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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설의 생태학적 인식이 갖는 현재적 의의

문서에서 제주 설화의 생태학적 인식 (페이지 81-84)

Ⅴ. 제주 설화의 생태학적 인식이 갖는 현재의 가치

3. 제주 전설의 생태학적 인식이 갖는 현재적 의의

본문의 4장에서는 <설문대할망>, <풍수설화>, <뱀 숭배설화>를 통해 각 설화의 역사ㆍ사 회적인 배경을 알아보고, 풍수나 뱀 숭배신앙이 생기게 된 생태적 토대와 자연관, 즉 생태 학적 인식과 삶의 지향점들을 살펴보았다.

세 종류의 설화에는 그 이야기나 신앙이 고대로부터 생성되어 근래와 현대까지도 생명력 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만큼 오랜 구전 기간을 거치는 동안, 역사의 굴 곡과 평가를 안고 와야 했기에 왜곡과 변형도 많았으며 <설문대할망>설화는 긴 역사 속에 서 남성신화에 자리를 내주게 되는 흔적을 설화에 담게 된다. 또한 풍수와 뱀신앙은 조선의 유교ㆍ근대라는 과학주의를 거치면서 심하게 재단 당해 미신으로 취급 받는 설움을 겪게 된 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미신적인 요소도 없지 않겠지만 신앙이나 설화의 배경과 생성ㆍ변형 에 대한 전체의 객관적인 연구도 하지 않고 무조건 미신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통이나 학문 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로 우리 선조들이 자연 앞에 얼마 나 솔직하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갔는지의 궤적을 밝혀 생태적 위기 를 겪고 있는 현대에 계승해야 할 자연관으로 삼고자 하였다.

먼저, <설문대할망>이 갖는 현재의 의미는, 남성이 권력을 가지면서 진행되고 있는 힘의 논리, 지배의 논리, 소유의 논리, 발전의 논리의 한계가 왔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다. 태초 의 땅을 만들고 산과 물길을 만들고 공동체의 염원을 위해 우직하게 일했던 가이아, 대지모 신의 심성과 삶의 태도를 잃으면서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에 감사하는 마음도 잃어 버렸다.

더불어 용서와 배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포용하는 마음도 잃어버렸다. 한 나라를 이끌 어가는 정치인들도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민에게 가졌던, 자식을 바라보는 측은지심(惻隱之 心)을 가졌다면 지금의 정치위기는 맞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래서 힘으로 지배하지 않으면서 대화하고 합의하는 설문대할망의 온유함과 다리를 놓으 려는 적극성, 도전 정신, 대지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제주 지 역사회가 가져가야 할 상생의 가치, 지역공동체성에 대해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233) 주영하, 위의 책, 243쪽.

<풍수설화>의 생태학적 조명에서 얻을 수 있는 현대적 가치는 한 마디로 ‘자연과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상생하는 삶’이라고 하겠다. 이는 현대사회에 행해지고 있는 무한개발 논리 에 시사하는 바가 크며 결국 도시나 상공지역의 무한 확장에 대한 영향은 고스란히 자연과 인간에게 돌아가 그 대가-고비용, 건강, 자연재해 등-를 치러야 하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7년에 제주도가 겼었던 태풍 ‘나리’를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하고 무지한 개발 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급격한 팽창에 따른 부족한 도로와 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제성이 우선된 결과물로써234)의 복개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막아 물이 범람하여 일어난 인재(人災)이다. 하천은 수 만 년 간 유속의 흐름 과 수량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그 지역 물의 흐름을 가장 안전하게 통과시켜주는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물길을 인간이 막아 놓으니 물이 넘치고 피해가 컸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중산간의 골프장은 천연적인 배수기능지인 ‘숨골’을 막아버려 엄청난 빗물을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큰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태풍이 제주도에 가까워 지면서 뜨거워진 바닷물 표면 온도 때문에 에너지가 급속히 커져 피해가 더 컸다.235)

이런 사실들은 모두 인간이 자연을, 자연의 수용 범위의 한계를 넘어 개발하고 변형하면 서 가져온 결과이다. 지나친 개발이 부른 재앙 앞에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겨 볼 때이다.

설악산 한계령에서 점봉산, 가칠봉에 이르는 일대는 다양한 수종과 식물이 남한에서 가장 풍성하게 자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의 자연 지세는 토양조건, 경사도, 기반 암, 국지기후 등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땅이다. 그러나 그곳의 식생이 땅과 상생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236) 지질학적으로는 다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열악한 조건이 비슷한 제주도의 땅 곶자왈이 있다. 곶자왈은 점성이 높은 용암이 부서 지며 굴러떨어져 덮고 있다가 굳어져 만들어진 바위투성이의 땅이다. 흙도 없는 이 바위투 성이의 땅에 매우 다양한 식물군이 서식을 함은 물론 빗물을 정화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제주의 허파라고 불린다. 기반 조건이 좋지 않은 열악한 땅이지만 그에 어울리는 생명들을 피워냈을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특수한 역할까지 해내는 것이다. 여기서 나무 대신에 사람 을 대입한다면 바로 우리 자생 풍수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땅과 생명체(특히 인간) 가 서로 맞는,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터를 구하고자 하는 경험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혜가 돼 풍수로 이어진 것이다.237)

문명과 도시 속에서 살면서 드는 비용들이 사실은 우리가 자연을 개발하면서 편리하게 산 다는 명목으로 치르고 있는 대가들인 것이다. 이러한 대가들은 아주 많다. 오염된 공기와 기계 속에서 내뿜는 전자파들에 의해 건강을 잃고, 기계에 의존해 운동량이 부족해 병들어 가고, 운동이나 여가를 보내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하고, 자연의 순환적인 물길, 바람 길을 막아 자연재해에 점점 노출되고, 대기의 온도를 자꾸 올려 자연재앙의 불안 속에서 살 아야 하는 등 수없이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인간은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조상들이 주목했던 ‘자연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취락구조를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산과 숲을 조성하여 생태적 정화 능력을 보완’하려 했던 ‘자연과의 상생의 생태 철학이었던 전통 풍수’의 사유를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234) 윤정웅, 제민일보, 2007, 10, 5.

235) MBC 뉴스, 2007, 9, 17.

236) 최창조, 『도시풍수』, 민음사출판그룹 (주)황금나침반, 2007, 109쪽.

237) 위의 책 111쪽.

최창조는 ‘자연의 길(自然之道)을 방해하지 말라.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라.’고 하며 국토 재편은 이 지리철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싸움터로서의 국토가 아닌, 삶터로서의 국토를 가지게 되는 길은 그 것뿐238)이라고 하였다.

풍수지리는 이렇게 자연지리를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자연에 크게 인위적 훼 손을 가하지 않고 살아 온 조상들의 생태학적 지혜가 엿보이는 생활철학이다. 풍수사상의

‘자연과 상생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연 과 문화를 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제시해주며, 물질적 풍요의 확장이 가져다주는 전망을 재 고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준다. 또한 동양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지속가능한 문화의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는 의의를 가진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지역의 생태 조건과 동식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했던 의미를 갖 는 것이 바로 제주의 <뱀 숭배설화>나 뱀신앙이 갖는 가치라고 하겠다. <뱀 숭배설화>나 뱀신앙은 유교나 불교, 기독교 등의 거대종교239)에 침투 당하지 않고 지역의 생태 조건에 맞는 합리적인 규범들을 신앙화하여 만들어진 민간신앙의 하나이다. 이는 인간만 살기 위해 다른 생물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상생의 길을 도모했다는 것에서 풍수의 상생의 정신과 맥 을 같이 하는 선조의 지혜로운 전통인 것이다. 생태계는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그물망 을 이루어 살아간다. 환경론자들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주장하듯이 생물종이 다양하게 생존 할 수 없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살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살 수 없게 된다는 이기 적인 전제를 벗어나서도 우리는 전체생명의 연결고리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구는 몇 십 억 년 동안 인간이라는 개체 말고도 무수히 다양한 생명체를 끌어안고 살아왔기 때문이 다. 지구라는 전체 생명의 역사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짧은 인류의 역사 기간에, 자기 생 명의 안일만을 추구하다가 전체생명의 생존 여부를 고민하는 반생명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있던 보생명적인 정신, 온생명적인 정신, 지구나 땅, 자연은 살아 있는 가 이아로서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간다는 단순한 상생의 지혜를 잊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 적 지혜를 되살려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지역사회의 틀을 다시 짜야 함을 고민할 때이다.

238) 위의 책, 112쪽.

239) 거대종교는 사실 상 국소적인 각 지역의 정신적ㆍ지리적 특징과 성격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종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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