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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우주론

3. 대폭발이론의 탄생 배경

대폭발이론의 최초의 주창자는 조지 가모프였고 1차 세계대전이 막 바지에 이른 1917년 수학적 식을 통해 그 답을 찾아내려 애쓴 사람은 아인쉬타인과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 드 지터였다. 이들은 아인쉬타인 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휘어진 4차원 공간, 즉 리만 공간이 그 안에 물질이 존재할 때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살펴본 것 이다.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우주 방정식의 해를 구 함으로써 알 수 있게 되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우주 방정식의 해는 우리 가 속한 우주의 4차원적 진화를 보여준다는 물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림 3-3-1] 우주의 팽창 ⓒCERN capture from NASA hompage

그러나 어렵게 구해진 해에 의하면, 우주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수축하기도 하는 역동적인 우주여

야 했는데 이는 다른 학자들 뿐 아니라 아인쉬타인과 드 지터도 인정하 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 우주론은 정적평형 상태를 보여주는 우주론이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대폭발이론의 결과를 막기 위해 ‘정 상우주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정상우주론 역시 팽창과 수축을 하지만 안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우주가 팽창하면서 생기는 빈 공간에서는 새로운 은하가 태어나면서 우주의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이론이 다. 프레드 호일은 거기에 덧붙여 우주가 무한하다는 가정과 함께 원래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로서 끝없는 폭발이나 수축우주이론보다 는 안정적인 우주를 원하던 많은 학자들의 공감과 환영을 받았다.

대폭발이론의 발표와 외면 이후 러시아의 알렉산더 프리드만은 아인 쉬타인과 드 지터가 잘못된 방정식으로 해를 구해 잘못된 물리적 해석 을 내렸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우주방정식 자체가 여러 가지의 해를 가 질 수 있으며 우주는 팽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인쉬타인은 그 편지를 받은 2년 후에야 겨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였고 프리드만은 1922년에 대폭발이론의 내용을 모두 포괄한 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논문은 7년 후 벨기에의 신부 르메트르라는 사람이 잘 알려 지지 않은 학술지에 거의 같은 내용의 논문을 재발표할 때까지 학계에 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프리드만의 학술적 업적은 현재까지도 논외 로 되어 대폭발이론의 창시자로 르메트르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프리드만이 대폭발이론을 밝힌 지 2년 후 1924년 미국의 팔로마 산 천문대에서 일하던 미국인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가 지구에서 멀리 떨 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는 또한 지구로부터 은하들이 이탈하는 속도 역시 프리드만 방정식이 주는 이론적 예견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허블의 법칙'으로 결국 아인쉬타인은 1931 년 드 지터에게 ‘ 우주 상 수’를 포기하자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서 대폭발이론은 세 가지 물리적 결론을 가지게 되는데 첫째, 우 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과거에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점에 모이는 시 기, 즉 우주의 탄생 시기가 있었다는 것과

둘째는 어떠한 정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는 특수 상대성이론적 한계를 생각하면 은하의 후퇴속도가 빛의 속도에 다다르 는 거리,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계인 우주의 ‘끝’을 생각할 수 있게 된 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식어가고 있는 우주의 이곳저곳에 한 때 온도가 높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열 복사선이 지금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결론 이다.

대폭발 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우주의 탄생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가 아니라 현재 관측된 은하가 지구로부터 후퇴하 는 속도를 기준으로 즉 우주의 평균 팽창율을 바탕으로 하여 계산해 약 137억년으로 거슬러 가면 우주 창시의 순간이 나온다. 그러면 대폭발 이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폭발 이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공간, 그리고 물릴로 기술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