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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설화와 생태학적 인식의 관계

문서에서 제주 설화의 생태학적 인식 (페이지 14-50)

Ⅱ. 생태학적 인식의 준거

3. 제주 설화와 생태학적 인식의 관계

그런데 설화 속에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면 단순히 자연을 섬기고 해치지 않는 것을 넘어 생명을 두려워하고,내가 그 생명을 잘 섬기지 못했을 때 내 삶에 직접적으 로 해가 돌아온다는 인식-관계지향적인 생태 인식-을 뚜렷하게 하였던 흔적들이 보인다.특 히,제주신화는 그것이 원초적으로 남아 있어서 ‘가이아와 온생명’으로 대변되는 ‘생명에 대 한 총체적인 인식’을 이미 오래 전에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서양은 지식체계의 한 분야로 생태학이,문명의 반작용으로 생태주의 가 등장했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이러한 생태주의 원리들이 생활 요소,구석구석에 작용하고 있었다.물론 근대화의 물결로 오랜 자연친화적 문화를 지켜오던 동양 사회에도 과학과 기 술의 바람이 불어 많은 부분 전통에 있어왔던 자연과의 공생적 삶이 제 모습을 잃었지만 제 주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전통적 삶의 모습들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제주는 여러 가지의 원인으로 해서 비교적 최근까지 문화적 독자성을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었다.우선 공간적으로 육지와 떨어진 섬이라는 것 때문에 중앙의 정치적ㆍ획 일적 통합의 기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중세 유교의 영향도 무속의 전통을 깨트릴 만 큼 큰 것이 아니었으며 근대 새마을 운동을 거치고 현대의 제도종교의 물살에 다소 위축을 당하긴 했어도 지금까지 제주에는 무속적 전통이 흐르고 있다.자연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둘레의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여 재순환하고 자연의 위협 앞에 지혜를 모아 대응하였던 문 화,즉 신도 달래고 넋도 달래고 둘레의 동ㆍ식물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지금까 지도 잔존한다.즉,생명체 자체에 대한 경외심과 신에 대한 믿고 섬김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이런 문화는 당연히 제주 사람들이 행하던 제의식 속에 투영되어 당신앙이나 굿에 서 불려지는 본풀이인 구비서사시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전해진다.

그리고 다른 지방의 경우 이러한 무속적 전통이 이미 문헌화되고 현장의 전승이 단절된 곳이 많은 반면 제주는 아직도 진행형에 있다.이런 지리적인 원인과 열악한 자연조건,무속 의 현재성으로 인해 제주는 비교적 고대인의 삶의 모습ㆍ사유를 담고 있는 설화들이 많이 존재한다.그런데 고대인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바로 자연을 극복하며 먹고 살아야 했던 과정이다.그런 만큼 설화 속에는 고대인들이 삶의 터전인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계 맺 었는지 하는 생태조건의 반영과 극복 의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제주는,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지리적ㆍ문화적 배경 때문에 현대 속에 고대를 살아야 했고 이러한 사회변화적인 측면들이 제주의 독특한 신앙 전통이나 문화 전통에 대한 이질적인 시각을 키워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던 게 사실이다.하지만 크게 생태 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문화를 바라볼 때,특별히 이질적이거나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미신 적인 근거이기보다 오히려 생태과학적이고 지속적으로 합리적인 자연인식이 많이 숨어있다 는 자각을 하여 ‘제주문화에 대한 인식의 객관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배경 아래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생태적 사유를 끄집어내고 그것이 현대에 어 떤 메시지를 전해주는지 보고자 한다.

Ⅲ. 제주 본풀이의 생태학적 인식

1. <천지왕본풀이>에 나타난 온생명 인식

(1) 자연현상과 상징

자연사에서 갖가지 재앙들이 다양한 규모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이러한 재앙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러 민족의 신화와 전설에도 나와 있 다.홍수 형태의 재앙-지구의 대홍수-은 성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대 수메르인들의 저 술에도 기록되어 있다.15)

세상의 모든 폭풍우들이 전대미문의 괴력으로 한꺼번에 미친 듯이 몰아쳤도다.

그 순간 거대한 사원들 위로 물바다가 밀어닥쳤고 홍수는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땅을 뒤덮었구나.

바람이 불어 폭풍우 치는 물 위로 한 척의 거대한 배를 띄웠도다.

이윽고 하늘과 땅에...빛을 내리신 우투께서 나타나셨도다...

(Balandin1988년 중에서)16)

옛날 대홍수가 있었다.오랫동안 이어진 큰비와 해일로 세상이 모두 바다로 변해 생물은 물론 이고 인간도 모두 죽었다.그 가운데 오직 오누이만 큰 나무를 타고 살아남아 높은 산정에 닿았 다.홍수가 물러가자 세상은 다시 본래대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하략) (조선민담집의 홍수신화)17)

신화와 전설에서는 신들이나 괴물이 그 재앙을 일으키는 당사자로 나오지만 오늘날의 자 연사가들은 그것을 자연에서 기인한 재이(災異)현상으로 본다.지진,화산 폭발,집중호우, 폭풍,해일,극심한 더위와 추위,전염병ㆍ전쟁으로 인한 떼죽음 등은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 얼마나 불안정하고,지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그리고 신 화에는 그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 자연을 어떻게든 달래고,축적된 경험으로 예측해서 그 피해로부터 벗어나 보려 한 흔적들이 나타난다.홍수의 무서운 경험이 홍수설화를 만들 고 가뭄이나 혹한의 기억이 설화 속에 여러 개의 해와 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번 장에서는 그런 자연 재앙이나 현상들을 제주 신화 속에서는 어떻게 그려내고 있으 며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의 발자취를 <천지왕본풀이>로 읽어보려 한다.그리고 앞 장에서 이야기하였던 가이아나 온생명의 이론에서처럼,이런 자연 현상들이 인간인 ‘나’와 무관하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일어난다는 것을 체득하 고,생활 원리로 극복하려 한 의지가 나타난다는 생태적 사유를 다음 장에서 끄집어내보겠 다.먼저 <천지왕본풀이>의 내용을 요약해 본다.

15) 프란츠 부케티츠, 『자연의 재앙, 인간』, 박종대 옮김, 시아출판사, 2004, 257쪽.

16) 위의 책, 257쪽.

17) 조현설, 『우리신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출판, 2006, 31쪽.

태초에 천지는 혼돈으로 있었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생기며 벌어지더니 청이슬이 내리고 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되어 만물이 생겨났다.그러나 암흑은 계속 되고 천황닭,지황닭,인황 닭이 울기 시작하니 먼동이 트고 이때 하늘의 옥황이 해도 둘,달도 둘을 내보내 천지는 개벽이 되었다.그러나 백성들이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얼어 죽고 만물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별이 없어 어지러웠다.어느 날 해와 달을 하나씩 삼키는 꿈을 꾼 천지왕은 지상에 내려와 총 맹왕 총맹부인과 배필을 맺는다.총맹부인은 수명장자에게 꾸어 온 모래 섞인 쌀로 밥을 해서 천 지왕에게 올리자 천지왕은 분노한다.사정을 들은 천지왕은 벼락장군,우레장군,화덕진군을 데리 고 수명장자네 가서 집을 불태워버린다.이런 유래로 사람이 죽어 불찍굿을 한다.가난한 사람들 을 학대한 수명장자의 딸은 팥벌레 몸으로 환생시키고 마소의 물을 굶긴 아들은 솔개로 환생시켜 날개의 물을 핥아 먹게 하였다.

며칠이 지나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가며 아들 형제 나걸랑 대별왕,소별왕이라 이름 지으라하며 박씨 두 개를 주었다.총맹부인이 아들 형제를 낳아 열다섯이 되자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으니 사 실을 말하고 아들들에게 박씨를 주었다.정월 첫 돌날에 박씨를 심으니 쑥쑥 자라 하늘에 닿았다.

형제는 그걸 타고 하늘에 올라 천지왕을 만나 무쇠활을 받아 와서는 해와 달 하나씩을 없애고 이 승과 저승을 다스리라는 천지왕의 말을 따르려 한다.하지만 이승을 다스리고 싶은 소별이가 대 별이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이기는 자가 이승을 다스리자고 한다.그러나 수수께끼에서 진 소별이 는 꽃 피우기 경쟁을 하자고 하고 결국 속임수를 써서 이승을 다스리게 된다.그래서 이승에는 죄와 거짓말,도둑이 생기고 저승법은 공정하다.18)

<천지왕본풀이>는 개벽신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주만물이 생기게 된 유래를 설명하게 되고 그런 이유로 신앙민들이 태초의 우주의 모습과 지구의 생성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했는 지 비교적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천지왕본풀이>에는 태초에 땅과 하늘이 맞붙어 있던 것이 벌어지거나,떼어놓았다고 전 하는데 다음의 이본들을 한 번 보자.

이 혼돈 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 가 자방으로 열리고,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으로 열려 하늘과 땅 사이 에 금이 생겨났다.이 금이 점점 벌어지면서 땅덩어리에는 산이 솟아오르고 물이 흘러내리곤 해 서,하늘과 땅의 경계는 점점 분명해져 갔다.19)

도수문장이  손으로 /하늘을 치받고 또  손으로는 지하를 짓 눌러 ...(중략)...

동방으로 청의 동

반고씨가 솟아나니

앞니망엔 공 둘이 부품네다 뒷니망에도 공 둘이 부품네다20)

한을과 따이 생길 젹에 미륵님이 탄생한즉,

한을과 따이 생길 젹에 미륵님이 탄생한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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