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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의 개요

제2 장 이론적 배경

1. 한국 근대문학의 개요

1.1 근대의 의미

근대는 단순히 연대기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닌 특정한 의의를 지닌다. 칼 베 커는 근대의 특징을 과학적 지식, 경제적 상호 의존, 인문주의 및 민주주의, 민족주 의, 세계주의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혹자는 근대의 개념을 르네상스 이래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인간이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불합리한 권력과 특권을 제거하면서 민중을 위하고, 민중에 의하고, 또 민중 자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수립하려 는 혁신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이경성, 1980).

그러나 근대라는 시기 설정은 유동성을 지닌다는 것도 미리 전제되어야 한다. 원 래 고대-중세-근대라는 구분은 르네상스의 산물이다. 중세는 암흑시대이며 그 시대 를 통하여 고대로의 회귀와 예술의 부흥이 가능하였다는 르네상스 중심의 사고방식 에 입각하여 근대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정의와 측정 방식도 개정되지 않으면 안 되며, 독일어에서는 이미 근대(르네상스 로부터 시작되는 시대)와 중근세(프랑스혁명으로부터 시작) 및 최근세(현대에 해당) 를 세분화하여 구별하고 있다(이경성, 1980).

서양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절대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시기, 즉 16세기부터 18세기 에 이르는 시기를 유럽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근대적인 발전이 봉건 사회의 잔재를 차차 압도하면서 우세해졌고,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음으로써 19세기 유럽 근대 사회가

완성을 보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민석홍, 1975). 그러나 서구 제국도 그 양상이 반드시 획일적이지는 못하다. 예를 들어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시민 사회의 정상적 궤도 위에서 근대화 내지는 산업화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 사회 구조를 간직 한 채 역사적 발전을 경험한 나라이다(이민호, 1976).

서구에서의 근대화는 농노제적 봉건 사회로부터 근대적 시민 사회로의 발전으로 볼 수 있는데, 근대화 과정에서의 주요한 정치적 발전은 첫째, 지방 분권적인 봉건 적 질서로부터 절대주의 국가를 거쳐 근대적 국민 국가로의 발전, 둘째, 봉건 귀족 의 영주적 지배로부터 절대군주제를 거쳐 민주주의로의 발전, 셋째, 봉건 귀족으로 부터 시민계급으로의 정권 담당 계급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경제면과 사회면에서 서구의 근대화는 첫째,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변혁을 통한 공 업화와 이로 인한 급격한 생산력의 증가, 즉 급격한 경제 성장, 둘째, 근대 자본주 의의 발달, 셋째, 시민 계급의 성장과 사회 담당 계급으로서의 지휘 확립, 넷째, 이 러한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시민 사회의 성립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민 석홍, 1975).

유럽의 근대화는 이러한 사회적 요인뿐 아니라 이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 고 있는 어떤 정신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것을 바로 합리 주의라고 보고 있다. 자연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것의 인간의 힘, 이성에 의한 지배 가능성의 인식, 그리고 자연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와 집단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과 모든 개인은 어떠한 권력이나 사회 집단도 침범할 수 없는 인격의 소유자라는 인식과 신념, 즉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바로 그 정서적 근간으로 파악 하고 있다(고병익, 1976).

그러나 동양의 근대화는 서양에서의 근대사의 진전을 그 표준형으로 삼을 수 없 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봉건 제도의 붕괴에 뒤따른 근대 국민 국가의 탄생이 없었으며, 제도로서는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 다. 사회 경제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서 상인과 서민들의 서서한 대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서양 세력 전에 의한 것이 피동적인 근대화였으므로 서양 근대의 과정 을 여기에 적용시킬 수는 없으며, 문화면에 있어서도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사상 체 계, 민권, 인권의 사상이 절대 권력에 의해서 하나의 운동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근대화가 외세의 충격에 의해서 나타났다 할지라도, 이보다 앞서 자체 내 에 근대 지향의 의식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편전쟁 등의 외세의 충격이 근대에로의 접근을 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겠으나 적어 도 의식면에서 오랫동안 근대적 요인들이 싹터서 자라면서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 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근대화의 문제에서 서양의 것을 표준형으로 삼을 수 없으며 동양의 근대화를 완전히 피동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재 고될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근대는 현대 또는 당대 이전의 한정된 의미를 지니는 데 비해서 서구의 경우는 근대로써 현대를 망라하는 경우가 많다. 르네 웰렉의 『근대 비평사』는 1750년부터 1950년까지를 포괄하고 있고, 트릴링(1965)은 「근대 문학에 나타난 근대적 요인」이란 자신의 논문에서 근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반(反) 문화적 편견으로 파악하고 ‘근대문학은 개인적 존재를 사회적 인간 위에, 무의식 적 느낌을 자의식적 자각 위에, 열정과 의지를 사고와 체계화된 도덕 위에, 역동적 환상을 정적 이미지 위에 올려놓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문학까지 를 포괄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근대사의 기점과 근대화의 기점은 동일하지 않고 양 자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근대화라는 것은 고대·중 세·근대의 역사 시대 구분상에서의 근대보다도 근대적인 양상이 더 집중적으로 체 계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로, 예를 들어 중국의 근대화라면 그것은 공업화를 의미하 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트릴링, 1965; 이혜순, 1983 재인용).

1.2 한국 근대문학의 정의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로,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과 당시 사회를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특정한 시대적 국면과의 연관 속에서 그 경향과 체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 또한 근대와의 관련성에 의한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 야 하며, 그 특성에 대한 규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근대문학이 무엇인가에 대 한 기준은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를 설정하는 문제는 단순한 시대 설정 이전에 기본적으로 문학의 이해와 관련되며, 문 학사상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 문제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긴밀하게 관계를 가진다.

근대라고 하는 것은 역사개념이면서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따 라서 근대문학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시대적 가치와 배경을 파악하여 문학의 내·외적인 것들을 모두 이해하여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 구는 한국문학의 개념정의가 아닌 국립중앙도서관의 근대문학자료 도서관 서비스 방안 개발 연구가 목적이므로 기존 논의를 통해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정의를 규정

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문학의 형성 조건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한국근대문학사에서는 근대문학 형성의 조건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외재적 관점으로, 이는 서구적 개념으로서의 근대문학에 대한 인식으 로 임화⋅백철⋅조연현으로 대표된다. 둘째는 내재적 관점으로, 이는 민족의식의 자 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김윤식⋅김현, 조동일, 김재용 외 3인으로 대표된다.

이때 임화⋅백철⋅조연현은 신문학의 개념을 내용과 형식에서 서구적인 형태를 갖 춘 문학으로 간주하고, 신문학의 범주에 근대문학과 현대문학 모두를 포함하고 있 다. 반면 김윤식⋅김현은 문학의 주체인 민족을 중심에 두고 개념을 규정하기 시작 하였다. 이는 우리문학의 역사를 서구 문학의 이식사(移植史)로 여기는 기존 관점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조동일, 김재용 외 3인은 우리문학 을 세계문학의 일원이자, 세계문학에 기여하는 인식전환으로, 세계문학과의 관계에 서 개념을 논했다(홍현진 등, 2014).

이러한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한 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의 창작 주체는 한국인이며, 표현 언어 는 한국어이고, 내용은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만 으로 한국근대문학을 규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1894년 한글이 공 식적인 표기 체계로 선포된 이후에도 문학에서 여전히 이중 언어(한글과 한자 또는 한글과 일본어 등)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고, 이는 조선문인의 일본어 사용과도 관련 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본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이인직과 이광수, 그리 고 일본어로 구상하고 글은 조선어로 쓴 염상섭 등 일본에서 유학한 대부분의 조선 문인들은 이중언어적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노영희 등, 2016)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