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은색의 변용과 한계 -리히터

1. 이론적 배경

3.6. 검은색의 변용과 한계 -리히터

<도판 16> 리히터 Drawing 1969 200 cm x 150 cm Pencil on canvas CR 232-4

도 하지만, 당연히 그의 초기 작품부터의 오랜 전개의 결과이다.

로드코는 색채의 장식성과 감각성을 개척한 쾌락주의자와 자신을 분리하 기를 원했고 기쁨(Pleasure)103)보다는 의미에 집중을 바라면서 자신은 색채 화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로젠부름은 로드코를 반형 식주의자, 반쾌락주의자로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의 환원된 (Reductioned) 회화는 색채가 본질이다. 도판 17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Rothko의 마지막 시리즈, 회색 그림에서 검은색으로 변화하며 작품에 번호 를 붙이기 시작하며 보다 작품속으로 집중하게 한다. 그의 색채는 신경계 를 자극하는 힘에 있어서 어느 것보다 가장 강렬한 회화 수단이기 때문에 환원된 양식으로써 절대적 행위를 바라는 로드코로서는 색채의 표현력에 초 점을 맞춘 것은 당연한 일이며 색면추상 화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판 17> 리히터 Grey 1973 250 cm x 200 cm 349-2

이즘을 경험한 ‘경계인’이 되기에 충분 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작품은 60년대 팝아트적 성향에서 미니멀, 낭만주의 화풍, 추상에까지 그 범위가 넓은데 연구자의 리히터에 대한 주시의 논의 관점은 그의 작품과 그에 따 른 방대한 해석적 담론이 아니라 리히터의 구상적 흑백작업과 색체작업들이 추상으로 변하는 그 시대에 관점을 맞춘다.

리히터가 그의 딸 초상화 Betty를 그린 1977년에서 1988년 사이가 리히 터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한다. 대체로 이 시기는 리히터의 다른

작품시기에 비해 많이 거론되어지지 않 고 있다. 이 시기에 리히터의 회색그림 연작들이 제작되었고 이후 사진을 이용 한 그의 연작들이 시작된 시기 이기도 하다. 이때 리히터는 자신의 상태를 “...

그림은 모노그롬 단순회색이 될 때 까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림은 계속 비인간적이며 일반화 되어갔다.... 그 상 태에서는 더 이상 살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 인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었다. 그래 서 회색의 반대를 그리기 시작했다” 104) 리히터는1967~ 76년 사이에 미니멀아트 의 단색화에 매우 가까운 회색 그림을 제작하는 가운데 면 내지 색채의 환원 불가능한 시각적 애매성에 부닥친다.

그 결과 그에게 있어 “회화는 직관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유추를 만들어내는 것”이 된다. "따라서 좋은 그림은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 어떤 허튼 소리를 하는 것과 다르다 왜냐 하면 그 어떤 허튼 소리도 언제나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리 히터는 그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104) Gerhart Richter ( Panorama) 2012, Prestel. p 123 요약

[…] 전에 회색 그림을 그릴 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회색 그림들의 질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 다 회색인데 하 나가 다른 것 보다 나아 보였다는 것이다[…] 중성적인 회색화면은 그림이라고 겨우 인식 할 수 있는 모든게 멈춰버린 최소한의 조형만 남겨 졌다. 회색은 나에게 무기력하고 아무 생각도 할수 없을 때 이것 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이었다. 105)

회색은 회화를 가시성의 질서 배후에 존재하는 접근 불가능한 참된 현 실에의 유추로 만드는 시각적 모순성, 회화를 참된 현실의 허구적인 모델 로 만드는 이시각적 모순성은, 리히터의 1976년 이후의 추상회화의 결정적 인 단서가 된다. 여기서 작가는 이미 알려져 있는가에 관계하지 않고 맹목 적인 만듦과 실증적, 가시적인 것의 파괴를 거쳐 가면서 개별적인 가시적 질서의 저편에 놓여 있는 하나의 시각적, 즉 지각 판단의 재확인과 규정이 없는 모순된 가시성에 도달하려 한다. 따라서 그림의 성공은 미리 계획하거 나 설계될 수 없다 오직 실증적인가시성의 파괴라는 복잡한 우회로만이성공 여부를 드러낼 수 있다 리히터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부정적 신학의 사유 모델을 빌어 설명하고자 한다. 즉 모든 실증성과 규정성의 파괴만이 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리히터에게 있어서는 이무것도그릴 것이 없고 다만 그리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왜냐 하면 이것이 본래적인 것이 기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 가 비교적 쉬울 뿐이다 …내가 추상화를 그릴 때 나는 그리기에 앞서 그것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 모르고, 그리는 중에도 무

105)독일 국영 ZDF 방송 1992년 작가본인의 다큐 Gerhard Richter 인터뷰에서 리히터는 당시 8개 회색 손가락으로 그림 (1975년작) 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인터뷰을 옮긴 것이다. 원문은,

“... Was ich sehr bewundert, als fuehrer eigentlich graue Bilder malte,nicht ernsthaft, und dann bemerte, das Qualitaet unterschiedlich gibt. alles Grauflaechen aber eine war besser als andere. ""... das neutrale Graufaeche forderheraus auch bis zum Nullpunte der Malerei vorzustossen. es scheint zu die treffenste Interpraesentation gerade genug um nicht abbilden, abzubilden den Stillstand der Malerei als noch Malerei wahrzunehmen... Grau ist fuer mich einzige moegliche willkommene Entsprechung anzusagen, Meinungslogigkeit, Gestahtlogigkeit....die Methode erreicht die Sackgasse als unmaechtige zweifelungsgaeste. (

엇을 향해야 할지 모른다. 따라서 그림 그린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맹목 적, 절망적인 노력과 같다”그러나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회화가 성립한다.

회색회화들을 통해 리히터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회화의 종말 을 취하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이 회화들을 넘어선 유일한 단계는 회화가 아니며 즉 회화의 전체적인 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색회화들은 근 본적으로 단색회화의 역사적 체계를 살아있도록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 것들은 단색회화의 역사성을 반영하고 단색회화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회색회화들은 확실히 회 화 또는 단색회화의 종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리히터의 미술 제작은 특 성상 그림의 한계를 드러내어서 반복적으로 ‘회화의 종말’에 관한 담론의 문맥에서 또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리히터는 회화를 통해 우리에게 절 대로 끝이라는 말과 결과에 대한 급진적인 판단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최후 또는 완성에 관한 묘사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의 단색회화에 관한 역 사적으로 전달된 패러다임의 회고적인 채용과 그 자신의 동시대적 통찰의 조건들에 적합한 그것의 변형은 단색회화가 의미를 획득해야만 했던 전통적 인 방법들을 거절하지만 정확히 단색회화의 형식적 맥락을 유지함으로써 이 회화행위를 이행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개념적 재귀성’106)에 대 응하는 것이다.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험하기 위해 회화의 패러다임들 가운데 단 색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리히터는 회색을 통하여 중립의 문제, 메시지 의 부재, 그리고 ‘무’를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이러 한 높은 보편적 수준을 도달하기 위한 그의 제작은 단순히 무분별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세심하고도 민감한 문제였다.

그는 1975년에 에디 드 와일드(Edy de Wilde)에게 회색회화의 제작과정

106) ‘개념적 재귀성’이란 개념미술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 작품의 성립조건에 대해 스스로 반영하고 따져보는 특성을 의미한다.

에 대한 그의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수많은 캔버스들 전면에 회색으로 채울 때 나는 내가 무엇 을 그리는지 또는 무엇이 그려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되 었다. 너무나 비참한 시작은 무를 의미 있는 것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회색 표면들 가운데 특성의 차이점들을 발견 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특성의 차이점들은 회색 표면들 뒤에 놓여진 파 괴적인 동기부여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림들은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딜레마를 일반화함으로써 그림들은 딜레마를 해소시켰다. 결핍은 구성적인 언급이 되었다. 즉 그것은 상대적인 완성이 자 아름다움이며 따라서 그림인 것이다.

회색은 실제로 눈에 보이지도 안보이지도 않는다. 회색의 뚜렷하지 않음은 명확히 환영적인 방법으로 마치 사진과도 같이 회색의 중재력과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회색은 다른 색들이 가지지 못한 ‘무’를 보 이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회색은 우호적이고 유일하게 가능한 중립, 무언, 의견의 부재, 모양 의 부재와의 동등한 것이다. 그러나 회색은 무정형 등과 같이 개념으로서 만 실재적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회색을 의미하 지만 회색이 아닌 색채의 뉘앙스를 창조하는 것이다. 회화는 따라서 눈에 보일 수 있을 만큼 가공한 것과 회색으로서 회색의 혼합물이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종류의 환원주의회화는 전반적으로 나를 매혹시킨 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회화에 있어서 정확함 아니 명확함을 달성하기 위한 매우 세심하고 조심성 있는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효 함과 보편적인 것의 특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 없이 증식하고 지속적으로 점점 불투명해지고만 있는 생산성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에게 중요하게 보인다.107)

이와 같이 중립성과 ‘무’에 대한 그의 탐험은 수많은 회색회화 시리즈들 의 제작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철학적 탐험은 회화의 경 계를 넘어서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1960년경과 그 이후의 많은 화가들처럼 리히터에게도 회화는 종말에 이

107) Gerhard Richter(1995),op.cit., p. 83.

<도판18> 리히터 Fiction (4) 1975 200 cm x 200 cm Oil on canvas CR 372

<도판 19> 리히터 Construction 1976 250 cm x 300 cm Oil on canvas CR 389

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죽어버린, 역사적으로 끝난 것은 이상주의적인 회화 주관에 의한 의미 산출로 이해된 회화였다. 그에게는 그 림의 표면을 그것의 고유한 현실로 규정하는 단순한 실증주의적 회화 이해 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회화에 있어서 의식과 주관 의존적인 이 지성,명료성을 파괴하고 해체한다는 기본 전략 아래 회화의 종말이후의 회 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여기서 기계적 내지 복사적인 덧칠’이라는 패러다임 을 발견한다. 이 경우 작가의 손은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움직일 뿐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계적인 덧칠의 가장 초기의 알려진 예는 그 의 사진화다

이 작업은 의식적인선택과 결정 및 이른바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모 두 배제하는 것으로 앵포르멜에 가까운 것이었다. 리히터의 이러한 작업은 회화가 이미 알려져 있고 결정된 지각질서의 저편에 놓여 있는 접근 불가능

현실’을 가시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의 신비주의적인 희망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눈앞의 현실은 의문스러운 것이었고 모든 지각은 이미 해석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