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제06주: 토대론과 정합론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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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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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론을 위한 또 다른 논변

P1. 우리는 무한히 많은 정당화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P2. 믿음 p가 정당화되려면 또 다른 믿음 q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P3. 순환정당화는 있을 수 없다. P4. 정당화는 선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P1-P3가 모두 맞다면 어떤 정당화된 믿음도 불가능하다. C. 그러므로 어떤 믿음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선형구조란 무엇인가? => 이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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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전제의 부정 => 무한론

만일 P1을 부정한다면, 믿음 p는 q를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믿음 q는 r을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믿음 r은 s을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 와 같이 정당화의 구조가 무한히 뻗어나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이론을 "무한론 (infinitism)"이라고 부르며, 현재 이 이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로는 Rutgers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Peter Klein이 있다.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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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적 믿음 대 비발생적 믿음

언뜻 보기에, 무한론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입장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앞 슬라이드에서와 같은 정당화의 구조는 인식 주체가 무한히 많은 정당화된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할 텐데, 유한한 우리들은 무한히 많은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Klein은 발생적 믿음(occurrent belief)과 비발생적 믿음

(non-occurrent belief)을 구분함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 1. 발생적 믿음: 지금 의식적으로 사유되는 믿음. 예) 나는 지금 인식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2. 비발생적 믿음: 지금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의를 집중하면 내가 가지고 있음이 확연해지는 믿음. 예) 케냐에는 순록이 없다. 한 시점에 무한히 많은 발생적 믿음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비발생적 믿음들은 무한히 많이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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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전제의 부정 => 토대론

P2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정당화된 믿음이 다른 믿음에 의해서 정당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 즉 어떤 믿음은 다른 믿음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런 입장을 "토대론"이라고 부른다. 정당화의 다음 두 개념을 생각해 보자: 1. S의 믿음 p는 믿음 q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2. S가 p를 믿는 것은 정당화되었다, 또는 정당하다. 만일 당신이 정당화에 대한 의무론적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2는 S가 p를 믿는 것이 허용되는 인식론적 상황에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토론점:S가 2의 의미에서 p를 믿는 것은 어떤 믿음 q가 1의 의미에서 p를 정당화할 때에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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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 믿음과 비기본적 믿음

토대론은 정당화된 믿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1. 기본적 믿음들 (basic beliefs): 다른 믿음에 의해서 정당화된 것은 아니지만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차지하는 믿음들. 2. 비기본적 믿음들 (non-basic beliefs): 다른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었기 때문에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가지는 믿음들. 이 때 중요하게 대두되는 물음은, (Q1) "만일 기본적 믿음들이 존재한다면, 다른 믿음에 의해 정당화1되지는 않으면서도 어떻게 정당화2된 믿음의 위상을 차지하는가?"이다. 토론점: 여기서 정당화1과 정당화2는 같은 개념인가? 만일 같은 개념이라면 앞 물음의 대답은 무엇이 될까? 다른 개념들이라면 어떻게 해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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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 믿음과 비기본적 믿음 (계속)

또 한 가지 중요하게 대두되는 물음은 (Q2) "비기본적 믿음들은 어떻게 다른 믿음에 의해서 정당화되는가?"이다. Q1에 대한 대답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오류불가능주의: 기본적 믿음들은 오류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차지한다. 오류가능주의: 기본적 믿음들은 오류가능하지만 (어떻게든)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차지한다. Q2에 대한 대답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연역주의: 비기본적 믿음 p는 다른 믿음 q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됨으로써 정당화된다. 비연역주의: 비기본적 믿음 p는 다른 믿음 q로부터 비연역적으로 추론됨으로써 정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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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토대론

고전적 토대론은 오류불가능주의와 연역주의를 결합한 입장이다. 이 입장의 대표자는 _______이다. (괄호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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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토대론

고전적 토대론은 오류불가능주의와 연역주의를 결합한 입장이다. 이 입장의 대표자는 데카르트이다. (괄호넣기!) 데카르트의 오류불가능주의는 다음 형태를 띤다: 기본적 믿음들은 의심이 불가능하므로 오류불가능하다. 또 데카르트는 연역주의자였다: 일단 의심불가능한 믿음이 발견되면, 그로부터 우리 믿음체계 전체를 연역해낼 수 있다. 물음: 왜 의심불가능하다는 것이 오류불가능함을 함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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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토대론 (계속)

믿음들을 현상 믿음과 물체 믿음으로 나눠 보자: ● 현상 믿음: 우리에게 지각경험이 나타나는 방식에 대한 믿음. 예) 내 앞에 빨간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물체 믿음: 우리 바깥의 사물에 대한 믿음. 예) 내 앞에 빨간 것이 있다. 흔히 현상 믿음은 오류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라. 그 아픔이 단지 환상일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물체 믿음을 현상 믿음으로부터 추론해낼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음: 고전적 토대론으로부터 회의주의를 도출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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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토대론

고전적 토대론의 이런 문제점을 회피하려면, 오류불가능주의+비연역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Matthias Steup는 이런 입장을 강한 토대론이라고 부른다. (우리 책에서는 안 거론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의 요체는, 오류불가능한 현상믿음들로부터 물체믿음들을 연역적으로 도출해낼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비연역적 혹은 귀납적으로 도출해낼 수는 있으리라는 생각에 있다. 그러나 Steup는 다음 문제를 지적한다: 오류가능하건 불가능하건 간에, "내게는 이러저러한 것처럼 보인다"는 믿음을 얼마나 자주 형성하는가? 즉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상믿음을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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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토대론

고전적 토대론과 강한 토대론의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소토대론, 즉 오류가능주의+비연역주의가 토대론자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최소토대론에 의하면: 1. 기본적 믿음들은 있지만, 그렇다고 이 믿음들이 오류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아가서, 이 믿음들은 우리가 흔히 가질 법한 물체믿음들이기 때문에, 우리 믿음체계의 실제 초석으로 사용될 수 있다. 2. 비기본적 믿음들은 기본적 믿음들로부터 도출된다. 이때 양자간의 관계가 연역적인 함축관계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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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토대론 (계속)

최소토대론은 무한한 정당화나 순환적 정당화같은 반직관적 입장을 포함하지 않으며, 기본적 믿음들이 오류불가능할 것을 요구하지도, 또 비기본적 믿음들이 오직 연역적인 방식으로만 도출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소 토대론자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만일 기본적 믿음들이 오류가능하다고 한다면, 대체 왜 그 믿음들은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얻게 되는 것일까? 우리의 인식 목적이 참된 믿음을 획득하고 거짓된 믿음을 회피하는 것에 있음을 상기하자. 오류가능한 기본적 믿음은 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목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참이 보장된 다른 믿음에 의해 뒷받침된다면 이런 문제가 없겠지만, 기본적 믿음을 뒷받침하는 다른 믿음은 (정의에 의해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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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아닌 것에 의한 정당화

이 문제점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오류가능한 기본적 믿음 역시 그것이 정당화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 이유는 또 다른 믿음이 아니라, 지각 경험 자체이다. 이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김남중 박사의 얼굴을 10초간 들여다 보되,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마음을 비우도록 하자. (실시!) 다음으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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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아닌 것에 의한 정당화 (계속)

이제 묻는다: 김남중 강사는 오늘 검은테 안경을 끼었는가, 은테 안경을 끼었는가? 안 그랬던 사람도 있겠지만, 지시를 잘 따른 사람은 김남중 강사의 얼굴을 들여다 볼 때 그에 대한 별다른 믿음을 형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을 감았을 때 여러분은 (B) 김남중 강사가 x테 안경을 끼었다는 믿음을 형성했다. 여러분이 그렇게 믿은 이유는, 어떤 다른 믿음이 아니라, 여러분의 시각경험 자체다. 따라서 (B)는 정의상 기본적 믿음이다. 혹은 최소한 토대론자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결국 토대론은 믿음이 아닌 것에 의한 정당화(non-doxastic justification)가 가능하다는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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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 1: 인식적 상승 논변

A. B1은 기초믿음이다: (B1) 내 앞에 빨간 대상이 있다. P1. B1이 기초믿음이라면 정당화된 믿음이다. P2. B1이 정당화된 믿음이라면 다음 논변은 건전할 것이다. (i) B1은 F라는 특색을 가졌다. (ii) F라는 속성을 가진 모든 믿음들은 진리개연적이다. (iii) 따라서 B1은 진리개연적이다.

P3. (i)-(iii)가 건전하면, B1은 믿음 (i)과 (ii)에 의해 정당화된다. C. 가정 A는 거짓이다. 즉, B1은 기초적 믿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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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적 상승 논변은 건전한 논변인가?

앞 슬라이드에서 전제 P1은 참인가? 전제 P2는 어떠한가? 전제 P3는 특별히 주의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i) B1은 F라는 특색을 가졌다. (ii) F라는 속성을 가진 모든 믿음들은 진리개연적이다. (iii) 따라서 B1은 진리개연적이다.

P3. (i)-(iii)가 건전하면, B1은 믿음 (i)과 (ii)에 의해 정당화된다. P3는 어떤 경우 거짓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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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 2: 소여의 신화

A. B는 기초믿음이다. P1. B가 기초믿음이라면 감각경험 E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P2. B가 E에 의해서 정당화되려면 "E 그러므로 B"의 추론을 통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P3. 감각경험인 E는 명제적 내용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E 그러므로 B" 식의 추론은 불가능하다. C. B는 기초 믿음이 아니다. C*. 기초믿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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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론이란?

지각이론(theory of perception)이란 지각경험에 대한 모든

주제를 다루는 인식론과 심리철학의 경계학문이다. 그 이론의 중심주제 가운데 하나는 지각경험의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또는 지각경험을 참된 지각(veridical perception), 착각(illusion), 환각(hallucination)으로 나눌 때, 이들 각각에 대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을 수도 있다. ● 참된 지각: 외부세계에 있는 사물을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방식대로 느끼는 경우를 이른다. ● 착각: 외부세계에 있는 사물을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방식과 어긋나게 느끼는 경우를 이른다. ● 환각: 외부세계에 없는 사물을 이러저러하게 존재한다고 느끼는 경우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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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론 1: 감각소여 이론

감각소여이론(sense-data theory)에 의하면 1. 지각경험의 직접적인 대상은 사실은 인식주체로부터 독립적인 사물이나 사실이 아니고 감각소여(sense-data)라고 불리는 심리적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즉 외부사물은, 그것이 지각된다면, 감각소여의 지각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지각된다. 2. 차갑게 느껴짐, 빨갛게 보임 등과 같이 지각주체에게 어떠하게 나타나는 속성을 현상적 속성(phenomenal properties)이라고 한다. 현상적 속성의 담지자는 바로 이 감각소여들이다. 감각소여 이론은 참된 지각과 주관적으로 구별불가능한 착각이나 환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 이론은 또한 바깥 세계와 지각주체 사이에 감각 소여라는 베일을 드리움으로써 회의론의 가능성을 심화시키는 문제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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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론 2: 선언주의

선언주의(disjunctivism)에 의하면: 1. 참된 지각이 일어날 때 지각 경험의 대상은 바깥 세상의 마음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상이나 사실이다. 반면 환각이 일어날 때 지각 경험은 바깥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2. 참된 지각이 일어날 때 지각주체는 실제 속성과 현상적 속성은 일치한다. 이것은 지각 경험과 착각&환각은 존재론적으로 매우 다른 구조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넓은 의미에서의 지각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S는 [a가 F]인 것처럼 느낀다=dfS는 [a가 F]라고 참되게 지각하거나, S는 [a가 F]인 것같은 착각 또는 환각을 겪는다. (옥(jade)의 경우와 비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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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론 3: 지향주의

지향주의(intentionalism)에 의하면: 1. 참된 지각경험의 대상은 외부 사물이나 사실이 맞지만, 그런 지각경험은 명제같은 표상적 기능을 가진 지향적 대상 (intentional entity)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지향적 대상들은 착각이나 환각의 경우에도 개입한다. 2. 현상적 속성의 담지자는 외부사물이다. 매개체인 지향적 대상이 아니다. 지향주의는 따라서 외부사물과 지각주체 사이에 베일을 드리우지도 않을 뿐더러 주관적으로 구별불가능한 참된 지각, 착각, 환각을 비슷한 존재론적 모형을 가지고 설명하는 이점이 있다. 우리 논의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지향주의와 소여의 신화 논변 사이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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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주의와 소여의 신화

지향주의가 맞고 지각경험이 명제를 내용으로 가진다고 하자. 그 경우 소여의 신화 논변에서 다음 전제는 틀린 것이 된다: P3. 감각경험인 E는 명제적 내용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E 그러므로 B" 식의 추론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에 본 소여의 신화 논변은 불건전한 논변이 된다. (지향주의가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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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된 소여의 신화 논변 (Optional)

A. B는 기초믿음이다. P1. B가 기초믿음이라면 감각경험 E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P2. B가 E에 의해서 정당화되려면 "E 그러므로 B"의 추론을 통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P3. E가 명제적 내용을 가지지 않았다면 "E 그러므로 B" 식의 추론은 불가능하다. P4. E가 명제적 내용을 가졌다면, E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기 때문에, "E 그러므로 B"의 건전한 추론을 통해 B가 정당화 되려면, E가 믿어지고 그 믿음에 의해 B가 정당화되어야 한다. C. B는 기초 믿음이 아니다. C*. 기초믿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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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전제의 부정 => 정합론 1

만일 P3를 부정한다면, 믿음 p는 q를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믿음 q는 r을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믿음 r은 s을 증거로 하여 정당화되고, .... 믿음 x는 p를 증거로 하여 정당화된다 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입장을 "정합론 1"이라고 하자. 정당화 관계는 이행적이기 때문에, p는 p자체를 증거로 하여 정당화된다. 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왜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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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전제의 부정 => 정합론 2

지금까지 우리는 정당화가 선형구조를 가지는 믿음들 간의 관계라고 가정하여 왔다. 그러나 Kvanvig같은 이들은 이를 부정한다. 이들은 정당화가 믿음 p와 믿음 q 간의 관계가 아니라, 믿음 p와 믿음체계 S의 관계 라고 제안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p가 정당화된다=df어떤 정합적 믿음체계 S가 있고 p는 S와 잘 정합한다. 이런 입장을 정합론 2라고 하자. 이 입장에 전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믿음체계 S의 범위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2. 정합성이란 무엇인가? 또는 어떤 믿음체계 S가 정합적이란 것은 무엇이고, 어떤 믿음 p가 S와 잘 정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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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합론 1은 어떤 물음에 답하는가?

Hilary Kornblith에 의하면 우리는 두 물음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Q1. 믿음들 간의 정당화 관계는 어떤 구조를 형성하는가? Q2. 한 믿음은 어떻게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획득하는가? 정합론 1, 즉 정당화관계가 순환적이라는 입장이 물음 Q1에 답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입장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Q2에도 답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믿음 p는 자기자신을 포함한 믿음들에 의해 정당화됨으로써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획득한다. 하지만 이것은 즉각 앞의 반론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만일 이유로서의 p가 정당화되지 않았다면 어떤 믿음도 정당화 할 수 없고, 그 p가 정당화되었다면 더 이상의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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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합론 2는 어떤 물음에 답하는가?

정합론 2는 Q2에 답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Q2. 믿음 p는 어떻게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획득하는가?=> 어떤 정합적인 믿음체계 S와 잘 맞아떨어짐, 즉 정합함에 의해. 여기서 잣대가 되는 믿음체계는 p를 꼭 포함할 필요가 없으므로 순환 정당화의 비판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정합론 2는 물음 Q1을 답해지지 않은 상태로 놓아둔다. 그러므로, 정합론 1은 Q1에 대한 답으로, 정합론 2는 Q2에 대한 답으로 제공하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이 된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정합론의 정의는 아니지만, 우리는 명시적으로 달리 정의하지 않는 한 앞으로 정합론=정합론 1+정합론 2라고 간주하고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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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 1: 불명료성

불행히도, 정합론에는 몇 가지 난점이 있다. 첫번째 난점은 과연 정합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합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어떤 믿음체계 S가 정합적이란 것은 무엇이고, 어떤 믿음 p가 S와 잘 정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라는 물음들로 쪼개질 수 있다. 만일 S가 정합적이라는 것이 S에 속하는 믿음들간에 모종의 도출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라면, S*=df{not-p|p는 S에 속한다}역시 그러하다. (Lehrer의 Theory of Knowledge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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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 2: 고립논변

정합성이 무엇인지 엄밀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믿음체계가 내적으로 정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슨한 이해는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이 느슨한 이해만으로도 많은 인식론의 논쟁에서 문제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명료성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극복(혹은 무시)한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우려할 수 있다: 정합론자들은 믿음이 아닌 것에 의해서 어떤 믿음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어떤 다른 믿음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면, 믿음체계 바깥의 현실과의 접점은 어디있는가? 우리 믿음체계가 정합론자들의 방식으로 꽉 짜여있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체계가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면, 그것이 골방에 틀어박혀 누군가가 써내린 매우 완결적이고도 내적으로는 정합적인 환상소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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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 3: 진리개연성 문제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난점은 다음 물음에 답하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정합적인 믿음체계와 잘 맞아떨어지는 믿음은 왜 진리개연적인가? 다시 말하자면, 정합성과 진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왜 있어야 하는가? 앞 슬라이드에서 거론한 골방에서 써내린 환상소설을 생각해 보자. 그런 소설이 진리개연적이라고 생각할 어떤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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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정당화를 믿음들 간의 이항관계로 생각할 때 (i) 무한히 뻗어나가거나, (ii) 멈추거나, (iii) 순환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들은 각각 반직관적인 측면이 있다. ● (i), 즉 무한론은 거의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 (ii), 즉 토대론은 주류입장이지만, 인식론적 상승논변이나 소여의 신화 논변에 의해서 비판되어 왔다. ● (iii), 즉 정합론 1은 그 자체만으로는 순환정당화가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줄 수 없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이항관계로서의 정당화와 일항속성으로서의 정당화 개념을 불리함으로서 이런 비판을 벗어날 수 있다. ● 정합론 2는 일항속성, 즉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 개념을 해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 정합론(=정합론1+정합론2)은 그러나 불명료성, 고립논변, 진리개연성 문제에 시달린다.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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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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