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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儒家審美思想과 書法의 形成

3) 文以載道

이런 思想은『說文 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許愼은 王자를 다음과 같이 解釋하였다. 그는 “王이란 천하가 귀속되는 것이다.”95)라고 한 다음 董仲 舒의 말을 引用하여 말하기를 아래와 같다.

옛날 文字를 만든 사람이 세 획의 가운데를 이어 놓고 그것을 王이라고 하였다.

세 획은 天地人을 뜻하는데 天地人을 헤아려서 통한 者를 王이라 부른다. 孔子가 말하기를 “三을 하나로 꿰뚫은 자가 王이다.”고 하였다.96)

『說文 의 「三部」에서는 “三이란 天地人의 道이다.”97)라고 하였다. 孔 子가 眞實로 “三을 하나로 꿰뚫은 者가 王이다.”라고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역대 文字學者나 歷史學者들은 아무런 疑意도 내놓지 않았다. 春秋戰國時 期에 살았던 孔子가 王權을 崇尙하는 思想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그의 중요한 政治思想의 한 部分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95) 許愼, 『說文·王部 : “王, 天下所歸往也.”

96) 許愼, 『說文·王部 : “董仲舒曰, 古之造文者, 三畵而連其中謂之王, 三者天地人也, 而參通之者王也, 孔子曰, 一貫三爲王.”

97) 許愼, 『說文·三部 : “三, 天地人之道也.”

事實上 王자는 甲骨文에서 , , 와 같은 模樣을 하고 있으며, 金文에

위의 文章을 綜合해 보면 한마디로 “文以載道”102)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漢字는 비록 事物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象形’글자라고 하지만 글자 속에는 “五經六籍”의 ‘道’가 內包되어 있는바 形式의 아름다움과 內容의 豊富함을 두루 갖추어 가히 ‘文’과 ‘質’이 ‘彬彬’103)한 文字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儒家의 認識과 반대로 莊子는 ‘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神秘로운 느낌 이 들기까지 하는 見解”를 피력하였다.

道를 배움에 있어서 世上에서 貴重히 여기는 것은 글이다. 글이란 말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 貴重한 것이 된다. 말이 貴重한 까닭은 뜻이 있기 때문인데 뜻이란 追求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뜻이 追求하는 것은 말로써 傳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런데도 世上에서는 그 때문에 말을 귀중히 여기며 글을 傳한다. 世上에서는 비록 그것들을 貴重히 여기지만 나는 貴重히 여길 게 못 되는 것이다. 世上에서 貴重히 여기는 게 貴重한 게 못되는 까닭이다.104)

莊子의 이 말에 대하여 여러 學者들이 의논이 분분한데, 그중 李澤厚의 말을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儒家에서 强調하고 있는 것은 感覺과 情緖의 正常的인 滿足과 發散이다. 이는 社會·政治를 위하여 藝術이 奉仕해야 한 다는 實用的이고 公利的인 性格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에 비하여 道家에 서 强調하고 있는 것은 人間과 外界對象 사이의 超公利的인 無爲關係, 즉 審美關係이다. 이는 內在的·精神的·實質的 아름다움이며, 藝術創造의 非認 識的 法則이다. 만약 儒家가 後世의 文學·藝術에 미친 影響이 주로 主題·

內容에 있다고 한다면 道家는 주로 創作의 法則, 즉 審美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藝術이 獨特한 意識形態를 이루고 있는 그 重要한 特

永久化. 這樣看, 許愼表面上在說字, 其實他在談文化. 說字, 解經, 談文化這三者應是一致的.”

102) 宋·周敦頤, 『通書·文辭 : “文,所以載道也. 輪轅飾而人弗庸,徒飾也,況虛車乎?文辭,藝也;道 德,實也.”

103) 『論語·雍也篇一十八 : “子曰: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104) 『莊子·天道 : “世之所貴道者,書也. 書不過語,語有貴也. 語之所貴者,意也,意有所隨. 意之所隨 者,不可以言傳也,而世因貴言傳書. 世雖貴之,我猶不足貴也,爲其貴非其貴也.” 李澤厚 지음/尹壽 榮 옮김, 上揭書, p.173. 재인용.

性이 바로 이 審美法則에 있는 것이다.”105) 儒家의 美學的 觀點으로 놓고 볼 때 文學·藝術의 眞正한 價値는 그 主題와 內容에 있는데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儒家의 審美觀點도 바로 그 基礎위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作品 의 ‘內容’을 主要 審美對象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儒家가 後世의 文學·藝術에 미친 影響이 주로 主題·內容에 있고 道家는 주로 創作의 法則, 즉 審美에 있다.”고 한다면, 순수 儒家審美思想 의 틀에 맞추어지는 藝術은 커다란 弊端을 안고 있을 것이 分明하다. 하지 만 純粹한 道家美學의 틀에 맞춘 藝術도 만약 主題와 內容을 度外視 한다 면 그 또한 無限한 弊端을 招來하게 될 것이다.

多幸이도 儒家와 道家는 “서로 竝立的으로 存立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貫通하면서 하나의 中間을 通過”106)하고 있고, 전혀 矛盾속에서 相沖하지 않고 “差異속의 同居”107)의 形式을 취하고 있으므로 書法藝術이 不斷한 發展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