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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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approximately 1.818m) was used in the Ground Plan of Changdeokgung. It is likely that the Ground Plan of Changdeokgung was produced by a Japanese engineer affiliated with Gungnaebu or Yiwangjik at the time. Therefore, it applied the Japanese scale ‘間’ rather than a Korean scale. Second, the Ground Plan of Changdeokgung was produced by setting the height of the control point (in front of Honghwamun (2)) at 55間, which corresponds to 100m, so that the conversion between the two scales – 間 and Meter –would be convenient. This ground plan used a cadastral map, which applied the Japanese scale 間, as a base drawing in accordance with the 「General Survey Conduct Regulations(Temporary Land Survey Bureau No. 1, 1914)」. It was presumed that this ground plan was supplemented and modified by the use of topographic control surveying specified in 「Land Surveying Regulations (1921.3.18. Joseon Governor’s Order No. 10, 1921)」 for recording precise terrain. Therefore, it is reflected the convenience as the two scales are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this ground plan. Third, the topography of Donggwol in the 1930s was calculated by subtracting about 71.55m form the height of the Ground Plan of Changdeokgung converted to a meter. Fourth, the benchmark 31-01-00, indicated in the First-order Benchmark Layout, which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around 1926, is closest to Changdeokgung Palace and still remains. It is reviewed to confirm that the measurement error at that time and it figures out about 0.3084m. If the terrain analysis is performed with the height value corrected by the meter of the ground plan in the future, it means that an error of 0.3084m may occur. Lastly, by reviewing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ntour drawn in the Ground Plan of Changdeokgung, the study presents the four categories of land use, slope, water system, and structures to revise the contour that were omitted or severed.. 주제어 : 복원, 동궐, 창경궁, 지형도, 등고선 Keywords : Restoration, Donggwol, Changgyeonggung Palace, Topographic Map, Contour Line. 1. 서론 1.1 연구의 배경과 목적 지형의 3차원적인 접근과 해석은 과거의 경관을 추정하고, 당시의 모습을 구체화하 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포함한 동궐(東闕)은 평지에 자리 잡은 여타 궁궐들과 달리 응봉산 자락에 자리를 잡아 지형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경관 을 연출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동궐의 변형과 훼손 과정에서 조선 시대 의 경관을 잃게 되었다. 특히, 궁궐의 통치기능이 마비되면서 창덕궁 돈화문에서 궐내 각사에 이르는 공간에는 일본 양식의 궁내부청사가 들어서고, 편전인 선정전과 희정 당 일원에는 차량 진입이 가능한 차로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창경궁의 동물원과 춘당 지, 후원의 원로(園路) 조성 등 1900∼1930년대에 진행된 각종 토목공사는 동궐 지형 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광복 이후 동궐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은 1990년대부터 전각을 중심으로 한 복원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궁궐의 전각뿐만 아니라 원형 경관의 복원과 유지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 고 있다.1) 그간 학계는 원형 경관을 정의하거나 복원 시점의 설정 등에 관한 논의를.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69.
(3)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진행해 왔지만, 경관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지형에 관한 연구는 주목하지 않았다. 일부 지형에 관한 연구는 풍수지리 원리를 투영한 궁궐의 입지와 배치(김규순, 2019; 조재모, 2017; 정우진과 고제희, 2016; 송인호와 조은주, 2012)에 관한 것이 주 를 이루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고지도, 도면, 회화 자료에 나타난 공간을 구성하는 산세나 수계의 개념적 접근과 현상(現狀)을 고찰하는 데 집중하여 실질적인 지형 분 석이나 해석에 한계를 지녔다. 한편, 김정미(2014)는 3차원으로 그려진 서궐도안(西闕 圖案)과 현재의 지형을 비교하면서 보다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경사지에 위치 한 경희궁의 입지와 위계 구도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서궐도안에서 확인된 권역별 지형과 현재 지형의 3차원 수치지형모델(Digital Terrain Model)과 비교함으로써 당시 의 경관을 입체적으로 추정하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비교 시 점의 시간적 차이가 크고, 그사이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지형 자료가 부족하였다. 한편, 동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던 일제강점기 다양한 도형 자료가 공개되면서 근대기 변천에 관한 연구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1936년 무렵 대축 척 지도로 작성된 창덕궁평면도(昌德宮平面圖)는 이강근(2014)의 연구에서 일제강점 기 동궐의 지형이 정밀하게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 가치가 조명되었다. 일제강 점기 지형도 제작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토지수탈이나 군사 목적으로 전 국토에 대해 작성된 소축척 지형도에 집중되어 왔다. 반면, 일부 제한적인 지역을 대상으로 작성된 대축척 지형도에 관한 연구는 공개된 자료의 부족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 다. 대표적으로 김추윤과 송호열(2005), 반도미야(2008)는 대축척 지형도에 관심을 가 졌지만, 지형도의 제작방식 보다는 지형도의 종류, 제작 기관이나 기술자 등을 중점적 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대축척 지형도로 동궐의 지형 정보가 정 밀하게 기록된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을 규명함으로써 1930년대 지형 경관을 파악 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1.2 연구의 대상과 내용 현재 장서각에는 1911년 무렵, 1921∼1932년과 1932∼1936년 사이, 1936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4종의 창덕궁평면도가 있다.2) 가장 나중에 제작된 창덕궁평 면도는 여타 지형도와 달리 1/1,200 대축척 지형도로 땅의 높이를 파악할 수 있는 등 고선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고, 간(間) 단위로 표고점의 값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 연구는 시기적으로 창덕궁의 조선 후기 지형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한 매개 자료 로써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1936년 무렵 창덕궁평면도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였다 (그림 1). 연구내용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4개 항목으로 구성하였다(그 림 2). 첫째, 평면도에 사용된 용척(用尺)을 파악하고, 둘째, 척도(尺度)를 변환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하였다. 셋째, 평면도와 유사시기에 제작된 지형도와 교차 분석하여 표고점의 오차를 검증하였다. 마지막으로 변환된 표고 값의 적용을 위해 유실된 등고 선의 복원을 위한 보정 유형을 도출하였다.. 1) 안계복, 이원호(2014) 조선 시대 궁궐 정원의 원형 경관 복원을 위한 제안. 한국조경학회지 32(3):10-20. 2)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형도는 ‘도(圖)’, ‘평면도(平面圖)’, ‘배치도(配置圖)’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창덕궁평면도는 동궐의 지형 정보가 수록된 지형도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창덕궁평면도, 창경궁배치도 등 도형자료의 명칭은 고유명사를 사용하였으며, 이 외의 도형자료는 ‘지형도’라는 명칭으로 표기하였다.. 170.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4)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일제강점기 대축척 지형도의 제작 특성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 분석. 용척(用尺)검토. 척도(尺度)변환. 표고점 오차. 등고선 보정 유형 도출. 토지이용. <그림 1> <창덕궁평면도(1936)>. 경사. 수계. 구조물. <그림 2> 연구 내용. 1.3 연구의 방법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덕궁평면도에 사용된 間 단위를 파악하기 위해 일 제강점기에 통용된 척도, 대축척 지형도의 측량 방식, 측량 기술자 등을 비교⋅분석하 였다. 둘째, 창덕궁평면도의 측량 기준점을 검토하여 척도 변환(間→M)을 위한 기준 점을 설정하고, 창덕궁평면도와 유사시기에 제작된 지형도와 현재 수치지형도의 표고 점을 비교하여 보정 값을 도출하였다. 셋째, 변환된 표고점의 오차를 검증하기 위해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수준점을 검토하여 당시 측량의 오차 범위를 파악하였다. 넷 째, 보정된 표고 값이 부여될 창덕궁평면도의 등고선을 복원하기 위해 토지이용, 도로, 수계, 구조물 등 주요 공간 요소를 중심으로 등고선 보정 유형을 도출하였다.. 2.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 분석결과 2.1 일제강점기 대축척 지형도의 제작 특성 궁궐 관련 도형자료는 작성자 또는 작성기관에 따라 제작 목적과 방식, 내용과 표현 기법 등이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동궐도형(東闕圖形)과 북궐도형(北闕圖形)은 1900년 대 전통 측량방식에서 근대 측량방식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궁내부의 왕실 건축 기 구인 영선사가 간가도(間架圖)3) 형식으로 제작한 궁궐의 마지막 배치도로 추정되고 있다.4) 영선사는 궁궐의 건축 공사와 측량 및 제도를 담당하였던 기관으로 궁내부의 내장원 토목과에 편입된 이후 1908년부터 동궐의 건축 공사를 주도하였고, 이전 시기 와는 다른 근대적인 도면을 제작하였다. 창경궁급비원평면도(昌慶宮及秘苑平面圖)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인 기술자 마 에노타카시(前野峰士)가 제작한 대축척 지형도이다(그림 3a). 평면도에는 창경궁과 3) 축척을 대신하여 동일한 간격으로 그려진 방안 위에 건물의 배치를 그린 일종의 평면도로 조선시대에 활발히 제작되었다. 4) 이규철(2010) 대한제국기 근대적 측량의 도입과 측량도면의 성격. 건축역사연구 19(6): p.202..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71.
(5)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후원 일대가 축척 1/2,000으로 표현되어 있고, 전각을 중심으로 한 동물원, 박물원, 식 물원의 건립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선의 색상으로 기존 시설(검은색)과 신설 예정인 길 및 부지(붉은색)가 구분되어 있다.5) 눈에 띄는 점은 건물 배치만 표현하였던 이전 도형자료와 달리 자경전(慈慶殿) 터에서 후원에 이르는 지역의 지형이 붉은색 등고선 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축 예정인 건물 주변으로 지형의 변경 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평면도의 제작 단위나 등고선의 높이 값이 누락되어 있어 실재 땅의 변화 를 파악할 수 없다. 창경궁급비원평면도와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창경궁배치도(昌慶宮配置圖)에서도 동궐의 지형이 확인된다(그림 3b). 창경궁배치도는 일본의 도량형표준(日本曲尺)인 ‘척(尺)’을6) 사용하여 1尺을 0.30m로 환산하면 건물의 규모, 평면상의 거리 등을 알 수 있다(표 1). 그러나 등고선은 종류의 구분이 없고, 표고 값이 누락되어 정확한 지형 의 높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초기에 제작된 대축척 지형도 는 작성자나 작성기관에 따라 단위, 등고선의 종류, 표고점 등 기본적인 지형 정보가 상이하게 수록되었다. 이는 19세기 말까지 수평거리 측정에 사용된 상한의(象限儀)를 이용한 전통 측량방식이 혼용되면서 정확한 지형 측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기술적 한계로 추정된다.7) 그러나 1910년 이후 근대 측량방식이 체계적으로 도입되면서 정밀 한 지형 기록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a. <창경궁급비원평면도(昌慶宮及秘苑平面圖)>. b. <창경궁배치도(昌慶宮配置圖)>. (1908 무렵, 장서각 소장). (1909 이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그림 3> 동궐의 지형이 표현된 평면도. 2.2 용척(用尺)의 검토 1910년 이후 제작된 대축척 지형도는 창덕궁평면도가 대표적이다. 間 단위로 제작 된 창덕궁평면도의 지형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터로 변환이 필요하다.8) 이를 위해서는 단위의 특성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5)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009). 근대건축도면집 해설편. 서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p.76. 6) 갑오개혁 이후 190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제정된 「도량형규칙(度量衡規則)」에서도 일본의 단위가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奏 本 度量衡規則」 뺷관보뺸 光武 6년 10월 9일.). 7) 남영우(2011) 일제의 한반도 측량침략사: 조선말∼일제강점기. 파주:법문사. pp.99-100. 8) 뺷근대건축도면집:해설편(2009)뺸과 이강근(2014)의 논문에는 ‘間’단위로 제작된 <창덕궁평면도>의 단위가 ‘m’로 잘못 해석되어 있다.. 172.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6)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창덕궁평면도가 제작되기 이전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는 「도량형규칙(1902)」과 「 도량형법(1905)」이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측지(測 地)에 사용하도록 규정된 ‘間’과 일본식 척도인 ‘間’이 혼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일본 식 척도인 間은 1間을 6尺으로 1尺은 약 0.303m이다(표 1).9) 1間을 미터로 환산할 경 우 약 1.818m가 된다. 한편, 우리나라 척도인 間은 1間이 10周尺으로 1周尺은 약 0.2m 이다. 1間은 약 2.0m이다. 즉, 창덕궁평면도에 어떠한 도량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약 0.2m의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창덕궁평면도와 유사시기에 제작된 대축척 지형도를 비교하여 평면도에 적용된 間 단위를 검토하였다. 전술했듯이 일제강점기 궁궐 관련 대축척 지형도는 근대적 건축 또는 측량 교육을 받은 궁내부와 이왕직 소속의 일본인들을 주축으로 제작되었다.10) 이와 마찬가지로 창덕궁평면도도 동일한 기관이나 기술자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평면도 제작 당시 궁궐의 공문서에도 일본식 척도가 그대로 사용되었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일본식 척도인 間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1) 추정을 확실시하는 단서는 창덕 궁평면도의 작성에 사용된 기본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창덕궁평면도 제작 이전 1914 년 1월 우리나라 지형측량에 관한 법령의 효시가 된 「일반측량실시규정(임시토지조사 국 훈령 제1호)」이 공표됨으로써 지형도는 지적도를 축사(縮寫)하여 측량하도록 규정 되었다.12) 당시 지적도는 일본식 척도인 間을 사용하여 축척 1/600과 1/1,200로 제작 되었다. 결국 창덕궁평면도는 間을 사용하여 축척 1/1,200로 제작된 지적도를 기본도 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지적도와 동일한 일본식 척도인 間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판단 된다. <표 1> 근대기 일본과 우리나라의 도량형 (이규철과 전봉희, 2009) 1891년 일본 「도량형법」 단위. 度. 1902년 「도량형규칙」⋅1905년 「도량형법」. 환산값. 단위. 환산값. 단위. 毛. 1/10000. 尺. 毫. 1/10000. 尺. 厘. 1/1000. 尺. 釐. 1/1000. 分. 1/100. 尺. 分. 1/100. 寸. 1/10. 尺. 寸. 1/10. 尺. 尺. 0.30. m. 尺. 0.30. m. 丈. 10. 尺. 丈. 10. 尺. 間. 6. 尺. -. -. 町. 360. 尺. -. -. 里. 12960. 尺. 里. 1386. 度. 환산값. 釐. 1/100. 周尺. 尺. 分. 1/10. 周尺. 尺. 周尺. 0.20. M. 步. 6. 周尺. 間. 10. 周尺. 鏈. 100. 周尺. 里. 2100. 周尺. 息. 63000. 周尺. 地 測 度. 尺. 2.3 척도(尺度)의 변환 창덕궁평면도에 기록된 지형을 다른 시기나 현재 지형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미터로 9) 30.30㎝는 일본 메이지 정부가 도량형 제도를 개정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1871∼1874)에서 산출된 평균치이다. 1875년 5월에 「미터조약(Convention of Meter)」에 가입하면서 제정한 「度量衡取締條例」에서 법제화하여 1 尺을 1m 原器의 10/33(0.3030)으로 규정하였다(이규철과 전봉희(2009) 개화기 근대적 度量衡의 도입과 尺度 단위의 변화.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5(11): p.232). 10) 이강근(2009) 근대기(近代期) 창덕궁(昌德宮) 건축의 변천에 대한 연구. 강좌미술사 42. p.14. 11) 일본에 의해 1910년 12월 조선토지조사사업의 목적으로 제작된 근대 시기 지적도는 지상 거리를 측정하는 단위로 間을 사용하였으며, 도상 길이를 측정할 때에는 尺을 허용하였고, 1間은 6尺(1.818m)으로 규정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2017) 지적측량 법령의 수 식 고증 연구. 완주: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 p.ⅷ). 12) 1910년 시작된 한반도의 조선토지조사사업은 동경 원점을 기준으로 1918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전국의 토지에 대하여 축척 1/600, 1/1,200 의 지적도가 제작되었고 지적조사의 부속조사로 1/50,000등의 지형도가 작성되었다..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73.
(7)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변환과 변환을 위한 기준점의 설정이 필요하다. 평면도에는 축척, 범례, 측량 기준점 등 도면의 기본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그림 4). 특히, 범례의 해제에서 측량 기준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확인된다. 평면도의 기준점은 홍화문 앞 (2) 지점으로 높이를 55 間으로 가정하고, 등고선은 1間 간격으로 제작되었다(표 2). 홍화문 앞(2) 지점은 평 면도에서 확인된다(그림 5a). 홍화문 전면은 2번으로 가정되었기 때문에 기준점 1번 이 존재해야 하지만, 평면도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기준점은 측량과정에서 설정되므로 기준점 1번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평면도의 측량방식을 검토하였다. 평면도의 기본도인 지적도는 삼각측량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삼각측량은 대삼각점과 소삼각점을 기준으로 하여 측량 기준점이 부족할 경우 보조 기준점을 설정하는 도근측량(圖根測量) 방식을 사용한다.13) 이에 비추어볼 때 평면도 제작 시 추가된 기준점 1번이 평면도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표기가 생략된 1번의 위치는 2번이 창경궁 홍화문 앞에서 확인되므 로 창덕궁 돈화문이나 동궐 인근의 소삼각점 주변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평면도의 척 도 변환 시 기준점은 홍화문 앞(2)지점을 중심하되 1930년 이전부터 위치가 변동되지 않은 건조물들의 좌표를 추가로 활용해야 한다. 기준점의 높이 값에서도 척도 변환의 용이성이 확인되었다. 1921년 제정된 「토지측 량규정(土地測量規定, 1921.3.18. 조선총독부 훈령 제10호)」에 따라 도근측량은 미터 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었다. 홍화문 앞 (2) 지점의 높이 값을 일본식 척도를 적용하여 미터로 환산해 보면, 1間은 1.818m이므로 55間은 99.99m, 약 100m가 된다. 즉, 창덕궁 평면도 제작에는 일본식 척도인 間을 사용하는 지적도와 미터를 사용하는 도근측량이 병행되면서 의도적으로 2가지 척도의 변환이 편리하도록 기준점의 높이는 55間으로 설정되었다.14). a. 축척. b. 범례. <그림 4> <창덕궁평면도(1936)>의 도면 정보 <표 2> 측량 기준점의 해제 ‘標高는 弘化門 前 2 號15)杭을 五十五間으로 假定하고 間單位라 함. 水平曲線의 等距離는 一間임.’ ‘표고는 홍화문전(2)호항을 오십오간으로 가정하고 간단위라 함. 수평곡선의 등거리는 일간임.’. 13) 「도근측량 실시규정(1913년 10월 5일 훈령 17호)」 14) 尺으로 된 자와 m 단위로 된 자를 비교하면 尺 단위 자의 11間이 m 단위의 자 20m와 일치한다. 따라서 면적 단위를 환산하기 위하여 m 단위 자 20m와 尺 단위 자 11間을 계수로 정하였다(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2017) 지적측량 법령의 수식 고증 연구. 완주: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 정보연구원. p.58). 15) 원래는 전서의 자획을 간략화하고 일상적으로 쓰기에 편리한 예서체로 号(이름 호)+乕(범 호)가 결합된 형태로 사용되었다.. 174.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8)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그러나 현재 홍화문 앞 (2)지점의 높이는 약 28m로 창덕궁평면도와 약 72m정도 차 이가 발생한다(그림 5). 척도를 변환 후 발생한 표고 차이가 현재 지형도에서만 나타 나는 것인지 아니면 창덕궁평면도와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지형도에서도 공통되게 나 타나는 것인지 검토하였다. 검토를 위해 창덕궁평면도와 작성시기가 가장 근접하고 미터 단위로 제작된 경성지형도(1921)를 참고하였다.16) 경성지형도는 소축척 지형도 로 창덕궁평면도와 비교 가능한 표고점은 2곳 밖에 없었다. 표고점은 개유와(皆有窩) 동남쪽과 돈화문 전면에 위치하였다(그림 6). 창덕궁평면도에서 두 지점의 높이는 각 각 71間, 58.20間으로 미터로는 약 129.0.8m, 105.81m가 된다. 그러나 경성지형도에서 동일한 지점은 각각 58.20m, 33.60m으로 창덕궁평면도와 평균 71.55m의 차이가 발생 하였다(표 2). 즉, 미터로 전환된 창덕궁평면도의 높이 차이는 과거와 현재 지형도에 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a. <창덕궁평면도(1936)>. b. <수치지형도(2020)>. <그림 5> 홍화문 앞 (2)지점의 표고점 변화. a. <경성지형도(1921)>. b. <창덕궁평면도(1936)>. <그림 6> 일제강점기 표고점 비교 <표 3> 일제강점기 표고점 비교결과 (단위, m) 측정 지점. 경성지형도(1921). 창덕궁평면도(1936). 차이. 개유와의 동남쪽 구릉. 58.20. 129.08 (71.00間). 70.88. 돈화문 주변. 33.60. 105.81 (58.20間). 72.21. 평균. -. -. 71.55. 16) 경성지형도는 측량 시점을 기준으로 1915년과 1921년에 각각 축척 1/10,000, 1926년에 축척 1/50,000으로 3본이 제작되었다. 경성지형도와 수치지 형도는 국가공간정보포털(http://www.nsdi.go.kr/lxmap/index.do)에 제작 시기별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75.
(9)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검토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창덕궁평면도가 작성되기 이전에 조성된 전각이 나 주요 시설물의 위치가 변하지 않은 지역 또는 정비나 발굴 사업 등이 시행되지 않 아 지형의 형질변경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지역의 표고점을 추가로 비교하였다. 창덕 궁의 가정당, 신선원전, 돈화문 3곳과 창경궁의 환경전, 장식온실 2곳 등 총 5곳이 선 정되었다(그림 7). 비교결과, 창덕궁평면도의 평균 높이차는 71.47m로 경성지형도에 서 확인된 71.55m와 유사하였다(표 3). 따라서 창덕궁평면도의 지형은 미터로 변환된 높이 값에서 71.47m와 71.55m의 평균인 약 71.51m를 차감하여 보정된 높이 값으로 검 토되어야 한다.. a. 가정당 주변. b. 신선원전 주변. c. 돈화문 북쪽. d. 환경전 동쪽. e. 장식온실 남쪽. <그림 7> 현재 표고점 비교(창덕궁평면도(붉은색)과 2020년 수치지형도(검은색)) <표 4> 현재 표고점 비교결과 (단위, m) 구분 가정당 주변 창덕궁. 창경궁. 신선원전 주변. 창덕궁평면도(1936 무렵). 수치지형도(2020). 차이. 125.44 (69.0間). 54.0. 71.44. 124.53 (68.5間). 53.0. 71.53. 등고선. 123.62 (68.0間). 52.0. 71.62. 표고점. 121.26 (66.7間). 49.7. 71.56. 돈화문 북쪽 표고점. 105.81 (58.2間). 34.6. 71.21. 환경전 동쪽 표고점. 105.44 (58.0間). 34.0. 71.44. 장식온실 남쪽 표고점. 107.99 (59.4間). 36.5. 71.49. -. -. 71.47. 평균. 2.4 표고점의 오차 검증 정확한 지형의 높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측량 오차를 고려해야 한다. 측량 오 차는 측량방식에 따른 계산식이 사용되어 산출되지만, 아직까지 일제강점기 대축척 지형도와 관련하여 확인된 자료가 없다. 그러나 지형도 작성 시 땅의 높낮이를 측정하 기 위해 사용된 수준측량의 수준점을 추적해봄으로써 검토가 가능하였다. 수준점은 수준원점에서17) 해수면의 높이를 장기간 연속적으로 측정하여 얻은 평균값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곳의 해수면 높이나 육지의 높이를 비교할 때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1910년경에 측량을 시작하여 전국의 주요 도로변을 따라 일정한 간격(2∼4km)으로 수준점을 설치하였고, 1915년에는 전국적으로 설치된 수준점이 약 4,500(남한 2,400 점)개에 달하였다.18) 당시 수준점은 일본의 토지 수탈과 군사 목적으로 국토 전역에 17) 우리나라에서는 인천항의 3개 년간(1914∼1916년)의 평균 중등조위면을 산출하여 1917년에 인천시 화동 1가 2번지에 설치하였던 것을 1963년 12 월에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인천의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정에 표고 26.6871m의 수준원점을 이동시켰다. 18) 김주환, 강영복(1990). 地理學. 서울:신라출판사, pp.120-126.. 176.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0)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대한 소축척 지형도의 제작에 활용되었다. 1958년 국방부 지리연구소가 계획한 측량 기준점 정비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1974년까지 1등 수준점 875점, 2등 수준점 2,828점이 복구 및 신설되었다.19) 하지만 설치 시점에 따른 수준점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창덕궁 주변에 설치된 수준점과 평면도 의 표고점을 직접 대조하는 방식으로 검토하였다. 국토지리정보원은 1937년에서 1943년 사이에 육군측지부대가20) 축척 1/50,000 지 형도에 작성한 일등수준점배치도를 제공하고 있다.21) 배치도에 사용된 1/50,000 지형 도에는 측량이나 발행 시기, 범례 등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경성의 1/50,000 지형도는 1918(대정 7)년에 측량된 지형도를 1926(대정 15)년에 제1회 수정하여 측량하고, 1932(소화 7)년 8월 25일에 인쇄하고 30일에 발행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배치도에 사용된 지형도는 1926년에 수정된 경성지형 도로 추정된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가 포함된 일등수준점배치도의 자료는 총 3권으로 각각 1941년, 1943년에 제작되었다. 1941년 배치도에는 경기도 고양 일대와 1943년 배 치도에는 경성과 뚝도(纛島) 일대 일등수준점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경성은 지금 의 고양시에서 종로구, 뚝도는 종로에서 구리시에 이르는 지역으로 일등수준점배치도 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의 남쪽을 동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총 10개의 수준점이 표시되어 있다(그림 8).. <그림 8> 경성과 뚝도 일대 일등수준점의 위치(육군측지부대, 1937∼1943). 10개 일등수준점 중 창덕궁과 가장 근거리에 남아있는 수준점(번호 31-01-00, 국토 교통부)이 확인되었다(그림 9). 수준점은 종로구 종로6가 1호선 동대문역의 흥인지문 을 둘러싸고 있는 화단에 위치하며, 표고 값은 20.5784m이다. 일등수준점배치도에서 수준점의 표고는 20.27m로 수준점 31-01-00과 약 0.3084m의 차이를 보였다. 또한, 1915년에 제작된 뚝도의 축척 1/50,000 경성지형도에서 수준점이 20.39m로 표기되어 현재와 약 0.1884m 차이가 확인되었다. 뚝도의 1/50,000 지형도는 1915(대정 4)년에 측량된 지형도를 1925(대정 14)년에 제1회 수정하여 측량하고 1926(소화원년)년 12월 25일에 인쇄하고 28일에 발행되었다. 즉, 뚝도 1/50,000 경성지형도나 일등수준점배치 도에 사용된 기본도는 1915년∼1918년 사이에 제작된 것이지만, 일등수준점배치도의 경우 뚝도 1/50,000 경성지형도 보다 더 늦은 시기인 1926년 수정 측량된 지형도가 사 용된 것으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정확도가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22) 따라서 19) 20) 21) 22). 국토지리정보원(2008) 한국 지도학 발달사. 수원:국토지리정보원. pp.362-365. 일본의 육지측량부는 일본 근대지도의 총본산이었으며 육군참모본부라는 조직이 측량기술의 완성에 중추적 임무를 수행하였다. http://map.ngii.go.kr/e-book/search/index.jsp# 국토지리정보원(2008). 앞의 책. p.344..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77.
(11)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평면도에서 미터로 변환하여 보정된 표고 값은 당시 측량 오차인 0.3084m 범위 내에 서 가감이 발생할 수 있다.. a. <일등수준점배치도(1926년 추정)>. b. 네이버 항공사진(2020년). <그림 9> 수준점 비교결과. 2.5 등고선 복원을 위한 보정 유형 도출 1930년대 동궐의 입체적 경관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창덕궁평면도를 이용한 지형 복 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형 복원은 평면도에 그려진 등고선을 활용한 3차원 수치지형 모델의 제작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창덕궁평면도에는 등고선이 생략되었거나 단 절된 경우가 다수 확인되었다. 따라서 평면도의 등고선 복원을 위한 보정 유형을 검토 하였다. 평면도에는 총 3가지 종류의 등고선이 그려져 있다(그림 10). 5間 마다 굵은 실선으로 지형의 윤곽을 살필 수 있는 계곡선이 있고, 계곡선 사이에는 1間 마다 가는 실선으로 주곡선이 있다. 그리고 주곡선 사이에는 경사로 인한 지형 변화가 급격히 발 생하거나 주곡선 사이의 수평거리가 멀 경우 필요에 따라 0.5間 간격의 간곡선이 있 다. 등고선의 유실은 후원 지역보다는 건조물이나 보행로가 밀집된 전각 지역에서 빈 번히 나타났다.. a. 5間 계곡선. b. 1間 주곡선. c. 0.5間 간곡선. <그림 10> <창덕궁평면도> 등고선의 표기 유형. 전각이 밀집된 지역은 이미 여러 채의 일본식 건물이 신축되었고 차량 진입을 위한 도로가 개설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주요 전각과 수계 등 조선 시대 후기의 모습을 짐작 할 수 있는 요소도 남아있었다. 이처럼 당시의 공간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토지 이용, 경사, 수계, 구조물 등 등고선의 보정 유형과 보정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째, 등 고선의 높이 값이 표기되지 않았거나 주변 건축물, 도로, 보행로 등으로 인해 등고선 의 연결이 불분명할 경우 표고점과 주곡선의 맥락 그리고 토지이용을 기준으로 보정. 178.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2) 1930년대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에 관한 연구.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한다(그림 11a). 둘째, 주곡선이 완전히 생략된 경우는 주변의 땅이 평지인지 혹은 사 면인지 등 경사를 기준으로 보정한다(그림 11b). 셋째, 궁궐에서 금천으로 중요하게 여겨진 수계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므로 수계에 인접한 곳의 지형은 수계를 따라 높이차를 두어 조정한다(그림 11c). 넷째, 화계, 석축, 담장 등 궁궐의 주요 구조물 주 변의 숨겨진 등고선은 구조물이 주변이 평지가 되도록 구조물의 외곽을 따라 보정한 다(그림 11d). 이와 같은 기준으로 창덕궁평면도의 등고선이 보정된다면 당시 지형 의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a. 토지이용. b. 경사. c. 수계. d. 구조물. <그림 11> 등고선 복원 유형(검은색: 조정 전, 붉은색: 조정 후). 3. 결론 본 연구는 1930년대 작성된 창덕궁평면도의 제작방식을 분석하였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間 단위로 제작된 창덕궁평면도는 1間을 6尺(0.303m)으로 하는 일본식 척도 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당시 궁궐관련 도형자료들은 궁내부를 맡고 있던 이왕 직 소속의 일본인 기술자가 담당하였고, 이들이 작성한 도면이나 공문서에서 우리나 라 척도가 아닌 일본식 척도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유사시기에 궁궐에서 제작된 창덕궁평면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창덕궁평면도에는 기준점의 표고 값이 100m에 상응하는 55間으로 설정되었음을 확인 하였다. 평면도는 間 단위의 지적도를 기본도로 하고, 미터를 사용하는 도근측량 방식 으로 제작되었다. 이로 인해 기준점은 2가지 척도 간의 변환이 용이하게 지정된 것으 로 확인되었다. 셋째, 미터단위로 변환된 창덕궁평면도의 표고 값은 현재와 약 71.55m 정도 차이가 발생함을 밝혔다. 미터단위로 변환된 표고에서 약 71.55m를 차감해야 다 른 시기나 현재 지형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함을 의미하였다. 넷째, 보정된 표고 값은 당시 측량 오차 약 0.3084m내에서 가감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일제강점기 에 설치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창덕궁 인근의 수준점(31-01-00)과 창덕궁평면도의 표고 값은 약 0.3084m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당시 측량 오차로 판단되며, 지형 변화 의 검토 시 평면도에서 미터로 변환된 표고 값은 측량 오차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평면도에서 유실된 등고선의 복원을 위해 1930년대 창덕궁의 공간 구성이 반영된 등고선 보정 유형과 보정 방법을 도출하는 것 이 가능하였다. 본 연구는 그 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창덕궁의 일제강점기 지형 변화의 검토 가능성 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1930년대 지형 경관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복원된 창덕궁평면도의.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179.
(13) 한국경관학회지 12(2): 2020. 12.. 이재용. 등고선을 기반으로 3차원 수치지형모델을 작성하여 1930년대 지형을 실증해보고, 현 재 지형과 비교함으로써 약 100년 사이 경관 변화에 대한 검토가 병행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1. 김규순(2019) 조선 궁궐 입지 선정의 기준과 지형에 대한 연구 -경복궁과 창덕궁을 중심 으로. 문화재 52(3):130-145. 2. 김정미(2014) 경사지형 활용의 관점에서 살펴본 경희궁의 배치에 관한 연구. 경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 김주환, 강영복(1990). 地理學. 서울:신라출판사. pp.120-126. 4. 김추윤, 송호열(2005) 대한제국기의 대축척 실측도에 관한 사례 연구. 한국지도학회지 5(1):41-53. 5. 국토지리정보원(2008) 한국 지도학 발달사. 수원:국토지리정보원. pp.362-365. 6. 남영우(2011) 일제의 한반도 측량침략사: 조선말∼일제강점기. 파주:법문사. pp.99-100. 7. 반도미야(2008) 대한제국기의 토지조사와 지도제작에 관한 고찰: 한성부 대축척 실측도를 중심으로. 지리학논총 제52호. pp.49-73. 8. 안계복, 이원호(2014) 조선시대 궁궐정원의 원형경관 복원을 위한 제안. 한국조경학회지 32(3): 10-20. 9. 유복모(1996) 경관공학. 서울: 동명사. p.77. 10. 이강근(2014) 근대기(近代期) 창덕궁(昌德宮) 건축의 변천에 대한 연구. 강좌미술사 42: 11-31. 11. 이규철(2010) 대한제국기 근대적 측량의 도입과 측량도면의 성격. 건축역사연구 19(6): 187-208. 12. 이규철, 전봉희(2009) 개화기 근대적 度量衡의 도입과 尺度 단위의 변화. 대한건축학회논 문집 계획계 25(11):227-236. 13. 이재용(2019) 조선 후기 동궐(창덕궁⋅창경궁)의 원형 추정에 관한 연구: <동궐도(東闕 圖)>의 기하학적 재구성을 통하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4. 조재모(2017) 동궐의 궁궐운영 경험과 서궐의 계획-편전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제67호: 33-66. 15. 정우진, 고제희(2016)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배치형식에 투영된 풍수구조. 한국전통조경 학회지 34(1): 18-39. 16. 송인호, 조은주(2012) 18⋅19세기 漢陽都城 안 宮廟의 입지와 위상. 건축역사연구 21(6): 7-18. 17.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2017) 지적측량 법령의 수식 고증 연구. 완주: 한국국 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 18.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009). 근대건축도면집 해설편. 서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p.76. 19. http://map.ngii.go.kr/e-book/search/index.jsp# 20. http://www.nsdi.go.kr/lxmap/index.do. 원 고 접 수 일 : 2020년 4월 20일 심 사 일 : 2020년 4월 23일 게 재 확 정 일 : 2020년 12월 16일 3 인익명 심사필. 180. 한국경관학회지 제12권 2호(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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