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이란 자녀양육과 더불어 노인부양 및 만성질환자에 대한 가족 부양을 포괄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가족에서 자녀양육 기능은 강화되고 있는 반면, 노인과 환자에 대한 부양 기능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1) 자녀양육 기능의 변화
맞벌이의 보편화로 인해 미성년자녀에 대한 돌봄이 문제화되고 있지만 사회적 양육 시설 및 인력은 질적ㆍ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김유경 등 의 연구(2015, p.120)에서, 6세 이하 영유아의 경우 돌보미의 육아 비율 은 1.6%이고 조부모의 육아 비율은 1.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 적 육아시설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출산을 미루거나 자 녀 수를 줄이는 선택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선 자녀의 양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경력과 경제적 독립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렇지만 결혼의 구속력이 약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여성들이 모성 역할을 위해 경제적 독립성을 포 기하는 선택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소자녀화 시대라고 해서 과거에 비해 양육 부담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자녀 일인당 양육 부담의 증가로 인해 출산 감소 현상이 지속되지만, 많 이 낳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특별하게 여겨지는 자녀를 더 특별하게 키우 려는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그래서 자녀 일인당 투자하는 시간적·경제적 부담과 에너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다. 결국 출산 감 소와 양육 부담 증가는 맞물려 있는 현상이다. 특히 과거처럼 ‘먹이고 입 히고 안전을 보살피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초·중·고생 자녀의 학업 보조 및 지원 역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전제로 하는 오늘날의 CEO형 모성 역할 기대는, 취업모가 감당하기엔 너무 높은 장애물이다(김 유경 등, 2015, p.360).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고용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의 가정경제 안정을 위해서 그리고 자녀양육 및 사교육 등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 마련을 위해서도, 중산층의 맞벌이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가족은 시간적·물리적·경제적으로 자녀양육과 교육문
제로 인한 만성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2) 노인부양 기능의 약화
토지가 가족 경제의 핵심이던 시절, 토지를 소유한 노인은 가족 내에서 자연스럽게 권위를 지닐 수 있었고 가족 안에서 부양을 받으면서 삶의 마 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토지보다는 개인적 노동력과 개인별 임 금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오늘날,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가족 안에 설 자리는 마땅치 않다. 장유유서 및 효 의식에 바탕을 두어 노부모 공경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했던 유교적 가족주의 규범 역시, 평등을 강조 하는 개인주의 사고에 묻히고 있다. 또한 대문을 열어 놓고 이웃끼리 드 나들며 지내던 농경 시절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지역사회 내의 노인 보호는, 아파트 문을 닫으면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 익명성의 시대에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유병장 수로 인한 의존적 노년기는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여 성정책연구원이 13세 이상 3만 7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한국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노부모부양에 관해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 답은 2014년 조사에서 31.7%로 나타나서 2002년의 70.7%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2002년의 9.6%에서 2014년에는 16.6%에 달해서 12년 만에 1.7배가 되었다. 또한 60세 이상 연령층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노후에 관한 의식을 집계한 통계 청의 사회조사(2015)에서는 자녀에게 의탁하려는 비율이 20.7%로 나타 났는데, 이 역시 2년 전의 31.7%보다 감소한 것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중 향후에도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05년의
52.5%에서 2007년에는 60%, 2009년에 62.9%, 2011년에 71%, 2013 년에는 73%, 그리고 2015년에는 75.1%로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 고 있다(통계청, 2015a, p.16).
변화는 의식 차원뿐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도 나타난다. 60세 이상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생활비 마련 방법을 조사한 결과, “본인 또는 배우자 가 부담 한다”는 응답이 66.6%로서 2002년의 55.9%보다 증가하였다(한 국여성정책 연구원, 2015, p.159). 노인이 자녀와 동거하는 비율이 1998년에는 49.2%로서 비동거와 비슷했었는데, 16 년만인 2014년에는 비동거가 동거의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보건복지부·한국보건 사회연구원, 각 연도; 표 3-12).
구분 자녀와 동거 자녀 비동거 계
1998 49.2 50.8 100.0( 2,372)
2004 38.6 61.4 100.0( 3,278)
2008 27.6 72.4 100.0(10,798)
2011 27.3 72.7 100.0(10,674)
2014 28.4 71.5 100.0(10,451)
〈표 3-12〉 노부모와 자녀의 동거형태 변화
(단위 : %, 명)
자료: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각 연도.
한편, 19세 이상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2015년 사회조사에서는 가 구주의 72.6%가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노후 준비 방법으 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비율이 55.1%에 달했다. 이로 미루어, 우리 사회 에서 노후 준비란 곧 노후의 경제적 준비로 등치됨을 알 수 있다. 노후를 위한 사회적 관심사 역시 소득(40.4%)과 취업(26.3%) 등 노후의 경제적 안정에 집중되어 있다(통계청, 2015a, p.63). 그런데 이러한 바람과 별 개로 현재 노년층의 소득원은 개인자산이나 사업소득 그리고 사적 이전
소득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고, 공적 연금은 30%를 약간 웃도는 정도이다 (그림 3-11). 따라서 개인 능력에 기초한 소득이 없는 노년층의 빈곤이 장기간에 걸쳐서 문제시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림 3-11〕 노인의 개인소득원 비율 변화 추이
(단위 : %)
자료: 정경희 등. 2014년 노인실태조사.
경제적 부양이든 도구적 부양이든 상관없이, 한국 노년층의 부양체계 는 이제 가족보다는 노동시장, 공공부문, 그리고 노인 개인의 자산으로 구성되어야 할 상황이다(Lee,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안은 적절한 수준으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2017년에 노인인구의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그 래서 가족은 부양 능력의 유무와 별개로 여전히 노인부양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급증하는 노인자살은 과거 자신들이 부모를 부양하 며 예측했던 노후와는 확연히 다른 현실을 마주한 채 가족 안팎 어디에서 도 안전망을 찾지 못한 노인들이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는 저소득층 노인 가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노인부양을 위한 사회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채 가족에게만 과중한 부
담이 지워질 때 가족 안의 세대 관계가 파열음을 내면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