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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정부형태 : 의회제 vs. 대통령중심제

동구에서는 압도적으로 대통령제가 지배적이다. 의회중심제를 채택한 나라 는 체코, 헝가리, 에스토니아, 그리고 슬로베니아 뿐이다. 헝가리는 왜 의회 중심제를 택한 것인가? 정부형태의 선택은 권력집단 간의 경쟁적 타협의 산 물이다. 이행기와 같이 불확실한 시기에서 권력배분을 결정하는 제도를 결정 하는 것은 힘의 균형에 달려있다.13)사실 대통령제 문제는 공산당과 민주진영 간의 협상에서 가장 타협하기 힘들었던 사안이었다. 민주진영 다수가 대통령 제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에 협상은 난국을 만났다. 민주진영은 대통령은 보 나파르트 독재로 변질될 것을 경계했다. 한편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은 자신이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진 영은 대통령제 도입을 둘러싸고 문제를 두고 분열했다. 청년민주연합, 자유 민주연합, 사민주의세력 등 소수는 대통령제를 반대했다. 막판에 민주진영의 다수를 대표해 MDF의 Antall과 공산당의 Pozsgay가 대통령제의 도입에 합의 했다. 대통령제가 결정된 후 민주진영협상회의(EKA)는 붕괴되었다. 그러나 협상으로 도출된 대통령제는 나중에 사문화되고 대통령이 간접선거로 선출 되면서 무력화되었다.

공산주의 수립 이전의 역사적 제도는 이행기 정부형태의 선택에 영향을 준 다. 헝가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구 국가는 전전 의회주의 혹은 왕정과 의회 주의의 혼합형 정부를 경험했었으며 권위주의 및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한 후 자연스럽게 의회주의 정부를 선택했다. 한편 의회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대통령제도가 도입되었다.14) 물론 대통령중심제를 선택한 맥락은 당시 상황이 제공했던 동기와 제약에 달려있었다. 러시아와 크로아티아는 과 거 정부와 다른 국민적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했다.

러시아의 경우 정치인은 아직 정당이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서 개인적 지명 도에 의존하는 선거제도를 선택함에 따라 대통령제가 도입된 것이다.

강력한 대통령제도는 시민과 정당 간 후견적 관계를 만드는 반면 의회제는 정책정당의 육성에 기여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직선제나 임기 등이 아니라 대통령직에 내재한 행정 및 입법권에 있다. 대통령이 내각을 임명하고 외교 정책을 제어하고 군통수권을 행사하고 비토권을 포함하여 중대한 입권을 실 시할 수 있다면 정책정당은 힘을 발휘하기 곤란하다.

정부형태의 설명은 이론적으로는 제도주의적 경로를 중시한다. 정부형태와 민주주의 간의 관계에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주목했던 Linz와 Stepan(1996)은 의회중심제를 선호했다. 의회중심제가 안정적이고 합의도출형 민주주의를 낳 는 반면 대통령중심제는 불안정하고 갈등도출형의 반권위주의 체제를 만든 다고 주장했다 (Stepan and Skach 1993; Linz and Venezuela 1994). 정부형태는 시장체제와도 관련을 갖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재산권 보호와 중앙은행 의 독립을 신속히 채택하고 가격과 관세를 자유화하고 국경기업을 사유화하 고 그리고 재정균형을 달성한 국가는 신속한 시장지향의 성공을 이룩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Lipton and Sachs 1990; Hellman 1997). 이러한 이론에 따르 면 헝가리의 다양한 정치세력이 협상테이블을 통해 선택한 의회중심제는 다 양한 세력의 각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헝가리에서 강력한 대통령제가 도입되지 못한 것은 헝가리 사회주의 체제 의 성격에도 그 원인이 있다. 동구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한 나라는 대체로 레 닌적 유산이 강한 나라들이다. 예를 들어 구 소련 연방에 속했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헝가리는 1956년 저항운동을 시도

했고 1980년부터는 레닌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민주화 과정에

서 등장한 구호 ‘유럽으로의 복귀’는 정치제도적으로는 의회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헝가리 대통령은 거의 실질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같은 대통령제에서 라도 대통령은 동일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다. 첫째, 제도 도입 당시의 세력균형이 대통령의 권력 정도를 결정한다.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집단의 협상력이 강력하면 그렇지 않 은 조건에서보다 대통령에게 보다 많은 결정권이 부여되기 쉽다. 둘째, 협상 은 다양한 종류와 정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진행된다. 고도의 불확실성이 잇 는 경우 예를 들어 헝가리 공산당은 갑자기 해체되고 대통령직을 노렸던 Pozsgay가 공산당을 계승한 사회당의 대표가 되지 못하는 전혀 예측치 못했 던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한 세력은 대통령 권한에 대해 불확실성의 발발에 대비하여 다양한 제한 장치를 두고자 한다.

1989년 협상에 참여한 공산당과 자유세력은 대통령의 위상을 놓고 대립했 다. 공산당은 조직과 인물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대통 령제를 주장했다. 대통령제 문제와 관련 헝가리의 협상회의는 세 가지 쟁점 을 논의했다. 첫째는 대통령 선출 방식이다. 직접 혹은 의회에서의 간접선출 을 두고 의견이 대립했다. 둘째는 대통령의 선출시기이다 의회선거 전 혹은 이후에 선출할 것인가이다. 셋째는 대통령의 권한을 놓고 대립했다. 그러나 위 세 가지 사안은 형식적이었고 실질적 쟁점은 공산당의 개혁파 인물 Pozsgay가 대통령직을 맡느냐의 문제였다.

보충 설명)

헝가리 국회의 의원수는 위 테이블에서 보듯이 기존 386석에서 199석으로 축소되었으며 선거제도도 보상명부제가 폐지되었다. 보상명부제는 소선거구 제와 비례대표제로 의회 진출에 실패한 군소정당을 위한 제도로 군소정당은 보상명부제에 따라 의석수를 할당 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이 제도가 폐지되 었으므로 의미가 없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비율은 위와 같이 바뀌었다. 전반적으로 거대 정 당에 유리한 선거법이라고 볼 수 있다.

행정부는 선거에 따라 빈번한 좌우대립 구조가 변하였지만 기본 골자는 동 일하다.

사법부는 헌재 판사가 기존 15명에서 11명 그리고 최근에는 9명으로 축소

헝가리 폴란드

국가형태 공화국 공화국

정치체제 의원내각제 의원내각제

개헌

1989년 원탁협상에 따른 공산 헌법 대폭 개정

2011년 신헌법 채택

1989년 4월 원탁협상에 따른 공 산헌법 개정, 1992년 개헌(대통 령 권한 축소),

1997년 신헌법 채택

행정부 수반 총리 총리

국가수반(상징적 인사) 대통령(간선, 5년 임기제, 한차례에 한하여 연임가능)

대통령(직선, 5년 임기제, 한차례에 한하여 연임가능) 의회형태 단원제, 개헌에 따라 386석에

199석으로 축소

양원제, 하원(Sejm, 460석) 상원(Senate, 100석) 의회진입에 필요한

최소 한계치(Threshold) 5% 5%

선거제도

혼합형 하원 상원

1990-2010년 2012년~ 현재 소선거구제 176

비례대표제 152 보상명부제 58 386석

소선거구제 106 비례대표제 93 199석

비례대표제 460석

다수대표제 100석

헌재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결국 각 정당의 추천을 받아 최종 국회동의를 얻어 임명하기 때문에 정치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갖춘 기관이라고 보기에 는 거리가 멀다.

중 동부 유럽의 과거 청산 사례 및 경험

-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과거청산 관련법을 중심으로 -

김 지 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박사)

목 차

1. 헝가리

1) 보상법(The Law of Compensation) 2) 정의 법(The Law of Justice)

2. 폴란드

1) 보상법

2) 적격 검사법(Screening Law) 3. 체코

1) 보상법

2) 적격검사법

1. 헝가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헝가리의 과거 청산은 실패한 사례 혹은 좀 더 정확 히 말하자면 헝가리의 과거 청산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공산주의 과거를 대 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상징적이라 함은 민주적 체제 전환 후 과거 공산주의 시절 당·국가가 범 집행이라는 구실 하에 보편적 인권 및 시 민 그리고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면서 까지도 당·국가의 권력을 공고화 시키 려는 시도에서 발생한 피해 및 범죄에 대하여 첫 탈 공산주의 언털 정부가 일부 피해 및 보상을 해주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피해 보상 및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일부 발생하 였기 때문에 엄격한 법 집행 의미의 과거 청산 및 척결(cleansing)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전 헝가리 헌법 재판소 최고 상임 고문 위원인인 헐 머이 가보르(Halmai Gábor)가 주목하였듯이 “헝가리의 과거 청산에 대한 태

도는 지금 현재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기존 범죄자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라는 접근 방식을 취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과격한 척결 및 처벌을 우 회하고자 했던 욕구가 헝가리인의 과거 대면 방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상징적 차원의 과거 청산 시도가 이루어진 헝가리의 경험은 헝가리의 체제 전환이 당시 집권 공산당과 야권 세력이 이른바 “원탁협상”(Roundtable Nego- tiations)을 통하여 이루어낸 “협상 혁명”(Negotiated Revolution)적 특징에서 기 인한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헝가리의 체제 전환은 집권 공산당과 야권 양 자 간의 협상으로 이루어낸 평화적 체제 전환 방식이기에 첫 자유 총선 후 등장한 언털 행정부는 평화적 정권 이양을 해 주었던 기존 공산당 세력에게 과격하고 보복적인 조치를 추구하는 방식의 과거청산 접근법은 지양하였음 을 의미하였다.

관련 문서