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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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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국가의 주권은 군도수역의 깊이나 해안으로부터의 거리에 관계없이 군도수역에 미친다.85), 그리고 이러한 주권은 군도수역의 상공·해저와 하층토 및 이에 포함된 자원 에까지 미친다.86) 이와 같이 군도국가는 군도수역에서 내수보다는 약하지만 영해보다 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 반면 몇 가지 제한 사항이 있다. 즉 다른 국가와의 현행 협정 을 존중하고, 인접국가의 전통적 어업권과 그 밖의 적법한 활동을 인정해야 하며, 다른 국가들이 부설한 기존 해저전선을 존중해야 한다.87)일정한 조건 하에서 타국 선박 무 해통항권을 인정해야 한다.88)

Ⅱ. 영해와 접속수역

영해의 폭을 얼마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과거 14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100해리 설, 60해리설, 목측가능거리설(目測可能距離說), 1일 항해거리설 등이 있었다.92) 18세기 초엽 네덜란드의 Bynkershoek가 그의 저서 ‘영해주권론’에서 공해의 자유를 주장하는 일환으로 영해의 범위를 제한하여 “무기의 힘이 끝나는 데서 영토의 권력도 끝난다”(a state's dominion extended only so far out to sea as its cannot would reach)라고 주 장함으로써 소위 착탄거리설(cannonshot principle)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착탄거리설에 의하면 영해의 폭이 포대의 위치와 대포의 사거리에 따라 변경되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이탈리아의 갈리아니(Galiani)의 주장에 따라 당시 수준의 포탄 최 대 사거리가 3해리임에 착안하여 18세기 후반부터 영해 3해리설이 국제적 관행으로 발 전하였다. 즉, 1793년 당시 전쟁 중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중립국인 미국에게 중립 수역의 한계를 밝히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미국은 영해 3해리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 영해 3해리설이 19세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에 의해 수용되었으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과 스페인 등 일부 국가들은 여전히 영해의 폭을 4해리, 6해리 등 다양하게 주장 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19세기 당시 해양강대국들과 대다수의 국가들은 영해를 제한하 려는 입장에서 3해리 영해를 지지하였기에 상당기간 3해리 영해제도는 지속되었다.93)

20세기에 들어 영해 3해리 규칙에 대한 각국의 지지는 감소하였으며, 1958년 제1차 해양법회의 및 1960년 제2차 해양법회의 모두 영해의 폭을 결정하는데 실패하였다. 제 2차 회의에서 6해리 영해에 6해리 접속수역을 인정하자는 미국의 제안이 부결되자 세 계 각국은 3해리와 12해리 사이에서 영해의 너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다고 간주하였으며, 그 결과 12해리 영해가 보편화되었고, 제3차 UN해양법회의는 국 제사회의 의견을 반영하여 12해리 영해를 채택하였다.94)

이와 같이「UN해양법협약」은 영해의 폭을 영해 측정기선으로부터 12해리를 넘지 못한다고 규정함으로써95) 이 문제를 명쾌히 해결하였다. 어쨌든, 영해 12해리 규정은 기선으로부터 12해리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 모든 영해는 예외 없이 12해리이어 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한국은 영해 12해리를 원칙으로 하되 대한해협 의 영해는 3해리로 규정하고 있다.96)

92) 이병조․이중범, 전게서, p. 423.

93) 김태영, 전게논문, pp. 24-25.

94) 김태영, 상게논문, p. 25.

95)「UN해양법협약」제3조.

96) 김대순, 전게서, pp. 904-905.

영해의 출발선을 영해측정 기선(baseline)이라고 한다. 이 기선은 영해는 물론 접속수 역과 경제수역, 대륙붕의 외측한계를 측정하는 출발점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97) 기선 에는 통상기선과 직선기선이 있다. 통상기선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연 안국에 의하여 공인된 大縮尺海圖(large-scale charts)에 표시되어 있는 해안의 저조선 (the low-water line along the coast)이다.98) 반면에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거나 그 인 근에 섬이 많은 경우에는 통상기선을 긋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실제로는 여러 가지 불편을 야기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 육지나 섬의 외측 점을 기점(base point)으로 연결하여 영해측정의 기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는 데 국제 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 이하 ICJ로 약칭함)는 1951년 영국과 노르 웨이 간 어업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그 합법성을 인정한 바 있다.99)

1958년의「영해에 관한 제네바협약」제4조와「UN해양법협약」제7조는 이 판례에 기 초하여 직선기선에 관하여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100)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직선기선은 ‘해안선이 깊게 굴곡이 지고 잘려 들어간 지역, 혹은 해안을 따라 아주 가까이에 섬이 산재하고 있는 지역’에서 채택할 수 있다. 직선기선의 방법을 적용 하는 경우, 특정한 기선을 결정함에 있어서 그 지역에 특유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는 사실과 그 중요성이 오랜 관행에 의하여 명백히 증명된 경우 그 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수 있다. 삼각주가 있거나 그 밖의 자연조건으로 인하여 해안선이 매우 불안정한 곳에 서는, 바다쪽 가장 바깥 저조선을 따라 적절한 지점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후 저조선 이 후퇴하더라도 직선기선은 이 협약에 따라 연안국에 의하여 수정될 때까지 유효하 다. 직선기선은 해안선의 일반적 방향으로부터 현저히 벗어나게 설정할 수 없으며, 직 선기선 안에 있는 해역은 내수제도에 의하여 규율될 수 있을 만큼 육지와 충분히 밀접 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직선기선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으로서 밀물시에는 모 습을 숨기고, 썰물시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바 간출지(干出地)까지 스리고 간출지로 부터의 기선설정이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어

97) 오늘날 일반적으로 그냥 ‘기선’(baseline)이라 부르는 이 제도는 과거에는 ‘영해기선’(territorial sea baseline) 이라 불렸으며 영해법의 일부로 다루어져 왔다. 영해가 연안국의 유일한 관할수역이었던 때에는 영해기선이 란 명칭이 타당하였지만, 오늘날 이 선은 영해는 물론 접속수역과 경제수역, 대륙붕의 외측한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므로 그냥 기선이라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D. W. Bowett, The Legal Regime of Islands i n International Law, Oceana Publications Inc., 1979, p.1. (김태영, 전게논문, p. 27.)

98)「UN해양법협약」제5조.

99) ICJ Reports(1951), p. 139.

100) 김대순, 전게서, p. 905.

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영해를 공해나 EEZ로부터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직선기선제 도를 적용 할 수 없다.101)

전술한 바와 같이「UN해양법협약」제4부(군도국가)에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 영해 기선의 육지측 수역은 내수를 구성하는데, 제7조에 규정된 방법에 따라 직선기선을 설 정함으로 인하여 종전에 내수가 아니었던 수역이 내수에 포함된 경우에는 무해통항권 이 그 수역에서 계속 인정된다.102)

3) 타국 선박의 무해통항권

연안국의 영해에 대한 권리가 주권 그 자체이긴 하지만 내수를 포함한 영토에 대해 서는 인정되지 않는 중요한 제한이 부과된다. 선박의 무해통항권(right of innocent passage)이 바로 그것이다. 즉, 선박은 연안국의 사전허가나 연안국에 대한 사전통고 없이도 외국영해를 無害하게 통과할 권리를 향유한다.103)

여기서 우선 제기되는 쟁점은 군함과 같이 비상업적․권력적 목적으로 운용되는 국 가(정부)선박도 무해통항권을 향유하는가 하는 점이다. 종래 이 문제에 대한 국제관습 법의 태도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안국의 태도는 이를 허용하는 국 가와 부인하는 국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으며, 후자는 다시 사전허가를 요구하는 국 가와 단지 사전통고만을 요구하는 국가로 구분된다.104)

ICJ는 Corfu해협 사건에서 “공해의 두 부분 사이에서 국제항행을 위하여 사용되는

해협”에서는 평시에 일반관습법상 무해통항권을 향유하며, 따라서 조약에서 달리 규정 하지 않는 한 연안국은 평시에 군함의 그러한 해협통과를 금지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 한 바105) 있으나, 영해 일반에서의 군함의 무해통항권에 대해서는 어떤 언질도 주지 않 았다.106)

그러면 군함의 무해통항권 문제에 대한 1958년「영해협약」과「UN해양법협약」의 태도는 무엇인가? 1958년「영해협약」은 군용 잠수함에 대하여,「UN해양법협약」은 군용 잠수함과 기타 잠수함에 대해서만 영해에서 물 위로 떠올라 국기를 게양할 것을 101)「UN해양법협약」제7조. ; 김대순, 상게서, pp. 905-906.

102)「UN해양법협약」제8조. ; 김대순, 상게서, p. 906.

103)「UN해양법협약」제17조. ; 김대순, 상게서, p. 910.

104) 김대순, 상게서, p. 910.

105) UK v. Albania, ICJ Reports(1949), p. 4.

106) 김대순, 전게서, p. 910.

조건으로 무해통항을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107) 따라서 이 문제는 조약의 해석에 관한 문제로 계속 논란이 되고 있으며 1958년「영해협약」상 그리고「UN해양법협약」상 무 해통항은 오로지 선박에 적용되는 개념임을 유의하여야 한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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