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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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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寒食

강남에 한식날 비가 흩뿌리니 江南寒食雨紛紛

봄날도 삼분의 이가 지나가네 春色三分已二分

진한 봄기운에 꽃도 취하려하니 惱殺紅情花欲醉

버들도 기뻐하는 듯 반가이 맞이하네 展開靑眼柳如欣

나비는 단꿈을 따라 깨어날 줄 모르고 蝶隨短夢渾忘覺

꾀꼬리의 고운 소리 저녁까지 들려오네 鸎惜嬌音晩有聞

병중의 시편은 다 부질없는 흥취거늘177) 病裡詩篇渾漫興

아름다운 날 어떻게 안개와 구름에 화답할까 佳辰何以答煙雲

늦봄 暮春

강남의 삼월에 인천이 아름다우니 江南三月麗人天

보던 책을 잠시 놓고 술통 앞에 기대었네 暫置看書倚榼前

나비 꿈속에 꽃은 붉게 피어나고 花意紅酣蝴夢裏

한 쌍의 제비 나는 곳에 풀도 다투어 푸르구나 艸心翠戰鷰雙邊

청명에 내림 비 계곡물 넘쳐흐르고 谿流剩得淸明雨

해질녘 연기에 산 이네 항상 보이네 山靄常看薄暮煙

늙어 갈수록 봄바람의 뜻을 알 수 있으니 老去春風能領略

詩墨을 술자리에 가까이 하노라 却將詩墨近樽筵

177) 다 부질없는 흥취거늘 : 杜甫의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에 “나는 성질이 아름다운 시구를 지나 치게 좋아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마지않네. 늘그막의 시편은 다 부질없는 흥취일 뿐이 니, 봄이 오매 꽃과 새들은 너무 시름하지 말거라. 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謾 興, 春來花鳥莫深愁.”라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0.

동헌에 드리는 두 수 寄呈東軒二首 지주는 박승휘178)이다. 地主朴承輝

1

琴軒에서 유유자적하니 향불179)사그라지고 琴軒自適篆香殘

봄 깊은 화려한 누대에서 옥대를 풀었네 畵閣春深玉帶寬

지방 수령이 되어 홀연히 선령의 신발 남겨두고 鳧影忽分仙令舃

螭頭180)에서 잠시 시종신 의관을 벗어놓았네 螭頭暫卸侍臣冠 편안하고 한가로이 일에 임하니 일이 없는 듯하였고 舒閑臨事如無事

청렴한 관리가 되어 관직에서 벗어난 듯 淸寂爲官似去官

시문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 騷雅不妨治郡課

동산의 울긋불긋 화초를 마음껏 보시길 山園紅綠剩堪看

2

봄놀이 가자던 가약을 저버렸는데 尋春一約負佳期

청명절은 이미 지났으니 삼짇날이 마땅하오 錯逈淸明上巳宜

경박하나 복사꽃의 계절을 사랑할 만하니 輕薄堪憐桃李節

머뭇거리며 영산홍 필 때를 기다리겠소 遲回爲待映紅時

螭頭의 푸른 대나무 넉넉한 뜻을 알겠고 螭頭翠竹知饒趣

祥寺의 지는 꽃을 보며 늦은 시를 지으시길 祥寺殘花晩賦詩

관기는 잠시 金縷曲181)을 멈출지어다 官妓且停金縷曲

178) 박승휘(1802∼1869) : 조선의 문신. 자는 光五. 호는 社皐, 시호는 文貞. 본관은 密陽. 1829년(순 조 29) 문과에 급제, 내외직을 역임하고 1845년에 강진 군수를 지냈으며 1848년(헌종 14) 司成으 로 校正郎廳이 되어 三朝寶鑑 의 편찬에 참여. 1855년(철종 6) 대사간, 1864년(고종 1) 강원도 관 찰사를 지냈다.

179) 향불 : 원문의 ‘篆香’은 唐·宋 시기에는 篆書 모양으로 만든 향에 불을 붙여 그것이 타들어가는 것으로 시간을 재면서 모기 등의 벌레를 쫓는 용도로 쓰곤 했다.

180) 螭頭 : 螭頭官의 준말로 당 나라 때 史官이 거하던 관아의 별칭이다.

181) 금루곡 : 唐 金陵의 소녀 杜秋娘이 15세에 李錡의 첩이 되었는데, 李錡를 위해 詞를 지어 노래 한 일이 있었다. 그 곡에 “주군께 권하노니 금색 실로 만든 옷을 아끼지 말고, 모름지기 소년 시 절을 아껴야 하리. 꽃이 피어 꺾을 만하면 바로 꺾어야 하니, 꽃 없어진 뒤에 부질없이 가지만 꺾

동풍에 오히려 꺾어 전해 줄 가지가 있나니 東風猶有折贈枝

방옹182)의 운을 잡음 拈放翁韻

점점 금년이 작년과 달리 느껴지니 轉覺今年異昨年

몸은 여윈 학이요 마음은 울지 못하는 매미183)로다 身同癯鶴意寒蟬

봄바람에 견디지 못하여 꽃이 다투어 시드니 東風不耐花爭老

지는 해에 다시 찾아와 버들과 잠드네 斜日翻尋柳與眠

세상일은 모두 일장춘몽과 같으니 人事都歸醒後夢

봄날은 항상 비온 뒤의 하늘과 같네 春陰常作雨餘天

지금 홀연히 또 삼월이 저물어 가니 今忽又云三月暮

봄의 풍광184)을 아끼며 한바탕 슬퍼하네 解惜韶華一悵然

계산이 해상에서 돌아와 시축을 보여주며 운을 잡아 끝에 쓰게 함 桂山自海上還示以詩軸使拈韻書尾

연운이 미간에 있으나 기운은 아직 남아 있고 煙雲眉際氣猶存

그대의 맑은 유람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知子淸遊在不言

가는 날 부슬부슬 꽃비가 넉넉하더니 去日염삼花雨足

올 때는 살랑살랑 보리 바람 따뜻하여라 來時搖艶麥風溫

봉래산의 삼신산185)을 가까이 하려고 蓬壺欲挹三山近

滄海186)를 곧바로 갔다가 만리 길을 돌아왔네 滄海直窮萬里翻 지 마소서. 勸君莫惜金縷衣, 勸君須惜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라 하였다.

182) 방옹(1125∼1210) : 南宋의 대표적 시인 陸游의 호다. 약 50년 동안에 만여 수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詩史上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힌다.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킨 점이 최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주요 저서에는 劍南詩稿 가 있다.

183) 울지 못하는 매미 : 원문의 ‘寒蟬’은 추운 가을날 울지 못하는 매미를 말하는데, 흔히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184) 봄의 풍광 : 원문의 ‘韶華’는 아름다운 계절의 경치, 보통 春光을 가리키는 詩語이다 185) 봉래산 : 원문의 ‘蓬壺’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인데 모양이 병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한다.

186) 창해 : 東海 혹은 渤海를 가리킨다. 이 창해 안에 蓬萊·瀛洲·方丈 등 이른바 三神山이 있다고 전해졌다.

아름다운 정취를 시 한축에 거두니 佳趣穩收詩一軸

대나무 그늘로 지는 해가 사립문에 비치네 竹陰斜日逈柴扉

앞의 운을 써서 낙화를 읊음 用前韻詠落花

봄빛이 가지 끝에 겨우 남아 있어 春色枝頭僅若存

지는 꽃에게 물어보나 말없이 떨어지네 殘花爲問落無言

가랑비를 견디지 못해 석 잔 술에 취하니 不堪細雨三杯醉

오히려 동풍을 아끼며 한번 웃음에 온화해지네 尙惜東風一笑溫

문득 시름 결에 제비와 꾀꼬리를 쫓다가 忽逐燕鸎愁裡過

꿈속에 훨훨 나는 나비를 따르네 半隨蝴蝶夢中翻

이제 다시 기쁜 일이 적을 것이니 從今更少開顔地

종일 무료하게 지내며 홀로 문을 닫으리 永日無聊獨閉門

4월에 삼천으로 가던 길에 2수를 지음 四月向三川路中作二首

1

칠년 동안 이 행차를 준비하다가 七載經營有是行

동풍에 찾아와 영신성에 머무르네 東風來宿永新城

마음은 묻힌 보검처럼 늘 벗아나고자 하나 心如埋釰常思出

몸은 한가한 구름을 좇아 여정조차 헤아릴 수 없네 身逐閑雲不計程

늙지 않은 청산은 여전히 옛 모습이거늘 未老靑山猶舊面

다시 찾아온 백발에 남은 생이 부끄럽네 重來白髮愧殘生

다만 노력하여 이날을 다 마치리니 但須勞力窮斯日

책상을 마주하여 등불 켜고 지극한 정 나누리 逢榻燃燈話至情

2

한 길 지팡이에 어린 동자 하나 齊丈一笻滿尺童

행장은 담박하니 내 마음과 같구나 行裝澹泊與心同

이별의 말을 견디지 못하고 긴긴날을 보내며 未堪分語消長日

여전히 몸을 의지하며 저녁 바람을 쐬네 猶足倚身納晩風

풀은 더디게 돌아옴을 한하여 푸른빛을 구기겠고 草恨遲回應皺綠

꽃은 기다리기 싫어서 붉은 빛을 떨구었으리 花嫌留待已消紅

여러 해 동안 몇 번이나 삼천의 길을 꿈꾸었던가 多年幾夢三川路

다시 지금 온 이 길이 꿈속일까 두려워라 却恐今來復夢中

용연서각187)에 지음 題龍淵書閣

고각 오백 칸에 청풍이188) 불어와 古閣淸風五百間

일월을 헤아리니 아득하여 따라 잡기 어렵네 經營日月杳難攀

기와에 ‘正德三年189)’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고 瓦存正德三年字

처마는 추성의 산 중턱에 걸쳐있네 軒入秋城一半山

주인이 바뀌니 흥망을 알 수 있고 換得主人興替見

명월을 불러보니 고금이 순환하네 招呼明月古今還

객이 와서 오래 앉아 있으니 온통 꿈 꾼 듯 客來坐久渾如夢

물에 붉게 아롱진 연꽃이 가장 사랑스러워라 最愛紅蓮點水斑

187) 용연서각 :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부근에 있었던 서각으로 보인다.

188) 오백 칸에 청풍이 : 蘇軾의 病中獨遊淨慈謁本長老周長官以詩見寄因次韻答之 에 “노 선사께서 남산에 들어왔단 말을 와병 중에 들었나니, 청풍 오백 칸을 깨끗이 쓸었구려. 臥聞禪老入南山, 淨 掃淸風五百間.”라 하였다.

189) 正德三年 : 1506,(중종1)년이다. 正德은 중국 명나라 제 11대 황제인 무종이 사용한 연호로(1506 년∼1521년), 무종은 正德 연호를 본 따 正德帝 혹은 正德皇帝라고도 불린다.

지주190) 와 도갑사에서 노닐며 운자에 따라 절구 한수를 지음 與地主遊岬寺口號一絶

유수 같은 천년 세월의 절에 流水千年寺

서늘한 팔월의 초가을이라 微凉八月秋

외로운 구름도 흘러가지 못하니 孤雲飛不去

이별의 정이 함께 아득 하여라 離思共悠悠

화답한 시를 붙임191) 附和

월출산 절간에 月出招提境

내 발길 가을로 접어드네 吾行入素秋

청산의 슬픈 이별 靑山怊悵別

내일 갈 길이 아득하여라 明日路悠悠

도갑사에서 자고 상견성암192)에 올랐다가 이별하며 쓴 시 宿岬寺登上見性臨別拈韻

골짜기를 지나 그윽한 길을 찾으니 穿壑尋幽逕

암벽에 의지하여 작은 누대가 있네 依巖有小樓

연푸른 숲속의 안개 흩어지고 輕蒼林靄散

작고 흰 바다 구름 떠다니네 微白海雲浮

꺼져가는 등불을 짝하여 잠드는 밤 伴宿殘燈夜

태수와 가을을 함께 하노라 共分太守秋

청산의 이별 길에서 靑山因別路

슬퍼하며 가다가 멈추네 怊悵去而留

190) 지주는 박승휘를 말한다.

191) 원문에 ‘韻’자가 생략되어 있고, 격자가 되어 있지 않아 편집도 잘못된 부분이다.

192) 상견성암 : 월출산 도갑사에서 구정봉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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