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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동화집『고향(ふるさと)』론

2·1 작품구성 및 집필의도

 도손의 두 번째 동화집『고향(ふるさと)』은 제1동화집『어린이에게』를 출판 한지 3년 후인 1920년 12월 실업일본사(日本之実業社)에서 간행되었다.『고향』

은『어린이에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자신의 유년시절을 들려주 는 형식이다. 구성은 제1동화집과 마찬가지로「서문」「본문」「후기」로 되어있 으며「본문」은 70화로 되어있다.

「본문」의 내용적 구성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태어나 10세까지 살다가 공부를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도쿄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이며 1부와 2부로 나 눌 수 있다. 1부는 <1화>부터 <54화>까지이며 아버지가 기소(木曾) 마고메(馬 籠)에서 태어나고 지냈던 유년시절에 대한 것이다.”112)

기소 사계절의 자연과 풍물 그리고 아버지가 살던 집의 내부와 외부 등을 사 실적으로 그려 놓았다. 가족구성원과 함께 이웃의 친지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112) 飛田文雄(1983)『藤村の童話 ーその位置と系譜ー』双文社出版 p.227 참조.

묘사하고있다. 작품은 설(お正月)을 맞이한 유년시절의 즐거웠던 기억을 시작으 로 봄·여름·가을이라는 계절의 순서로 그려 놓았다. 사계절을 절기에 따라 그려 놓는 방법은『지쿠마강의 스케치』의 구성113)과도 비슷하다. 2부는 <55화>부터

<70화>까지로 아버지가 도쿄 유학이 결정되자 집안사람들과 마을사람들이 아버 지를 도쿄로 보내기 위한 준비로 부산한 것과 마고메를 출발해서 도쿄에 도착하 기까지의 7일 동안의 여정114)이 그려져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프랑스 체류 이전에 쓴 서간체 소설『어린 시절』(1912) 에서 도손은 이미 자신의 유년시절과 자녀들의 성장이야기를 다루었다.『어린 시 절』의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새롭게 쓴 것이 두 번째 동화집『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손은「서문」에서『어린이에게』출판 후 3년이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현재 자녀들의 나이와 근황을 전해주고 있다. 세 번째 아들인 오스케(蓊助)는 13세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고향인 기소의 숙부댁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 다. 아버지는 기소에서 자라고 있는 오스케를 생각하며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기소를 떠올린다.『고향』은 도손이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것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로 기소의 독특한 자연과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풍물을 사실적으 로 고증하듯이 재현하고 있다. 작가는 동화라는 장르를 의식해서인지 사물들과 대화하는 우화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말·여우·제비·쥐 등을 비롯한 동물 그리고 정원의 배나무와 감나무 등 식물에도 감정을 이입해서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잘 알고 있는 전래동화『모모타로(桃太郎)』『원숭이와 게 싸 움(さるかに合戦)』『우라시마타로(浦島太郎)』등도 삽입시키면서 동화의 분위기 를 자아내려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도 한 때 어린 시절이 있었으나 그 시절은 지금의 아이들의 삶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아버지는

113)『치쿠마강의 스케치』「본문」은 1장에서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중 시간은 봄으로 시작 하여 봄으로 끝난다. 12장의 구성을 1년 12개월을 염두에 둔 편성임을 알 수 있다. 전체 12장 안에는 독립된 단편이 65편이 배열되어있다.(중략) 도손은 지쿠마강(千曲川)유역을 중심으로 펼 쳐지는 춘하추동 4계절을 공들여 묘사했다.

강정심(2015)「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치쿠마강의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고찰 - 작품의 성립과 묘사의 특징을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p.5

114) 도손은 제3동화집『をさなものがたり』<3화>에서「わあしは国を出てから、七日もかゝつて、やうやく東 京へ着ました。あの時は、わたしは兄さん達に連れられて、国の方の山を二つも、歩いて超して来ました。」라 고 언급해주고 있다.

『도손전집 제9권』「어린 시절 이야기」p.360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유년시절을 공유하면서 혈연과 지연으로 이어진 공동체라 는 것을 자각시킴과 동시에 아버지와 아이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공동체로 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도손은「서문」에서『고향』의 집필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몇 살이 되어도 어릴 적 먹었던 음식 맛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처럼, 자 기가 태어난 곳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그 토지가 어떤 산 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이번에 아버지는 나의 어릴 적 일과 어릴 때 뛰어놀던 산과 숲 의 이야기를 한 권의 작은 책으로 펴낼 생각을 하였습니다.

人はいくつに成つても子供の時分に食べた物ものの味を忘れないやうに、自分の生まれた土 地のことを忘れないものでね。假令その土地が、どんな山の中でありましても、そこで今度、父さ んは自分の幼少い時分のことや、その子供の時分に遊び廻つた山や林のお話を一册の小な本 に作らうと思ひ立ちました。

(『도손전집 제9권』「고향」p.273)

위의 글에서 보듯이 도손은 유년기라는 인생의 한 시기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 하고 있다. 유년기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세상과 마 주하는 인생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때 경험한 모든 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일차적 생존 수단이지만 그 맛과 감촉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특히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은 그 시절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환기시킨다. 이처럼 미각의 기억은 인간의 원풍경이 되는 무의식의 기억으로서 고향의 심상과 맞닿게 된다.

『고향』을 집필하던 당시 도손은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생활했다. 도손은 아이 들의 빠른 성장을 실감한다. “세월 참 빠르네요.”115)라며 자신의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1화> ‘참새의 집(雀のおやど)’에서 죽순의 생명력으로 비 유하며 보여주고 있다.

참새가 자고 일어나서 다시 대나무 덤불에 놀러 가보니, 어제까지도 보이지 않 았던 곳에 새로운 죽순이 나왔습니다. 어제까지 작은 죽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115)『도손전집 제9권』「고향」p.273

불과 하룻밤 사이에 깜짝 놀랄 만큼 커진 것이었습니다.

참새는 놀라서 어머니에게로 날아갔습니다. 어머니에게 어떻게 작은 죽순이 저 렇게 갑자기 자랐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랑스런 참새를 끌 어안고,

“너는 처음 알았구나, 그것이 모두가 얘기하는 ‘생명’이라는 거야, 네가 자라나는 것도 전부 그 힘이야.” 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雀が寢て起きて、また竹やぶへ遊びに行きますと、きのふまで見えなかつたところに新らしい竹 の子が出て來たのがあります。きのふまで小さな竹の子だと思つたのが、僅か一晩ばかりで、び つくりするほど大きくなつたのがあります。

雀はおどろいて、母さまのところへ飛んで行きました。母さまにその話をして、どうしてあの小さな 竹の子があんなに急に大きくなつたのでせうと尋ねました。すると母さまは可愛い雀を抱きまして、

『お前は初めて知つたのかい、それが皆さんのよく言ふ「いのち」(生命)といふものですよ。

お前たちが大きくなるのもみんなその力なんですよ。』と話してきかせました。

(『도손전집 제9권』「고향」pp.275-276)

위의 인용문의 참새 속에 도손은 자신의 아이들을 투영시키고 있다. 참새는 새 들 중에서도 몸집이 작고 여러 마리가 몰려다니며 지저귄다. 참새의 자유분방하 고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어린이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미 참새가 새끼 참 새에게 죽순의 생명력을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 라는 도손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생명이란 신비로운 것이다. 죽순처럼 무럭 무럭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이미 세 명의 딸과 아내와 사별한 도손은 생명력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지녔다고 본다. 자연속의 모든 생명체는 끊 임없이 변화한다. 그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데 식물 중 에서 죽순은 봄에 땅을 뚫고 나와 하루에 30㎝ 이상씩 자란다. 도손은 아이들의 성장을 죽순의 생장에 비유하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세 명의 딸을 먼저 떠나보낸 도손으로서는 살아있는 자신의 아이들이 활기차게 생명력을 발휘 했으면 하는 바람이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1화> ‘참새의 집’에서 어린이는 자연의 새싹이라는 것과 생명의 신비를 이야기 해줌으로써 자신과 아이들의 생 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집필여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2·2 도손에게 있어서 ‘고향’의 의미

도손은 1872년 시마자키 집안의 4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이 태어났을 당시 도손의 집안은 기울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으로 가도역제(街道駅制)116)가 폐 지되는 바람에 과거의 융성은 시들어갔다. 그럼에도 도손이 태어날 당시에 하녀 가 두 명이 있었으며 예전부터 전해져 왔던 방식대로 양육이 이루어졌다. 도손이 소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학문을 좋아하는 아버지인 시마자키 마사키(正樹)117)로 부터『권학편(勸學篇)』『천자문(千字文)』『삼자경(三字經)』등을 배우고『효경 (孝經)』『논어(論語)』의 소독(素讀)을 익혔다. 공부를 잘해서 장래가 촉망되는 큰 기대를 걸었던 아이였다. 도손은 어린 시절 옆집 다이코쿠야(大黒屋)118)의 딸 오와키 유(大脇ゆう)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한다. 이 는 훗날 도손의 시「첫 사랑(初恋)」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도손에게 고향은 행복했던 유년시절이자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내린 근원적 세계이다. 지 리적 고향은 세월과 함께 변하기 마련이지만 마음의 고향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 다. 따라서 도손이 그리워하는 고향은 마음속에 자리한 고향인 것이다. 어른이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고향도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 다. 다만 인간의 기억과 회상을 통해 되살려 낸 것을 기록함으로써 원상에 가깝 게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도손처럼 잘 보고 잘 느낄 수 있는 관찰력을 지닌 사 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고향의 원풍경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고

116) 율령제도하의 교통제도. 모든 도로의 30리(약16㎞)마다 역가(駅家)를 두고 역마(駅馬)를 배치 하여 관인들이 공동하였다. 이것이 가마쿠라시대 이후 여관이 생겨나고, 에도시대에는 가도를 중심으로 여인숙마을이 발달하였다. 1653년 참근교대(参勤交代) 실시에 따라 역가(駅家)에 해당 하는 혼진(本陣)이 생겨났다. 혼진은 다이묘나 바쿠후의 무사 등 지배계층 중에서도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다. 혼진은 1870년(메이지 3년) 민부성 포고에 의해 폐지되었다.

117) 시마자키 마사키(正樹, 1831-1886) : 시마자키 집안의 17대 자손인 마사키는 굉장히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16세 때 스스로 서당을 열었다. 당시 지방의 돈 많고 세력 있는 농가에 퍼져갔던 히라다파(平田派)의 국학을 배우고 일본 민족 고유 전통적 인 신앙인 신도(神道)에 심취한다. 에도시대 후기 국학자인 히라다 아쓰타네(平田篤胤)의 양자 인 가네타네(鉄胤)의 문하생으로 일본 고유의 고전적 철학을 자신의 신조로 하여 일생을 살았 다. 불교와 유교가 전해지기 전 고대일본의 천황정치를 이상으로 하게 되었다. 믿음이 깊고 엄 격한 사람이었지만 풍류인으로서의 일면도 있었다. 정원에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고 도손을 하 루키(春樹)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佐々木勇志 · 及川健智(2018)『島崎藤村の木曾の旅』株式會社産業編集センター p.013

118) 오와키(大脇) 집안의 가게 이름. 오와키 집안은 시마자키 집안과 관계가 깊고 도매상으로서 역참관리인들이 종사하는 것 외에도 가업으로 양조장과 금융업을 하며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집안이다.

伊東一夫(1972)編『島崎藤村事典』明治書院 p.257

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도손은 제2동화집『고향』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도 손에게 고향 마고메는 순수했던 유년기와 동의어이다. 장차 닥쳐올 인생의 위기 와 함정을 모른 채 마냥 행복할 수 있었던 낙원이라 할 수 있다.

1928년 기소남부 교장회(木曾南部校長会) 주체로 열린 강연회에서 도손은 자신 의 고향 마고메에 대한 생각을 “피로 이어지는 고향, 마음으로 이어지는 고향, 말로 이어지는 고향.”119)이란 말로 표현했다. 10세 때 마고메를 떠나 오랜 세월동 안 떨어져 있었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향은 도손의 마음에 깊게 스며들어 그의 문학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도손의 마음 심층에는 언제나 기 소 마고메가 있었다는 것을 <26화> ‘고향의 말(ふるさとの言葉)’에 잘 나타나 있 다.

산과 숲은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너희들에게 말했지요. 산과 숲뿐만 아니라 말도 아버지의 고향입니다. 외딴 시골의 산골마을이라서 사투리도 시골티가 나지만, 사 람을 부르는 방법도 마고메에서는 마고메다운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스에코와 같 은 꼬마 여자아이를 부를 때도,

“스에사마”

라고 부르거나, 좀 더 친근한 관계에서 부를 때는

“스에사”

라고 부르며 시골티가 나는 말 중에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략) 고향의 말이 그립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어릴 적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너희들의 조부님도, 조모님도, 모두 그 말 속에 살아있는 듯한 생각 이 듭니다.

山や林は父さんのふるさとですと、お前達にお話しましたらう。山や林ばかりでなく、言葉も父さ んのふるさとです。邊鄙な山の中の村ですから、言葉のなまりも鄙びては居ますが、人の名前の 呼び方からして馬籠は馬籠らしいところが有ります。たとへば、末子のやうなちひさな女の子を呼 ぶにも、

『末さま。』

と言(い)つたり、もつと親しい間柄で呼ぶ時には、

『末さ』

119) 佐々木勇志 · 及川健智(2018)『島崎藤村の木曾の旅』株式會社産業編集センター p.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