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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유적과 은신처 동굴

Ⅳ. 제주4·3사건 은신처 동굴과 기억의 공간

1. 제주4·3유적과 은신처 동굴

4·3사건은 오랫동안 침묵의 역사였지만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제주지역 주민들과 사회단체들로 인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런 노력으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1999년 12월에 용인하고 2000년 1월에 공포되었다. 특별법으로 인해 사건 자체와 희생자 들의 진상규명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4·3사건은 역사적 상징 화를 겪게 되고 공식적인 역사 사건으로 인정받았다.

역사적 상징화의 한 바탕은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 생자명예회복위원회의 활동이었다. 위원회는 2000년 8월에 출범한 후 사건의 발 발배경, 전개과정, 피해상황 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2년 6개월 동안 조사하였다.

그 조사의 결과로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2003년에 발간하였다. 또한 2003년 10월 31일에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 발표문을 내고 사건의 역사적 상징 화를 위한 지원을 약속하였다. 정부의 이런 경제적 지원, 또한 주민들을 희생자 로 인정해준 결과로 4·3사건의 기념일이 만들어지고 기념공간이 마련되었다.

실제로 4·3희생자 추념일은 2014년에만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는데, 이미 2003 년부터 매년 4월 3일에 4·3위령제를 열고 있었다. 2016년의 위령제를 바탕으로 추념식의 내용은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국민의례·헌화 및 분향·경과보고·

추념사·추모시이다. 이 주요 행사 외에도 매년에 주로 3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예술적 행사나 전시회, 지역적 위령제 등 프로그램들이 있다.115)

그 다양한 행사 중에서 올해는 2012년에 제작된 <지슬> 영화 상영을 비롯한 전

상황이다. 4·3운동은 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유적들은

런 유적 중 하나이다. 4·3유적은 4·3사건과 관련 있는 잃어버린 마을, 성, 은신처, 희생터, 민간인 수용소, 주둔지, 희생자 집단묘지, 비석, 역사현장과 기타의 10개 의 유형으로 나누어졌다. 조사의 결과로 이에 596개 유적을 분류하였는데 그 중 에서 20여개를 선택하고 중요유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중요유적을 역사성, 보 존성, 유형별 대표성, 대중성, 접근성과 부지매입 용이성의 6개 평과과목에 따라 선정하였다. 은신처 동굴 중에서 이 논문의 대상인 다랑쉬굴, 큰넓궤, 그리고 목 시물굴과 그 인근 은신처들이 선정되었다.

은신처 동굴 등 유적들의 조사와 보존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연구소의 제주4·3유적 종합정비 및 유해발굴 기본 계획을 살펴 보면 유적의 보존이 철저히 계획되었다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은 현 재까지 계획뿐인 부분이 많고 유적의 보존은 그 계획이 나온 2005년과 비슷한 상태이다. 다음 절에서 살펴볼 동굴들이 사건의 상징이 되어 현대적 활용으로 인 해 보존이 잘 돼 있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이 동굴들 외에도 은신처 동굴이나 다른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들의 보존이 애매하다. 보존에 대한 계획이나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재정적 문제와 자연 보존의 어려움 때 문이다. 주둔지나 성, 묘지, 비석 같은 유적들도 있지만 동굴 같은 자연물들도 유 적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물을 역사적 상징으로 활용하는 동시 에 보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연을 보존하는 것은 인간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 는 방법으로 보통 이루어지는데 그의 역사적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인간과의 접촉을 피할 수는 없다. 보존과 활용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타협이 이루어져야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