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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한국의 재분배정책과

대중영합적 이념의 영향

이념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앞서 유럽의 예에서 보듯이 특정 이념에 우호적인 정치제도적 환경을 갖춰야 한다.또한 이 과정에서 교육기관을 통한 이념 전파가 큰 역할을 한다.우리나라 에서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한 대중영합주의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갖춰진 것은 1987년 6․29선언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시작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즉,정치적 민주화의 진전 에 따라 사회주의 세력의 현실 정치에의 참여가 가능해졌고,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증대했다고 할 수 있다.물론 유럽 에서와 같이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상당수의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한국에서는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그러 나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보 다는 기존의 정당을 통해서 제도권으로 흡수되는 특이한 양상을 보 여 왔고,이와 같은 경로를 통하여 좌파적 정치이념이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 는 정치·제도적 환경은 이미 마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과 미국의 양자 간 재분배정책의 차이를 가져온 결정적 원인은 사회주의 정당 및 정치세력이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요 정당이 되었는가 여부이다.이런 관점 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주의 이념에 근거한 대중영합주의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까지 관련 정치세력의 영향력 이 커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실제로 사회주의 이 념을 표방한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은 1987년 이후에도 항상 실패하 였고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의석을 얻음으 로써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12)

러나 이와 같이 사회주의 정당의 원내 진출 혹은 주요 정당화 여부 로 사회주의 이념의 정치적 영향력을 판단하는 것은 한국의 특수성 을 간과하여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우리나라는 한국 전쟁 이후 공산주의 정당이 불법화되었고 전쟁의 경험으로 공산주의 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컸다.따라서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된 이 후에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좌파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 진출은 주로 기존 정당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다.13)또한 이를 통해 좌파적 이념의 정치 적 영향력도 높아졌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즉,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하지 않았 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좌파 사회주의 세력의 정계 및 원내 진출 은 기존 정당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이를 통해 좌파 이념의 정치 적 영향력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12)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기인한 바가 크다.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2명의 지역구(울산 북구,경남 창원) 서 처음으로 당선자를 배출하였으나 나머지 8명의 당선자는 모두 비례대 표 당선자들이고 이는 민주노동당이 정당투표에서 무려 13%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유럽에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사회주의 정 당 및 이념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인 원인 중의 하나였듯이 우리나라에서 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좌파 정당의 원내 진출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13)소위 재야 운동권 세력의 정계 진출은 진보정당 창당을 통해서도 이루어 졌으나 한겨레민주당,민중당의 예에서 보듯이 진보정당 창당은 실패를 거듭하였다.반면 재야인사들의 기존 정당에의 개별 입당 혹은 기존 정당 의 재야단체와의 연대 혹은 합당을 통한 정계 진출은 1987년 이후 지속적 으로 이루어졌다.이를 통해 상당수의 재야 운동권 인사들이 원내에 진출 하였는데,국회사무처의 ‘역대의원 경력 분류’에 따르면 1988년 13대 국회 에 8명,14대 9명,15대 10명,16대 11명의 재야 출신이 원내 진출에 성공 하였고,2004년 17대 국회의 경우 7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 국민의 정부 이념과 대중영합적 재분배정책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한 대중영합주의가 정치적 영 향력을 나타내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볼 수 있는 것은 좌파 정치세 력의 원내 진출과 더불어 이들이 함께 한 정당이 집권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물론 이 시기의 대한민국 정부가 좌파 정부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그러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 정치세력이 참여했 던 정부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고 사회주의에 기초한 대중영 합주의가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이와 같 은 사실은 유럽과 미국 간의 차이로부터 도출한 사회주의 이념의 정 치적 영향력 확대 및 대중영합적 재분배정책 확산의 중요한 전제조 건인 좌파 정치세력의 집권 혹은 주요 정당화와 어느 정도 합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외환위기의 와중에 탄생한 국민의 정부의 이념적 지향을 국 민의 정부에서 시행되었던 정책,특히 경제정책을 통해 평가하는 것 은 용이하지 않다.왜냐하면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IMF와 체결한 협 약의 내용에는 금융 및 외환정책뿐만 아니라 무역정책,노동시장정 책까지 포함되어 있어 새로 집권한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이념적 지 향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정책공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이 와 같은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는 기본적인 이념적 지 향을 가지고 있었고,이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국민의 정부 의 기본적인 이념적 지향,특히 경제정책과 관련된 이념적 지향은 김 대중의 대중경제론 에 잘 나타나 있다.14) 대중경제론 에서는 기존

의 정치체제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정권과 결탁한 소수특권층에 의 해 독점되어 왔으며 노동자·농민 등은 성장의 과실 배분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고 하면서 모든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면서 균형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즉, 대중경제론 에서 지향하는 대중경제는 대중이 참여하고 대중이 공동 운영하고 같이 분배받는 경제이다.따라서 대중경제론 에 나타난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은 소수의 엘리트와 대중에게 경제성장의 성과가 불공평하 게 배분되는 시스템이고,이와 같은 시각은 이념적으로 좌파적 대중 영합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대중경제론 의 이와 같은 지향점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행된 노사정위원회,중소기업 지원책, 종업원지주제 강화,각종 사회안전망 강화 및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가 수습되면서 ‘생산적 복지’를 주 창하여 복지 및 노동 관련 재분배정책을 추진,시행하였다.구체적으 로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시책 추진,국민연금제도 실시 및 의료보험 통합 등 복지제도의 체계를 구축하였다.또한 노사정위원회를 제도 화하여 임금,고용,노동시간 등의 노동시장 현안에 대해 시장기능 외에 사회적 합의를 통한 결정방식 도입을 추진하였으며 최저임금제 적용대상도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였다.이러한 정책들은 국민 의 정부를 탄생시킨 정치세력의 대중영합적 이념이 반영된 정책들이 라고 할 수 있다.

14) 대중경제론 은 1971년 처음 출간되었는데 이 저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 하고 체계 확립 및 집필을 주도한 사람은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민 족경제론 의 저자 박현채로 알려져 있다(한겨레21,제775호,2009.8.29

개발독재에 맞선 대중경제’참조).이와 같은 사실은 1971년 이후 대중 경제론 이 수차례 개정되면서 국민의 정부가 주창했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으로 변형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국민의 정부의 이념적 기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념과 관련한 국민의 정부정책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전교 조,민주노총 합법화를 통해 좌파의 정치세력 확대 및 이념 전파에 용이한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였다는 점이다.교원노조의 교육기관에 서의 영향력 확대가 사회주의 이념의 전파를 통한 대중영합적 재분 배정책의 채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유럽과 미국의 예에서 알 수 있다.1989년 5월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은 ‘참교육 실천’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혹은 사 민주의적 교육 및 이념 전파를 목적으로 하여 왔다.전교조는 결성 이후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영향력 을 확대해 왔으나 교사의 노조설립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 문에 불법단체로서 활동에 제약을 받아왔다.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 범 이후 교사의 노조 설립을 허용하는 것으로 노동법이 개정되어 법 적 인정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전교조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전교조는 1999년 노동법의 개정에 따라 합법화된 이후 조직의 규모도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체의 이념적 색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학교에서 다양한 이념교육을 실시하였다.특히,국 가적으로 이념문제가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예를 들면 남북통일,국 가보안법,APEC정상회담,한·미 FTA등에 대해 전교조 차원에서 실 시한 소위 계기수업이 대표적이다.이와 같은 계기수업은 2000년경 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념적으로 명백하게 좌파적인 관점에서 분석·접근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전교조의 초·중·고에서 의 영향력 확대 및 이념교육 실시는 사회 전반적으로 좌파 사회주의 적 이념의 전파를 촉진시켰을 것으로 추론된다.특히 초·중·고 학생 들에 대한 이념교육은 미래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평에도 큰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되며,그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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