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원전거는 도연명의 전원적 삶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시조에서도 역시 작가의 전원적 삶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귀원전거가 활용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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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淵明 주근 後에 淵明이 나닷말이
179) 앞의 책, 255쪽.
밤을 녜 일흠이 마초와 틀시고 도라와 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181)
위의 시조는 죽소 김광욱182)의 작품이다. 김광욱의 자는 화이, 호는 죽소,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형조판서와 제학에 이르렀다.
초장에서는 “도연명 죽은 후에 또 연명이 나다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도연명이 죽은 뒤에 또 연명과 같은 사람이 태어난다고 말한 것이다. 중장에서는 “밤마을 옛 이름이 때마침 같을시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밤마을을 한자로 하면 율리인데 도연 명이 심양 율리로 낙향했는데 바로 작자 김광욱의 거처와 마을 이름이 똑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서 종장에서는 “돌아와 소박하게 전원 지킴은 그와 내가 다르랴”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소박한 전원의 삶에 돌아간 것은 도연명과 자신이 다를 바 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수졸전원’은 전원에서 졸박함을 지키고 사는 것인 데 도연명의 귀원전거(歸園田居) 에 나오는 “남쪽 들판을 개간하며, 졸함을 지키 고자 원전에 돌아왔네”183)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 김광욱은 자신이 도연명과 같이 소박한 전원의 삶을 살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있음을 노래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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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글고 싯근 文書 다 주어 후리치고 匹馬 秋風에 채를 쳐 도라오니
아므리 인 새 노히다 이대도록 싀훤랴184)
역시 죽소 김광욱의 작품이다. 초장에서는 “헛글고 시끄런 문서 다 주어 후리치 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흐트러지고 시끄럽게 구는 문서를 다 주어 내던진다고 말 한 것이다. 중장에서는 “필마 추풍에 채를 쳐 돌아오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 필의 말 가을바람에 채찍 치며 돌아오는 장면을 말한 것이다. 이어서 종장에서는
181) 권순회 · 이상원 · 신경숙, 앞의 책, 246쪽.
182) 김광욱의 시조에 관련해서 ‘고정희 17세기 田家時調의 서정적 리얼리티에 관한 연구-<栗 里遺曲>을 중심으- , 한국문학연구 , 제3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문학연구소, 2002, 98∼124쪽; 박연호, 士大夫의 現實에 대한 關心과 世俗的 慾望 , 한민족문화연구 제 36집, 한민족문화학회, 2011, 71∼92쪽.’을 참조.
183) “開荒南野際, 守拙歸園田”, 陶淵明集 , 歸園田居 . 184) 권순회 · 이상원 · 신경숙, 위의 책, 102쪽.
“아무리 매인 새 놓였다고 이렇게까지 시원하랴”라고 하였다. 이것은 아무리 매여 있는 새를 풀어 놓는다고 하여도 이정도로 시원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인데 도연명 의 귀원전거(歸園田居) 에 나오는 “오래도록 새장 안에 갇혀 있다가, 다시 자연으 로 돌아왔다네.”185)를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 김광욱은 벼슬길의 고민을 다 팽개치고 가을바람에 말을 타고 채찍하며 전원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두어 놓은 새를 풀어 놓는 것보다도 더 후련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작가가 귀원전거와 전원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할 경우 도연 명의 귀원전거(歸園田居) 를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시조작 가들이 도연명의 삶을 닮고자하는 마음에서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상태에서 은거지에서의 삶을 방향을 모색하던 중 도연명적 삶의 모습을 택 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전 및 시문의 전고 활용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째 작가가 인간 의 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경우 논어(論語) 를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을 알 수 있 었다. 이것은 논어가 유학의 대표경전으로서 인간이 살아가며 마땅히 지켜야 할 도 에 관해 서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둘째 작가가 자연의 도를 이야기하고자 할 경우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을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시조작가들이 유학에서의 인위적인 인생관을 추구하는 것보다 장자의 절대적인 자 유의 인생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작가가 귀원전거와 전원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할 경우 도연명의 귀원전거 (歸園田居) 를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시조작가들이 도연명 의 삶을 닮고자하는 마음에서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태에 서 은거지에서의 삶을 방향을 모색하던 중 도연명적 삶의 모습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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