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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儒家審美思想이 中國書法에 미친 影響은 深遠한 것인 바, 書 寫活動이 ‘書法藝術’로 昇華할 수 있게 된 중요한 原因의 하나이며, 따라서

‘書法’과 關聯된 모든 것 속에 儒家審美思想이 浸透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 언이 아니다. 본 문에서 논한 것을 각 장절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Ⅱ장: 孔子의 學說은 이미 世界에서 中國文化의 代名詞로 되어 버렸는 데, 이는 ‘孔子’가 儒家審美思想의 根幹을 이루기 때문이며, 中國 내지는 東洋哲學思想에 深遠한 影響을 끼쳤기 때문이다. 孔子는 仁人君子로 되려 면 반드시 먼저 道를 배움을 그 志向하는 바로 삼아, 그 다음 德에 따라야 하며, 그 다음으로 仁에 의지하며, 마지막으로 각종 藝에 관한 일을 두루 돌아보고 관찰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孔子美學의 가장 뚜렷한 特徵은 個人의 心理 欲求와 社會의 倫理 規範의 融合 一致를 이루는 것에 그 目 的을 둔 것이다. 하지만 孔子는 ‘美’를 멀리하거나 ‘善’을 排斥하지 않았으 며, 반대로 ‘盡善盡美’할 것을 要求하였다. 이러한 理想적인 美는 역시 單 純하게 善에 服從하거나 善에 隸屬되는 것이 아니며, ‘眞善’이 곧 ‘眞美’와 같다거나, 혹은 ‘眞善’하기만 하면 美가 理想的인 水準에 到達했는지의 여 부는 별 關係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美와 善 두 가지가 모두 다 至極해야만 理想的인 水準에 到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君子 의 修養에 대하여 孔子는 ‘文質彬彬’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文’은 形式的인

‘美’와 같은 것이고, ‘質’은 內在的인 ‘善’과 다름이 없다. 이밖에 孔子는 ‘詩 言志’, ‘游於藝’, ‘繪事後素’ 등 文化藝術과 直接的인 關聯이 있는 理論을 發 表하였는데 後世에 莫大한 影響을 끼쳤다.

孔子의 審美思想은 ‘中庸思想’으로 歸結되는데, 그의 思想體系를 이어받 은 後世의 儒家學者 및 經典, 이를테면 孟子와 荀子, 『周易 과 『樂記 에 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孟子는 “마음으로 뜻을 받아들인다.”는 見解를 주

장하였으며, 詩를 읽을 때 “사람됨을 알고 시대를 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사상은 後世의 書法批評에서 書品과 人品을 같은 標準에 놓고 品評하는 데에 直接的인 影響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孟子의 또 다 른 審美思想은 ‘浩然之氣’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充滿히 채워져 있는 것 을 아름답다고 한다.”라는 審美觀點을 제기하였다. 이런 ‘浩然之氣’는 後世 의 ‘骨氣’와 直接的으로 連貫되는 것이다.

荀子의 審美觀點은 주로 “完全하지 못한 것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見解 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孔子의 ‘盡善盡美’와 다르지 않다. 荀子의 또 다른 審美思想은 人倫과 直接的인 連貫을 이루는 “權勢와 利益도 마음을 기울 지 못한다.”인 바, 後世의 ‘貳臣’에 대한 苛酷한 批判이 이루어지는 根源의 하나이다.

『周易 과 『樂記 는 先秦儒家思想을 代表하고 있는 著作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後世에 莫大한 影響力을 끼치고 있다. 『周易 에 나타 나는 美學의 意味를 지닌 槪念, 範疇는 相當히 廣範圍하게 審美와 藝術 創 造의 特徵에 대한 主要한 問題들에 대해 深奧한 思想을 言及하고 있다. 이 는 특히, 先秦 儒家美學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一般的으로, 先秦 儒家의 美 學에서 가장 重視하는 것은 審美와 藝術을 社會의 政治, 倫理, 道德과 關 聯짓고, 이것으로 거듭 討論함에 있어 가장 重要한 問題가 되어 왔다. 審 美와 藝術 자체가 어떤 特徵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探究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儒家 美學에서 重要한 價値를 지니고 있는 『樂記 를 포함하여 모두가 이러한 缺點이 있다.

Ⅲ장: 中國에서 書寫活動이 藝術로 昇華할 수 있었던 것은 漢字가 있었 기 때문이며, 아울러 漢字 속에 무한한 人本主義思想을 내포하고 있기 때 문이다. “우러러 위로는 하늘에서 본을 떴고, 숙여서 아래로는 땅에서 본 받아서” 만들어진 漢字는 곧 “王子의 朝廷에서 敎化를 宣揚하여 밝힌다는 것과 같이 지극히 존엄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理由는 다음과 같 다.

中國人의 根本思想은 옛날부터 ‘象’과 ‘意’가 密接하게 連貫되어 있었다.

儒家審美思想의 主體를 이루는 ‘仁’을 文字學的으로 考察한 결과 다름 아 닌 ‘人’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形式的인 사람 ‘人’의 ‘象’은 內 在的인 ‘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仁’은 文字學的인 의미나 儒家的인 의미를 막론하고 모두 ‘生生不息’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는 ‘核心’-‘心’과 다 름이 없다. 結果的으로 사람이 ‘天地之心’으로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이 道를 크게 할 수 있는 것이지, 道가 사람을 크게 하는 것 은 아니다.”라고 孔子는 말하였던 것이다.

儒家의 美學的 觀點으로 놓고 볼 때, 文學·藝術의 眞正한 價値는 그 主 題와 內容에 있는데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儒家의 審美觀點도 바로 그 基礎위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作品의 ‘內容’을 主要 審美對象으로 하고 있 는 것이다. 그리하여 ‘書’의 主要機能은 ‘道’를 담는 것이다.

漢字가 書法藝術의 重要한 構成要素 중의 하나라면, 用筆과 結體 또한, 書法藝術에서 빼 놓을 수가 없는 重要한 構成要素이다. “字劃이 처음 만들 어질 때 鳥跡에서 起因”하였는데, 날렵한 ‘翰’으로 만들어진 붓으로 表現하 는 것이 제일 용이하였을 것이다. ‘翰墨’이 書法의 主要手段이 된 것도 바 로 그것 때문이다. 用筆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意境’인데, “意境은 人間과 自然, 事物과 나, 景과 情의 統一이다. 自然의 景物은 客觀的인 것으로 景 物에 感動되어 情感이 일어나고, 情感은 客觀的인 것으로 景物에 의지하여 뜻을 나타낸다. 情과 景, 物과 나, 客觀과 主觀이 渾然一體된 意象이 바로 意境이다.” 이러한 用筆의 奧妙함은 바로 마음에서 비롯된다.

宋대의 蘇軾은 그의 著書 『論書 에서 “書는 반드시 神·氣·骨·血·肉 이 다섯 가지가 兼備하여야 하지 하나가 모자라도 書를 이룰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 神·氣·骨·血·肉 다섯 가지는 바로 書法의 ‘體’를 이루는 중요 한 要素로 作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筋骨’이 제일 重要한 바, 歷史上에 서는 唐나라의 著名한 書法家인 顔眞卿과 柳公權의 書法을 ‘顔筋柳骨’이라 고 稱頌하면서 모든 書法家들이 따라 배울 ‘體’로 높이 받들고 있다. 그 理 由는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書體가 神·氣·骨·血·肉이 구비되었을 뿐만 아 니라, 그 사람도 바르고 剛直하기 때문에 歷史的으로 ‘忠臣’의 본보기로 遜 色이 없었기 때문이다.

“書, 如也.”라고 하였는데, ‘書’를 이루고 있는 漢字-用筆-結體 모두가

‘人·仁’과 ‘不一而不二’의 關係를 形成하고 있기 때문에 ‘書’가 본받는 것 (如)은 곧 ‘人·仁’과 다름이 없다. 書法이라는 ‘法’도 技術이나 技法의 ‘法’이 아니고 ‘倣效’의 뜻으로 역시 ‘본받음’의 의미가 다분하다. 結果的으로 ‘書 法’이란 ‘본받음’인데, 이것이 바로 중국인들이 ‘書藝’ 혹은 ‘書道’라고 부르 지 않고 ‘書法’이라고 부르는 理由 중의 하나이다.

書法은 藝術이다. 儒家에서 말하는 藝術의 의미는 ‘個人의 人格에 仁을 심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內在的인 즐거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즐거 이 ‘仁’을 향하게 하여 ‘道’에 이르는 한가지 수단(術)이다. 書法藝術은 西 歐的인 美學의 의미에서 보는 點이나 線, 혹은 面으로 이루어지는 技巧爲 主의 形式的인 藝術이라고 할 때, 그것은 書法의 下位槪念에 속하는 것이 다. 반대로, 技法이나 技巧같은 것을 ‘道’에 이르는 일종 ‘末技’ 혹은 ‘小技’

라고 하는 補助的인 手段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儒家의 意味에서 보는 書法이야말로 眞正한 上位槪念의 藝術인 것이다.

Ⅳ장: 儒家審美思想이 中國書法에 미친 影響은 지대한 것인 바, 비록 ‘書 法藝術’이라는 上位槪念을 建立하는 데는 積極的인 一助를 하였지만, 書法 批評에서는 그 한계가 잘 露出되고 있다.

書法批評은 一般的으로 漢代의 楊雄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儒 家思想의 合理的이고 進步的인 면을 繼承發展시켰고, 또 나름대로 儒家思 想의 束縛에서 벗어나려는 氣槪를 지녔던 楊雄은 “말은 心聲이고, 書는 心 畵이기 때문에 그 소리와 그림의 모습으로 小人과 君子가 구별된다.”라고 主張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書’와 ‘心’ 그리고 사람(小人, 君子) 三者의 關 係를 처음으로 規定짓고 定義를 내린 것이다. ‘心畵’의 影響을 받은 後世의 書家와 批評家들은 ‘心正則筆正’, ‘書者, 心也.’, ‘書如其人’ 등등과 深度깊은 理論들을 探究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心’과 ‘書’의 關係論에서 나타난 書 法批評은 곧 書品과 人品을 不可分의 關係로 몰고 가면서 所爲 ‘美’와 ‘善’

의 調和問題의 解決은 드디어 極端으로 치닫게 되었다.

歷史的으로 貳臣이라는 汚名을 쓴 書法大家 중에는 趙孟頫와 王鐸도 있

는데, 둘 다 ‘骨氣’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다. 趙孟頫와 王鐸의 書法은 直接 書聖 王羲之의 書法을 배웠지만, 趙孟頫는 姸媚한 길로, 王鐸은 剛毅 한 風格을 所有하게 되었다. 趙孟頫가 姸嵋의 書風을 갖추게 되자, ‘貳臣’

이기 때문에 ‘骨氣’가 없다느니 ‘無骨’이라느니 온갖 비난들이 다 쏟아 졌

이기 때문에 ‘骨氣’가 없다느니 ‘無骨’이라느니 온갖 비난들이 다 쏟아 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