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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전쟁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마중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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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기존의 역사문화시스템(기억기관)과 적극적인 연계 추진이다. 기억기관은 역사박물 관, 사료관, 기념관 등을 의미한다. 기억기관과 연계 방안은 전시콘텐츠와 연계 방안, 프로그램 공동 운영 등이 있다.

먼저 박물관의 전시콘텐츠를 웹·모바일 콘텐츠와 연계하는 방안으로는 QR코드를 이용한 연계 와 아날로그 전시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방안이 있다. 아날로그 전시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방 안은 H-Gis와 인터랙티브미디어가 대표적이다. H-Gis는 아날로그 지도를 디지털화하는 전시 콘텐츠이고, 인터랙티브미디어도 아날로그 사진에 프로젝터를 통해 디지털화하는 전시콘텐츠이 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시콘텐츠이다.28)

프로그램 공동 운영은 아태전쟁유적별로 역사박물관 기획전시를 운영하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 다. 기획전시 기간 중에 해당 유적의 필드워크, 대중강좌, 문화공연, 시민참여 프로그램 운영(어 린이용 팝업북29), UCC 공모30), 사람 책 도서관31), 역사보드게임 대회) 등을 접목하면 효과를 높 일 수 있다.

제말기 자살특공대원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광주비행장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진압군 의 출동지로 사용했다. 일제말기 소녀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군납품 면직물을 생산하던 동양방적 공장은 1970년대 대표적인 여성노동사의 현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1944년 ‘응징사’라는 이름으 로 오키나와에 동원된 경북 경산 청년들의 집결지였던 대구사범학교는 이후 대통령을 배출한 곳 으로 더 유명하다.

한국 사회가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전쟁유적이라는 장소성은 강제동원 피해자성을 유지하는 데 유용하다. 피해자성은 진상규 명 추구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 추구라는 세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 태전쟁유적은 공간을 통해 피해자성을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데 효과가 매우 크다.

둘째, 아태전쟁유적은 평화를 위한 마중물이자 반전평화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자산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목록의 하나인 ‘부의 유산(Negative Heritage)’

에는 전쟁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는 ‘21세기를 평화의 세기 로 정착’하고 더 이상 ‘전쟁유적을 만들어내지 않는 시대’를 만들어가려는 세계 시민의 염원이 있 기 때문이다.

세 번째, 아태전쟁유적에 대한 활용은 남북한 공동 사업으로도 가능한 공통의 과제다. 아태전쟁 유적은 한반도 전역에 있으므로 남북한이 함께 전수조사에 나서고 반전평화의 소재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은 전쟁 가해국인 일본 스스로 아태지역의 평화를 선도하지 못하는 한 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광복 76년을 맞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성숙한 역사인식으로 모범적 사례 를 제시하고 가해국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국내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은 좋은 소 재가 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활용에 앞서 선결해야 할 과제는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아태전쟁유적 활용에 대한 한국 사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일 이다.

그러한 점에서 최근 일어난 캠프마켓 부지 내 병원 건물 철거 논의는 국내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사례이다.32) 부평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 적은 더 이상 부평만의 역사유적이 아니라 한국사의 중요한 구성물이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환 경 문제를 내세워 조병창 유적을 철거하는 방식으로 35년의 아픈 역사를 덮을 수는 없다. 오히려 실제로 조병창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갔던 한인 노무자와 병원에 동원되어 간호사로 일 해야 했던 소녀의 경험을 외면하고 훼손하는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한반도의 토지와 물자와 민 중을 착취하며 전쟁 수익을 거두었던 1,144개 일본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연인원 782만 명이 경험한 한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32)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인천인.컴, 2021.7.13.);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일제 강제동원 증거… 왜 군함도에만 분노하십니까」, 『경향신문』, 2021. 8.1.

참고 - 강제동원 피해총수 (중복 동원인원 포함) 33)

※ 범례

1. (총계) 1인당 중복 동원 포함 2. (지역 구분)

- (국내) 6,552,883명[노무자 6,488,467, 군무원 12,468, 군인 51,948]

- (국외) 1,251,493명[노무자 1,045,962, 군무원 48,200, 군인 157,331]

3. 군무원 총수는 국민징용자 동원수를 제외한 수 4. 위안부 피해자 동원수 제외

5. 군인(병력)동원수 가운데 1945년 8월 기준 한반도 주둔군 숫자는 51,948명

※ 근거자료

- 大藏省 管理局 編, 「戰爭と朝鮮統治」, 『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통권 제10책 朝鮮篇 제9분책, 1947, 69쪽, 71쪽.

- 厚生省 調査局, 『朝鮮經濟統計要覽』, 1949년판.

- 朝鮮總督府, 「第85回 帝國議會說明資料」(『조선근대사료연구집성』제4호 수록).

- 近藤釰一 編, 「最近に於ける朝鮮の勞務事情」, 『太平洋戰下の朝鮮(5)』, 友邦協會, 1964, 170쪽.

- 內務省 警報局, 『在日朝鮮人の槪況』,「第3節 志願兵制度と徵兵制による渡來」 (「特審資料」

제 1집, 1949.).

- 朝鮮軍司令部, 『朝鮮軍槪要史』(복각판, 宮田節子 編, 不二出版社, 1989.).

- 朝鮮總督府, 『朝鮮事情』,1941~1943년 각년도판.

33)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회 활동결과 보고서』, 2016, 135쪽.

노무자 동원 군무원 동원

한반도

도내동원 5,782,581

6,488,467

일본 7,213

60,668

조선 12,468

관 알 선 402,062 만주 3,852

중국 735

국민징용 303,824 남방 36,400

군인 동원

한반도

국민징용 222,217

1,045,962

육군특별지원병 16,830

209,279

학도지원병 3,893

할당모집

관 알 선 823,745

육군징병 166,257 해군

(지원병 포함) 22,299

총계 7,804,376

참고 - 유네스코 세계유산(부의 유산) 등재사례 34)

34) 허광무 제공 자료. 등재 기준 설명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의함.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벤섬 (1999년)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위치: 웨스턴 케이프주

<등재기준>

기준(ⅲ) : 로벤섬의 건물들은 이 섬의 어두운 역사를 생생 하게 증언한다.

기준(ⅳ) : 로벤섬과 감옥은 억압을 이겨낸 인간 정신,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상징한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1979년)

국가: 폴란드 위치: 리틀 폴란드(마원폴스카) 주

<등재기준>

기준(ⅵ) : 이 유적은 유대인 대학살, 인종 차별정책, 인간의 야만성을 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주요장소이다. 또한 인류 역사의 어두운 한때에 관한 기억이 모여 다음 세대로 전달 되는 곳이자, 과격한 사상이나 인간 존엄성 부정이 가져올 수 있는 위협과 비극에 대한 경고의 장이기도 하다.

아프라바시 가트 (2006년)

국가: 모리셔스 위치: 포트루이스 지역

<등재기준>

기준(ⅵ) : 1834년 영국정부로부터 ‘대규모 실험장’으로 정해져 최초로 노예 노동계약을 실시한 지역인 아프라바시 가트는 인도로부터 50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가 건너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거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곳으로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원폭돔 (1996년)

국가: 일본 위치: 히로시마

<등재기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원폭돔)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 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이다.

히로시마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폭발 직후 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초래한 참상을 보여주는 냉혹하면서도 강력한 상징일 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와 세계 평화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참고문헌】

■ 단행본

- 森末義彰·寶月圭吾·小西四郞, 『生活史』, 山川出版社, 1969.

- 부평사편찬위원회, 『부평사』, 2007.

- 戰爭遺跡保存ネツトワ-ク 編, 『戰爭遺跡は語る』, かもがわBookLetter, 1999.

- 戰爭遺跡保存ネツトワ-ク 編, 『日本の戰爭遺跡』, 平凡社, 2004.

- 기무라 미쓰히코·아베 게이지,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 공업화』, 미지북스, 2009.

- 이완희,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요새였다』, 나남, 2014.

- 파레르곤 포럼,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 천막부터 팝업 스토어까지』, 홍시커뮤니케이션, 2015.

-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2016.

- 부평역사박물관, 『부평역사박물관 학술총서3 - 미쓰비시를 품은 여백 사택마을 부평 삼릉』, 2016.

- 부평문화원, 『토굴에서 부평을 찾다』, 2016.

- 박홍규·조진구 편저, 『한국과 일본,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연암서가, 2017.

- 오미일, 『제국의 관문 개항장 도시의 식민지 근대』, 도서출판 선인, 2017.

- 정혜경, 『우리 지역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활용 - 방안과 사례』, 도서출판 선인, 2018.

- 김현석, 『우리 마을 속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 인천광역시 부평구』, 도서출판 선인, 2019.

- 부평구청·부평역사박물관, 『미쓰비시 사택의 가치와 활용 방안 학술토론회 자료집 – 미쓰비시 사택의 가치와 미래, 그리고 부평』(2019.3.22. 부평구청).

- 정혜경,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 동북아역사재단, 2019.

- 김현석, 『우리 마을 속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 인천광역시 동구』, 도서출판 선인, 2020.

■ 논문

- 當眞嗣一, 「戰跡考古學提唱の背景」, 『季刊 考古學』72, 2000.

- 池田榮史,「近現代遺跡調査の現狀 - 冲繩」, 『季刊 考古學』72, 2000.

- 菊池実,「近代戰爭遺跡調査の視點」, 『季刊 考古學』72, 2000.

- 정혜경, 「아태전쟁 상흔을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주간동아』제904호, 2013.9.9.

- 菊池実, 「일본의 전쟁 유적 보존 운동의 의의와 성과」(‘광주 중앙공원 내 일제 군사시설 역사교육 활용 방안 시민토론회 자료집’, 2014.8.26., 광주광역시의회).

- 정혜경, 「광주지역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의 활용방안 - 뚜껑 없는 박물관을 넘어서」

(‘광주 중앙공원 내 일제 군사시설 역사교육 활용 방안 시민토론회 자료집’, 2014.8.26., 광주광역시의회).

- 정혜경, 「한반도 소재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활용 방안」, 『동북아역사문제』 2015년 5월호.

- 조건, 「전시 총동원체제기 조선 주둔 일본군의 조선인 통제와 동원」(동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

- 정병호, 「기억과 추모의 공공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 50-1, 2017년 3월.

- 조건, 『일제 말기 仁川陸軍造兵廠의 地下化와 전쟁 피해』, 『한국근현대사연구』98, 2021.

■ 웹사이트

- https://cafe.naver.com/gangje

- https://heritage.unesco.or.kr/wh/wh_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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