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의 학생시위 1) 3 8․
대전의 고등학생들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에 대한 불만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에서 2 28․ 학생시위에 자극 받아 시위를 논의하였다 특히 대전고 학생들은 주요 도. 시에서 일어난 고등학생의 시위를 보고 충청도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 며 전국의 명문 고등학교로 손꼽히는 대전고도 시위를 일으켜 학교의 위신을 세워, 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대전고 학생들은 대전에서의 민주당 선거유세와 이에 대한 학교 당국의 조치에 더욱 자극받았다. 3월 일 대전에서 열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선거연설회를 8 앞두고, 7일 대전고 교장이 수업시간 도중에 학도호국단 간부들을 교장의 관사로 호출하여 민주당의 선거유세에 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교장의 지시는 충남도 . 당국이 주요 도시에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민주당 선거연설회를 앞두고 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내린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오면. 서 교장의 지시에 불만을 서로 토로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이, 야기가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다 같은 날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시국에 관한 의견을 . 나누었다.4)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수업을 마친 후 다시 모여 학교 당국과 경찰의 학생 동태 감시와 학생의 자율권 침해 등을 성토하였다 학생들은 일에 열리는 민주당 선거. 8 유세에 시민이 많이 모이는 만큼 호응과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하여 전교생이 참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다른 학교와의 연합시위에 대해서 . 의견이 갈리어 다른 학교와 연락을 취해 본 후 결정하기로 하고 저녁에 다시 모이, 기로 하고 해산하였다.5)
월 일 저녁 민주당의 선거유세를 앞두고 대전 시내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3 7
펴고 있는 가운데 대전고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모임을 가지고 시위를 벌이기로 결,
4) 3 8․ 민주의거 기념사업회 대전 충남, ․ 4 19․ 혁명동지회(2005), 3 8․ 민주의거 오름, , p.38 5) 안동일 홍기범 편저․ (1960),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 pp.73-74
정하였다 학생들은 민주당의 선거유세가 오후 시부터 시작되는 점에 착안하여 많. 2 은 시민들의 성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시경에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3 . 고 민주당의 유세장인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집결하여 대흥네거리 공설운동장 인→ → 동사거리 대전역 도청 앞 대전고등학교로 시위 코스를 결정하였다 이어 시위의 → → → . 취지와 학생들의 주장을 담은 결의문과 구호에 담길 내용을 논의하고 결정하였다.
또한 대전의 모든 고등학생들과 연합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합의하고 대전공고와 , 대전상고를 비롯한 개 학교의 학생 대표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고 참여 여부를 6 확인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교의 학생 대표는 일 오전 시에 시. 8 11 내 YMCA에서 모여 역할 분담 등을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6)
월 일 교시 수업을 마친 후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먼저 학년 간부들에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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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계획을 설명하고 참여 의사를 타진하였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하겠다는 뜻. 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 계획을 알아차린 학교 당국이 수업 도중 학도호국단 간부. 들을 교무실로 호출되어 학교 인근의 교장 관사에 연금하였다 교장은 학생들을 통. 해 시위 계획의 전모를 확인하고 시위를 중지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학도호국단 대대장 박제구는 교장 관사를 빠져 나와 다른 학교의 참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YMCA로 갔다 그는 거기에 다른 학교 학생이 나와 있. 지 않음을 확인하고 교장 관사로 돌아가 그 사실을 학생 간부들에게 알렸다 당시 . 학도호국단과 운영위원회가 아직 구성되지 않은 학교가 있었고 학생 대표가 구성, 된 경우에도 학생들과의 의견을 조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토로하여 다른 학교는 참여가 어려웠다 이 무렵 교내에 있던 학생 간부가 시위에 . 대한 학생들의 분위기가 고양되어 있다는 사실을 교장 관사에 있는 학생 간부들에 게 알렸다 학생 간부들은 시위 감행 여부를 논의한 끝에 시위를 벌이기로 의견을 . 모았다 학생들은 교장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교장 관사를 빠져나와 시위. 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학생 간부 일부는 결의에 따라 교장 관사를 빠져나와 학교에 들어갔다 애초의 . 시위 계획은 운동장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시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연락이
6) 허종(2010), 대전충남지역 월 혁명의 발발과 전개과정 월혁명과 한국민주주의4 (4 ), 선인
채 되지 못해 200여 명의 학생만이 운동장에 집결해 있었다 다시 교실에 있는 학. 생들을 규합하여 전교생 1,000여 명이 교문과 학교 담을 넘어 학교 밖으로 진출하 였다 학생들은 먼저 교장 관사에 감금당한 학생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고 운영위. , 원장 박선영이 결의문을 낭독하였다.7)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우리들 대고 건아는 최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우리의 뜻에 배치되는 도당국과 학교당국의 처사에 대하여 그 잘못을 깨닫고 조속히 학원 의 자유보장과 대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강력한 시정책을 강구할 것을 다음 과 같이 결의한다.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1. .
자유로운 학생 동태를 감시 말라
2. .
서울신문 강제 구독을 단호히 배격한다
3. .
4.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학원에 여하한 사회적 세력의 침투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거사는 오로지 정의감과 자발적 의사에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
5. .
오늘을 기하여 거행함은 다만 학생들의 사기가 왕성한 때문이다
6. .
우리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동맹휴학도 불사한다
7. .
학생들은 결의문을 낭독한 후 시위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학생을 정치도구화하. ‘ 지 말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원에서의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우리 의 말을 억제하지 말라’, ‘서울신문 구독을 강요하지 말라 는 등의 구호를 외치’ 면서 대열을 이루어 민주당 선거유세장인 공설운동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학생들은 . 처음 계획한 시위 코스에 따라 대흥네거리를 지나 공설운동장 입구까지 행진하였 다 그곳에는 이미 무장한 경찰이 출동하여 학생들의 시위를 대비하고 있었다. .
7) 한국일보 1960년 월 일자 중도일보 3 9 ; 1960년 월 3 10일자
학생들은 경찰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공설운동장 진입을 시도하였다 경찰은 .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곤봉과 장총 개머리판으로 학생들의 가슴 머리 팔 다, , , 리를 닥치는 대로 구타하였다 학생들은 이에 맞서 민주경찰이 학생을 왜 구타하. ‘ 는가 라고 외치면서 완강히 대항하였다 학생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전진하려고 ’ . 했으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대열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여 명의 . 50 학생들이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박수를 치며 호응하거나 음료. 를 제공하고 경찰의 동정을 알려주는 등 학생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하였․ 다.8)
학생들의 시위 대열은 경찰의 진압으로 두 대열로 나뉘어 졌다 한 시위대는 대. 전천을 따라 대열을 이루어 애국가를 부르면서 대흥교와 중앙시장을 지나 대전역 으로 행진했으며 또 다른 시위대는 보문교와 인동네거리를 지나 대전역으로 행진, 하였다 학생들은 대전역으로 가는 도중 경찰의 제지로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 하면서 대전역에 이르렀다 대전역에서 합류한 학생들은 다시 하나의 대열을 만들. 어 학원의 자유 보장 학생의 정치도구화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도청 방향으, 로 행진하였다.
학생들이 목척교에 이르자 경찰 기마순경 소방차가 출동하여 학생들을 위협하, , 면서 도로에 페인트를 뿌리고 폭력으로 진압하였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시위 대열. 은 다시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 대열은 대전천을 따라 중앙시장을 거쳐 대전서여. 고 앞으로 행진하였고 버스 합동주차장까지 진출하여 경찰과 충돌하였다 학생들, . 은 몇 차례의 경찰 진압으로 시위 규모가 줄어들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 겠다는 경찰의 약속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다.
또 다른 시위 대열은 경찰과 투석으로 맞서다가 목척교의 오른쪽 신도극장 샛길 로 빠져 보문고 학생들과 합세를 시도하였다 이때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여 학생들. 을 포위하자 학생들은 이를 항의하면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주장하였다 경찰이 , . 이를 받아들여 학생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행진하였다 학생들이 경찰서 앞. 에 이르자 경찰이 태도를 바꾸어 학생들을 연행하였다 연행된 학생 가운데 학생 .
8) 허종(2010), 대전충남지역 월 혁명 발발과 전개과정 월혁명과 한국민주주의4 (4 ), 선인
간부를 비롯한 주도자로 판단되는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석방되었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로 학교에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해산하지 않고 학생 간부들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면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교장이 학생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학생들에게 귀가하. 도록 설득하였으나 학생이 석방되기 전에는 귀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연좌 농성, 을 계속 벌였다 현장에 있던 경찰서장이 연행된 학생들을 즉시 석방하겠다고 약속.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해산하지 않고 학생 간부들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면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교장이 학생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학생들에게 귀가하. 도록 설득하였으나 학생이 석방되기 전에는 귀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연좌 농성, 을 계속 벌였다 현장에 있던 경찰서장이 연행된 학생들을 즉시 석방하겠다고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