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 고려시대 가족의 특성
– 가족성격의 변화는 사회사상의 변화보다 지체 but 결국 사회사상을 반영하며 이 는 생활양식과 그 에 따른 주거의 대응으로 연결됨
• 서류부가제가 여전히 존재: 남편이 아내의 친정에서 생활한 기간은 3-24년, 남편 집으로 간 나이는 18-39세
• 근친혼, 동성혼이 행해졌으나 말기로 내려올수록 감소추세
• 혼인연령은 전기에서 후기로 내려올 수록 낮아지는 경향
• 혼인형태:
– 일부다처제, 다처간의 신분차이가 없음, 처와 첩의 지위에 따른 차이가 별로 없고 첩의 신분의 귀천에 따라서 차이가 있음
– 첩이 한 집에 살거나 본체와 다른 주택에서 각각 살기도 함 – 조강지처의 지위가 견고했던 것으로 보임
• 왕실, 양반, 양인 모두 자유롭게 재혼가능
• 가족형태: 결혼한 차남, 삼남, 딸이 배우자와 함께 가족원이 되는 경우가 많 음
• 상속: 자녀균분상속, 친손과 외손의 차별이 거의 없음
– 고려시대는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가족 정형과는 성격이 달랐음
고려의 주거
• 음양 풍수도참 사상의 유행
–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이 결부되어 정치, 사회, 및 일반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 풍수사상: 고대 중국사회에서 음양사상과 오행사상을 바탕으로 땅의 길흉을 판단하
는 사상과 방법
– 음양사상: 자연계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를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려는 일종의 자연관이며 우주관
• 하늘은 양: 만물에 빛과 열 제공
• 땅: 땅의 덕이 만물을 양육, 신장시킴
• 음양사상에서의 우주관, 자연관은 주택을 형상화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침
• 집은 자아와 가족집단의 확장이며 이들의 삶이 지속되어 나가는 유일하고 고유 한 세계
• 집은 그 민족집단의 우주관을 담은 소우주
– 이상적인 집은 대자연의 질서가 갖추어진 소우주의 인공적 창조
– 도참: 징후, 전조, 신화 등의 의미로 점차 닥쳐올 길흉화복을 예언, 암시, 약속하는 신비적, 미신적 성격이 농후한 사상체계
– 왕건의 훈요십조에도 풍수적 사고 관념을 표출
• 2훈: 기존 사찰 이외 사찰건립방지 다른 지방 호족의 세력기반을 없애자는 의도
고려의 생활상과 주거상황
• 지배계급의 사치
– ‘고려사절요’, 왕과 귀족계급이 주거에 대한 사치가 심했던 것으로 나타남
• 뜰의 넓이가 100보, 집의 면적이 수 리(理)에 다다름, 단청, 금은으로 장식, 누각 설치, 청자기와 등
• 고려에 귀화한 아라비아인 장순용: 기와와 자갈로 담을 쌓으면서 화초무늬 를 박았다는 기록이 있음(고려사) 이후 담장에 화초무늬를 장식하는 방법은 귀족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고 조선조 궁궐 담장에까지 이어짐
– 신라시대와 같은 가사규제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
• 문벌귀족이 사치스러운 주택을 건설함에 따라 최승로가 가사규제의 필요성 을 상소 but 규제가 잘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임
• 단청에 대한 규제 나타나지 않음. 단지 층수가 높은 집은 규제하고 平屋을 권장한 기록 있음
– 민가의 형상
• 문헌 ‘고려도경’에 따르면 “백성의 집이 벌집과 개미구멍같이 보였고 지붕 은 풀로 이었으며 열에 한 두 집은 기와를 덮은 집도 있었다”
• 움집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 손쉽게 지을 수 있는 주거형태
• 고려시대에 움집은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형태의 일반 민가인 것으로 보임
귀족주거의 발달
• 별서(별장)건축의 유행
–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증거
• 귀족들의 농장경영과 관계 있음
• 당나라 사대부들의 은둔생활을 모방, 도가적 신선생활을 추구
– 인공적인 자연경관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에 가치를 두는 도가적 자연관 유행 –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삼국시대 조원방식으로부터 경관이 수려한 입지를
찾아 건축과 연관시키는 방법으로 발전 전원적 별서건축과 조원방식은 조선시 대까지 연결됨
• 누정 건축의 발달
– 누정 건립은 삼국시대부터 시작했으나 고려시대에 증가, 보편화
• 삼국시대문헌 10여 개 미만, 고려시대(고려사) 32개, 정이 52개
• 삼국시대: 왕족계층에서 공적인 목적으로 건립, 고려시대에는 지방 귀족계층 에서 사적인 목적으로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음
• 장소
– 삼국시대: 도성 안에 조경과 함께 건설 – 고려시대: 경관이 좋은 자연 속에 세워짐.
귀족주거의 발달
• 건축을 위한 대지 선택 폭이 넓어짐을 의미
– 산봉우리, 계곡, 물가 등 자연경관과 관련된 입지에 건립된 기록이 많이 나타남 – 지면이 고르지 않은 대지에 건축을 위해 루, 축대와 같은 건축적 방법이 사용됨 – 사륜정기(동문선, 이규보)
• 새로운 개념의 정자
• 수레처럼 이동해 다닐 수 있는 정자(수레와 정자를 합한 형상)
• 한자리 면적 (2척x 2척), 중앙에 바둑판 위치,출입공간과 거문고를 놓아두는 공간, 6척 X 6척의 정사각형 평면: 6명이 바둑판을 둘러싸고 앉을 수 있도록 함
• 주변에 난간설치: 기댈 수 있음
• 대나무와 대자리로 엮은 지붕을 얹어 지붕을 가볍게 함
• 온돌의 발달과 확산
– 왕궁에서는 여전히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됨
• 침상, 평상, 용상 등 입식 생활 (고려도경)
– 고려시대에 이르러 온돌이 지역적 계층적으로 확산되는 양상
• 발해의 상경 용천부 궁성 안의 살림집(상류계층 주거로 추정): 온돌이 발견
• 고려시대: 한반도 전역에 전파
– 익산 미륵사지 서편에 온돌시설 발견: ㄷ, ㄱ 자 쌍줄 고래, 아궁이가 방 안에 시설
– 감은사 온돌시설 발견: 4줄 고래, 아궁이가 건물밖에 고래 방향으로 설 치 온돌면적이 넓어지고 한 단계 발전함
• 고려시대 건물터에서 고래수가 증가됨
– 고래수의 증가는 난방면적의 증대 의미
» 방 일부분에 설치된 원시형 온돌이 방 전체를 데우는 시설로 발전 함을 의미
• 아궁이와 온돌의 분리
– 부엌과 방이 벽체로 구획 됨
– 난방공간은 무연의 청결한 공간, 연기가 없는 청결하고 쾌적한 주거공 간이 만들어짐.
주택내부와 바닥구조
• 온돌과 마루의 결합
– 고려시대주택은 온돌과 함께 마루도 시설되었을 것으로 추정
• 문헌 기록(동문선): 온실(온돌)과 냉재(마루), 욱실과 냉청으로 묘사 한 집 에 시설된 다른 용도의 공간 의미하며 온돌과 마루로 이해 됨
– 일반화를 의미하지 않음 but 따뜻한 방과 시원한 마루를 겸비한 주거 형식의 출현 의미
• 온돌과 마루는 칸막이 벽 또는 문으로 구획되었을 가능성 공간의 기능별 분리를 시사
• 맹씨 행단의 평면형식
– 중앙에 대청마루 양 옆에 온돌방을 배치, 온돌방은 앞뒤 두 부분으로 나뉘어짐
• 충남 아산의 맹씨행단
– 고려시대 상류계층 주거의 건축 방식 추정에 도움 – 기둥
• 초익공 형식의 공포설치, 앙서형 쇠서(조선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초익공 형식과 다름
• 창방이 없음 – 창호
• 정면: 대청 2칸부분에 설치-각각 3짝 창호 구성-조선시대는 짝수로 구성
• 죄측의 중앙부분만 외여닫이문, 나머지는 모두 들문으로 처리
• 창호 아래 위에 모두 머름을 설치
• 우물 정자의 격자살 사용 –조선시대에는 주로 띠살문 사용-
• 창호구성수법: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 고려시대 건물의 창호방식과 유사함
• 창호
– 문과 창의 기능이 혼합되어 출입과 통풍, 채광이 가능, 전면개방 가능 – 창은 머름대를 설치 그러나 문과 기능상의 차이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