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실존 공간으로서의 낙원

작가는 이 작품의 서두에서 제목과 모티프를 이여도 전설에서 취하고 있음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여도 전설과 상호텍스트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여도는 제주인들의 이상적인 낙원공간으로서 제시된다. 출항한 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곳에 가서 재난을 피하고 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 겠거니 자위하며 기대하는 제주인들의 보편적인 믿음 속에서 확인된다.

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저승 세계인 이여도에서 삶을 지속한다 는 강한 믿음 때문에 슬픔을 견디는 힘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현실에 대 한 불만과 고통이 클수록 이여도에 대한 강한 집착과 욕망이 믿음으로 나타나서 이여도는 낙원 공간인 이승과 저승을 동시에 포함하게 되는 양 가성을 함유한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처럼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풀려가는 과정을 통 하여 주제를 형상화 한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여도의 상징적 의미를 주인

공 천남석 기자의 행적이나 사고와 연결시키기 위해 작가는 제주도 사람 양주호 국장의 입을 빌어 이여도를 표출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 사실이라는 걸 단념하십시오. 사람들은 때 로 사실에서보다는 허구 쪽에서 진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지요. 그 런 때 사람들은 그 허구의 진실을 사기 위해서 쉽사리 사실을 포기 하는 수가 있습니다. 꿈이라고 해도 상관없겠지요. 천남석이 이어도 를 만난 것도 아마 그 사실이라는 것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가능했 을 것입니다. 그가 주변의 가시적 현실을 모두 포기해 버렸을 때 그 에게 섬이 보이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당신도 아마 그것을 포기하고 나면 보다 쉽게 천남석의 자살을 믿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55).

여기서 양주호 국장은 이여도는 현실 상황을 외면해야 비로소 보인다고 말하고 있으나, 작가는 오히려 현실 속에 존재함을 역설한다.

술집 <이어도>도 환상의 섬 이여도와 다름없이 현재의 고된 삶을 참아 내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천남석 기자의 어머니나 그의 여자인 술집 여자에게 이여 도 노래는 현실 속의 어려움을 잊게 해주는 중개자로서 기능한다. 입에서 웅웅거리는 이여도의 노랫가락이 쉴 새 없이 번져 나오는 것도 현재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부른 노래이다. 또한, 천남석 기자의 여자와 ‘천가 여, 천가여’를 부르며 돌 자갈을 나르는 그의 어머니, 그리고 이여도 섬을 찾아 떠나 버린 아버지는 이여도의 환상에 젖어 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여도는 천남석 기자의 의식 속에 신비로운 환상의 섬으로 각인되어 남 아 있게 된다.

“나 이어도를 보았네”

소년의 아버지는 정말로 이어도를 보고 돌아왔노라는 것이었다. 몹

55) 이청준, 앞의 책, p.382.

쓸 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졌는데, 소년의 아버지는 물로 뛰어들어 무작정 어디론가 헤엄을 쳐 나가고 있었다 했다. 한참 그렇게 헤엄 을 쳐 나가다가 기진맥진 힘이 다 풀릴 때쯤 해서 다시 정신을 차리 고 보니 바다 저쪽 파도 끝에 문득 하얗게 부서지고 있는 섬이 떠올 라 있더라고 했다. <하략>-56)

“- 이어도하라 이어도하라 이어 이어 이어도하라 이어 하멘 나 눈물난다.

이어 말은 말낭근 가라“57)

그러나 천남석 기자는 이여도가 허구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여도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타고난 운명의 소유자임을 역설한다.

“배를 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라뇨? 처음부터 세상을 그렇게 타 고난 운명이 어디 있단 말요. 운명은 타고나진 게 아니라 바로 그 섬 이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이어도의 환상이 그 허망한 마술로 사람 들을 섬에서 떠나지 못하게 묶어 놓고 끝끝내 배만 타게 만들어 버 린 거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길고 짧은 생애들을 고스란히 이 섬 위에서 견디게 했다가 종내는 그 죽음의 섬으로 가 엾은 생령들을 흘려가고 있었던 거란 말예요.”58)

그 뿐만 아니라, 양주호 국장이나 선우현 중위 또한 이여도에 관한 인 식이 이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설명되지 않은 제주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이여도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서술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56) 이청준, 위의 책, p.361.

57) 이청준, 위의 책, p.350.

58) 이청준, 위의 책, p.344.

“국장님은 ․․․․․ ․ 앞으로 <이어도>엘 가시게 될까요?”

“글쎄요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59)

천남석 기자는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이 곳을 떠날 것을 종용하며 여인 에게 협박과 설득을 반복하며 이곳이 이여도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서 천남석 기자에게는 술집 <이어도>와 섬 이여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과 증오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여인에게 섬을 떠나라고 매일같이 <이어도>를 찾아와서 그녀를 못 견디게 했다고 했다. 여인이 섬을 떠나주지 않으면 자기까지 괜히 섬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그는 배를 타기 전날까지도 두고두고 그 런 식으로 협박과 설득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60)

이는 앞서 언급했지만, 여인과 술집 <이어도>는 천남석 기자에게 이여 도를 상징하는 일종의 등가물이자 객관적 상관물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여도를 증오하며 갈구하는 것처럼 이 여인을 향한 사랑과 증오가 동시 에 작용한다. 여기서 천남석 기자의 심리구조 속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대 립적 이미지는 그가 여인과 이여도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여도의 존재 역시 역설적 방법에 의해서 입증해 보 이는데 그것이 곧 그의 투신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여도의 부재 를 확인하는 순간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기인된 것 으로 볼 수 있다. .

천남석 기자가 이여도라는 환상적 낙원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곳으로 돌 아가고자 하는 꿈 역시 현실적으로 그들이 삶의 고달픔을 이기고 넘어서 기 위한 하나의 대응방식이다. 작중인물로 상징되는 제주인들에게 그들의 고된 삶이란 역사적으로 수 없이 수탈을 당한 지배층에 대한 한(恨), 노동

59) 이청준, 위의 책, p.377.

60) 이청준, 위의 책, pp.348~349.

에 대한 한(恨), 척박한 땅에 대한 한(恨)61)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한 을 삭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여도라는 낙원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천남석 기자가 낙원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도 이러한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여도의 이상적 공간을 지나치게 관념화 하는 것을 경 계한다. 죽은 천남석 기자의 시체가 제주 해안에 떠올라 머물게 함으로써 이여도는 인간의 현재적 삶이 있는 바로 제주 섬에서 찾아야 함을 암시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과학적인 해군함정의 수색 작전으로도 이여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작가는 전설 속의 이여 도와 현대소설 속의 이여도에 대한 인식의 거리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전략> 기이한 일이었다. 한데 더욱더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조화 는 그 여러 날 동안의 표류에도 불구하고 천남석의 육신은 그 먼 바 닷길을 눈에 띄는 상처 하나 없이 고스란히 다시 섬을 찾아온 것이 었다. 그리고 아직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아침해가 돋아 오를 때까지도 그 심술궂은 썰물 물 끝에 얹혀 용케도 다시 섬을 떠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62)

결국 작가의 지나친 주제의 노출로 천남석 기자의 시체가 제주 섬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공간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공간임을 지시한다.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이여도를 상상 속에 서가 아닌 현재적 삶이 있는 제주도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의도적 으로 남김으로써 주제를 완성한다.

-<전략> 그것도 아니면 그가 그토록 떠나고만 싶어했던 이 섬을 거꾸로 그 이어도로나 착각을 한 것일까.63)

61) 최혜실, 앞의 논문, p.315.

62) 이청준, 앞의 책, p.383.

이러한 해석은 이미 앞에서 고찰 해본 ꡔ화산도ꡕ와, 「IYEU島」에 나타난 이여도의 의미와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63) 이청준, 위의 책,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