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고승호 매장물 인양 노력

문서에서 목 차 (페이지 32-35)

고승호(전장 250피트, 폭 39.2피트, 심21피트, 2,134톤)는 침몰 당시 청나라 병사와 대량의 군자금을 싣고 있 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고승호에 실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에 대한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또한 청나라의 사료에는 고승호에 군자금으로 쓰일 은 2만5천량이 실려 있던 것으로 기록되면서 고승호의 매장물을 인양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 왔습니다. 다량의 은이 실렸다는 부분은 1935년 2월24일자 동아일보의 고승호 관련기사에도 나와 있고, 또한 고승호에 대한 기록은 당시 일본의 법무관으로서 선장 및 승조원을 취 조했던 영송겸증(營松謙燈, 근대해전 1-2160-596 日比谷圖考錄) 및 중앙공윤사 발행 역사서에 저술되어 있 으나 후일에 이르러 고승호를 한층더 유명하게 만든 이유는 많은 청나라 병사 외에 청국 정부의 군용자금으 로 거액의 은괴와 은화를 싣고 있었다고 확인된 후였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정치가와 기업가 간에 이권 쟁탈 이 있었던 뒷 역사 또한 유명한 일화입니다.

고승호, 수중 발굴 이야기 33

일본는 한반도 강점기간인 1930년에 고승호 인양을 시도했으나 기술 장비 부족 등으로 실패했고, 광복 후 일본인들이 1971년 고승호에 대한 인양 계획을 마련하여 제출하였지만 당시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인양작업 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1979년, 1989년에도 일부 소수인 들이 매장물 발굴을 시도하였으나 자금, 장비, 계획 및 열악한 환경 등으로 곧 바로 철수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관광이벤트업체인 골드쉽사가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남방 2km 지점의 해저에서 고 승호 매장물 발굴 작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였고 같은 해 7월 31일 이 회사는 청나라 침몰선 고승호로 추정 되는 선체 앞부분에서 은화 및 은괴, 금ㆍ은수저와 소총, 아편 파이프 등 각종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하며, 이 흥미진진한 뉴스는 즉각 언론을 탔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골드쉽은 경남기업의 전신인 대아건설이 약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고승호 매 장물 관련 보도 직후 코스닥 등록업체였던 대아건설의 주가가 상한가를 쳤습니다.

당시 45세로 혈기 넘치던 저는 고승호 매장물 인양작업 현장을 총괄 지휘했습니다. 뻘에 파묻혀 1백년 이상 을 잠자던 매장물과 청나라 병사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총기 도자기 등을 발굴해 올리면서 저는 그야 말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 같은 이야기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풍전등화의 신세로 전락한 조선의 운명을 손에 쥔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 서해안 앞바다 해역에서 벌 인 해전의 결과물이 다시 우리 앞에 그대로 등장하는 순간들을 저는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고승호 내 뻘속에서 인양한 시커먼 쇠덩어리(납찌꺼기)가 폐기물인 줄 알고 다시 바다 속으로 내던져버린 일이 수시로 있었는데 일부 잔존물의 성분을 분석 확인한 결과 99.9%의 은이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121년 동안 뻘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오늘 이 순간에도 울도 앞바다에 그대로 존재하 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제가 제 눈으로 확인한 사항입니다.

여기서 머리도 식히실 겸, 잠시 당시 고승호 매장물 인양작업에 대한 동영상 3편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이 동영상들은 모두 아래 유튜브 링크를 방문하여 감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Kowshing Excavated near Ul-do, Incheon, South Korea (Mar 2001-Oct 2002) (1/3) https://youtu.be/8Rlot2yJoD8 (6분 38초)

Kowshing Excavated near Ul-do, Incheon, South Korea (Mar 2001-Oct 2002) (2/3) https://youtu.be/-ETz315AeBE (6분 50초)

Kowshing Excavated near Ul-do, Incheon, South Korea (Mar 2001-Oct 2002) (3/3) https://youtu.be/-xbMKJKGg3I (3분 39초)

34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제 17기 박물관대학 상반기 과정 고승호, 수중 발굴 이야기 35

당시 고승호에서 인양된 일부 매장물들은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 이 순 간에도 침몰된 고승호 선내와 선외에는 당시의 매장물들이 다량 존재하고 있음을 여러분들은 이해하실 것입 니다.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진행되었던 당시의 매장물 인양작업은 고승호의 약 1/4 정도를 발굴한 것입니다.

즉, 나머지 3/4은 그대로 인천 앞바다 (위도상으로는 서산 앞바다 위치) 해저에 잠겨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선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무거운 화물일수록 선박의 아래에 적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미 인양된 매장물은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건져진 매장물보다 아직 건지지 못한 매장물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왜 매장물 인양이 완료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즉, 일부 매장물이 출토되고 이것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사업의 주관처인 골드쉽과 그 모회사 대아건설의 주가는 폭등했습니 다. 주가의 폭등에 따라 챙긴 불순한 경영진에게 인양작업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경 영 마인드 이유로 고승호 매장물 인양은 아직까지도 미결 상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해저탐사에서 주는 교훈은 순수하게 매장물 발굴 인양물로서 승부를 걸었을 때만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며 발굴 인양의 원칙과 명분을 벗어났을 때 자연적 실패로 나누어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겠습니까?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청·일전쟁 의 시작점 고승호의 침몰은 조선 즉 한국, 일본, 청나라 즉 중국 그리고 영국 러시아, 미국 독일 등 여러 열강 의 나라가 관여되어 있는 극동아시아의 근대 찬탈 역사에서 벌어진 국제적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의 전모 를 밝혀 줄 고승호 매장물 인양은 이제는 세계 신흥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 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2011년 군산 앞바다에서 일제 강점기 말 침몰된 니시마마루 10호 선박으로 부터 인양물 일부, 즉 중국 근대 화폐를 인양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고승호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서해안에서 니시마마루 해저탐사 및 매장물 발굴에 대한 2011 년 5월~7월까지 작업한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Excavation of the Deposit from a Ship Sunken Underwater off Gunsan (25th Apr-12th Jul 2011) https://youtu.be/VF0U4ZaTq4E (19분 57초)

고승호, 수중 발굴 이야기 35

문서에서 목 차 (페이지 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