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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방언의 유지와 변화

재일제주인 1세들은 대부분 이중언어 화자로 어린 시절 습득한 제주방언과 일 본에서 생활하면서 습득한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 대부분의 1세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주 이후에 습득한 일본어도 학습기관에 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학습한 것이 아니라 선배나 주위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수동적으로 습득하였다. 때문에 이중언어 화자라고는 하지만 두 언어의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생활이 모국에서의 생 활보다 시간적으로 네다섯 배에 이르는 경우에도 이들이 사용하는 일본어에는 독특한 악센트의 음적 특징을 비롯해 문법・어휘 표현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특 징이 관찰된다.32) 반대로 한국어의 경우에는 표준어가 보급되기 전인 어린 시절 에 습득한 지역 방언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일제주인 1세의 제주방 언 연구가 흥미롭고 의미가 있는 것은 제주방언의 옛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습득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이민 사회 에서 소수 집단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유지 조건에 대하여 Holmes(1992: 71∼73)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들고 있다.

첫 번째로 이민 집단이 밀집하여 살면서 서로 자주 접촉하면서 생활하는 경우 에 언어 유지가 잘 된다. 그 예로 뉴질랜드 Wellinton의 희랍인 구역, 미국의 차 이나타운, 코리아타운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모국어의 접촉이 빈번한 경우다. 모국에서 새 이민들이 계속 합류하고 또 모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잦으면 그만큼 언어 유지가 잘 된다. 세 번째로 소수족의 언어 유지에 교회와 학교의 역 할이다. 캐나다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들 고유 언어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캐 나다가 이들 지역의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언어 정책에 힘 입은 바가 크다.

32) 이는 재일제주인뿐만 아니라 재일한국인 1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들이 구사하는 일본 어의 발음적 특징으로 어중 무성의 유성화, 어두 유성음의 무성화를 들 수 있으며, 문법・어휘적인 측면에 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혼용 등을 들 수 있다.

Holmes(1992)가 밝힌 언어의 유지 조건을 재일제주인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재일제주인 사회에서 제주방언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해진다. 우선 앞 서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일제주인은 이주 초기부터 집단을 이루어 일본 에서 정착하였다.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된 이주가 혈연과 지연에 의지하여 이루 어졌기 때문에 이주 후에도 제주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소수 집 단의 구성원들의 지리적 분포는 일반적으로 언어 유지와 전환에 큰 영향을 미친 다. 이들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경우 소수 집단은 자기 언어를 유 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다.

또한 해방과 동시에 정식적인 도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에도 ‘밀항’이라는 방법을 통해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정식적인 체류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혈연과 지연에 의지하여 제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제주 사람들의 집단 거주 지역에 지속적으로 제주 사람들이 합류하였다. 또한 제주 사람들 간의 결혼도 집단 생활이나 언어 유지에 큰 역할을 하였다.

비록 제주방언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이주 초기부 터 형성된 마을 친목회나 종교 모임 등이 제주방언을 유지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다. 이민 생활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달래기 위해 이주 초기부터 출신 마을 을 중심으로 마을 친목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33) 이 시기 친목회는 단순한 사람 들 간의 ‘친목’을 떠나 경제 활동 공동체 역할뿐만 아니라 서로 집안의 경조사를 함께하며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에서 모국어인 제주방언은 서로 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만은 아니다. 언어는 집단을 구분하며 그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재일제주인 사회에서 제주방언은 제주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며 제주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

이민 사회의 소수 집단은 대개 독자적인 경제력이 없고 정치적으로 이민국에 부속되어 있다. 따라서 이민국의 언어 습득은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모국어는

33) 재일제주인 사회는 많은 친목회 조직이 발달되어 있는데 마을 단위로 한 친목회는 이주 초기부터 결성되 어 활동해 왔다. 예를 들어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서귀포시 법환리 마을 친목회인 ‘재일오사카제법건친회 (在日大阪済法建親会)’는 1929년에 조직된 ‘제법청년회(済法青年会)’가 근간이 되어 1936년에 창립되었다.

이 친목회는 회원 수는 많이 줄었지만 2세가 뒤를 이어 활동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점차 사용할 기회를 잃고 모국어를 잊게 된다. 자연히 모국어에서 이민국의 언어 로 언어 전환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이익섭, 1994: 331). 재일제주인 사회에서 도 마찬가지로 제주방언을 잃고 일본어로 바뀌고 있다. 제주방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민 1세나 일부 2세의 경우다. 3세 이후에서는 대부분 언어 전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민 1세기 동안 앞서 살펴본 배경에 의해 제주방언은 유지 되어 왔다.

이 장에서는 다른 지역어와 구별되는 제주방언의 특징을 중심으로 일본 오사 카 지역 재일제주인에게서 제주 방언이 유지되는 양상과 일본어와의 접촉에 의 한 언어 변화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겠다.

3.1.1. 음운

1) ‘ㆍ’

중세국어의 ‘ㆍ’는 일반적으로 어두 음절에서는 ‘ㅏ’, 비어두 음절에서 ‘ㅡ’로 변 화를 거쳤다. 제주방언도 변화의 물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제주방언

‘ㆍ’는 중앙어 또는 다른 방언들의 변화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두 음절의

‘ㆍ’는 ‘ㅏ’ 또는 ‘ㅗ’로 비어두 음절에서는 ‘ㅡ’, ‘ㅓ’의 변화를 보인다.34)

그런데 이런 변화 속에서도 제주방언 노인층 화자들에게 아직도 ‘ㆍ’ 모음이 남 아 있다. 이는 일본으로 이주한 방언 화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1) ㄱ. 허난 우리 시집가젠 허난 새서방 심[심]이 엇인 거라마씸.[145]35)

34) 제주방언 ‘ㆍ’는 분포 위치에 따라 변화 속도와 변화 방향이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방언의 어두 음 절 ‘・’는 語幹末 위치에서 먼저 동요가 일어나 ‘・> ㅏ’의 변화를 보이던 중 어떤 이유에 의하여 그 변화 방향이 바뀌어 모든 위치에서 ‘・> ㅗ’의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정승철, 1995: 25~26). 비어두 음절에서는 대부분 ‘ㆍ>ㅡ’의 변화를 겪었지만 소수의 형태들은 그 변화의 조류에서 처지게 되어 후에 일 어난 다른 방향의 변화, ‘ㆍ>ㅓ’의 변화를 겪었다(정승철, 1995: 49).

35) 부록의 예문 번호.

(그러니까 우리 시집가려고 하니까 새서방감이 없었어요.) ㄴ. 아기 보름도 아니 뒌 거 그냥 라와 불어서.[99]

(아기 보름도 안 된 거 그냥 데려와 버려서.) ㄷ. 손으로  젠 허난 아이구, 그런.[101]

(손으로 전부 빨려고 하니까 아이구, 그런.)

ㄹ. 경 지도 안 헌 땐디 영 문틈으로 영 헨 보니까.[133]

(그렇게 밝지도 않은 때인데 이렇게 문틈으로 이렇게 해서 보니까.)

재일제주인 1세의 발화를 들어 보면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심, 라오다,

, 다, 디다’ 등에서 ‘ㆍ’가 나타난다. 제주의 노인층 방언화자들과 마찬가지 로 재일제주인 1세들에게도 여전히 ‘ㆍ’가 남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강정희(2002)에 의하면 재일제주인 1세 노인층이라 하더라도 이주 시기 에 따라 ‘ㆍ’의 발화 비율이 달라진다. 같은 70대 이상이지만 1950년대 이전에 이 주한 70대 이상 집단과 1960년대 이후에 이주한 70대 이상 집단의 ‘ㆍ’는 발화 정도에 차이를 보인다. 특히 어두 음절 ‘ㆍ’의 유지 비율이 1950년대 이전에 이주 한 60대 화자들이 1960년대 이주한 70대 화자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나이가 더 많지만 이주 시기가 늦은 70대 화자에게서 ‘ㆍ’가 적게 나타나는 것을 통해 재일 제주인 1세 집단의 방언 변화가 현재 제주 지역의 방언 변화 속도보다 느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일제주인 1세의 ‘ㆍ’는 어두 음절뿐만 아니라 비어두 음절에서도 유지되고 있 다.

(2) 우리 궨당 할마님 오라방이, 아덜이 제국시대 순로 잇어근에.[259]

(우리 친척 할머니 오라버니가, 아들이 제국시대 순사로 있어서.) (3) ㄱ. 그 바로 디 항 잇주게.[134]

(그 바로 옆에 항 있지.) ㄴ. 이쪽도 저쪽도 막 와.[106]

(이쪽도 저쪽도 아주 무서워.)

ㄷ. 경헤근에 이 벤리 물어 허민게.[222]

(그렇게 해서 다달이 변리 물면.)

ㄹ. 두 해 뒈어 가난 그 는 의밀 알아젼.  아가난.[137]

(한두 해 되어 가니까 그 말하는 의밀 알게 됐어. 조금 커가니까.) (4) ㄱ. 우리가 이 니 성제, 나가 셋이주게.[94]

(우리가 딸이 네 자매, 내가 둘째딸이지.)

ㄴ. 배가 이레착저레착허난 영허영덜 축름에 부떠십디다.[29]

(배가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이렇게 해서들 벽에 붙어십디다.) ㄷ. 사탕루 배급으로 나온 거 아니 먹엉.[186]

(사탕가루 배급으로 나온 거 안 먹어서.)

ㄹ. 넘은에도 경 안 오란 보난 아무도 엇언게.[35]

(지난달에도 그렇게 말해서 와서 보니 아무도 없었어.) (5) ㄱ. 물앙 온 거 모살판에  근근 널어주곡.[169]

(채취해 온 거 모래판에 모두 차곡차곡 널어주고.)

ㄴ. 그 마을 사름 몰르게시리 짝짝 상으로 운동헤연 허난.[258]

(그 마을 사람 모르게 살짝살짝 사상으로 운동해서 하니까.)

(2)∼(5)는 비어두 음절에서 ‘ㆍ’를 보여준다. (3)은 어두 음절이 ‘ㆍ’인 경우 비 어두 음절의 ‘ㆍ’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4)는 복합어인 경우로 ‘ㆍ’음을 가진 형태소가 다른 형태소와 결합하여 복합어를 이루면서도 비어두 자리에서

‘ㆍ’음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이다. (5)는 ‘근근’, ‘짝짝’과 같이 형태소가 겹쳐 나타나는 반복 합성어의 경우에도 비어두 음절에 ‘ㆍ’가 나타나고 있다. 이 렇듯 고령의 재일제주인의 경우 어두 음절뿐만 아니라 비어두 음절에서도 ‘ㆍ’가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역사적으로 ‘ㆍ’가 아닌 위치에서까지 ‘ㆍ’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6) ㄱ. 경헌디 밀항으로 갓다온 사름덜은 수헨 등록 멘들아 노난.[267]

(그런데 밀항으로 갔다온 사람들은 자수해서 등록 만들어 놓으니까.) ㄴ. 동차도 현대とか 대우とか 헤근에.[270]

(자동차도 현대라든가 대우라든가 해서.)

(6)의 ‘수’, ‘동차’는 중앙어의 ‘자수(自首)’, ‘자동차’에 해당하는 명사로 어원

적으로 ‘ㆍ’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 어휘는 현재 제주 지역 고령의 방언 화자들에게서도 ‘ㆍ’로 발음되는 것으로 조사된다.

문헌에서 ‘ㆍ’가 아닌 위치에 ‘ㆍ’가 나타나는 경우는 김완진(1957)에서도 확인

문헌에서 ‘ㆍ’가 아닌 위치에 ‘ㆍ’가 나타나는 경우는 김완진(1957)에서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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