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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의 기원

문서에서 루소 ꡔ사회계약론ꡕ (페이지 86-91)

자연법 학파의 철학자들이 국가를 인위적으로 구축하려고 했다는 비난 이 비록 정당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정치사회의 형성은 인간이 존속하기 위해선 부득이한 일이었으며 자연상태의 불편과 장애가 실제로 이것의 설 립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음을 인정하기 않으면 안 된다. 예 를 들어 홉스에 있어선 인간 종이 살아남으려면 그의 자연 조건을 단념하 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위적 장치를 발견해내지 않 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홉스의 계승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반대자 들까지도 종국엔 정치사회의 기원 문제를 그와 거의 유사한 관점에서 제 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이 점에선 홉스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언 로크나 푸휀도르프 같이 홉스의 기초 가설 을 거부하고 자연상태를 평화 상태로 간주한 학자들조차도 분쟁, 알력을 중재할 공동 심판관이 없고 만인에게 자연법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권 위가 부재하는 상황에선 자연상태의 평화는 확실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간들의 자연적 독립도 불가피하게 인간들 사이에 전쟁상태를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홉스의 논적들에게도 이 전쟁상태를 끝낼 목적으로 정치사회는 창설되었던 것이다.

“자연상태에선 하늘밖에 호소할 길이 없고 분쟁을 중재할 공동 권위가 부재하는 만큼 사소한 알력만 있어도 전쟁상태가 쉽사리 생겨나기 마련이

다. 따라서 이 전쟁상태를 피해보려는 욕구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시민 사회를 형성하고 자연상태를 포기하도록 하는 가장 큰 동기가 아닐 수 없 다.”(로크, ꡔ시민통치론ꡕ 21절)

루소에게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ꡔ불평등기원론ꡕ 제2부에서 루소는 인류의 진화와 인류를 자연상태로부터 정치사회 설립에까지 끌어온 암울 한 진보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순수한 자연상태와 정치사회의 성립 시기 사이에 수많은 세기가 흘러갔으며, 두 중간 단계가 이 기간 안에 자 리 잡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인류에게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서 루소는

‘탄생하는 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기엔 정치사회는 아직 성립되 지 않았고 법의 지배도 없었으나 사람들은 더 이상 흩어져 살지 않고 무 리를 지어 살면서 상호 약속에 대한 투박한 관념을 획득하고 예의범절의 도리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또 (현재) 야만 민족들이 사는 방식인 것이 다. 그러나 불평등의 진전과 욕망들의 발전과 더불어 이 황금시대는 사라 지고 가장 끔직한 전쟁상태가 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부자들의 강점, 빈자들의 강도질, 만인의 광폭한 욕망은 천부의 동정심이나 아직까지 약한 정의의 음성을 질식시켜버리고 끝내는 사람들을 탐욕적이고 야심에 불타는 사악한 존재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강자의 권리와 최초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이 갈등은 오직 전투와 살인에 의해서만 끝장을 보게 된 다. 그래서 탄생하는 사회는 가장 끔직한 전쟁상태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인간 종은 이렇게 황폐와 비참의 지경까지 전락하였으나 더 이상 온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그 동안 획득했던 자질도 포기할 수도 없게 되어 자 신의 파멸의 문턱까지 치달아 온 것이다.”(ꡔ불평등기원론ꡕ, VPW, I, 180)

“내가 인간들이 도달했다고 가정하는 단계에선 인간의 자기보존을 해 치는 장애들이 자연상태에서 개개인이 자기보존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힘 을 압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선 인간의 자연상태는 더 이상 존속 할 수 없게 되어, 인간 종은 자신의 존재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ꡔ사회계약론ꡕ 제1편 6장, PLE, 360)

결국 루소에게 있어서도 이 전쟁상태가 정치사회의 설립을 불가피하게

하고 그것의 이점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부자들의 발의와 주도에 따라 사람들은 협약에 의해 결합하여 공동 권위에 순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정치사회와 법의 기원이고 기원일 수밖에 없다”고 루 소는 ꡔ불평등기원론ꡕ에서 설파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루소가 어떤 우회적 경로를 거쳐 결국엔 홉스의 최초 입장으로 돌아와서 이번엔 그 자신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를 긍 정하는가를 보았다. 바로 이 우회적 경로 덕분으로 루소는 푸휀도르프나 로크에서와 같은 모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 실 이들은 우선 자연상태는 평화와 상호원조의 상태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이를 일종의 전쟁상태로 규정하는 결론에 이르렀으니까 말이다. 이에 반 해 루소에 있어선,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은 어디까지나 고립인 만큼 인간이 타인과 충돌하게 될 까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상태가 나타나고 또 이 전쟁상태를 끝내기 위해 정치사회가 창설되기 위해선 먼 저 인간들은 고립을 떠나 서로 가까워지고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고독하 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 되고 난 이후의 일인 것이 사회성의 발전과 욕정의 발전은 쌍을 이루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만 이 홉스가 말한 전쟁이 일반적인 상태로서 생겨나는데, 홉스가 이런 전쟁 을 자연상태로 간주한 까닭은 전쟁이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기인하는 것 이 아니고 사회의 내부에서만 발전할 수 있는 욕정에 기인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적 독립이 인간들 사이에 전쟁상태 를 빚어내기 위해선 인간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그들의 욕정이 잠에서 깨 어나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홉스 이론은 루소에게 있어서도 계속되나, 이번엔 순서 가 도치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루소에게는 홉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악은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사회적 삶을 살게 된 데에서 기인하지만, 전자는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삶이 인간의 자연본성이라고 전제하지는 않 았다. 인간들이 사회적 삶을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정욕은 끊임없는 갈등과 알력의 원천이 되는 까닭에, 만일 인간들이 적당한 시기 에 그들의 자연적 독립을 포기해야만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평화롭게 살

기 위한 인위적 장치를 상상해내지 못했다면 인간 종은 이 일반화된 전쟁 으로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인위적 장치란 다름 아닌 정치사회를 탄생시킨 사회계약이다. 여기 서 우리는 루소의 사회계약 개념을 명확히 한정할 필요에 당면하였다. 루 소에게서의 계약이 다수의 특수 사회 설립보다는 인류 차원에서의 일반 사회 창설을 지향하며, 그러므로 계약은 사회와 동시에 국가를 정초하게 된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실제의 루소 사상은 정치사상사 연구자들 사 이에 널리 통용되는 이런 해석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먼저, 루소에 의하면 최초의 사회적 관계는 계약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 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순서가 루소의 진실인 것은, 인간들 이 정치사회와 법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기 위해선 먼저 그들의 원시 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전쟁상태가 없었다 면 인간들은 결코 협약에 의한 결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생각조차 없었을 터인데, 이 전쟁상태는 다름 아닌 최초의 사 회적 관계에서 연원한다. 그러므로 정치사회의 수립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사실 사회성의 발전이며, 또 이 절대 필요성 때문에 동시에 가능하 게 된 것이다.

루소에게선 홉스의 경우와 같이 사회계약은 이성의 작품이다. 다시 말 하면 사회성이 이성을 작동하게 해서 사회성이 초래한 악에 대한 구제책 을 제공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때에 한해서 사회계약은 가능한 것이 다. 그렇지 않다면, 오로지 육체적 본능에 국한되어 언어와 이성의 사용 이 결여된 원시인들이 과연 어떻게 이런 사회계약을 생각해내고 체결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사회계약은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의 발명 과 이성의 개발에 선행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언어의 발명이나 이성의 개발도 사회적 관계의 확립이 선행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사실 루소 자신도 강조하고 있듯이 언어의 발명이라는 것 도 “일종의 사회가 발명가들 사이에 이미 확립되어 있음을 상정”할 때 만이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산림과 숲에 흩어져 사는 인간들에게 의사소통 (communiquer)을 해야 할 필요나 기회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간은 그의 이성을 함양

할 가능성이나 기회가 있을 리가 만무한 만큼, 그의 이성은 ‘잠재적 능 력’으로서 남을 수밖에 없다. 고립된 인간이란 실제로 본능 이외에 다른 어떠한 안내자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자력으로만, 즉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루소에게 있어서 사회성과 이성은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사회계약을 생각해내고 체결하기 위해선 인간들은 먼저 사회적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인간들은 어떻게 사회적 존재가 되었으며, 특히 자연상태로부터 최초의 사회로의 이행은 어떻게 실현되었던가? 후에 있을 모든 발전의 조 건이 될 이 최초의 발전에 대해서 루소는 ꡔ불평등기원론ꡕ에서 매우 간략 히 취급하고는 있으나, 이 최초의 발전은 그 자체가 인간의 자연 본성으 로부터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그 만큼 더 뜻밖이다. 자연 인은 자족하는 존재이며, 그와 타인을 결합시켜 줄 자연적 동일성조차 의 식하지 못하고 또 타인의 도움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자연인이 타인에게 접근해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결국 자 연인을 그의 자족하는 고립 상태로부터 나가게 한 원인은 루소에 의하면

‘여러 외적 원인의 우연한 일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태초의 자연 조화가 깨어지는, 말하자면 인류 진화의 첫걸음에 대해 루소는 ꡔ불평등기 원론ꡕ에선 이렇게 간략한 지적을 했다가, 후에 ꡔ제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시론ꡕ 제9장에서 이를 다시 보완하고 있다. 이 장은 사실 제 언어의 기원 뿐만 아니라 제 사회의 기원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루소의 문제제기 방 식 때문에 문제해결 역시 매우 미묘하게 된다.

루소의 이론에 의하면, 자연상태를 떠나기 전에 인간들은 산재(散在)상 태에서 살고 있었으며, 게다가 어떠한 사회적 성향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접근하여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영원한 봄이 지구상에 있었던 것을 상상해보시오, 도처에 풍부한 물과 가축과 목초가 있었던 봄을. 이런 자연상태에서 태어나 살던 인간들이 도 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의 원시적 자유를 포기하고 그들의 무사태평의 목 가적이며 고적한 삶을 떠나 근로와 노예적 굴욕과 빈궁의 사회상태를 등 에 지게 되었는가는 나의 상상력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일이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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