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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적 자본주의

세계적 차원의 축적체계에서 여성의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억압이 갖는 위 치에 대한 미스와 미터의 분석은 세계체계론의 분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 다.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 미스와 미터의 분석은 가부장제를 보편적인 남 성지배가 아니라 신국제분업의 구성요소로 위치짓고 있다(이미경 1998).

미스는 신국제분업을 통한 자본주의 구조조정과 국제적 차원의 계급, 젠더, 인종 간의 상호관련을 해명하고 있다(Mies, 1986; Mies et al., 1998). 미스의 분석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종속’ 또는 ‘억압’이 아니라 ‘착취’ 개념 이다. 미스는 ‘여성의 착취와 억압이 물질적인 생산관계나 경제체제와는 관계 가 없다는 입장에 반대하고 있다. 미스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여성의 억압을 유지하는 현재의 체계를 가리킨다(이미경, 1998).

이미경에 따르면, 미스는 비자본주의적 주변을 자본축적의 불가결한 조건 으로 인식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통찰을 분석에 결합하고, 세계시장과 국제분 업에 대한 논의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과 프랑크의 종속이론을 직접적으 로 원용하고 있다. 세계체계론과 관련되는 분석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세 계적 규모에서 여성, 식민지, 자연에 대한 수탈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는 것 이다. 또 체계로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이러한 수탈에 근거하여 전세계적 규모에서 작동한다고 이해된다(이미경, 1998).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로 요약되는 미스의 입장은 ‘자본주의가 가부장제 없 이는 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스에게 있어서, ‘식민지화'와 ‘가정주부화' 라는 두개의 과정은 밀접하게 상호관련되어 있다(Mies, 1986). 신국제분업에 대한 미스의 분석에서, 제3세계의 새로운 산업노동자는 여성이고, 이 노동자 들이 생산하는 품목의 소비자는 제1세계의 여성으로 드러난다. 제3세계에서 여성은 축적을 위한 최적의 노동력이 되는데, 그들의 가정주부적인 위치가 저임금의 유순한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제1세계의 여성은 산업이전의 결과로 실업자가 되어 소비자로 전락한다. 미스의 핵심적인 이론적 명제는 제1세계와 제3세계에서 서로 다른 형태를 갖는 여성의 ‘가정주부화’이다. 미 스에 의하면, 가정주부화가 근대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이전에는 이러한 형태 의 생산이 존재한 적이 없다(이미경, 1998).

세계체계론의 가계분석은 단순히 고용 관계에서 젠더 관계의 변화가 아니 라 가계라는 제도가 세계경제에서 기능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세 계체계론의 재생산에서 무급의 가사노동의 관계는 가사노동이 가치법칙의 외 부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세계경제는 가치법칙의 완전한 실현에 장애로 작용 하는 메커니즘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모순 중의 하 나는 가치법칙의 최적의 기능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부장제적 위계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기본적으로 모순되는 구시대 의 유물 또는 남성 지배의 보편성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오히려 가부장제는

곧바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근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며 세계경제의 기본 적인 정치적 구성요소가 된다. 세계경제의 제도로서 가계를 다시 개념화하는 것은 여성종속의 문제를 세계적 규모의 축적의 한복판에서 제기하는 것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이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성격 을 정의하고 그 존재이유가 된다(Wallerstein, 1991). 가계는 이러한 목표에 봉사할 수 있도록 역사적 발전을 겪는다. 그 과정은 세 가지 방식에 의해 이 루어진다. 첫째, 가계와 공동체 간의 연관을 파괴하는 것이다. 핵가족화의 증 가로 나타나는 현상이 그것이다. 둘째, 생산의 사회적 분할은 세계 노동력의

‘부분적’인 임노동화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개별 가계의 보상양식이 부분적인 임노동양식이다. 셋째, 노동력으로의 가계의 참여는 종족성 그리고 젠더라는 점에서 계층화되어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개념장치로서 기존의 가족의 이미지, 즉 핵가족화의 경향, 임금소득 단위, 경제활동과 무관 한 자율적인 영역이라는 이미지는 가계가 세계경제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이 해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어 왔다(이미경, 1998).

이렇게 가계는 생산영역에서 비가시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변화된 유 형의 가계는 불완전한 프롤레타리아화로 묘사될 수 있으며, 임노동이 존재하 기는 하지만 산발적이며, 가계의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가계는 생계활동으로 보충하는데, 중심유형과 임금과 생계활동의 관계는 역 전되어 있다. 이러한 유형으로의 양극화는 세계시장의 경기변동으로부터 영 향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프롤레타리아 가계로 하여금 실질적인 삶의 조 건에 가장 발가벗겨진 채로 놓이게 한다. 이는 노동력의 재생산과정이 중단 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체 자본가 계급에게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이미경, 1998).

한편 미스와 미터의 분석은 신국제분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여성(노동 자)의 착취가 구성되는 방식을 다루고 있는데, 미터는 이러한 주변노동자화 는 단지 주변적인 유형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중심으로까지 파급되는 광범

위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미터는 신국제분업이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착취형 태를 포함하고, 이 과정에서 제3세계 및 제1세계에서 여성노동력이 중심적이 라고 주장한다. 신국제분업의 발전은 자본의 두 가지 방향으로의 운동이 낳 은 결과이다(이미경, 1998).

첫 번째 국면에서는 자본이 싼 노동력을 찾아서 제3세계로 이전된다. 특히 여성의 종속적 조건 때문에 여성 노동은 강도높게 착취되며, 제3세계 여성은 자본을 위한 노동력 저수지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강력한 사례를 제공한다(이미경, 1998).

두 번째 국면에서는 신축적인 노동실천의 새로운 형태들이 중심에도 출현 하는데, 이 경제적 구조조정의 형태들은 값싸고 신축적인 일회용 노동력을 요구하고,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노동력은 여성이다. 특히 전자와 의류업의 경우가 그 전형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제1세계의 공장도 기혼의 여성노동자 를 선호한다. 고용주들은 여성들이 갖고 있는 섬세한 자질을 비숙련으로 정 의한다. 이러한 노동협약의 새로운 형태는 비공식 부문에서 하청노동의 증가 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고용계약이 증가하는 것은 이 노동력이 노동 조합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이미경, 1998).

이와 같이 개략적으로 정리되는 두 개의 국면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조직화 의 새로운 형태는 중심 노동자와 주변 노동자로의 양극화를 포함하고, 새롭 게 만들어진 ‘신축적’인 임시직에 인종적이고 젠더적인 분할이 적극적으로 활 용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은 제1세계에서는 흑인 여성과 제3세계에서는 수 출가공지대의 미혼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선호에서 더 많이 착취될 수 있는 기혼의 여성노동력으로 선호도를 이전하는 경향을 포함한다(이미경, 1998).

미터의 분석은 미스처럼 가부장제를 통합적인 체계로 제시하지는 않았지 만,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최적의 노동력으로 여성이 포섭되는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이미경, 1998).

따라서 미스나 미터의 분석은 ‘발전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으로 위치

지워진다. 신국제분업에 대한 이들의 분석은 세계경제의 발전 논리 자체가 여성에게 얼마나 착취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발전과정으로의 여성통합은 다름 아니라 1960년대를 통하여 생계생산의 파괴이고, 1970년대의 불황으로 인한 주변적 노동자화이고, 1980년대의 외채위기와 더불어 자본의 구조조정 의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판으로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미경, 1998).

이 장에서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가 세계적 차원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살 펴보았다. 이것은 여성이나 가족의 문제가 개인이나 일국차원에서 논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변동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설명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스가 말하는 '가정주부화'는 제국주의화와 상호연관된 과 정이며, 미터가 말하는 '신국제분업'은 자본의 축적전략이 여성이라는 주변적 인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과정이다. 즉 세계적 자본의 확장은 가부 장적 성적위계를 이용한 여성을 통합함으로써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