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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동화집『어린이에게(幼きものに)』론

1·1 성립배경·구성·서술방법

도손은 앞의 여러 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동화집을 출간하는데 총 4권의 동화 집이 있다. 그 중 첫 번째 동화집이『어린이에게(幼きものに)』이다. 이 동화집은 1917년 4월 20일 실업일본사(實業之日本社)에서 간행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도손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프랑스 체재 중이다. 고국에 두고 온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동화 창작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어린이에게』의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서문」에서는 작가인 아버지가 3년 전 일본을 떠 나 이국땅으로 갈 때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 당시 9세인 장남(楠雄)과 7세인 차남 (鶏二)은 도쿄의 백부 집에 남겨두고, 6세인 사부로(蓊助)는 신슈(信州)의 친척 집 에 맡겼으며, 4세였던 스에코(柳子)는 히타치(常陸)의 유모 집에서 길러지고 있었 다. 이들 네 명의 아이들은 도손의 친자식들이다. 도손의 아내 후유코(冬子)가 막 내 류코를 출산한 다음 날 과다 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여기저기에 맡겨져 양육된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외국으로 떠나야 만 하는 아버지의 괴롭고 착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라는 언어와 풍속이 전혀 다른 머나먼 이국땅에서 체험한 아버지의 견 문을 고국의 아이들에게 전해줌으로써 아이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지니고 상상력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부성애가 느껴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녀들에게 3년이나 되는 아버지의 빈자리와 사망한 어머니의 부재를 조금이나마 채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서신왕래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자 했지만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 달이 걸릴 정도로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먼 나라였다. 거기에 전시상황이라는

악재까지 겹쳐서 뜻을 이룰 수가 없었음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프랑스 체류 중 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파리가 전화에 휩싸이게 되고 편지로 고 국에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도손은 귀국 후 프랑스에서의 결심 을 실천에 옮기게 되는데 동화집『어린이에게』를 발표함으로써 실현했다.

『어린이에게』는「서문」「본문」「후기」로 되어있으며, 본문은 77화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아버지가 내레이터가 되어 두 아들 다로와 지로를 곁에 불러 놓고 외국에서 보고 들은 신기한 이야기를 들 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래동화 서술의 관습에서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주로 할머니가 하는데 여기서는 아버지가 하는 셈이다.

3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와 두 아들과 상봉한 아버지는 그동안 훌쩍 자란 모습 에 놀라는데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전하고 있다. 아버지는 무거운 여행 가방을 “어 영차(よ、どつこいしよ)”82) 하면서 끌고 온다. 여행 가방 옆으로 다 로와 지로를 다정하게 불러들이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로도 오거라, 지로도 오거라, 자, 아버지가 너희들이 있는 곳에 돌아왔단다. 한 마리 당나귀 이야기를 할 거야. 프랑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 줄게.

太郎もお出。次郎もお出。さあ父さんはお前達の側へ帰つて来ましたよ。一つ驢馬の話をしま せう。仏蘭西の方で聞いて来たお話をしませう。

(『도손전집 제8권』「어린이에게」p.449)

위의 인용문을 보면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진다. 여행 가 방 옆으로 아이들을 앉혀 놓고 여행선물을 하나씩 꺼내면서 아버지는 여행에 대 한 이야기보따리도 함께 풀어 놓기 시작한다. 여행 가방 옆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한겨울의 화롯가를 연상시킨다. 화롯가는 가족 간의 따뜻 한 온기와 사랑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커다란 여행가방 옆에 모인 아이들의 모습 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해 화롯가에 모여든 아이들의 모습을 연상시 킨다. 도손은 이와 같은 동화적 장치를 설정해놓고 외국에서의 견문을 아이들에 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손 자신의 세계여행 견문기를 아이들에게 들

82)『도손전집 제8권』「어린이에게」p.448

려주고 있는 셈이다. 작품 속 아버지는 일본고전문학의 가타리베(語り部)83)의 변 용으로서 도손은 가타리테(語り手)84) 역할을 하고 있다.

1·2 도손의 동화관

도손은 프랑스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동화집『소년소녀』로부터 평범한 일상이 동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도 동화를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 게 된다. 도손 동화의 특징으로는 생활에 밀착한 동화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 는 아나톨 프랑스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도손에게는 동화에 대한 자신 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 있는데 1921년『와세다문학(早稲田文学)』제6호에 실린

「동화에 대해서(童話について)」가 그것이다. 이 글은 나중에 감상문집『이이쿠 라 소식(飯倉だより)』에 수록된다. 여기서 도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금이라도 동화를 시도해 보았던 사람은, 동화는 동화로서의 특별한 표현 방 법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와 자기 집에 도착하면 어른에 게 들려주고 싶은 것과 어린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어느 여행날의 추억 을 어린이에게만 말할 수 있으니, 그 작은 이야기로 그 고장이 잘 드러나고 나타 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중략)

동화에는 이해할 수 있는 교훈보다도 느낄 수 있는 유머가 필요하다.

 すこしでも童話を試みたものには、童話には童話としての特別な表現の方法のあることに気づ く。私達が旅から帰つて自分の家にでも着くと、大人に聞かせたいことと、子供に聞かせたいと 思ふこととがる。あの旅の日の思出が子供にのみ話せて、そんな小さな話の方に旅した土地のこ とが反つてよく表はれると思ふことがある。

(中略)

童話には理解し得る教訓よりも、感知し得るユウモアを欲しい。

(『도손전집 제9권』「동화」 pp. 106-107)

위의 인용문을 보면 도손은 작품을 읽을 대상을 어른 독자와 어린이 독자로

83) 역사책이 없었던 상고시대에 조정에 출사하여, 전설이나 고사(古事)를 외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소임으로 한 씨족을 가리킨다.

84) 말하는 사람(이야기 꾼). 극 따위의 진행 도중 줄거리를 설명해 주는 사람.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때는 어린이의 감수성에 맞 는 표현양식이 필요하며 그 안에는 유머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러한 동화관을 토대로 도손은 3년 동안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 을 한 권의 동화집 속에 담아 놓았다고 추론한다. 도손은 고베항을 떠나 프랑스 로 가기 위해 40여 일에 걸친 항해를 해야만 했다. 3년 뒤 일본으로 돌아오기 위 해 다시 50일의 항해를 해야만 했는데, 총 90여 일을 선상(船上)에서 보낸 셈이 다. 선상을 중심으로 그려낸 항해기인『바다로(海へ)』85)가 어른 독자를 대상으 로 했다면 그중 일부를 발췌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동 화 형식으로 쓴 것이『어린이에게』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안에는 바다와 배 가 정박하는 항구의 이국적 정경과 함께 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낯선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던 도손은 일본과 프랑스의 음식 문화의 차이에 대해 어린이의 호기심의 눈으로 알려 준다. 프랑스 도착 1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을 파리에서 겪게 된 도손은 전쟁과 애국심에 대한 감회를 말한 다. 프랑스에서 지낸 3년은 고국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 으며 자국 일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소중한 체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여행 중 접했던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나온다. 도손은 동식 물을 의인화시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러한 우화 형식은 어 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흥미를 더해 주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본문」 <1화> ‘당나귀이야기(驢馬の話)’ 는 도손의 동화관인 유머 감각을 잘 살린 동화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에서는 당나귀는 바보의 다른 이름입니다. 장난기 있는 어린 학생들이 늙 은 당나귀를 늙은이로 보고 바보취급하며 덤볐다. “바보 엄마, 안녕!” 하고 이렇게 말할 작정으로 놀린 것입니다. 이때 당나귀는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조금 ‘예의’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 나이 먹은 당나귀의 대답을 한 번 더 되새겨 보세요.

85)『바다로(海へ)』: 감상기행문. 1918년 7월 10일 실업일본사에서 간행. 1923년 도손전집 제10권 에 실린다.『평화의 파리(平和の巴里)』『전쟁과 파리(戦争と巴里)』는 프랑스에서 보냈던 통신 으로 일본에서 프랑스 그리고 귀국하는 항해의 감상을 기록한 항해기록 성격을 띤 작품이다.

“어, 아들들, 안녕.”

佛蘭西あたりでは、驢馬とは馬鹿の異名です。いたづらな学校生徒がその驢馬を年よりと見 て馬鹿にしてかゝつたのです。『馬鹿のお母さん、今日は。』斯ういふつもりで、からかつたの です。そこで驢馬は、ふざけることの好きな少年に、すこしばかり『禮儀』といふものを教へたの です。

あの年をとつた驢馬の返事を、もう一度繰返して御覧なさい。

『オヽ、伜共か、今日は。』

(『도손전집 제8권』「어린이에게」p.449)

위의 인용문은 언어에 관한 것으로 나라마다 어휘에 따른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여행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주는 장면인 <2화> ‘여행 선물 (旅の土産)’을 맨 처음 이야기 <1화>로 내세우지 않은 것은 프랑스 여행 이야기 를 하기 이전에 언어(외국어)가 지닌 다의성(多義性)도 전하는 동시에 당나귀의 지혜를 알려 주려는 도손의 의도적 구성으로 보인다. 한창 개구쟁이 짓을 할 연 령인 자신의 아이들이 지혜롭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나이 먹은 당나귀는 장난기 많은 어린이들이 바보라고 놀리고 있는데도 화를 내거나 야단 치지 않고 오히려 “어, 아들들, 안녕!” 하며 재치 있게 응수한다. 그 한마디 말에 장난꾸러기 학생들은 바로 뉘우치게 되고 언어를 통해 ‘예의’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훈계보다는 우회적이면서 유머가 깃든 이야기 를 동화의 방법으로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손은 마지막 부분인 <76화>

‘대문(門の扉)’에서도 유머를 활용하고 있다. 고베(神戸)항에 도착한 작가가 일본 땅에 들어가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리 애원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모자를 벗었더니 그때야 문이 열렸다는 이야기이다. 고베라는 지명에는 ‘문’이라는 뜻의 한자 ‘호(戸)’가 들어 있다. 작가는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떠날 때는 없었던 문이 돌아올 때는 새로 생겼다고 말하면서 오랜만에 고국 땅을 밟은 감개무량과 함께 고국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표하고 있다. 모자를 벗는다는 행위는 예절을 갖추는 의식을 말하고 있으며 모국 일본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본고는 이제부터 도손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모음집『어 린이에게』를 아홉 개의 항목으로 분류하여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내용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