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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탐색을 위한 방황과 귀환

Ⅱ. 성장모티프의 전개 양상과 특성 분석

1) 자아 탐색을 위한 방황과 귀환

이문열의 그해 겨울 은 정체성 탐색의 여정을 나타낸 성장소설이며 현재 중 년 시점에서 자신의 스물 한 살 시절의 자아형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주인물 ‘나’는 청년시절 삶의 피로와 혼란을 겪으며 이러한 절망감에서 벗어나고 자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람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데 이는 통행로서의 길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 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사건은 19개의 단락으로 요약하여, 혼란과 떠남 시퀀스

→바다를 향한 여행 시퀀스→칼갈이 노인과의 만남 시퀀스→새로운 출발 시퀀스로 묶어 문학적 의미와 주제의 생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혼란과 떠남 시퀀스>

① 이제는 십년 전 그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다.

② 나는 대학시절에 사랑하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 술을 마시며 지게 된 빚, 유급 수준의 성적으로 인해 여러 혼란을 겪으며 떠나기로 결심한다.

③ 나는 광부가 될 작정으로 강원도를 떠나지만 광산에서 막장이 무너져 두 사람이 묻히는 것을 보고 광부의 일을 단념한다.

④ 어느 산촌에 아홉 개의 온돌을 따뜻하게 덮혀놓는 ‘방우’로 취직한다.

77) 이재선, 앞의 책, p. 420.

⑤ 이곳에서는 매일 술자리가 벌어졌고 손님들을 상대하는 색시들을 보며 안 타까움을 느낀다.

⑥ 나는 방우 생활을 하며 음탕한 세상을 경험하다가 떠나기로 결심한다.

<바다를 향한 여행 시퀀스>

⑦ 바다를 향해 떠나며 다시는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끼지만 주 막에 들려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여행을 한다.

⑧ 여행을 하는 동안 야당의 시골 당원, 시골 교회의 장로, 중등 교원 등을 만 나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⑨ 여행 중 폐병쟁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책에 대 해 떠들게 되는데 그에게 웃음거리가 되어 비참한 심경을 느낀다.

⑩ 나는 괴로운 상념 속에서 걷고 있는데 개울가에서 칼을 가는 노인을 만난 다.

⑪ Y면에서 우연히 친척 누나를 만나게 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누 나의 깊은 사랑의 상처에 대해 알게 된다.

<칼갈이 노인과의 만남 시퀀스>

⑫ 바다를 향한 여행은 다시 시작되었고 창수령은 삼십 년래의 폭설을 맞았다.

⑬ 나는 창수령을 넘는 동안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태에 감동을 느끼며 예술 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예감을 갖는다.

⑭ 청수령을 넘은 첫 번째 주막에서 칼갈이 노인을 만나 아는척을 하지만 그 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⑮ 두 번째 주막에서 유쾌한 청년을 만나 술을 마시고 새벽에 깨어 추위로 죽 음의 공포를 느끼며 유서를 쓴다.

⑯ 추위와 배고픔으로 정신을 잃어 갈 때 쯤 칼갈이 노인의 도움을 받게 되고

‘배신자’를 찾아가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는 사연을 듣는다.

<새로운 출발 시퀀스>

⑰ 바다에서 칼갈이 노인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노인은 칼을 바다에 던지며

오랜 망집을 던져버렸다고 말한다.

⑱ 나 또한 가방에 있는 유서와 약병을 바다로 던진다.

⑲ 활짝 개인 늦겨울 오후 중앙선의 상행 열차를 탄 나는 복숭아 과수원을 지 나며 화려하게 필 봄을 기대한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혼란을 겪게 되고 서울과 대학을 떠나 광부 가 될 작정으로 강원도로 간다. 그리고 가방 안에는 ‘먹으면 몇 분 안에 죽을 수 있는 치사량의 화공 약품’을 휴대하고 있다. 하지만 광산에서 막장이 무너져 광 부 두 사람이 묻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그곳을 빠져나온다. 다음 동해 안의 어촌을 찾아가 고기잡이배를 타보려고 했지만 ‘흰 얼굴과 매듭 없는 손’으 로 인하여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 어느 소읍의 여관 겸 술집에서 방우(房友)로 일하게 된다. 이곳에서 ‘나’는 두 달 동안 방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삶 을 겪어 본다. 하지만 ‘바다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바다로 향한 다.

내가 택한 길은 바다 쪽이었다. 나는 바닷가 태생도 아니고, 자라서도 그것과 특별 한 인연을 맺은 적도 없었다. 더구나 그때는 이미 배를 타겠다든가 하는 따위 현실 적인 이유도 없는데다, 길은 또 내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중략> 어쨌든 나는 바 다를 향해 떠났다. 바다는 그곳에서 직선거리로 백 리 남짓하였지만, 험준한 태백산 맥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이백리에 가까웠다. 편평족인 내게는 사흘 길이 빡빡하였는 데도 나는 고집스레 걸어서 갔다.78)

‘나’는 바다로 향하며 ‘한 번도 집권해 본 적이 없는 야당의 시골 당원’도 만나 고 시골 건달, 시골 교회의 장로, 중등교원, 도시의 여공, 폐병쟁이 지식인을 만 나 길동무가 된다.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되지만 가장 큰 각성을 준 사람은 Y면에서 만난 친척 누나와 원수를 찾아가기 위해 칼을 가 는 칼갈이 노인이다.

Y면에서 만난 친척 누나로부터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

78) 이문열, 그해 겨울 , 이 강에서, 청아출판사, 1996, p. 249.

에 실패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던 누나는 이제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그리고 누 나는 ‘나’에게 “절망이야 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 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79)라는 말을 남긴다.

‘나’는 누나와 헤어지고 창수령을 넘으며 아득한 눈세계에 홀로 남아 육체의 고 통을 느끼게 되지만 심장이 시키는 대로 달린다. 그리고 해발 칠백 미터의 창수 령을 넘으며 벅찬 감동을 느낀다.

아아, 나는 아름다운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세 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 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는 지금의 감동을 다 시 느끼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 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그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 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80)

누나의 말처럼 진실로 절망을 극복하면 아름다운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육체 의 고통은 영혼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다음에 만난 칼갈이 사내 또한 ‘나’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스물 안팎의 젊은 시절에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며 사회에 반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배신자로 인하여 갈망하던 꿈은 깨어지고 교도소에서 19년을 살 다 얼마 전 출소를 한 것이다. 그는 배신자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이 와 같이 ‘나’는 미래를 찾아가는 중이고 사내는 잃어버린 꿈과 과거를 보상받으 러 길을 걷고 있다. 사내와 ‘나’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방황하는 시절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에 같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칼갈이 사내와 만남을 갖고 난 후 마침내 최종 행선지인 대진의 바다에 이 르게 된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바다의 오의(奧義)가 ‘나’의 방황에 흔연한 종 말을 가져올 어떤 목소리와 접할 것을 기대해 보지만 기대와 달리 회색 갈매기 한 마리가 세찬 파도에 잠겨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현상을 목격 한다. 이때 갈매 기처럼 파도에 묻혀 버릴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온 힘을 다해 사장으

79) 위의 책, p. 263.

80) 위의 책, p. 267.

로 몸을 끌어낸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거대한 허무와 절망의 파도에 떠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81)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을 때에 “내 오랜 망집(妄執)을 버렸다.”82)고 말하며 칼을 바닷 속에 던지는 칼갈이 사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역시 6개월 동안 가지고 다니던 화공 약품과 유서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나’는 오랜 집착을 벗어던지고 포기와 자유를 선택한 칼갈이 사내에게서 자신의 방황도 끝내야 한 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 다’83)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이튿날 나는 중앙선의 상행 열차를 타고 있었다. 활짝 개인 늦겨울의 오후였다. 열 차는 어느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 때 그 줄기 끝마다 바알갛게 맺혀 있던 것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이었다.84)

소설 끝에는 겨울의 춥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따뜻하고 화사한 봄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겨울과 같이 어두운 ‘나’의 의식이 활짝 개인 ‘봄’과 같은 의식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

처럼 ‘나’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주인물이 친척누나와 사내와의 만남을 통해 정체성의 탐색 에 이른다는 점에서 실천적 차원의 성장소설로서의 특성을 보여주게 된다.

81) 위의 책, p. 285.

82) 위의 책, p. 287.

83) 위의 책, p. 263.

84) 위의 책, p. 289.

정체성 탐색 나

친척 누나와 칼갈이 사내와의 만남

즉, ‘나’는 친척 누나와 칼갈이 사내와의 만남을 중개자로하여 정체성 탐색에 나서게 되는 서사모형을 보여준다. 그 결과 ‘나’는 일상의 삶에 환멸을 느끼며 동

즉, ‘나’는 친척 누나와 칼갈이 사내와의 만남을 중개자로하여 정체성 탐색에 나서게 되는 서사모형을 보여준다. 그 결과 ‘나’는 일상의 삶에 환멸을 느끼며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