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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전유전학이 제안하는 보다 적극적인 보전 전략과 그 유의점

인위적 원인으로 단편화되었거나 교란에 의해 유효 집단 크기가 극도로 작아진 집단들을 보전하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이 다르거나 풍부한 개체들을 도입하는 것을 ‘유전적 구제(genetic res-cue)’라고 한다 [155, 156, 157]. 유전적 구제는 극단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책으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인공적으로 개체들을 증식해서 야생에

재도입(reintroduction)시키는 인공증식 프로그램(captive breeding program)이 지난 수십 년간 일부 종들을 대상으로 사용되어 왔고 [158, 159], 최근에는 많은 종들로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많은

보전유전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을 최후의 대책으로 입을 모으며, 실제로 근친교배 해온 늑대 집단과 같이 극단적으로 작은 유효 집단 크기를 갖는 일부 동물들에 한해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159]. 일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해 집단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인간의 개입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 프로그램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엄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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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유전적 구제가 지역 적응을 교란시키지 않는가?, 대부분의 자연 집단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자연 선택 과정을 거쳐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한 형태 그리고 그 형태에 관련된 유전적 변이가 선택되는 지역 적응이 되어왔다. 특정 환경에서 잘 살아남은 변이들을 가진 집단에 유전적 다양성을 늘려준다는 명목으로 유전적 구제를 하는 것은 자칫 지역 적응의 희석 내지는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 [155].

또한, 다른 지역에서 유래한 집단은 새로운 환경에 대해 가소적 반응(plasticity)을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적응(maladaptation)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160].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고산 환경에 대한 지역 적응이 되어 고산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다 [160]. 만약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인구가 감소된다고,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고산지대로 이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고산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산병에 시달릴 것이다. 또한, 토착 병원체 군집(pathogen fauna) 역시 지역 적응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 겸형 적혈구

빈혈증과 관련된 대립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 이주시킨다면, 그 사람은 이주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도태될 것이다.

더욱이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 프로그램을 위해 사육되어지는 개체들은 사육 과정에서 원래 유래한 자연 집단의 유전적 특성이 빠르게 진화하는 특징을 갖고 있고, 심지어 이런

집단에서는 낮은 적응도를 갖는 개체들이 생산되기도 한다 [161, 162, 163]. 이러한 인공조건에서의 급격한 진화는 결국 가축화(domestication)에 해당되며, 이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인공적인 조건에서 몇 세대의 사육만으로도 급격한 유전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162].

인공증식과 유전적 구제에 활용되는 개체수는 야생에 존재하는 집단에서 소수가 임의로 추출된다 [163]. 따라서, 이는 극도로 낮은 유효 집단 크기를 갖게 하며, 극도로 낮은 유효 집단 크기는 유전적 부동의 압력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단 몇 세대만으로도 급격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생산된 개체들이 야생에 도입되고, 그들과 지역 적응된 개체들 사이에 교배를 하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지역 적응은 무력화될 수 있다 [161].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163].

두 번째로 고려되어야 할 잠재적 문제점은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 프로그램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외래 병원체의 도입 가능성이다 [163, 164]. 아무도 다른 집단이 보유한 세균성, 바이러스성, 진균성 질병이 얼마나 특정한 집단에 위협적일지 알지 못한다. 대표적 사례는 양서류에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진 항아리곰팡이병이 있다. 한국에서 유래하여 한국전쟁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된 이 질병은 그 누구도 그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거나 차단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양서류에게 있어 COVID-19와 같은 파괴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65]. 현재도 다른 지역의 개체를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병원체의 이주는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 프로그램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른 지역 개체의 도입은 이 위협을 더 가속화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 번째 문제는 외교배 약세(outbreeding depression)이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교배하여 만드는 자손의 적응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를 외교배 약세라 한다. 외교배 약세는 단 1세대만에 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여러 세대에 걸쳐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외교배 약세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유전적 구제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들여온 집단이 외교배 약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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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하는 집단이었다면, 그 자손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도태되어 갈 것이다 [128, 156, 157].

이는 집단의 유효 집단 크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번식기 동안에 번식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사용했는데, 그렇게 재생산된 자손들이 불임이거나 생존에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면, 이는 절멸의 위험을 가속화시키는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문제점은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이다. 보전을 위해 지출되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만약 위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나 대비 없이 유전적 구제나 인공증식 프로그램을 위험에 놓이지 않은 생물분류군에 사용하느라 예산을 허비한다면, 정작 보전 대책이 시급한 종들을 보전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유전적 구제와 인공증식 프로그램과 같은 서식지외 보전 전략(ex-situ strategy)은 서식지 내 보전 전략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163]. 유효 집단 크기의 감소를 초래하는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원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기 위한 비용과 현장 조사 비용이 전부이다. 안정적인 서식환경이

유지된다고 평가된다면, 서식지를 그대로 놓아두는 게 더 효과적인 보전 전략이며, 여기에는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인공적인 공간에서 사육하고 관리하고 다시 자연에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지출된다. 여기에는 사육 시설비와 관리비, 인건비와 같은 비용이 지출된다. 동물원, 수족관, 식물원은 어디까지나 상업적 목적을 위해 운영되며 영구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고 이 보전 전략은 중단될 수 있다. 만약 보전 전략을 실행하는데 소요되는 모든 비용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출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종들과 집단들을 보전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따라서, 서식지외 보전 전략이 시급한 종과 집단을 평가하기 위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3. 결론

절멸 소용돌이에 의한 절멸은 작게는 한 집단을 사라지게 하고 크게는 군집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보전유전학은 집단 유전학 이론을 바탕으로 절멸을 야기하는 원인과 생명 다양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보전을 위한 근거 기반의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의 NGS 기술의 보급으로 인해 풍부한 분자 데이터를 거의 모든 생물분류군에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분자계통학의 발전은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은밀종을 발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환경에 존재하는 DNA의 메타바코딩을 통해 생명 다양성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또한 유전체에 고르게 분포하는 중립과 적응

변이들은 유효 집단 크기, 집단이 겪어온 과거의 역사 그리고 지역 적응의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생명 다양성이 유지되는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간이 야기한 환경 변화에 의한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을 제공하며, 극단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 집단의 보전을 위한 적극적인 서식지외 보전 전략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보전 전략의 결과를 평가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생명 다양성의 보전을 위한 학문으로서 보전유전학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연구 성과들이 축적된다면, 생명 다양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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