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인들은 집단 협업에 기초하던 농업이 쇠퇴하고 도시에서의 개인 노동력이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과도기를 노동주역으로 서 살아낸 세대이다. 노부모 소유의 토지권에 기초하여 부모를 부양하며 살아왔던 세대 간 삶의 전승 고리가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회에 내면화되어 온 장유유서와 효 규범에 기초하여 경제적 혼란기의 가족부 양을 당연시하면서 실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농경시대의 남아선호사상 과 유교적 가족주의 그리고 장자중심의 부양 윤리를 그대로 이어받았음 도 물론이다6). 이들이 내면화한 유교적 가족주의 규범은, 경제적 도약을
꿈꾸던 사회에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돌보지 않고 ‘회사와 국가의 발전’
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확대ㆍ적용되었다. 압축적 산업화를 목표로 내 달리던 당시의 사회는 유교적 가족주의 이념이 제공한 ‘선성장 후분배’
논리(장경섭, 2009)하에 사회구성원들의 양육과 노인 및 환자에 대한 부 양을 모두 가족의 몫으로 돌리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당시의 중년이 었던 오늘의 노인세대는 자신들의 노후 역시 후속세대에게 기대하였으므 로, 노후의 자기부양을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김유경 등, 2015, p.65). 그리고 노인이 된 지금, 자신들이 수행했었던 부양 노력이 후속세대에 의해 되갚아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오늘의 중년은 경제적 도약기에 성장기를 보냈고, 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경험했으며, 경쟁사회 속에서 교육적 성취를 통해 계층 상승을 일궈낸 세대이다. 이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오늘의 중년 세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족단위의 경쟁에 몰입한 주역이다. 한편에 서는 부의 축적을 위한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켰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녀 의 대학입시를 위해 사교육 시장을 과열시키는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혼인을 통해 자녀세대의 계층 상승을 성취하려는 욕망이 과다 혼수와 호 화로운 혼인 문화를 정착시켰다. 결과적으로 가족은 개별 구성원의 성취 를 위해 자원을 집중해서 투자하고, 여성은 가족단위의 이익을 극대화하 기 위해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활용하는 일선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당연한 듯 실천해 오고 있는 도구적 가족주의는 개별 가족단위에 서는 가족성원을 위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과열 경쟁을 부르는 반공동체적 가족이기주의이다(김유경 등, 2015, p.67). 게 다가 현 중년세대가 장기간에 걸쳐서 자녀에 대한 과잉 투자를 하는 동안,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위한 축대 쌓기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6) 가족주의에 관한 내용은 김유경 등(2015)의 3장 2절을 참조할 수 있다.
한편, 오늘의 젊은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화와 정보화에 노출되어 개인주의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개인주의 사고란 가족의 집단적 이익에 우선하여 개인적 욕구와 권리를 우선하는 사고로, 가족들 간 상호 의존 필요의 감소와 개별적인 독립성의 증가를 배경으로 한다(김유경 등, 2015, p.68). 결혼과 출산을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고의 확산 등은 개인주의와 연관된다.
그런데 젊은 세대가 내면화한 것은 자신의 권리와 그에 따른 의무를 전제 로 한 개인주의만은 아니다. 모성 역할규범을 강하게 내면화한 이들의 부 모세대는 자녀들에게 공부를 제외한 많은 역할들을 면제시켰으므로, 오 늘의 젊은 세대는 교육시장에서는 과열 경쟁에 시달렸으나 가족 안에서 는 무조건적 모성애의 대상으로서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하여, 이들 은 한편에서는 가족 안에서도 개인주의적 권리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 에서는 오래도록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서정적 가족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사고를 내면화한 여러 세대가 공존함으로 인한 가족 갈등 은 우리 시대의 익숙한 위기 요인이다. 특히 부모자녀관계 및 가족부양에 대한 기대에 있어서 세대별 차이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 의 위계질서의 상층에서 부양받고자 하는 노인세대의 경직성은 가족 안 에서 자신에 대한 부양이 감당되지 못할 때 자녀의 불효와 부도덕성을 탓 하고 분노하거나 자신의 불행에 좌절한다. 한편, 노부모의 부양 기대에 가족부양으로 부응하는 중년은 과중한 부양 부담에 시달리는 반면, 그렇 지 못한 중년은 부양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갈등한다.
더구나 오늘의 중년세대는 가족단위의 경쟁과 자녀에 대한 끝없는 의무 감에 먼저 눈길이 가 닿는 한편, 이들 또한 자신들과는 다른 자녀세대의 가치관에 놀라고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다른 한편, 개인주
의적 권리 그리고 성장기의 풍요를 체화하면서 자란 젊은 세대는 부모로 부터의 자유를 추구했고 소비에 익숙하며 성장했지만, 성인기에 이르러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현실에서 서정적 가족주의에 기대어 부모에 대한 의존을 장기화하면서 성인기로의 이행을 지체하고 있다.
이처럼 세대별 가치관의 이질성이 초래한 틈바구니에 위치한 우리 사 회의 가족은 세대갈등과 가족 갈등 그리고 가족 안의 소통 단절에 직면하 고 있다. 그런데 가족관계상의 문제를 장기간 지니고 살아가는 가족들은 구체적인 위기 요인이 발생할 때 극복할 만한 가족 응집력과 적응성을 결 여하기 쉽다.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가정폭력과 존ㆍ비속 학대 등은 상기 와 같은 가족관계상의 문제가 과중한 부담과 만나서 갈등이 누적되어 결 국 표면화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