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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문서에서 영문서한 (페이지 31-37)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로 매우 기분 좋고 성공적인 여행을 다녀온 후 9월 20일에 오 번데일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양 대사가 전해 놓고 간 각하의 9월 11일 자 서한이 저를 기다 리고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저는 한국협회와 관련해 우리를 도와주겠노라 동의한 한국의 좋은 친구 몇 명을 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주니어의 반응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에 대한 각 하의 안부 인사를 전한 뒤 한국협회를 창립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을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다음 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비슷한 조직의 구성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한국협회가 활동해서 는 안 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하겠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도 한국인들을 사랑하고 일본인들을 증오했 습니다. 제 출판물에라도 귀관에 대한 호의적인 보도를 싣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제게 그의 아버지와 각하 사이의 친분 정도에 대해 아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각하께서 언제 어디서 그의 아버지를 만났으며 그의 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잘 몰랐습니 다. 저는 각하께 그에 관한 정보를 여쭤보겠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인 클라크 S. 베이스 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 부사장인 러셀 스미스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제 뜻을 베이스 씨에 게 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Pacific Far East Steam Ship Line 사의 사장인 토마스 쿠페 씨가 저 와 함께 있었으며 그 뒤에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쿠페 씨 자신이 도와줄 것을 약속했고 제 가 편지를 써야 할 캘리포니아의 주요 인사들에 관한 긴 목록을 제게 주었습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로스앤젤레스타임즈 사장인 노먼 챈들러 씨입니다. 제가 챈들러 씨를 언급하는 이유는, 9월 11일 자 서한을 통해 각하께서는 제게 뉴욕헤럴드트리뷴의 레이드 씨와 접촉해보라 권하셨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레이드 씨나 그의 어머니가 우리 협회의 이사직을 수락하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러스크 씨에 관해 적겠습니다. 저는 러스크 씨가 한국협회에 축복을 빌어주길 바랐지만 임 대 사로부터 러스크 씨가 이 일을 처음으로 알지 못한 데 대해 상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 다. 왜냐하면 저는 이번 일을 놓고 임 대사와 올리버 박사 등이 러스크 박사와 1년 남짓 논의를 해왔 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각하께서 보내주신 초기 서한 몇 통의 사본을 뉴욕 시에 있는 제 파일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미재단이 현재의 임무를 점진적으로 정리하고 나 서 그 명칭과 목적을 변경해 한국협회로 탈바꿈하기 위해 앞으로 2~3년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게 러스크 씨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 대사에게는 러스크 씨와 가깝고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해 두 조직이 조화롭게 서로를 지원하는 식으로 일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전 일이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Spyros Skouras 씨가 월도프에서 저와 베이스 씨가 만날 수 있는 만찬 자리를 주선해주었습니다.

저는 Skouras 씨와 참석한 다른 이들의 따뜻한 설득으로 베이스 씨가 한국협회의 재무 담당직을 맡 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로젠그린 대령과 속기사 한 명을 고용했고, 그들은 현재 임시로 임 대사의 사무소에서 근무하 고 있습니다. 그곳이 꽤 북적이는 관계로 대사의 약속 및 다른 업무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 다. 한국협회가 한국 정부의 공식 조직이라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별도의 사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로젠그린 대령이 저와 다음으로 만나는 9월 27일에 몇 군데를 추천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임 대사는 빈으로 떠났으며 한 달 내로는 못 돌아올 거라는 것을 저 도 압니다. 하여 한 대사의 조언에 크게 의존하게 될 듯해 그더러 인사차 뉴욕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 려 합니다.

남궁 씨가 미화 5천 달러를 제게 선금으로 주어 협회 관련 초기 비용을 대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 돈을 뉴욕 은행에 예치했습니다. 언젠가 기부 수입이 들어오게 되면 이 돈을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 다. 물론 모든 비용과 로젠그린 대령의 고용 및 그의 사무직 업무, 사무실 자체와 장비 및 공간에 관 한 조건에 대해서는 이사회에 공식적으로 재가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이는 법인화 이후 우리의 첫 회 의를 갖게 되는 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33 스틴슨 박사로부터 목장에서는 모든 일이 아름답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서신을 받았습니다. 많은 장비가 아직 운송 중이며 저는 이것들이 속히 도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 번 소떼 운송편은 탬파에서 10월 19일에 떠납니다. 저는 이 배편에 갈색 스위스산 젖소 두 마리를 포함해 최대 200마 리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배편이 도착하기 직전에 한국에 도착해 소떼의 상태를 살펴 보고 목장에서 몇 주간 일을 도울 계획입니다.

내일 저는 Hobe Sound로 떠나 이 주 후반에 뉴욕으로 갈 것입니다. 아내와 처형이 캐나다를 떠나 월도프에 도착했으며 제 짐작에 처형은 이미 자기 집이 있는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떠났을 것 같습니 다. 저희 내외는 뉴욕에 1주에서 열흘 정도 머무르게 될 듯하며 그동안 저는 협회 관련 일을 상당 정 도 매듭짓고 아내와 함께 Hobe Sound로 돌아와 며칠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가급적 운송 준비 를 감독하러 목장에 많이 가 있을 계획입니다. 두 명의 한국인 의사는 아주 일을 잘 하고 있으며 둘 다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애정 어린 안부를 전하며,

진심을 담아,

제임스 A. 밴 플리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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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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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한국협회 등 Van Fleet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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