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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대상과 방법

Ⅰ. 서론

3. 연구의 대상과 방법

본 논문은 제주4·3사건의 초토화작전 시기 때 주민들이 동굴로 피신하여 생활 하였던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논문의 시간적 범위는 제주4·3사건 의 전개과정에서 초토화작전 시기는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가장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고, 대부분의 제주도 중산간 마을이 불에 타는 등 초토 화작전으로 가장 참혹하게 집단희생 된 시기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군인‧경찰의 합동 토벌작전을 피해 살아남기 위하여 마을 근처 동굴로 적극적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공간적 범위는 제주도 내에 초토화 작전이 집중하였던 중산간 마을 들이다. 제주도는 해변마을과 중산간 마을들로 구분되는데 산간, 중산간 지대는

항쟁을 하는 무장대의 근거지가 되었기에 때문에 작전이 주로 이루어진 곳이기 도 하다.

이 논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세 마을의 은신처 동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화 리, 동광리, 선흘리 세 마을의 사례를 통해 초토화작전 시기의 은신 상황을 소개 하고자 한다. 이 세 마을의 동굴들이 가장 대표적인 은신처이며, 서로 다른 특징 을 가지고 있는 사례들이다. 선흘리의 경우에는 선흘리 마을 주민들이 4개 동굴 로 피신하였으나 초토화작전으로 일찍 발견되어 동굴 근처나 다른 희생터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당하였다. 세화리의 경우에는 주변 마을 주민들이 다랑쉬굴에서 거의 한 달 동안 피신생활을 하다가 토벌대에 발각되어 동굴에서 학살되었다. 동 광리의 경우에는 큰넓궤에서 동광마을 주민들이 피신생활을 하였고, 토벌대들이 동굴을 발견하였을 때 주민들은 피신할 수 있었으나 며칠 후에 토벌대에게 잡혀 선흘리처럼 주민들이 희생당하였다. 나아가 본 본문에서는 초토화작전 시기에 주 민들이 피신하였던 동굴들이 4·3사건의 역사적 상징화와 관련하여 역사적인 유 적으로서의 현재 상징성과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증언채록을 바탕으로 하는 문헌자료와 연구 대상인 마을과 동굴, 또한 기념공간을 현장조사하였다. 은신처 동굴에 대한 구술자료는 개인의 기억에 의지하여 사건을 일반사람들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재구성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은신처 동굴의 경우에는 많은 주민들이 그 당시 희생당하거나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기존 조사된 구술자료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주4·3연구소의 증언채록 결과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또한, 제주4·3연구소 전문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조사 는 각 마을과 은신동굴 유적을 직접 탐방하여 참여 관찰을 통해 현황을 파악하 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미비한 부분은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전시 자료를 중심으로 기념 공간을 보완하고자 한다.

<그림 1> 연구 대상 마을과 동굴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