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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레알리즘

문서에서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 (페이지 86-91)

1945년 이후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다다, 팝아트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기계화되고 산업문명 속에서 우리 자연을 사실로서 ‘있는 그대로 제시’,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라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새 롭고 적극적인 방법을 추구했던 예술이 바로 누보레알리즘이다. 입체주의 의 콜라주가 현실을 그대로 넣고자 한 것이라면, 1913년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현실을 예술과 동일시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일상적 오브제의 도입은 합리주의의 규범과 관습인 일루젼 미학에 대한 거부로서 현대적인 요청에 따라 모든 환경을 예술화하려는 의욕이기도 하다.

누보레알리즘 이론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가, “현대적 자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라고 표현한데 잘 드러난다. 1960년대 말 파리에서 전위미술제를 통해 누보레알리즘이 알려지게 되는데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측정이벤트, 비물질성, 모노크롬 등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누보레알리즘은 1960년대를 전후한 과도기 속에서 경제성장으로 산업과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소비사회 속에서 형성되었다. 전통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 사회, 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을 해방하며 개인의 진정한 근원 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하였던 다다운동의 근본정신과는 다르게 현세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뒤샹에 기점을 두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움직임은 작가들이 예술작품을 제 작하는 일에 일상적 오브제를 도입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전통적인 의 미에서 보자면 예술과 물질적 현실자체와 경계를 흔들리게 한 것이다. 이 처럼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향적 태도 가운데 하나가 예술과 일상적인 오 브제와의 만남이다.

레스타니는 “누보레알리즘은 어떤 논쟁적 의도 없이 사회적 현실을 기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누보레알리즘의 형식이라면 ‘현실의 직접적 인 도입’이라는 원칙 하에 직접성과 자연 그대로의 상태 속에서 오브제를 분명하고 과격하고 결정적인 태도로 동시대 현실을 보게 한데 있다. 객관 적인 태도로 자신과 외적 세계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이들은 공감했다.

콜라주, 부보, 두터운 반죽, 사진조립 등과 같은 당시의 모든 양식들과 조 형예술의 체험에 기존 조류들을 섞어 형성되었다.

조형이념 및 조형특색

누보레알리즘의 공식적 탄생은 피에르 레스타니를 중심으로 이브클라인의 자택에서 1960년 10월 27에 이루어졌다. ‘누보레알리즘은 현실의 전망에 의한 새로운 접근’이라 선언하였다. 11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하 는데 같은 시기 미국에서 일어난 일상적 소재의 구성 경향인 네오 다다와 함께 신현실주의라 불려졌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지배적이었던 추상표 현주의, 앵포르멜 등 추상미술의 태동으로 새로운 자연으로서의 도시적 현실을 재현이 아닌 현실의 차압에 의한 제시로 보여주는 특색을 지닌다.

누보레알리즘은 공업제품의 단편과 일상의 오브제, 생활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폐품 같은 비예술적 오브제를 수집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어셈블 리지 계열의 폐품미학을 제시한다.

제1회 전시에서는 이브 클라인, 장 팅겔리, 페르난데스 아르망, 레이몽 엥 스, 다니엘 스포에니 등 10인이었으나, 이후 세자르, 크리스토 등이 가세 하였다. 현대의 자연에 대한 공통적인 시각과, 재현이 아닌 제시로서의 방법론과 이념에 통일을 보이긴 했으나 작가들은 개별적인 양상을 지녔 다. 레스타니에 의하면 기계화되고 공업화되어 광고로 가득한 현대의 현 실적 모습은 재현이 아니라 그대로 ‘제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전략 적 필요에 의해 그룹이 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59년 파리청년비엔

88 ◆ 2011 선생님을 위한 문화교실

날레가 생기자 그 분위기 속에서 누보레알리즘이 탄생한다. 누보레알리즘 작가들은 일상의 오브제를 다루며, 오브제 미학을 향해갔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도시환경에서 파생된 오브제와 이미지에 조형적 특성을 두고 있 다. 누보레알리즘은 이브 클라인의 죽음 전후 세계에 더 많은 주목을 받 게 되었다.

1968년 레스타니는 “누보레알리즘은 하나의 예술단체나 양식이라기보다 는 열려진 경향이다”라 하였고, 세 번의 선언서와 단체전을 개최한 후 3 년 동안의 막을 내렸다.

전 혜 숙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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