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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가처분소득 이외의 소득 개념들

위의 개념들은 모두 가구의 소득 수준을 산출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저 마다 포획하는 가구소득의 수준이 있다. 이 가운데 가처분소득은 가구가 총소득 가운데 세금, 사회보험료, 기타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가구가 소비의 용처를 결정할 수 있는 소득 수준을 반영한 것으 로 의미가 있다(<표 3-2> 참조).

〔그림 3-1〕 조정처분가능소득의 산출 방식

자료: 유경준, 김서영, 홍경희. (2018). 그림 2.1 가구소득의 구성 및 조정처분가능소득.

그러나 가처분소득도 가구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데는 한 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이현주, 2019). 동일한 가처분소득을 가진 두 가구가 있다고 가정하면, 두 집의 실생활에서 욕구 차이가 크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처분소득 중위 40~50%인 가구의 균등화된 월평균 월세는 0원에서 42만 원으로 큰 차 이가 나타나며, 의료비 지출액도 매달 0원에서 최대 90만 원으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이현주, 2019).

이와 같은 가처분소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개념이 조정 가처분소득(adusted disposable income)6)이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미리 밝혀 두자면, 조정가처분소득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를테 면, 가구원 수를 고려해 가처분소득을 균등화한 결과를 가리키기도 한다 (Smeeding, 2002; Smeeding & Sandstrom, 2005).

이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조정가처분소득은 흔히 가구의 가처분소득 에서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값을 더한 개념이다. 여기서 포함하는 서 비스의 영역은 연구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의료, 교육, 주거 등을 포괄하 는 현물 및 서비스(OECD, 2019)를 가리키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협소하 게 의료와 교육(Hoeller, Joumard, Bloch, & Pisu, 2012)만을 지칭하 기도 한다.

원, 가사·간병 지원 등 10개 사업을 포함했다. 즉, 이러한 부분이 가계의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가 0.357인 반면, 조정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07로 크게 떨어진다(통계청, 2018). 조정처분가능 소득은 공적이전이 그 사회의 소득불평등 수준을 얼마나 완화했는지를 측정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다. 반면, 시장소득 및 가처분소득의 불평등 수준이 심화하는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다소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조정처 분가능소득 개념을 활용하는 데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조정처분가능소득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임금(social wage) 개념을 짚 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임금은 노동자가 기업에서 얻는 시장임금과 대비되며, 국가가 재분배를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급여의 총액을 가리킨 다. 사회임금은 종종 국가로부터 받는 급여에서 노동에 부과되는 세금을 제한 액수를 가리킨다(Maniatis, 2003). 북유럽은 노동조합이 자본과의 협상을 통해 시장임금 수준을 정하고,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사회임금을 조정해 왔는데, 두 가지의 타협이 연동해서 이뤄진 측면이 있다(Kiander et al., 2011). 북구 복지국가의 높은 수준의 사회임금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업의 비용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 줌으로 써 기업 활동을 활성화했다.

오건호(2009)는 한국의 사회임금 수준이 총가계운영비의 7.9% 수준 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영국(25.5%), 일본(30.5%), 프랑스(44.2%), 스웨 덴(48.5%)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오건호(2009)는 사회임금이 작을 수록 경제위기로 인한 생계불안 위험은 커지고, 구조조정을 둘러싼 사회 적 비용도 증가한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사회임금 수준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임금은 가계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측량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미래 과제로 남겨 둔다. 사 회임금을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조정가처분소득 개념을 이 해하는 데 놓쳐서는 안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조정가처분소득이 가계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반영하려는 시도였다 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다. 조정가처분소득 이 제시하는 대로, 교육이나 의료 등의 영역에서 국가가 급여나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면 가계의 지출 부담이 줄고, 따라서 가계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사회임금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이다. 예 를 들어, 국가의 의료보장이 충실하지 않은 경우, 가계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의료비의 자기부담 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을 통 해 받는 의료비 혜택만 소득으로 넣고 개인부담액은 고려하지 않는다면 가구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 다. 즉, 의료비와 같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가처분소득이 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데 일정 한 한계가 있다.

조정가처분소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재량소 득(discretionary income)이다. 재량소득은 “모든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지출을 제외하고 가구에 남은 소득분”(Linden, Green & Coder, 1988) 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지출이라는 개념이 다소 모 호한 측면은 있다. 이를테면, Dolnicar et al.(2008)은 재량소득의 개념 을 설명하면서 ‘필수품’(essentials)을 제외한 지출을 위한 소득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필수품의 예로 식료품과 주거를 들었다. 다 만, 재량소득의 개념은 주로 마케팅이나 소비자행동학에서 사용하는 경 향이 있다. 따라서 재량소득의 개념은 가계의 생활 수준 향상이나 삶의 질 개선이라는 사회정책학적인 맥락이라기보다는 소비자 행태 분석을 통 한 마케팅의 목적에 사용된다. 재량소득 기준의 재분배효과에 대한 연구 가 전무한 이유다.

가처분소득에서 필수품에 드는 비용을 제외한 소득을 측정한다는 측면 에서는 유사한 접근이 일부 있다. 영국의 노동연금부(Department of Work and Pensions)에서 저소득 가구 통계를 생산하면서 주거비용을 제외한 가구소득(after housing cost income)을 뽑아 빈곤율이나 소득 불평등의 지표 산출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의료서비스가 무상이 고 대학을 제외한 공교육이 대부분 무상인 점을 고려하면 가처분소득에 서 주거비만을 제한 액수가 가구의 실질적인 소득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을 한국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