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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거부와 아버지 찾기

Ⅱ. 성장모티프의 전개 양상과 특성 분석

2) 아버지 거부와 아버지 찾기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에서 주인물 ‘나’는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보면 서 유년 시절에 겪었던 내면의 상처를 공유하게 된다. 유년 시절 회상과 고백을 하며 현재의 일과 과거의 일이 교차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유년 시절 아 버지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어 아버지를 부정하고 거부하지만 결국 화해에 이른다. 이 소설에서도 아비 거부와 아비 찾기의 이중적 서사 양상 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사건은 18개의 단락으로 요약하여, 자전거 도둑 시퀀스

→아버지의 도둑질 시퀀스→유년시절 회상과 고백 시퀀스로 묶어 문학적 의미와 주제의 생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자전거 도둑 시퀀스>

① 나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는 자전거 도둑이 생겼다.

② 자전거 도둑은 아파트 위층에 사는 에어로빅 강사이다.

③ 나는 순간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비디오 시청을 한 다.

④ 영화 속 아버지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도둑맞고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 치다 주인과 경찰로부터 아들의 면전에서 봉변을 당한다.

⑤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내면의 상 처를 끌어안고 사는 브루너를 보면서 자신의 삶과 같다고 공감한다.

<아버지의 도둑질 시퀀스>

⑥ 한 평도 안 되는 구멍가게는 아버지의 유일한 생존의 끈이다.

⑦ 어느 날 가게 물건을 정리하는데 소주 두 병이 모자라서 아버지와 나는 거 래처 수도상회에 찾아가지만 혹부리 영감에게 면박만 당한다.

⑧ 어느 날 다시 아버지와 나는 수도상회에 물건을 떼러 갔는데 아버지는 진 로소주 두 병을 훔친다.

⑨ 혹부리 영감은 다시 물건을 세보자고 하고 아버지는 겁에 질린다.

⑩ 혹부리 영감은 두 병이 더 들어간 것을 밝혀내고 나는 도둑이라고 말하며 희생한다.

⑪ 호되게 혼줄을 내야 한다는 혹부리 영감의 말에 아버지의 손이 나의 얼굴 을 무섭게 내리친다.

⑫ 나는 아버지의 괴어 있는 눈물을 보며 애비라는 존재가 되지 않겠다고 다 짐 한다.

<유년시절 회상과 고백 시퀀스>

⑬ 나는 자전거를 훔쳐 탔던 서미혜와 친해지고 그녀의 집에서 <자전거 도 둑> 비디오를 같이 시청한다.

⑭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릴 적 혹부리 영감에게 복수했던 일을 고백한다.

⑮ 나는 수도상회를 침입한 뒤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고 돈궤에다 굵직한 대변 을 싼다.

⑯ 이 일로 혹부리 영감은 충격을 받게 되고 결국 수도상회는 문을 닫는다.

⑰ 그녀도 자신이 간질병을 앓던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과거의 일을 고 백한다.

⑱ 이 날 이후 그녀와 만나지 못했고 어느 날 그녀는 다른 자전거를 타며 낯 선 사람의 모습으로 내 곁을 스쳐지나간다.

어느 날 나의 자전거를 훔쳐 타는 도둑이 생겼다. 자전거 도둑은 바로 같은 건 물에 사는 에어로빅 강사인 젊은 여자이다. 이 여자는 자신의 것인 것 마냥 옷자 락을 휘날리며 유유자적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런 여자의 모습에 ‘나’는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혔고 불현듯 영화 <자전거 도둑>의 장면이 떠올라 와인을 허겁지겁 부어 마시며 영화를 시청하였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난 무엇보다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 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안토니오의 무너진 등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 졌고, 그보다는 무너져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씻

을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어린 아들 브루노 때문에 나는 혀를 깨 물어야 했다. 왜? 왜냐고? 그건…… 빌어먹을, 내가 바로 또다른 브루노였으니깐

……47)

<자전거 도둑> 영화에서 브루너는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나’는 자신의 상황과 같다고 고백한다. 진로 소주 두 병을 훔친 것이 발 각되자 겁에 질린 송아지처럼 눈에 흰 자위가 유난히 많아진 눈동자를 했던 아 버지를 떠올리게 했고,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브루너는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며 내면의 상처로 남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결국 혹부리영감은 두 병이 더 들어간 것을 밝혀내고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했 다. 나는 내가 희생양이 되야 함을 느꼈다. 예, 맞아요. 그건 말예요, 제가 영감님 몰 래 넣은 건데요…… 왜냐하면 접때접때 우리집에서 사실 두 병을 빠뜨리고 갔기 때 문에 응, 쌤 쌤이어서요……48)

구멍가게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유일한 수입원이자 생존이유였으며 아버지는 구멍가게에 대한 자존심은 각별하다. 어느 날 아버지와 수도상회에 물건을 떼러 갔는데 아버지는 진로 소주 두 병을 훔친다. 이 일은 혹부리 영감에게 발각되었 고 ‘나’는 희생을 자진하여 아버지 대신 도둑이 된다. 그리고 혹부리 영감에게 굽 실거리며 나의 뺨을 내리치는 아버지를 보면서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 는 존재는 되지 말자.’49)라고 다짐한다. 이와 같이 영화 속 브루너와 ‘나’는 아버 지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며 내면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거부는 기존 질서를 유지해가는 상징으로서의 아버지의 동일성에 대한 저항이고 거부인 것이다.50)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의 거 부와 증오의 감정은 어느 날 화해와 애증의 감정으로 전이된다.

아버지가 내 등멱 소리에 선잠이 달아났는지 부엌 앞 나무의자에 나와 앉아 담배

47) 김소진, 자전거 도둑, 문학동네, 2002, p. 150.

48) 위의 책, pp. 153∼154.

49) 위의 책, p. 155.

50) 최현주, 한국 현대 성장소설 고찰Ⅰ - 부권부재 모티프를 중심으로 , 한국현대소설학회, 1999, p. 379.

를 빼물었다. “더위를 먹었니? 중복 되기 전에 인절미라도 해먹어야 하는데 ……휴 우.”51)

아버지는 혹부리 영감의 수도상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하수구 냄새를 풍 기며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더위를 먹은 것 같다며 건강을 걱정한다. 이 과정에 서 ‘나’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되고 아버지를 향한 증오의 감정이 애정으로 변화하며 화해에 도달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아래 도식이 지시하는 것처럼 무능하게만 보이던 아버 지를 증오하고 거부하다가 아버지가 보여주는 따뜻한 정에 의해 화해에 이르게 되고, 주인물 ‘나’가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식적 차 원의 성장소설로 설명할 수 있다.

내면적 성장 나

아버지의 정(情)

즉, ‘나’는 아버지의 정(情)을 중개자로 하여 내면적 성장에 이르는 서사모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고 변화하며 내면적 성장을 이루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란 존재가 성장하는 아들에게 있어서 거부의 존 재이자 찾기의 대상으로 병치되어 양면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