. 1971

1

월에 이희승 박사가 제

2

대 소장 으로 부임하면서 「한국문화의 형성」을 동양학학술회의의 대주제로 하기로 결정하여 제

2

회 동양학학술회의가

1972

10

28~29

일에 개최되었다

.

이후

1997

년 제

27

회 동양학 학술회의까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 시기에 걸쳐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발표가 진행되었다

.

두 번째 변화는 중점연구소 과제 수행에 따라 이에 맞는 대주제로 개최되었다

. 1999

년과

2005

년에 한국 학술진흥재단

(

현 한국연구재단

)

의 중점연구소 과제에 연속으로 선정됨에 따라 연구소는 중점연구소 체제로 운영되었다

.

이에 따라 동양학학술회의의 성격과 세부주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 1999

년부터

2004

년까지

(29

~34

)

는 중점연구소 과제인

개화기 대외민간문화교류 자료초

의 성격에 맞추어 근대 개화기의 사상과 문화

,

예술

,

경제 등에 대한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

그리고

2005

(35

)

부터

2009

(39

)

까지는

24) 정형도, 「󰡔한한대사전󰡕의 構件과 자형 정비」, 󰡔東洋學󰡕52, 동양학연구원, 2012, 168~169쪽.

25) 통합 과정에서 표제자는 762개가, 표제어휘는 190개가 감소하였으며, 용례는 29,120개가 증가하였다. 박찬규, 앞 논문, 󰡔東 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230쪽.

(9)

중점연구소 과제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전통문화의 지속과 변용

에 따라 세부주제들을 설정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

세 번째는 「동아시아의 문명교류」를 대주제로 개최하였다

. 2010

년 제

40

회부터 동양학학술회의 활성화 계 획의 일환으로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가하는 국제학술회의로 개최하였다

.

이듬해에 동양학연구소가 동양학연 구원으로 개칭되고 교책중점연구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동양학학술회의는 계속 국제회의로 개최하기로 하 였다

. 2010

(40

)

부터

2014

(44

)

까지

5

개년에 걸쳐 「동아시아의 문명교류」를 대주제로 한 국제학술회 의를 개최하였다

.

네 번째 변화는

2015

(45

)

부터

2017

(47

)

까지로 「한국의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관계」

,

「한국사 속 의 외래인」

,

「통일 한국을 위한 인문학적 모색」 등 다양한 주제로 개최하였다

.

이러한 방식은 장기적이고 일 관된 주제를 연속해서 개최하던 기존의 동양학학술회의의 전통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

이에 원래대로 장기 주 제에 의한 학술회의를 모색하게 되었다

.

다섯 번째 변화는 「동과 서

,

문화의 교류와 경계」라는 대주제이다

. 2018

년에 「동과 서

,

문화의 교류와 경 계」라는 대주제로

5

개년 계획을 구상하였다

.

이에 따라

2018

년을

1

년차로 하여 「

21

세기 문명

·

문화교류 연 구의 회고와 전망

:

실크로드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그런데

2019

년 상 반기에 기존

5

개년 계획을 총

10

개년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세부계획안을 논의하였다

.

연구원에서는 주제 선 정 기준을

·

·

철을 중심으로 한

,

·

서 교류의 이해 증진에 필요한 주제

로 정하고

, 10

년의 기간 동안 연차별 주제의 키워드를 ① 실크로드

,

② 요새와 도시

,

③ 교역

,

④ 유목민

,

⑤ 불교

,

⑥ 몽골

,

⑦ 학술

,

⑧ 여행

,

⑨ 제국과 식민

,

⑩ 디아스포라 등으로 결정하였다

.

26)

10

개년의 장기 계획에 따라 대주제 「동과 서

,

문화의 교류와 경계」의

2

년차 학술회의는 「요새화와 도시화

‒ 고대 문명 사이의 첫 번째 대화」를 주제로 하여

2019

년에 제

49

회 동양학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그리고

3

년차 학술회의는

2020

11

월에 「고대 문명 간의 교역과 교류」라는 주제로 제

50

회 동양학 학술회의를 개최 하였다

.

학술회의 발표 논문들은 연구원 학술지인 󰡔東洋學󰡕에 게재되었으며

,

때로는 저서로 묶어 간행하였다

. 1988

년에 󰡔朝鮮後期文化:實學部門󰡕27)을 간행하였고

,

「동아시아의 문명교류」를 대주제로 개최한 동양학학 술회의의 논문들을 모아

2011

년부터

2015

년까지 네 권의 시리즈로 간행하였다

.

28)

한편 동양학학술회의는

1971

1

회에서

1993

23

회까지 이틀에 걸쳐 개최되었다

.

첫날은 발표회를 갖 고 이튿날에는 심도 있는 토론이 장시간 진행되었다

.

이러한 방식은 발표자에겐 충분한 발표 시간을

,

그리고 토론자와 참석자에게는 깊이 있고 다양한 토론을 가능하게 하였다

.

이는 학술토의의 장으로서 동양학학술회 의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

그러나 이틀간의 학술회의는 재정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고

,

이에

1994

24

회부 26) 김철웅, 「연구실의 역사」, 󰡔東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172쪽.

27) 東洋學硏究所 編, 󰡔朝鮮後期文化:實學部門󰡕,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88. 모두 19편의 논문을 실었으며, 부록으로 實學關 係硏究論著目錄을 수록하였다.

28) 󰡔동북아시아의 문명 기원과 교류󰡕(학연문화사, 2011), 󰡔동아시아 청동기문화의 교류와 국가형성󰡕(학연문화사, 2012), 󰡔동 아시아의 철기문화와 고조선󰡕(학연문화사, 2013),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연구쟁점과 대외교류󰡕(학연문화사, 2015) 등이다.

(10)

터는 하루로 축소하여 개최되었다

.

동양학학술회의는 그 동안 여러 가지 변화와 어려움을 겪으며 개최되어 왔다

.

그럼에도 동양학학술회의는 매년

10

,

또는

11

월에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2020

11

월까지

50

년 동안

50

회에 이르게 되었다

.

동양학학 술회의는 동양학연구원을 상징하는 학술회의이자 동양학연구원의 역사과 함께 한 중요한 사업이자 성과였다

.

3. 저술 성과

동양학연구원에서는 학술지인 󰡔東洋學󰡕을 발간하고 있고

,

희귀 자료를 자료집으로

,

각종 연구 성과를 모 아 총서로 간행하고 있다

.

자료집은

동양학총서

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고

,

이외에

동양학연구총서

’, ‘

동양학 학술총서

’, ‘

동양학문화총서

’, ‘

사전학총서

등의 연구서를 발간하였다

.

특히 동양학 관련 자료집인

동양학총 서

1971

년부터

2020

6

월까지

46

88

책이 간행되었다

.

동양학총서

는 한국이나 동양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희귀한 자료를 발굴 정리하고

,

여기에 해제와 색인을 붙여 간행한 것이다

. ‘

동양학총서

는 성격별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먼저 한국학 내지 동양학의 고전 자료들을 발굴하여 영인본으로 발간한 것들이다

. 1971

8

월에 󰡔訓蒙字會󰡕를 발간한 이래 󰡔新增類合󰡕

(1972),

󰡔千字文󰡕

(1975),

󰡔朴殷植全書󰡕

(3

, 1975),

󰡔呂氏鄕約諺解󰡕

(1976),

󰡔二十五史抄󰡕

(3

, 1977),

󰡔二 倫行實圖󰡕

(1978),

󰡔經國大典註解󰡕

(1979),

󰡔張志淵全書󰡕

(10

, 1979),

󰡔救急簡易方諺解󰡕

(1982),

󰡔李世輔時 調集󰡕

(1985),

󰡔朝鮮王朝實錄抄󰡕

(1986),

󰡔國樂文獻資料集成󰡕

(1990),

󰡔韓國世界文學 文獻書誌目錄總覽󰡕

(1992)

등을 간행하였다

.

이들 중 󰡔朴殷植全書󰡕는

1976

년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

󰡔張志淵全書󰡕에는 장지 연의 미발표 유고가 수록되어 있다

.

그 다음으로는 한국학술진흥재단

(

현 한국연구재단

)

이 지원하는 중점연구소 과제를 수행하면서 간행한 자 료집들이 있다

. ‘

개화기 대외민간문화교류 자료초

를 연구과제로

1999

12

월부터

2005

11

월까지 수행한 중점연구소 과제팀에서 자료집을 간행하였다

.

개화기 구미인들과의 민간문화교류 자료와 개화기 일본인들과 의 민간문화교류 자료를 추려 해제와 함께 영인본 자료집을 간행한 것이다

. 2001

년 󰡔開化期 日本民間人의 調査報告資料集󰡕

(4

)

을 시작으로

2006

년 󰡔개화기 한국관련 구미 무역보고서 자료집󰡕

)

까지

12

35

책이 여 기에 해당한다

.

그리고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문화전통의 지속과 변용

을 연구주제로 하여

2005

12

월부터

2014

11

월까지 수행한 중점연구소 과제팀에서 간행한 자료집들이 있다

.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 까지의 한국문화전통과 관련된 자료들을 신문

,

잡지 등에서 발췌하여 영인본 자료집을 간행한 것이다

. 2007

년 󰡔구비문학관련 자료집

(

잡지편

)

󰡕

(3

)

을 시작으로

2014

년 󰡔세시풍속 관련 자료집

:

신문편󰡕까지

20

26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

동양학총서

’ 46

종 외에

동양학연구총서

’ 9

, ‘

동양학학술총서

’ 7

, ‘

동양학문화총서

’ 29

권 등을 간행하였 다

.

그리고 동양학연구원은 사전학 학술회의를

2011

년부터 개최하고 있는데

,

그 성과를 저서로 출간하였다

.

29)

29) 󰡔동아시아 한자사전과 󰡔한한대사전󰡕󰡕(2013), 󰡔동아시아 고유한자와 사전편찬󰡕(2014), 󰡔디지털시대 동아시아 한자사전 편 찬과 정보 서비스 방안󰡕(2015), 󰡔한국학 전문사전 편찬과 한자사전 편찬방법론󰡕(2016) 등이 ‘사전학총서’로 간행되었다.

(11)

동양학연구원의 학술지 󰡔東洋學󰡕은

1971

10

25

일에 제

1

집을 발간한 이래 연

1

회로 발간하다가

, 2003

년부터 연

2

회로

, 2014

년부터 연

3

회로 발간해 왔다

. 2015

년부터는 연

4

(1

, 4

, 7

, 10

)

발간 하고 있다

.

󰡔東洋學󰡕은

2001

년에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학술지

, 2004

년에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선정 되었으며

, 2020

7

월에 제

80

집까지 발간되었다

. 1970

년 제

1

집부터

2020

7

월의 제

80

집까지 간행하는 동 안 󰡔東洋學󰡕에는 총

856

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

4. 고전 번역

동양학연구원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권역별거점번역연구소 협동번역사업

을 수행하고 있다

.

30) 한국고전번 역원의 협동번역사업은

30

년간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문집 전체를 번역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

이 사업의 목표는 한국고전번역원이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고전을 번역하고

,

지역 고전번역 인재를 양성 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이 사업의 참여 자격은 고전번역 관련의 기획

,

연구

,

번역

,

편찬 등의 실적을 보유한 대학이었다

.

한국고전번역원은

2010

4

월에 중형거점연구소

6

개소와 소형거점연구소

4

개소를 선정하였다

.

그리고

2011

5

월에 중형거점연구소

2

개소와 소형거점연구소

1

개소를 추가로 선정하였다

.

이때 동양학연 구소는 중형거점연구소 사업에 선정되었다

.

이해

9

월에 동양학연구원은 번역실을 신설하여 한국고전번역원 의 협동번역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동양학연구원은 협동번역사업을 수행함에 따라

2014

년부터 번역서와 교감

·

표점서를 간행하였다

. 1

단계

9

년간의 사업 동안 󰡔국역 月汀集󰡕

(

尹根壽

, 3

, 2014),

󰡔국역 東江遺集󰡕

(

申翊全

, 2

, 2014·2015),

󰡔국역 龍洲遺稿󰡕

(

趙絅

, 5

, 2015),

󰡔국역 樂全堂集󰡕

(

申翊聖

, 3

, 2016),

󰡔국역 於于集󰡕

(

柳夢寅

, 5

, 2016·

2018),

󰡔국역 陶菴集󰡕

(

李縡

, 9

, 2018·2019)

등 국역서 총

6

27

책을 출간하였다

.

그리고

2015

년부터

2019

년까지 󰡔月汀集󰡕 등

6

10

책을 교감

·

표점하였다

.

또한 󰡔晚靜堂集󰡕

(

徐宗泰

),

󰡔文貞公遺稿󰡕

(

閔維重

)

등을 번역하였다

.

현재 동양학연구원은 협동번역사업의

2

단계

1

기 사업

(2020~2022)

을 수행 중이다

.

그리하 여

2020

년부터 金榦의 󰡔厚齋集󰡕에 대한 번역을 시작하였다

.

협동번역사업 과정에서 동양학연구원은 저자의 문중과 접촉하여 후손들의 관심과 협력을 모색하였다

.

그 결과

,

문집의 출판을 기념하는 번역학학술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였다

. 2012

년에 󰡔월정집󰡕의 저자 윤근수 의 후손인 해평윤씨 월정공파 종회와 함께 제

1

회 번역학학술회의로 「한국 문집의 번역과 󰡔월정집󰡕」을 개최 하였다

.

그리고 󰡔용주유고󰡕의 저자 조경의 후손인 한양조씨 문간공파 종회와 함께 제

2

회 번역학학술회의로

「용주 조경의 문학과 사상」을 개최하였다

. 2019

11

월에는 󰡔도암집󰡕의 저자 이재의 후손인 우봉이씨 대종 회와 제

9

회 번역학학술회의

,

「도암 이재의 생애와 활동」을 개최하였다

.

동양학연구원은 협동번역사업의 결과물 외에 자체적인 번역서로 지금까지 동양학번역총서

5

종을 출간하였 다

.

󰡔성호선생언행록󰡕

(2013)

을 시작으로 󰡔창선감의록󰡕

(2014),

󰡔곡강루기우기

·

상사동전객기󰡕

(2015),

󰡔오천

30) 이에 대해서는 장유승, 「번역실의 역사」, 󰡔東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참조.

(12)

집󰡕

(2017),

󰡔완구유집󰡕

(2018)

등을 간행하였다

.

이들 번역서는 단국대가 소장하고 있는 희귀자료들이다

.

앞 으로도 동양학번역총서는 계속 출간되어야 할 것이다

.

5. 산하 연구소의 활동

2011

년에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하면서 조직을 확대하여 산하에 연구소를 설치하게 되었다

.

현재 동양학 연구원의 산하 연구소로 역사문화연구소

,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이 있다

.

역사문화연구소는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와 연구

,

보존

,

전시 등을 통해 지역 문화 발전과 문화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

캠퍼스 특성화에 따른 융복합 학제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며

,

연구 인력 양성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을 통한 지역 구성원들의 문화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역사문화연구소의 주요 업무는 문화재 조사 및 보고서 간행

,

유물 전시 및 관리

,

학술대회 개최

, BT

학문과 연계된 융복합 프로그램 개발

,

고고학 연구 인력 양성 등으로 설정하였다

. 2013

년에 「천안의 역사문화자원 현황과 활용방안 ‒ 고대문화유적 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 2014

년에는 「천안의 초기 백제유적과 정치체」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2013

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위만조선에 대한 역사

·

고고학적 접근」을 주제로 한 연구과제를 수주 하여 진행하였다

.

그리고 지역문화재 조사 사업으로 「천안 북부지역 문화재 학술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 고

,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한국상고사 관련 중국 요녕성 초기철기시대 유적

DB

구축 –요동지역을 중심으 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는 한국

·

중국

·

일본

·

몽골

·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 하여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

이를 바탕으로 전통문화를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대중화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하여 설립되었다

.

각국의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비롯해서 동아 시아 국가의 전통문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

이에 동아시아전 통문화연구소에서는 동아시아 전통문화에 대한 조사 발굴 사업

,

전통문화를 활용한 대중화 및 콘텐츠 사업

,

국내외 학술 교류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

동아시아교류연구소는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지역의 관계 연구를 계속해온 동양학연구원의 성과를 바 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교류 관계에 대한 학술연구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

이를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정 치

·

경제

·

문화면의 교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

,

종합할 예정이다

.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여 미래지향적인 상호유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한편 산하 연구소는 독자적인 학술활동과 함께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

그런데 학술 심포지엄은 예 산상의 문제로 부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

31) 앞으로 활발한 학술활동을 기대해 본다

.

31) 동아시아교류연구소는 2018년 2월에 「미술사로 통해 본 한중관계」, 2019년 2월에 「수레바퀴 아래서: 윤회와 명부」라는 주 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역사문화연구소는 2019년 3월에 「한국과 헝가리 독립운동의 기억과 교차」, 동아시아전통문화 연구소는 2020년 1월에 「동아시아 󰡔논어󰡕의 연구사 개관과 전망 및 현대적 변용」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13)

Ⅳ. 과제와 전망

1970

년 개소 이래 동양학연구소는 급진 속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眞摯性

·

恒久性

·

價値性에 중점을 두어 졸속을 경계하였다

.

32) 이러한 방침은 지난

50

년 동안 꾸준하게 성과를 내는데 밑거름이 되어 왔다

.

그러나 지금의 시대 상황은 효용성과 경제성을 제일로 추구하고 있다

.

이러한 상황에 따라 인문학 연구자와 연구소 의 앞날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동양학연구원도 이러한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야 할 것이 다

.

동양학연구원

50

년에 즈음하여 미래의 동양학연구원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발 전을 전망해 본다

.

1. 사전 편찬의 지속

동양학연구원에서는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을 완간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학계가 필요로 하는 각종 사전을 지속적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

먼저

2016

11

월부터 󰡔이두사전󰡕을 출간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 갔다

.

그동안 이두사전은 한두 종이 나왔으나 기초자료의 한계로 수록된 내용이 부족하였다

.

그리고 이두의 독법을 정리한 저술들도 나왔으나 잘못 기술된 것이 많았다

.

최근에 이두와 석독 구결 자료가 새로 발굴되고 전산화가 이루어져 괄목할 만한 연구업적이 축적되었다

.

이에 새로 편찬되는 󰡔이두사전󰡕은 이러한 성과를 수용하고 󰡔한국한자어사전󰡕에 수록된 이두 자료에 삼국시대

,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의 이두 자료 를 추가하여

2020

년에 출간할 예정이다

.

이 󰡔이두사전󰡕에는 표제어 및 표제어해설 각

2,427

,

용례

6,867

개 등이 수록될 것이다

.

33)

한편

2018

5

월부터

2021

4

월까지

3

년을 기한으로 󰡔한국고유한자자전󰡕의 편찬 사업을 시작하였다

.

현재 한국 고유한자에 관한 전문사전은 󰡔한국한자어사전󰡕이 유일하다

.

그런데 󰡔한국한자어사전󰡕이 출간된 지도 이제

20

년이 넘어 간다

.

따라서 그동안 새로 발굴된 많은 고유한자를 추가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

이 에 󰡔한국한자어사전󰡕의 성과를 계승하고 새로 발굴한 한국의 고유한자를 증보하여 새로운 사전을 편찬하게 되었다

.

󰡔한국고유한자자전󰡕은 약

3,000

자의 한국 고유한자를 수록하고 자형

,

자음

,

자의

,

용례로 내용을 구 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이 자전은 고유한자에 대한 기초 연구서로서 학술적 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

그리고 사전 편찬 분야에서 큰 성과를 축적해 온 동양학연구원의 위상을 다시 한번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

앞으로도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학계와 일반인이 필요로 하고 학문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양질의 사전이 계속해서 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32) 李熙昇, 「󰡔東洋學󰡕誌 10周年 記念號 첫머리에」, 󰡔東洋學󰡕 10, 동양학연구소, 1980, 1쪽. 33) 박찬규, 앞 논문, 󰡔東洋學󰡕80, 동양학연구원, 2020, 232쪽.

(14)

2. 총서 간행의 지속

동양학연구원은

1971

년부터 희귀 자료를 발굴하여 여기에 해제와 색인을 붙여

東洋學叢書

를 간행해 왔 다

. ‘

동양학총서

는 한국학 내지 동양학에 관한 고전의 영인본이자 동양학 관련 자료집이었다

.

따라서

동양학 총서

는 동양학연구원의 설립 목적과 가장 부합하는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 ‘

동양학총서

90

년대 초반까 지 활발하게 발간되었으나

,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

그러다가

2001

년부터 중점연구소 과제 수행 의 결과물인 자료집을

동양학총서

로 발간하여 그 맥을 이어갔다

. ‘

동양학총서

2014

년까지

46

88

책이 간행되었는데

,

현재는 발간이 중단된 상태에 있다

.

교내 기관의 소장본 중에는 발간이 필요한 희귀 자료가 많다

.

앞으로 희귀 자료를

동양학총서

로 발간하여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한편

東洋學學術會議叢書

의 간행도 필요하다고 본다

. 1971

10

월의

1

회 동양학학술회의

가 개최된 이래

2020

11

월까지 총

50

회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

동양학학술회의는 동양학연구원을 상징하는 학술 사 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동양학 학술회의의 성과를 단행본으로 묶어

東洋學學術會議叢書

로 내려던 계획이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1988

년에 󰡔朝鮮後期文化:實學部門󰡕 한 권만을 간행하는데 그쳤다

.

그러다가

2010

년 제

40

회부터

2014

년 제

44

회까지 「동아시아의 문명교류」를 대주제로 다섯 차례의 동양학 학술회의가 개최되 었는데

,

그 논문들을 모아

2011

년부터

2015

년까지 네 권의 시리즈로 간행하였다

. 2018

년부터 「동과 서

,

문 화의 교류와 경계」라는 새로운 대주제로 동양학학술회의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

앞으로

東洋學學術會議叢 書

가 간행되어 동양학학술회의의 성과가 대중화되고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

아울러

사전학총서

동양학번역총서

도 예산 지원이 계속되어 간행이 중단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

3. 산하 연구소의 활성화

2011

년에 동양학연구소는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면서 조직도 확대되었다

.

가장 큰 변화는 동양학연구 원 내에 역사문화연구소

,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의 산하 연구소를 설치한 것이다

.

그러나 현재 산하 연구소의 활동은 설립 목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우선 설립 목적을 수행하는데 밑바탕이 되는 예산이 제대로 지원되지 못하고 있다

.

부족한 예산도 문제이지만 대학 부설연구소가 아니어서 외부 과 제를 지원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

앞으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원 체제의 근간인 산하 연구소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4. 해외 학술교류의 확장

동양학연구원은 해외의 학술기관과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해외 학술교류 사업 을 진행해 왔다

.

그렇지만 해외 학술교류가 지속적이며 활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실정이다

.

최근의 해외 학 술교류 상황을 보면

, 2015

년에 上海 復旦大學의 韓國硏究中心과 협약을 체결하고

,

공동으로 「한국의 해방과

(15)

중국의 승전

70

주년기념 한중국제학술회의」를 복단대학에서 개최하였다

. 2016

년에는 沈陽의

9.18

歷史博物 館과 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

9.18

사변과 동북지역 한중공동항일투쟁」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2017

3

월 에는 天津 南開大學 歷史學院과 공동으로 「한중관계의 역사와 현황 연구」 학술회의를

, 2018

1

월에는 西安 陝西師範大와 공동으로 「서안과 한국의 독립운동」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

첫 교류 이후 이들 연구기관과 공동 연구의 추진

,

정기적인 공동 학술회의 개최

,

학술지 및 연구자료 교환 등의 교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 었다

.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보지 못하고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

더구나 해외 학술교류가 중국에 치우친 감이 있다

.

앞으로 해외 학술교류의 지속과 확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

.

5. 전임 연구 인력의 확충

연구자의 활발한 연구 활동은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

대학의 경쟁력 및 연구 역량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

이에 대학과 연구기관은 전문적인 연구 인력의 육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

.

우수한 연구 인력은 훌 륭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한편

,

교육의 전문성도 확보할 수 있다

.

그런데 동양학연구원의 연구 인력은 충 분하지 않다

.

동양학연구원 자체의 연구 사업을 추진하기엔 연구 인력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

더구나 동양학 연구원이 교책중점연구기관으로 지정되고

,

이에 발맞추어 새롭게 아시아학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는34) 점에 서 볼 때 다양한 지역의 연구자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

이를 통해 한국이나 중국에 한정된 연구 영역을 아시 아 전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초창기에 자체적인 사업을 통해

동양학총서

를 간행하였듯이 이들 연구자를 통해 좋은 연구결과물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6. 동양학에서 아시아학으로

단국대학교는 일찍부터 동양학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동양문화연구소와 동양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

그 리고 이들 연구소를 계승하여 동양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동양문화연구소의 목표는 한국을 중심으로 하여 동양 諸民族의 문화를 조사 연구하는 것이었다

.

동양문제연구소의 연구 영역은 한국

·

중국

·

일본을 중심으 로 하고 동양 민족의 역사

·

정치

·

경제

·

문화 등 인문

·

사회 전반을 포괄하고 있었다

.

동양학연구소는 한국 을 기축으로 하여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양의 역사

·

문화를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

앞의 두 연구소 에 비해 동양학연구소는 연구 대상과 분야를 한국과 중국

·

일본의 역사

·

문화로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한 것 이다

.

그런데 동양학연구소는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면서 새롭게 아시아학을 표방하였다

.

연구소에서 연구 원으로의 체제 변화에 맞추어 기존의 동양학에서 아시아학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

이는 애초에

34) 동양학연구원은 2011년 8월 31일에 운영세칙을 개정하였는데, 연구 사업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동양학연구원은 다음 각 호의 사업을 수행한다. 1. 아시아학 분야의 전문 인력양성, 2. 아시아학 분야의 연구과제 기획, 3. 대학부설연구소 및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 4. 그 밖의 연구원 발전에 필요한 사업” 그리고 연구원 영문 명칭도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에서 Academy of Asian Studies로 변경하였다.

(16)

동양문화연구소와 동양문제연구소가

동양 諸民族

’, ‘

인문

·

사회 전반

을 연구 대상으로 한 것과 상통한다

.

동 양문화연구소와 동양문제연구소 당시는 국내 학계의 사정에 의해 이러한 광범위한 연구 영역을 감당할 수 없 었다

.

그러나 지금은 학계의 수준이나 학자들의 역량이 그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

이제는 한국학과 지역 학

,

그리고 인문학과 기타 학문 간의 협동과 통섭이 가능해지고 있다

.

동양학연구원이 이제 아시아학을 표방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연구 영역과 목표를 다시 구축할 시점에 와 있다

.

Ⅴ. 맺음말

동양학연구원의 전신은 동양학연구소로

1970

9

28

일에 설립되었다

.

동양학연구소는

2011

9

월에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동양학연구원이 초창기부터 지향한 가치는 眞摯性

·

恒久 性

·

價値性이었다

.

이러한 방침은 지난

50

년 동안 꾸준하게 성과를 내는데 밑거름이 되어 왔다

.

올해로 동양 학연구원은 開院

50

주년을 맞이하였다

.

이에 동양학연구원

50

년의 활동과 성과를 되짚어보면서 향후의 과제 를 제시해보았다

.

동양학연구원은

30

여 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 편찬을 완성하였다

.

완간 이후 이들 사전을 통합하고 있고

,

󰡔이두사전󰡕

,

󰡔한국고유한자자전󰡕 등을 간행할 예정이다

.

학계가 필요로 하는 각 종 사전을 편찬하는 사업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그리고 각종 총서의 지속적인 간행

,

학술 가치 가 높은 동양학학술회의 등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역사문화연구소

,

동아 시아전통문화연구소

,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의 산하 연구소를 두고 있다

.

앞으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원 체 제의 근간인 산하 연구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동양학연구원은 체제 개편과 함께 새롭게 아시아학을 표방하였다

.

이제 아시아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연구 영역과 목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자 확충과 예산 지 원도 필요하다

.

교책중점연구기관을 지정할 때에 대학 당국에서는 각 연구원마다 특화된 연구역량을 키워 나 갈 수 있도록 연구사업비를 집중 투자한다고 계획하였다

.

그러나 동양학연구원의 경우 해마다 예산이 줄어들 고 있다

.

연구 활동의 확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좀 더 안정적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

지난

50

년 동안 동양학연구원은

牛步千里

라는 말 그대로 묵묵히 동양학 연구의 길을 걸어 왔다

. 30

년 동 안의 󰡔한한대사전󰡕 편찬 사업은 동양학연구원의

우보천리

를 그대로 보여준다

.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

이에 따라 학문과 연구자

,

그리고 연구기관도 세태에 따르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은 엄혹한 현실이다

.

현재 동양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효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

.

이러한 상황 에서 동양학연구원의 앞날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2020

년에 동양학연구원은 開院

50

년이 되었다

.

향후

60

, 70

주년을 맞이해서는 동양학연구원이 단국대학교의 중추 연구기관을 넘어 국내외 아시 아학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괄목상대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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