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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혼용과 언어 전환

언어 접촉에서 언어 변화는 어떤 한 언어가 이질적 요소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생한다. 언어 접촉으로 이중언어 상황에 놓이면 언어의 변화는 어떤 한 언어 영역에 다른 언어의 사용이 조금씩 확대되면서 일어난다. 두 언어의 접촉 상황에 서 하나의 언어는 다른 언어로 바로 대치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언어를 유지하지 만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두 언어를 혼용하게 된다.

(66) 가1: あなたもびょうきが 라 가지 あるけどげんきや.

(너도 병이 여러 가지 있는데 건강하구나.)

나1: 라 가지 あるけどね 난 이디저디 막 수술헤도 끈어 불민 낫는 병. 낫아신디 안 낫아신디 わからへんけど. あたまもな, のうこうそくはね, にじゅうよじか ん 넘으민 みんな 사는 사름은 살고 죽는 사름은 죽어するね.

(여러 가지 있어도 난 여기저기 막 수술해도 끊어버리면 낫는 병.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몰라도. 머리도 뇌경색은 24시간이 넘으면 사는 사람은 살고 죽 는 사름은 죽어.)

다1: 게도 げんきや. がんばってる이.

(그래도 건강한 걸. 열심히 하네.) 나2: くちだけ, 먹으난마씸.

(입만, 먹으니까요.)

가2: 병원에사 뎅겸주만은, 아프민 먹어져게.

(병원에야 다니고 있지만 아프면 먹을 수 없어.)

나3: 아이구, 요번인양 밥만 봐 가민 역데기 올라완게 이제 꼼 어떵어떵헤영 먹 어졈수다. 경헐땐양, やせて 기운이 엇엉 이레착저레착する えよう(えいよう)がな いから게.

(아이고, 요번에는 밥만 보면 욕지기가 올라오더니 이제 조금 어떠어떠해서 먹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살이 빠져서 기운이 없어서 휘청휘청해요. 영양이 없으니까.)

가3: や, うちもそのときあったわ. 넘은해에. 원 밥 봐 가민 먹기 실펑게.

(야, 나도 그럴 때 있었어. 지난해에. 원 밥 봐 가면 먹기 싫어서.)

나4: そうやから 병원에서 읍디다. あのごはんはたべへんでも, やさいでもじぶん すきな(野菜でも自分好きな)もんたべなさいと, あの 옛날 사름덜은 이것 먹으 민 あかん, 저거 먹어, 뭐 루라도 살젠 허민 すきなもん, 먹고정 헌 거 먹으 렌 헙디다. 우리 집이 おっさん 돈도 아무것도 엇어도양 병원에 자꾸 가가난, 이디꺼지 오젠 허민 タクシーだいもったいないしな, 아가민 おれのこときつ かわずしっかりたべて, おかねのこさんでもええよ(お金の残さんでもええよ)と いうから, おかねどこにあるのよ. 저 먹을 것도 막 しまつ 허멍 돈 じぶんのた めに 애끼지 말렌. 아이구 경 앙 웃엇주게.[26]

(그러니까 병원에서 말합디다.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헙디다. 우리 집이 남편 돈도 아무것도 없어도 병원에 자꾸 가니까 여기까지 오려고 하면 택시비 아깝 고, 하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잘 먹어라, 돈 남기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말하 기에, 돈이 어디 있어. 저 먹을 것도 막 절약하면서 돈 자기 위해서 아끼지 말 라고. 아이고 그렇게 말해서 웃었어요.)

위 (66)은 재일제주인 간의 대화이다. 제주방언과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고 있 다. 실제 대화를 들었을 때 두 언어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고 있지만 두 언어 사이에는 주저함이나 휴지(休止)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두 개의 언어가 아니라 마 치 하나의 언어를 운용하는 것과 같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1)은 일본어로 구성된 문장에 제주방언 부사가 삽입되어 있다. (나1)은 절 단위로 제주방언과 일본어가 교체된다. 그리고 ‘죽어 するね’처럼 제주방언 어간에 일본어가 결합되 어 동사구를 이루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제주방언과 일본어의 결합은 (나3)의 ‘이레착저레착 する’, (나4)의 ‘しまつ 허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1) 에서는 일본어 문장에 제주방언 접속사와 간투 표현이 결합하고 있다.

위 대화는 제주방언을 모어로 하는 화자도,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도 어느 한 쪽 언어만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은 이중언어 화자로 두 언어를 바꿔가면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코드 전환(code switching) 에서 다루고 있는 담화 단위의 코드 전환(conversational code switching)이나 상 황적 코드 전환(situational code switching)과는 달라서 발화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언어를 바꾸는 코드 전환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흔히 접촉 언어

에서 다루는 피진(pidgin)54)이나 크레올(creole)55)과도 다르다.

위와 같은 재일한국인의 혼용 언어를 피진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는 있었다. 구 마타니아키야스(1988: 224)는 재일한국인 1세들이 한국어 동사・형용사 어간에 일본어 ‘する’를 결합하는 언어 현상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결합형을 문법적 형태 로 묶어서 일본어 속에 전이시키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현상의 피진(pidgin)의 특징적인 간략화 현상을 보이는 것이라 하였다. 김정자(2002:20∼21)에서는 이러 한 형태의 혼용을 피진으로 정의하는 데에 논란이 있을지라도, 피진 형성의 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재일한국인 1세들의 혼용 양상은 이중언어 화자가 상황에 따라 의식적으로 코드를 전환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으로 일정하게 단순화되고 혼합된 양상을 보이며, 조어법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피진에 접근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무엇보다도 두 언어의 혼용 사용이 재일한 국인 1세들 간에는 일괄적으로 적용되며 상호 통용되는 독자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피진은 교류를 목적으로 갑작스런 접촉으로 생겨난다. 그래서 피진은 음운・문법・어휘의 모든 면에서 구조가 단순하고 문법 구조의 틀이 어디서 왔 는지 불분명하다. 이때 언어 접촉은 각각 다른 언어를 가지는 그룹 간의 접촉으 로 서로 다른 두 그룹의 의사소통을 위해 생겨난 언어이다. 그래서 재일한국인 간에 통용되는 언어를 피진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재일제주인의 언어 도 마찬가지로 (66)은 일본어 화자와 제주방언 화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일제주인 간의 대화이다. 즉 피진이 이언어(異言語)를 사용하는 두 그 룹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생겨난 언어인 반면 (66)과 같은 재일제주인의 언어는 이중언어 사회에서 생겨난 것으로 같은 집단 내부에서의 교류에 쓰이기에 피진 이라 할 수 없다. 이는 언어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민 집단의 언어 혼용

54) 피진(pidgin)은 사회적으로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새로이 생겨난 언어의 총칭이다(宮下尙子, 2007: 52).

피진은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가진다. 피진은 대개 식민지 지역 또는 무역이나 노동이 관련된 상황에서 외 부인들과 현지인들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성된다(한국사회언어학회, 2012: 231). 이러 한 상황에서 이 언어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건을 팔고 사는 데 필요한 의사소 통을 위해서 만들어진 언어인 만큼 복잡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55) 크레올(creole)은 이 피진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태어나면서부터 모어로서 피진을 배우게 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크레올은 피진에 비해 그 기능과 영역의 폭이 넓어져 제1언어로서의 여러 기능 을 수행한다. 시장, 회사, 교회 등의 영역을 거쳐 가정 및 학교의 영역에서까지 자유롭게 쓰이게 되며 문 학 창작이나 번역에서도 쓰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크레올은 그 구조도 피진처럼 단순한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정상적인 수준까지 발전한다(이익섭, 1994: 271).

현상이다.

위 (66)의 대화 참가자들은 의식적으로 상황이나 담화 상대에 맞게 언어를 바 꾸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두 언어를 혼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두 언어를 혼용하고 있지만 제주방언이나 일본어의 문 법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문법 체계가 크게 간략화 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다만 두 언어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것으로 두 언어 간의 코드 혼용(code mixing)에 의해 불완전한 언어 운용을 하고 있다.

그럼 재일제주인이 위 (66)과 같이 불완전한 형태로 두 언어를 혼용하는 이유 는 무엇일까? 우선 이들은 ‘제한적 이중언어’ 화자로 언어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을 들 수 있다. 두 언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화자지만 어느 쪽의 언어도 완전하 지 못하기 때문에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두 언어에 모두 의지하는 것이다. 언어 와 문화가 서로 다른 사회 집단에서 연관되어 발달하면서 두 언어의 뿌리에 해 당하는 부분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따라서 두 언어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고 두 언어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언어 능력의 부족은 언어 습득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Thomason & Kaufman(1988:

47)은 언어 접촉의 결과로 나타나는 언어 변화는 모국어(초기의 언어, substratum) 의 간섭 형태가 집단의 불완전한 습득(imperfect group learning)에 의해 모방되 어 주위에 전파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재일제주인의 언어 습득 모델은 자신보다 먼저 일본에 정착한 같은 지역 출신 자들이었다. 많은 재일제주인 1세들은 일본어는 물론 모국어도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모국어는 읽기와 쓰기 능력이 불가능하고 일본어도 오로 지 청각적인 정보에 의해 습득하였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생활이 60년 이상이 되 는 경우에도 일본어의 읽기, 쓰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먼저 정착한 선배들의 언어를 청각에 의지하여 습득하면서 불완전한 형태의 언어가 생성되었고 그 언어는 걸러지는 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다시 전달되며 언어 공동체 내에서 불편 없이 통용되었다.

불완전한 언어 습득뿐만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도 두 언어의 경계 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모두 교착

불완전한 언어 습득뿐만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도 두 언어의 경계 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모두 교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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