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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앙리 푸앵카레

아벨의 5차방정식

에바리스트 갈루아와 노르웨이의 닐스 헨리크 아벨(1802∼1829)은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20대에 요절하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았다.

16세기 말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한 이래 300년가량 풀지 못했던 ‘5차 방정식’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해를 구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아벨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후 갈루아도 독자적으 로 증명했다. 갈루아는 5차 이상의 방정식을 대수적으로 풀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찾아내 아벨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아벨과 갈루아가 증명한 것은 스위스의 천재 수학자 에른하르트 오일러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 제였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카를 가우스는 아벨의 풀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의 사 후 유품 자료에서 처박혀 있던 아벨의 논문이 발견됐다. 가우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 수 없는 문제로 치부했지만 20세기 후반에 풀이가 나온 데 이어, 아벨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 했다는 옥에 티를 남겼다.

아벨은 타원 함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프랑스 한림원의 오귀스탱 루이 코시에게 제출했으나 코 시는 이를 펼쳐 보지도 않았다. 코시는 갈루아의 중요 논문을 심사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분실했 던 인물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때에 인정받지 못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아벨은 프랑스 독일 등 지를 떠돌며 가난과 과로에 시달리다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이틀 후 그를 베를린 대 교수로 채용한다는 초청장이 배달됐다.(책 ‘수학은 아름다워’)

카르다노의 3차방정식 해법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수표를 이용해 3차 방정식의 근을 어느 정도의 근사 치로서 구할 수 있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3대 작도 문제중 1개인 입방 배적 문제로 알려지고 있 었다. 키오스의 히포크라테스에 의해서 , 로부터

p

:

x

=

x

:

y

=

y

:

q

되는

x

,

y

을 요구한다고 하는 비의 문제인 입방 배적 문제로 알려져 있다.

메나이크모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아이디어로 부터 원추 곡선을 생각해 내어 입 방 배적 문제를 원추곡선에 의한 작도에 의해서 풀어내었다. 메나이크모스는 이 업적으로 인하여 원추 곡선의 발견자라고 알려져 있다. 입방 배적 문제

x3

= 2

p3

(

p

> 0) 의 형태의 3차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고 메나이크모스에 의한 방법은,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 중 1개로 생각 할 수 있어서 원추 곡 선의 표를 계산해 두면 3차 방정식의 근의 근사치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원추 곡선은 플라톤의 작도 아래에서도 작도할 수 있다. 곡선은 아 니기 때문에 원추 곡선에 의한 기하학적 해법은 입방 배적 문제의 해법으로 보 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원추 곡선의 연구는 아르키메데스나 이븐 알 하이탐 등을 거쳐, 셀주크 제국 시대 페르시아의 오마르 하이얌에 의해 확장되어 여러가지 형태를 취한 3 차방정식의 근이 원추 곡선 끼리의 교점으로서

삼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은 16세기 무렵에 볼로냐 대학의 시피오 델 페로가

발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출처 확인 필요)

𝑥3 + 𝑎1x = 𝑎0 (𝑎1 및 𝑎0 은 음수)이런 형태의 공식이다.

당시에는 음수는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수는 아주 한정되어 있었다.

이 방정식 자체는 특수한 형태이지만, 일반적인 3차 방정식은 이 형태로 변형할 수 있기 때문 에, 본질적으로는 3차 방정식은 델 페로가 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이 방정식의 경 우는 계수의 부호의 제약으로부터 환원 불능이 되지 않는다.

델 페로는 이 해법을 공개하지 않고, 제자 몇 명에게만 알려준 뒤 1526년에 죽었다. 그리고 그 제자 중의 한 명인 안토니아 마리아 피올(Antonio Maria Fior)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당시에 성 행했던 금전을 건 계산 승부에서 계속 이겼다.

3차 방정식의 해답이 있다고 하는 소문을 바탕으로 타르탈리아(Tartaglia)는 독자적인 힘인지는 몰라도

𝑥3 + 𝑎1x = 𝑎0 (𝑎1 및 𝑎0 은 정수) 의 형태의 3차 방정식을 푸는 것에 성공한 뒤 델·페로의 3 차 방정식의 해법도 알아냈다.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을 풀었다는 소문을 들은 피올은 소문 을 믿지 않고 타르탈리아에게 계산 승부에서 패배시켜 자신의 명성을 올리려고 하였지만, 델·

페로의 3차 방정식의 해법 밖에 몰랐기 때문에 피올은 타르탈리아와의 승부에서 지게 된다.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알고 있다고 듣게된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에게 간 절히 부탁을 하여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알아냈다. 카르다노는 제자인 로도비코 페라리와 얻은, 일반적인 사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과 아울러,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출판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타르탈리아에게 해법을 비밀에 붙인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출판할 수는 없었다.

거기서, 일찍이 델 페로가 3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얻었다고 하는 소문을 믿고 페라리와 볼 로냐에 가서, 델 페로의 양자인 안니바레 델라 나베를 만나 델 페로의 유고를 보고 그것을 읽은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가 3차방정식을 푼 최초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으므로, 타르탈리아와 의 약속을 무효화 시켜 1545년에 《아르스 마그나》(Ars Magna)를 출판해, 여러가지 형태의 3차 방정식의 해법을 공표했다.

이에, 3차 방정식의 해법은 “카르다노의 방법”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 일은 타르탈리아를 격 노시켜 논쟁으로 발전했지만, 카르다노는 《아르스 마그나》에서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공적 에 대해 칭찬하고 있어, 3차 방정식의 해법이 카르다노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이라고 속인 것은 아니다. 또한 타르탈리아로부터 해의 도출 방법까지는 묻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3차 방정식에 대한 해를 나타낸 일은 카르다노 자신의 업적이다. (출처: 위키 백과)

𝑥3 + 𝑎1x = 𝑎0 (𝑎1 및 𝑎0 은 음수)이런 형태의 공식이다.

당시에는 음수는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수는 아주 한정되어 있었다.

이 방정식 자체는 특수한 형태이지만, 일반적인 3차 방정식은 이 형태로 변형할 수 있기 때문 에, 본질적으로는 3차 방정식은 델 페로가 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이 방정식의 경 우는 계수의 부호의 제약으로부터 환원 불능이 되지 않는다.

델 페로는 이 해법을 공개하지 않고, 제자 몇 명에게만 알려준 뒤 1526년에 죽었다. 그리고 그 제자 중의 한 명인 안토니아 마리아 피올(Antonio Maria Fior)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당시에 성 행했던 금전을 건 계산 승부에서 계속 이겼다.

3차 방정식의 해답이 있다고 하는 소문을 바탕으로 타르탈리아(Tartaglia)는 독자적인 힘인지는 몰라도

𝑥3 + 𝑎1x = 𝑎0 (𝑎1 및 𝑎0 은 정수) 의 형태의 3차 방정식을 푸는 것에 성공한 뒤 델·페로의 3 차 방정식의 해법도 알아냈다.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을 풀었다는 소문을 들은 피올은 소문 을 믿지 않고 타르탈리아에게 계산 승부에서 패배시켜 자신의 명성을 올리려고 하였지만, 델·

페로의 3차 방정식의 해법 밖에 몰랐기 때문에 피올은 타르탈리아와의 승부에서 지게 된다.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알고 있다고 듣게된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에게 간 절히 부탁을 하여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알아냈다. 카르다노는 제자인 로도비코 페라리와 얻은, 일반적인 사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과 아울러,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출판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타르탈리아에게 해법을 비밀에 붙인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출판할 수는 없었다.

거기서, 일찍이 델 페로가 3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얻었다고 하는 소문을 믿고 페라리와 볼 로냐에 가서, 델 페로의 양자인 안니바레 델라 나베를 만나 델 페로의 유고를 보고 그것을 읽은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가 3차방정식을 푼 최초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으므로, 타르탈리아와 의 약속을 무효화 시켜 1545년에 《아르스 마그나》(Ars Magna)를 출판해, 여러가지 형태의 3차 방정식의 해법을 공표했다.

이에, 3차 방정식의 해법은 “카르다노의 방법”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 일은 타르탈리아를 격 노시켜 논쟁으로 발전했지만, 카르다노는 《아르스 마그나》에서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공적 에 대해 칭찬하고 있어, 3차 방정식의 해법이 카르다노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이라고 속인 것은 아니다. 또한 타르탈리아로부터 해의 도출 방법까지는 묻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3차 방정식에 대한 해를 나타낸 일은 카르다노 자신의 업적이다. (출처: 위키 백과)

3차방정식의 해법

루도비코 페라리의 4차방정식 해법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