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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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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 초반 잡가집에 수록된 남도잡가 흥타령 의 실체에 관한 논의는 두 가지

20 < >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초기 연구는 잡가집 소재의 흥타령 의 실체를 남도 흥타. < > <

령 으로 파악한 결과로 진행된 반면> ,64) <흥타령 에 관한 최근 연구는 이러한 초기>

연구 결과에 대하여 소재에 따른 작품의 실체를 형성과정 및 악곡적인 분석에 의해 재고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65) 특히 흥타령 에 관한 최근 연구자인 손인애는< >

천안삼거리 흥타령 와 남도민요 흥타령 을 대상으로 각각의 음악적 형성과정을

< ( )> < >

역사적으로 분석한 결과 잡가집 소재의 흥타령 대부분을 초기 경기 흥타령 천안, < > < ( 삼거리 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흥타령 에 관한 초기 연구와 최근 연구의 흐름은>

정확히 그 맥을 달리하고 있으며 근래에 이루어진 연구는 흥타령 과 관련된 주요, < >

연구사에 있어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본고는 잡가집 소재의 남도잡가 흥타령 을 선정하여 분석하< >

기에 앞서 작품의 실체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꼈다, . 작품의 존재 양상에 대한 규명의 과정을 거친 후 매체에 따른 사설의 구체적인 분 석을 통해 남도잡가 흥타령 이 지닌 독자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보고자 한< >

다.

64) 권오경은 19세기 전반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東大伽倻琴譜 소재 흥타령 의 사설< >

이 텬안산거리 수양버들은 머세 게와 흐느러저구나 아고 고 흥으흥으 성화가 낫네 흥“ 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권오경은 위의 고악보에 실린 흥타령 의 수록 과. < >

정을 살펴보면서 남도지역의 토속민요인 흥타령 의 영향을 받아 통속민요 흥타령 과, < > < >

천안삼거리 남도잡가 흥타령 이 형성되었다고 분석하였다 권오경 세기 고악보 소재

< > < > . , 19「

민요 연구」 , 한국시가연구 제 호 한국시가학회12 , , 2002, 315 .;면 홍성애는 잡가집 소재의 흥타령 대부분은 남도흥타령 이라고 주장하였다 홍성애 통속민요의 성격과 전개양상

< > < > . , 「 연구 강릉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 1999, 36 .면

65) 손인애 경기민요 천안삼거리 흥타령 에 대한, 「 ( ) 史的 고찰」 , 한국민요학 제 집 한국민요26 , 학회, 2009.; 손인애, 「남도민요 잡가( ) <흥타령 에 대한> 史的 고찰」 , 한국음악연구 제46 집 한국국악학회, , 2009.; 최상은은 민요 흥타령 이 천안 지역에서 발생하여 잡가와 이행< >

기 시가 문학양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상은. , 19「 세기 말·20세기 초 민요 흥타령 의 수용과 변개양상 잡가와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제 집

< > – - ,」 85 ,

한국국어교육학회, 2009, 787 .면

흥타령 의 존재 양상 1. < >

흥타령 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것은 세기 전반기에 편찬된

< > 19 東大伽倻琴

에 실려 있는 흥타령< >, 즉 고악보 소재의 흥타령 이다< > .

66) 짧은 기록이지만

흥타령 의 대표 독창사설인 천안삼거리 수양버들은 멋에 겨워 휘느러졌구나 와

< > “ ”

대표 후렴구인 아이고 대고 흥으흥으 성화가 났네 흥으 를 아울러 살펴볼 수 있어“ ” 작품의 후기 형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가치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고. 악보를 토대로 독창 사설에 초점을 맞춘다면 단연 천안삼거리 즉 경기 흥타령< > < >

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고 반면 후렴구 사설에 초점을 맞춘다면 남도 흥타령 으로, < >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흥타령 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위와 같은 유의미한 기록을 학계에 제출하기도

< >

하였지만 고악보 이후 흥타령 의 구체적인 형성과정을 추적하기보다는 일반적인, < >

남도 흥타령 에 대한 시각을 수용하여 간단히 언급하는 선에서 그 실체를 파악하< >

였다 반면 이와 맥을 달리하는 최근 연구에서는 비교적 다각적인 검토 과정을 통해. 세기 전반기의 잡가집 대부분에 수록된 흥타령 의 실체를 초기 경기 흥타령 으

20 < > < >

로 파악하였다.67) 이러한 분석 결과에 따라 논자는 같은 시기 발간된 잡가집 중 조 선속곡집 상권 (1914), 조선잡가집 (1916), 조선속가 조선신구잡가( ) (1921)에 실린

흥타령 만을 남도 흥타령 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 < > .68) 그러나 20세기 전반기에 발간 된 잡가집 대부분에 수록된 흥타령 의 후렴구 사설 아이고 대고 흥 성화가 났구< > “ 나 흥 과 후대 경기 흥타령 혹은 천안삼거리 에서 나타나는 에루화 좋다 흥 경” < > < > “ 사가 났구나 흥 후렴구 사설이 겪은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간단히 지적하는 정도” 에 그치고 있다.69)

이에 대해 필자는 두 지방의 흥타령 의 후렴구 사설이 일관성 있게 상반된 양상< >

66) 권오경 앞의 논문, , 315 .면

67) 손인애는 흥타령 에 관한 분석을 음악적 형성과정은 물론 사설< > , ‧ 매체적 특성 ‧ 인접 장 르와의 연관성 등을 가지고 다각도로 시도하였다 그러나 흥타령 의 음악어법적 측면에서. < >

남도토리와의 혼재 양상을 인정하였고 대중가요가 방중악, (房中樂)에 출현한 사례의 일관성 에 대해서는 장르적 논의 사당패 소리 를 이끌어내는 바 이에 대해 필자는 장르적 수용관계( ) , 의 입장에 따라 충분히 고를 달리할 수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손인애 남도민요 잡가. , 「 ( )

흥타령 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연구 제 집 한국국악학회

< > 史的 」 , 46 , , 2009.

68) 손인애 경기민요 천안삼거리 흥타령 에 대한, 「 ( ) 史的 고찰」 , 한국민요학 제 호 한국민요26 , 학회, 2009, 68 .면

69) 손인애는 후렴구 사설의 다른 양상에 대해 “<천안삼거리 는> 20세기 전반기에 후렴구 사설 이 다소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이며 독창 사설에는 변화가 없다 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 위의 논문.

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즉 남도 흥타령 으로 상정할 수 있는 노래들의 후렴구 사. < >

설은 고악보에서부터 유성기음반 및 잡가집에서 일관성 있게 아이고 대고 흥 성화“ 가 났네 흥 으로 나타난다 반면 경기 흥타령 으로 상정할 수 있는 후렴구 또한” . < >

매체에 따라 일관성 있게 에루화 좋다 흥 성화 경사가 났네 흥 으로 나타난다는“ / ” 것이다 즉 노래의 갈래를 소급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형성 기원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가지 계통의 노래가 시대에 따라 일관성 있게 후렴이 지속되는 양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어떠한 노래가 오랫동안 불리어지는 과정에서 독창 사설이 시대 매체 가창자‘ ’ · · 에 따라 변모되는 양상은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한 노래의 상징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후렴구 사설이 변화를 겪은 것은 독창 사설의 변화보다 더‘ ’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변천과정의 서술이 없이 다. , ‘ 소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고 간단히 추측하고 만 것은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 다.

이에 대해 손인애는 경기 흥타령 사설 가운데 유일하게 아이고 대고 흥 성화< > “ 가 났네 흥 의 후렴구 사설이 나타나는 작품으로 박월정의 창을 들어 피력하고 있” 다.70) 그러나 이 음반은 1931년 이후 발매된 음반으로,71) 논의 대상이 되는 1910년 대에 발간된 초기 잡가집 및 발매된 유성기음반에 등장하는 경기 흥타령 과는 시< >

대적으로 조금 차이가 난다 즉 후대로 갈수록 노래가 형성되던 초기 모습과는 달리. 변모되는 양상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박월정은 서도소리 여류명창. 이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남도민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72) 여기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녹음 과정 중 레퍼토리 구성에 있어 가창자의 개인적인 창법 이나 경향성이 반영된다면, 이 음반에서 남도민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일말의 가능성 또한 제기해 볼만하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루어볼 때, 1910년대에 발간된 잡가집과 동시대에 발매된 유 성기음반 목록들을 아울러 살펴보면서 당대 흥타령 의 실체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 >

성이 대두된다 따라서 매체별 흥타령 의 실체를 경기와 남도 두 지역으로 파악하. < >

며, 그 결과 필자가 선정한 남도 흥타령 을 가지고 사설 변개 양상과 그 의미를< >

70) Columbia 40168-B 경기민요<京흥타령 연주 박월정 반주 김계선 대금 지용구 해금> : , : ( ), ( ) 71) 동아일보 1931년 월3 24일자 광고에 실림.

(http://www.sparchive.co.kr/v2/sub/image/full_image.php?fPath=upload_Advertisin gs/3f/3f8ae7419d2cd402807461ba04e0aa88.jpg)

72) 이성초, 「서도잡가 패성가 에 관한 소고< > 」 , 동양음악 제 집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37 , 소, 2015, 38 .면

따져볼 것이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이는 고악보 소재의 흥타령 이후< > , 20세기 초반 동시대에 매체를 달리하여 출현하는 흥타령 사설의 양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 >

보자.73) 먼저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출현한 흥타령 은 유성기음반 소재의 것이다< > . 표 유성기음반 소재 분류에 따른 흥타령

< 7> < >74)

유성기음반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흥타령 으로 보여지는 음반은 일본축음기상회< >

에서 1912년에 ‘ROYAL RECORD NIPPONOPHONE’이라는 레이블명을 달고 쪽판 의 형태로 발매된 6042번 흥타령 이다 연주자 가창자 는 박춘재와 김홍도이며 신< > . ( ) , 민요로 분류되는 음반이다 가사지에 실린 공식적인 사설은 없으나 선행 연구자에. 의해 채록된 사설은 다음과 같다.

서산낙조 일모하니 월출동녕에 지달이 좋다

에루화 지타 흥 경사가 났네 / 얼씨구 좋네 / 지화자 좋네 동비춘이네 흥 지어동볼까요 세우동풍에 보름달에루화75) 얼마나 반겨 흥 질투하지요 내집 사람에 욘달오기라76)

73)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것 중 흥타령 으로 보이는 작품이 있다‘ ’ . “고거 흥흥 셩화로다 흥 이라는 전렴” · 후렴구를 가진 가사 장르 형식으로 제목도 흥타령 이 아니며, ‘ ’ 사설 내용 또한 기존의 흥타령 과 전혀 다르다고 한다 민요 및 잡가 흥타령 의 변형된< > . < >

형태이나 사설 내용의 상관성이 동떨어지기에, 20세기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임에 도 불구하고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최상은. , 19「 세기 말·20세기 초 민요 흥타령 의 수용< >

과 변개양상 잡가와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 새국어교육 제 호85 , 2009, 787 .면 74) 한국유성기음반 사이트의 흥타령 검색 결과< > .

75) Columbia 40351-A 경기민요 경흥타령 은 조모란 김연옥이 취입한 음반으로 한국유성< > , , 기음반 사이트에 채록된 가사에는 봉비천인에 비오동불소요 세우동풍에 연자래로다 로 되“ ” 어 있다 이 또한. ‘鳳飛千仞 飢不啄粟 廉義(봉비천인 기불탁속 이라는 주자)’ (朱子)의 팔장 부론(八丈夫論)에서 나온 구절로 보인다.

76) 손인애의 위 논문에서 논자가 직접 채보한 사설 인용하였다 그러나 조모란 김연옥이. , 라는 음반사에서 취입한 음반 경기민요 경흥타령 의 채록된 Columbia Columbia40351-A < >

가사를 참고해보면 설만산중의 치두홍이요 내 집 사랑에 영산홍이라 라는 가사가 더 자연, ‘ ’ 스럽다 유성기음반 사이트 채록 참조. .

연도 음반 분류 곡명 연주

1912 ROYAL RECORD NIPPONOPHONE 6042 (쪽판) 신민요 흥타령 김홍도 박춘재,

1913 Nipponophone 6129 (양면) 남도잡가 전라도흥타령 송기덕 1913 Nipponophone 6196 (양면) 경기민요 경성흥타령 조모란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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